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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야파티

죽은 신의 나비

2023_이야챌린지_067

by 이야
임시 표지

이오예술고등학교.

1학년 7반.

1분단 맨 뒷자리.

쉴 새 없이 떠드는 사이.


"그래서 나는 그런 걸 만들 생각이야."

"오~ 나도 언니랑 엄청 열심히 봤는데! 진짜 마법소녀물이 동심끝판왕이지~"


도아는 서율의 호응에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런데 흔한 소재에 주제도 무난해서 그걸로 정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아?"


반면 조용히 듣고 있던 시은이 물었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긴 한데-"


계속 마음에 걸리던 걸 짚어주니 고맙다고 해야 할까.

도아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에이~ 그래도 뭐든 해봐야 아는 거 아니야?"

"성적이 중요한 것도 맞잖아. 도전, 좋지. 그런데 그간 잘하던 거 놓고 새로운 걸 시도하기엔 촉박하지 않아?"

"곧 2학년 올라가는 건 맞지만- 나는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야 네 일이 아니니까 그런 거겠지."

"홍시은. 갑자기 남의 대화에 끼어들어서 뭐 하자는 거야?"

"옆에서 들리니까 거든 것뿐이야. 이번 실기 수행 결과로 입시에 꽤 영향을 줄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도 생각해 보라는 거지."


두 사람은 금방이라도 싸울 기세였다.

도아가 그 사이로 팔을 뻗었다.


"둘 다 생각해 줘서 고마워! 나도 좀 더 고민해 볼게."


고개를 끄덕인 시은은 다시 책을 바라봤다.

한편, 시은의 말에 발끈했던 서율은 이어지는 설명에 납득했다.


"홍시은 말도 일리가 있지만. 도아, 네가 원하는 걸 해야 좋은 결과도 따라올 거라고 생각해! 뭘 정하든 응원할게!"


종이 울리자 서율은 자리로 돌아가고, 도아는 심란한 얼굴로 태블릿을 꺼냈다.

그동안 짜놓은 서사도, 그에 맞게 디자인한 캐릭터도 왠지 부족하게 느껴졌다.

슥슥.

고심하던 그녀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도아이.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주인공.

흑발과 붉은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원래 남들처럼 평범한 검은 눈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혼이 깃든 특별한 장식을 얻은 아이.


"너무 평범한가?"


여타 마법소녀물처럼 두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그녀.

그 사이에 심심한 부분이 많았다.

또 주인공의 목표와 그것을 이뤄내는 과정도 생각만큼 구체화되지 않기도 했다.

세상의 진실을 마주하고, 세상을 걸러보게 된 그녀는 그 사이에 있는 악령들과 싸우며 세상을 수호해야 하는데.


"뭔가 고리가 약하다고 해야 하나."


판타지 장르에 취약한 제 실력을 보니, 시은의 염려가 이해됐다.

서사력도 빵점이지만.


"윽. 이러다 손이 아작나겠네."


막상 쏟은 노력에 비하면 결과물도 좋지 못했다.

화려하게 그려보았지만, 자세히 보니 작화가 무너져있었다.

평소 그리던 태가 아니라 놓친 부분이 많았던 것.


"생각한 대로 안 그려지네."


원하는 분위기를 이끌기 위해 여러 번 수정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욕심인가? 진중한 느낌을 담아내고 싶었는데-"


​어릴 때는 재밌게 넘겼던 장면들.

커서 다시 본 이야기에는 숨겨진 뜻이 가득했다.

거기서 더욱 전율한 도아는 자신의 작품에도 그것을 고려하고 싶었다.

하지만 작업물은 평이했다.

수업 시간을 활용해 여러 장면을 만들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정말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굣길.


"후. 어떡하면 좋을까. 일단 집 가서 더 생각해 봐야지."


서율과 헤어진 도아는 얼마 안 가 골목에 들어섰다.

멍멍.


"아이, 깜짝이야."


평소 텅 비어있던 거리.

크게 울려 퍼지는 개 짖는 소리에 놀란 도아의 걸음이 멈췄다.

무려 세 마리나 자리 잡은 그곳.

어디서 나온 똥개인지는 몰라도 죄다 몸집이 큰 친구들이었다.

평소 동물을 좋아하는 도아도 그 기세에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뭔 개들이 여기서 정모를 해? 큰 길로 돌아가야 하나?'


​빨리 집에 가서 손봐야 하는데, 눈앞의 개들이 쉽게 길을 내어줄 것 같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나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건 아무리 바보여도 알 수 있었다.

단단히 심사가 뒤틀린 개들이라는 것을.


​'보니까 주인이 있는 것 같은데, 세 마리를 동시에 유기하고 간 거야? 그래서 기분이 별론가. 하긴. 버림받았는데 좋을 리 없지.'


무서운 ​그들을 불쌍하게 여긴 것도 잠시.

큰 덩치들 사이 아주 작은 것이 움직였다.

엄청 까만 꼬리.

허리를 숙인 도아는 맹수와 눈을 마주쳤다.

까만 털 사이로 드러나는 금안.

상황에 비해 고고한 자태였지만.


​'괜히 봤어! 이대로 가면 두고두고 생각날 거야. 하, 무기로 쓸만한 게 가방밖에 없나? 윽. 태블릿, 망가질 텐데. 가방은 절대 안 돼.'


고민하던 때.

​개들은 고양이에게로 다가섰고, 골목 끝은 넓어졌다.


​'으아아. 몰라! 일단 구하고 봐야지!'


​전봇대에 가방을 내려둔 도아가 빠르게 몸을 날렸다.

상황은 순식간에 끝을 보였다.

철퍼덕.

가방끈에 걸려 넘어진 그때.

개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섰다.


