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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는 흙 파는 중!
2023_이야챌린지_070
by
이야
Nov 9. 2023
임시 표지
크리터.
인간을 창조할 수 있는 하나의 장소.
그곳에서 막 흙을 빚는 신의 눈동자가 기대로 빛났다.
두근.
빠르게 생성되는 인간은,
"으악. 이번에도 고블린이 태어났어!"
"변하나. 그러니까 내가 제대로 모아서 사라고 했잖아?"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자꾸 지름신이 강림하잖아!"
쭈글쭈글.
하나는 방금 막 창조된 녹색의 고블린을 노려봤다.
"아휴.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돼. 맨날 이런 것만 보면서도 또 확률에 걸잖아."
"죽어서도 도박을 못 끊어내다니. 대단해~"
"어떻게든 한 번은 대박 나지 않겠어?"
또 다른 하나는 눈을 빛내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전의 실패는 별 거 아니라는 듯.
깨달음이 없는 그녀의 행태는 여전했다.
그녀를 오래 지켜본 하나는 체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 꼭 드래곤을 얻길 바랄게."
"난 드래곤보다 트럼프를 갖고 싶은데, 트럼프는 더 만들 수 없다며?"
"그렇지. 그 흙은 이제 구할 수 없을뿐더러 애초에 우리 같은 서민은 사지도 못해. 같은 이름표를 달고 누구보다 이타적으로 살아온 만하나만이 얻을 수 있었던 거니까."
"나는 다시 살아도 못 그럴 듯. 그래서 벌을 받는 건가? 신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인간을 얻고 싶은데!"
그녀가 행성으로 성장을 끝낸 고블린을 보내도 맞이한 동족들은 그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는 신과 세상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들이 답답했다.
"아직도 사제 고블린이 없는 네가 더 대박인 것 같긴 하다."
"우씨. 도하나, 너도 그래봤자 오크 무리면서!"
"나는 애초에 그쪽으로 노선을 정했으니까~ 난 원래도 오크를 좋아했거든~"
변하나와는 달리, 자신의 피조물이 마음에 드는 하나였다.
수많은 하나들의 세계, 크리터.
하나로 살아 하나로 죽은 이들이 모인 곳.
"이름이 부담스러워서 개명하려고 했지만, 안 하길 잘했어~ 그리고 나름 이름에 걸맞게 살려고 노력해서 다행이고 말이야."
변하나는 지갑이 넉넉한 도하나가 부러웠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고블린에 머물렀다.
"좋겠다. 난 쟤네한테 받는 돈이 쥐꼬리만한데."
"아무래도 고블린은 선하기 어렵잖아."
"그렇지. 어휴, 그러니까 내가 한 방을 기대하는 거야."
오늘도 찔끔찔끔.
쌈짓돈을 모으는 변하나였다.
"차라리 그냥 인간을 사."
"그건 재미가 없잖아."
조언을 해도 소용없는 중증.
어깨를 으쓱한 도하나는 오크들로 가득한 자신의 행성을 관찰했다.
그 무렵, 피라는 좋은 땅을 물색하고 있었다.
킁킁.
"하여간. 또 붕어빵을 먹으러 갔나 보네."
엄마의 냄새가 없다는 것을 안 피라가 중얼거렸다.
따끈한 붕어빵을 떠올린 피라가 침을 삼키고 손톱을 꺼냈다.
턱턱.
땅을 두드리니 소리가 괜찮았다.
반복적으로 확인한 그곳은 나쁘지 않은 경도였다.
"오호. 이건 좀 비싸게 물 수 있겠어. 붕어빵이 몇 개냐, 흐흐흐."
상태를 파악한 피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차근차근 발을 움직이는 그녀.
자신의 통에 충분한 흙을 쌓은 피라는 곧 판 땅굴을 만족스럽게 헤엄쳤다.
며칠 후.
크리터에 방문한 피라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하나들에게 다가갔다.
"피라야. 이번엔 이걸로 살게."
"좋아요! 아마 드래곤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계산 부탁해."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동안 모은 흙을 이번에도 모두 판매했다.
기분 좋게 일을 마친 그녀는 붕어빵을 사러 떠났다.
한편, 드래곤이 나올 수도 있는 흙을 구매한 하나는 심혈을 기울였다.
"흐흐. 이번엔 어떠려나?"
그녀의 눈이 기대감으로 물들었다.
보통 하나 이상의 인간을 창조한 하나는 추가로 흙을 살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사는 경우가 몇 가지 있는데, 바로 번식에 문제가 있을 때였다.
"드래곤은 애들을 잘 안 낳다 보니, 이렇게 주기적으로 사야 한다니까~"
곁에 있던 도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연하나의 손이 흙을 빚자 새 인간이 창조되었다.
