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 그냥 참지 그랬냐? 가뜩이나 취업도 어려운 마당에 네 앞 일부터 생각했어야지."
"고민 많이 했다. usb 제출하기 전에도 계속 망설였었는데, 문득 생각나더라. 나 학생 때, 과제에서 좋은 평가 받았는데 정작 성적은 그 새끼가 더 높았던 거."
친구의 핀잔에 술잔을 기울인 민중이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내가 결국 그 새끼랑 손절까지 했는데, 나도 어느새 그런 비리에 동조하고 있다는 게 혐오스럽더라."
"여전히 비일비재하잖아. 게다가 네가 봐둔 곳은 그 교수 입김이 필요하기도 했으니까 너라고 별다른 수가 있었겠냐."
친구가 건넨 위로에도 그의 심정은 착잡했다.
지난 과오가 여전했다.
술을 털어 넣은 그가 자조적인 웃음을 띠었다.
"결국 욕심이었지."
"어쨌든 네 덕에 제대로 성적 받은 애가 있잖아."
"그게 마땅한 결과였는데, 번번이 그러지 못한 거지."
"입대 전에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군대 가서 싹 다 잊어. 미련하게 계속 되새기지 말고. 원체 힘든 상황인데, 거기에 괜히 얹지 말라고."
불안한 마음을 술과 함께 넘긴 술자리였다.
민중의 시간은 빠르게 비어간 병처럼 순식간에 흘렀다.
"전역했는데, 뭐 할 거냐?"
"일단 곧 해 뜨니까 2017년 좀 제대로 맞이하고."
민간인으로 돌아온 그는 친구와 바다에 도착했다.
일출을 바라보는 그의 눈도 붉게 물들었다.
떠오르는 해에 새 마음을 되새긴 민중.
사색이 끝난 민중은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뭘 도와달라고?"
쿵.
성식의 손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로 인해 한구석에 쌓인 조개들이 흔들렸다.
반면 성식의 반응을 예상한 민중은 젓가락으로 음식을 뒤적일 뿐이었다.
그가 입을 연 것은 성식이 주문한 소주를 들이켰을 때였다.
"너튜브. 그거 촬영하고, 편집하는 거? 뭐, 둘 다 내가 할 수 있긴 하지만 혼자 하는 것보단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게 좋겠지."
"그동안 너튜브 하겠다는 말 없었잖냐."
"나도 요즘 들어 든 생각이야. 제대로 죗값도 치르고"
"군대 가서 생각하지 말라니까. 하여간에. 아무튼 거기도 이제 레드오션인데, 어떻게 할 건데?"
성식이 민중의 말을 끊었다.
여태껏 과거에 얽매인 친구가 안타까웠지만, 가볍게 넘긴 성식이 채근했다.
간간이 계획했던 내용을 읊는 민중의 눈빛이 꽤나 진지했다.
소주를 물처럼 마시며 듣던 성식도 자세를 고쳐앉았다.
얼마간 민중의 야심찬 플랜이 이어지는 동안 성식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어느 정도 설명을 이해한 성식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게 먹힐까? 좀 난해한 것 같은데."
"그건 확답할 수 없지만, 아직 PC방에만 있는 너한테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을 거야."
이상하리만치 자신에 찬 민중.
취기 때문일까.
성식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내가 몇 개월만 함 도와줄게. 대신 안 되면 바로 손 뗄 거다?"
"이해하지. 당장 내일부터 시작할 거니까 술은 거기까지만 마셔라."
술잔을 뺏긴 성식이 입맛을 다셨다.
남은 조개구이를 먹은 그가 밝아진 민중을 믿어보기로 결정했다.
몇 개월 뒤.
등교 중인 친구를 발견한 지윤이 빠르게 걸었다.
"송미야, 뭐 보고 있어?"
"아. 지윤이구나. 이거? 민지채널."
"민중의 지팡이데아? 너도 그거 구독 중이야?"
"웅. 알고리즘에 떴는데 재밌더라~ 정확히는 한국의 민낯을 보는 게 공부가 된달까?"
"맞지맞지. 완전 사이다패스~ 불편한 데를 싹 긁어주기도 하고!"
송미의 말에 동의한 지윤도 주머니 속 폰을 꺼냈다.
민중의 지팡이데아, 줄여서 민지채널.
그것은 지윤의 구독 목록도 차지하고 있었다.