​"하하, 안녕?"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무해함.

까진 무릎이 쓰라렸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조용히 발을 빼낸 그녀는 팔에 힘을 주었다.

무사히 일어난 그녀의 희생정신에 감동했을까.

개들은 그저 지켜보았다.

얌전히 자리를 지킨 고양이를 제품에 안은 도아가 눈동자를 굴렸다.

말랑한 감촉.

저항 없이 쏙 들어온 고양이의 털이 부드러웠다.

살랑.


​"컹컹!"

"으아아!"


꼬리가 무릎을 스칠 때, 그제야 개들이 반응했다.

​찌릿.

고양이의 털이 빳빳해지고, 도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었다.

숨이 가파지고, 시선 끝에 걸린 개는 1마리였다.


​'다 안 쫓아오는 걸 감사히 여겨야 하나?'


그때 비로소 여러 생각이 스쳤지만, 매섭게 추격해오는 터라 현실에 집중했다.

헐떡이는 심장이 막 파업을 외칠 무렵,


​"허억. 다행이다. 여기 좁은, 헉, 골목이 있어서."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오려는 개를 신발 하나로 대치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간절하게 구겨졌다.


​"제발 좀 가라. 가서 다른 걸 먹으라고-!"


​그러나 어느새 합류한 나머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올라왔다.

더운 공기가 가득한 안으로 날카로운 시선이 꽂혔다.


​"헙-!"


​그대로 눈을 감은 그녀가 고양이를 꽈악 안았다.

뜨끈한 콧김이 언제든 자신을 노릴 것 같아 무서웠다.


​"가,갔어?"


슬며시 눈을 뜬 도아가 밖을 훑었다.


"와. 가방을 가져다준 거야?"


​익숙한 물건만이 벽에 기댄 채로 존재했다.

한쪽 팔을 내린 그녀가 내부를 살펴봤다.

겉보기엔 멀쩡한 태블릿.


​"부서지지 않은 게 맞겠지? 하. 아. 널 잊고 있었네."


​오래 들고 있으니 제법 묵직했지만, 그래봤자 가벼운 고양이였다.

그녀가 뒤늦게 고양이를 확인했다.

물린 자국은 없었다.


​"딱히 다친 곳은 없어 보이네. 그래그래, 언니가 놓아줄게."


​암컷이란 걸 구분한 도아가 가르릉 대는 고양이를 번쩍 올렸다.

딸랑.

목에 방울이 있는 아이였다.


​"괜찮으려나."


​걱정이 됐지만, 길고양이에게 베풀 친절은 충분했다.

고양이를 놓아주려던 그때.

콩.


​"아야. 은혜를 이렇게 갚기야?"


​자신의 머리를 발판 삼아 뛴 고양이가 괘씸해진 것도 잠시.

딸랑.

여러 번 하늘을 넘는 고양이.


​"건강하니 봐준다. 내 머리만 밟지 말아라."


​워낙 좁은 골목이라 그런지 고양이는 두 담벼락을 오가며 정신없이 굴었다.

그리고 기어코 사고는 터졌다.

가방을 메고는 고개를 올린 게 문제였을까.

​그녀가 자신의 목을 붙잡았다.


​"켁켁-"


더는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목구멍을 넘어갈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무슨 이런-!"


기도가 막히진 않았지만, 매우 이상한 기분.

골목을 빠져나온 그녀가 도로를 향해 손짓했다.


​"택시는 왜 이렇게 안 잡혀! 한시가 급한-"


​그녀는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처음은 흐릿하게 보였던 것이 이제는 또렷했다.


​"저게 뭐야-?"


​게임에서나 볼법한 유령.

그런데 그 몸집이 거대했다.

도로에 저런 게 있는데, 어찌 차들은 슝슝 달린단 말인가.


​"너에게만 보이는 거야."


고양이의 꼬리가 다리를 감쌌다.


​"내가 마법소녀물을 생각하다 과몰입했나 보네."


​양손으로 눈을 비빈 그녀의 시각은 여전했다.

필사적으로 외면하려 했거늘.

파바밧.

도로에 금이 가는 게 보였다.


​"오래 방치하면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줄 거야."

"고양이가 말할 리 없다고."

"내 이름은 루시야. 나는 원래부터 말했어. 내 방울을 먹은 덕에 이제야 들리는 거고. 그걸 먹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뭐, 일단 집중하고 느껴봐."


​고양이, 루시의 젤리가 종아리에 닿았다.


​"뭐라는 거야-?"


​울렁.

그럴 만한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속에서 느껴지는 흐름은 명확했다.

명짓한 방울의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축하해. 죽은 신의 흔적으로 만든 나비가 된걸. 이제 저 괴물이 현실에 나타나기 전에 퇴치하면 돼."


​따뜻하고 신비로웠다.

자신을 뒤덮은 빛 속에 빨려 들어간 도아의 머리카락이 빠르게 자라났다.

어느 때보다 또렷한 감각.

순식간에 변신한 그녀가 지면을 박찼다.

며칠 후.

오늘도 괴물과 싸우고 그녀가 외투를 벗었다.


​"솔직히 물리소녀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유령을 직접 패서 해결하는 게 어딨어?"

"원석이나 내놔."

"쳇. '밸런스톤'의 구멍이 다 채워질 때까지 부려먹으면서 내 말 하나 못 들어줘?"

"그럼 그걸 '소원종이'에 쓰지 그래?"

"허어. 절대 안 되지!"


루시가 떠나자 도아는 가방을 살폈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난 지금.


"마법소녀로 활동하게 될 줄이야. 경험을 녹이게 돼서 좋긴 한데, 왠지 오글거린다. 어휴, 그래도 해야지."


슥슥.

그녀의 손놀림이 훨씬 정교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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