"구독자 느는 것도 엄청 빠르네. 이제 몇 개월 안 됐는데~"
"그러게. 요즘 교실에서도 애들이 이걸로 많이 떠들더라."
정문을 지난 둘은 계속해서 너튜브에 대해 얘기하며 건물로 들어갔다.
한편, 전라북도 무안군에서는 한바탕 소란스럽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번 준비에 중앙정부도 기대하고 있고, 또 지역사회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국제 행사 준비인 만큼 많이 신경써야 할 겁니다. 게다가 이번 행사가 1회인 만큼 매년 이어갈 수 있도록 그 시작을 잘 열어야 하고요."
"그렇죠. 다행히 예산 투자도 잘 됐고, 선뜻 도움을 주겠다는 단체와 기업도 면밀히 살펴보고 있어요."
"아, 요즘 아들이 재밌게 보는 너튜브 영상이 있는데 이게 마침 저희가 찾고 있는 방향의 너튜버와 취지가 잘 맞는 채널이더라고요. 이번 밴러피가 국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지만, 국내의 청소년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섭외해서 저희가 기획했던 걸 진행하면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온 공무원들은 이번 행사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조사하고 있었다.
그 무렵, 민지채널의 운영자 중 한 명인 성식은 흥분한 얼굴로 친구를 찾았다.
"민중아, 연락받았냐?"
-어. 섭외 들어온 곳이 지방이긴 한데, 그동안 서울이나 도심지 위주의 콘텐츠만 진행했으니까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오케이 했어.
"오, 잘했다. 보니까 국제 행사라서 규모가 장난 아니더라."
-그래. 장비 가지고 내려가야 하니까 준비 좀 부탁할게.
"오케이! 잘 챙기고 있을게!"
통화를 마친 성식이 화면을 들여다봤다.
'갑자기 빵 뜰 줄은 몰랐지. 확실히 그때 기획이 나쁘지 않긴 했어.'
민중과 함께 키운 채널.
뿌듯함을 느낀 그가 이번에 제안받은 것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며칠 뒤.
전라북도로 내려온 둘은 섭외를 준 곳의 담당자와 컨택했다.
"최대한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담는 게 관건이라고 봐요. 아무래도 국제 규모의 행사를 지방에서 다루다 보니 더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게 군청의 입장이거든요."
"그렇군요. 그 부분은 민중이가 철저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면 잘 부탁드릴게요. 아, 이미 전체적으로 공지하긴 했지만 활동 중에 지장이 없으시라고 마련했어요."
담당자로부터 촬영 허가증을 받은 성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일부터 각 부서를 돌아다닌 둘은 늦은 점심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진행하다 보니, 답사를 국내로 많이 돌아다니시긴 했네."
"그러게. 유교적인 부분도 다루다보니 향교도 직접 가서 거기 어르신들한테 일일이 수업을 받기도 했고."
"왠지 국뽕이 차오른다. 23개국이 참여한다는데, 부지도 넉넉하게 잡은 것 같고. 또 돌발 상황을 대비해 각종 기관에 도움 요청하는 것도, 행사 기간 동안 시민들의 불편함이 있을 것도 예상해서 아예 참여국에 협조도 받은 건 진짜 예상외였어."
성식의 감상에 민중도 동감했다.
"준비는 꽤 훌륭한 것 같은데, 정작 진행되는 중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겠지. 내일은 주변도 돌아보면서 시민들이나 학생들 위주로 만나보자."
다음날, 여러 시민들과 인터뷰한 그들이 한적한 벤치에서 숨을 돌렸다.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의견이 많네."
"맞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서 좋네."
짤깍.
둘은 커피로 더위를 식히며 휴식을 취했다.
"민중이 형님, 아닙니까?"
"누구?"
"아, 구독자입니다. 반득희요!"
"아는 동생인 줄 알았네. 반가워요. 구독해 줘서 고맙고-"
민중이 구독자인 득희와 악수를 나눴다.
영광스러운 눈빛이 살짝 부담스러웠다.
"너튜브 공지를 보긴 했는데, 벌써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혹시?"
"저도 이번 행사에 신청했습니다. 알고 그런 건 아니고, 원래 하기로 했던 거예요!"
"아아."
득희의 설명을 들은 민중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럼 이번 행사 때, 우리 채널에 출연해 보는 거 어때요? 좋은 경험이기도 하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득희 학생을 메인으로 잡으면 좋은 연출이 나올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