"그러게. 오, 아이스드래곤이네~ 축하해."
"고마워. 운이 좋네. 그동안 잘 안 나왔는데."
"저번에 얻은 골드드래곤하고 차이가 별로 안 나니까 둘이 이어줄 거야?"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올해 성체가 된 블루드래곤하고 연결할 예정이야."
"아하. 그럼 헤츨링이 더 잘 태어날 수도 있겠네!"
"맞아. 번식 확률이 확 올라가지!"
시큰둥한 드래곤을 행성으로 보낸 하나의 눈이 빛났다.
도하나는 그녀를 따라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두 드래곤이 한참 얽히던 시각.
피라는 엄마를 발견했다.
"엄마!"
"에구. 피라야. 이건 말이다."
"됐어! 용돈 주러 왔거늘, 어디서 또 얻었대?"
"얼마 전에 우리 두더지들을 패던 사람을 혼쭐 좀 내줬어."
도라가 뿌듯하게 자랑했다.
피라의 눈빛이 오묘하게 변했다.
"흐음. 또 이상한 상자 주면서 뜯어낸 건 아니고?"
"이상하다니! 다 기억을 잊으라고 주는 건데, 뭐!"
"그러니까 그냥 돈을 뜯어낸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두더지들을 때린다고 돈도 쓰는 마당에 그 정도는 해도 되는 거 아니니?"
딸의 말에 도라가 항변했다.
"걔넨 진짜 두더지도 아냐, 엄마."
"모형을 그럼 바꾸던가! 왜 그걸 써서 내 마음에 상처를 내!"
"어디는 족제비 쓰던데?"
"큼. 그래서 내가 두더지로 운영하는 세계의 하나에겐 흙을 안 파는 거야!"
"그런 세계의 하나들은 살 이유도 없는걸."
도라는 공감해 주지 않는 딸이 미웠다.
붕어빵을 입에 넣은 도라가 섭섭한 얼굴로 도망쳤다.
한편 엄마가 들어간 땅굴을 지켜본 피라는 이마를 긁적였다.
"엄마는 정말 못 말려."
피라도 다시 흙을 찾아 떠나려던 때.
느껴지는 인기척에 그녀는 기계 뒤로 피신했다.
'뭐 하는 거지?'
그녀는 인간의 행동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것은 익숙한 물건이었다.
'왜 아깝게 지폐를 저따 둬?'
오락실에 와놓고 게임기 안으로 돈을 투입하지 않는 인간이 의뭉스러웠다.
그러나 그녀의 의문은 곧 풀렸다.
"도라야, 여기 돈 놓고 갈 테니까~ 붕어빵, 맛있게 먹어!"
종종 들리는 라원이 돈을 두고 떠났다.
"엄마가 준 상자를 안 열었나 보네?"
대강 상황을 파악한 피라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3천 원을 챙기고는 라원을 쫓았다.
먼저 밖으로 나온 라원은 애매한 날씨를 느끼며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벌써 장사를 시작한 데가 있나?"
라원의 눈이 골목을 훑었다.
주변에 붕어빵을 파는 곳은 없었다.
"낮에는 아직 더워서 안 보이는 것 같긴 한데. 도라는 어디서 사 먹겠단 걸까?"
"다른 세계의 겨울에서."
"응? 헉. 도라야?"
발아래를 내려다본 라원이 놀라 물었다.
도로가 솟아올랐다.
콘크리트를 뚫으려는 도라가 걱정되었다.
푸욱.
돌덩이에도 끄덕없이 튀어나온 두더지가 소리쳤다.
"아냐! 나는 딸, 피라야!"
"에? 도라한테 딸도 있었구나."
"이거 돌려줄게. 엄마를 챙겨줘서 고맙지만, 그건 내가 할 거니까!"
"아. 불쾌했다면 미안해. 그냥 추석인데 할 게 없다가 생각나서."
라원의 사과에 피라가 고개를 저었다.
"엄마 버릇이 나빠져서 그래. 그보다 상자를 안 열어본 인간이라니. 인내심이 대단하네!"
"아. 왠지 열기 무서워서, 그냥 뒀어."
"그래. 그 안에는 온갖 것들이 있으니 호기심보다 안전이 먼저겠지! 아무튼 추석이면 여기 명절이지?"
피라는 자신의 품을 뒤적였다.
라원은 그녀가 꺼낸 물건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통? 흙?"
"할 게 없으면 반려 식물을 키워봐!"
"응?"
"좋은 취미가 될 거야! 그럼 안녕!"
라원에게 흙을 떠넘긴 피라는 다시 콘크리트 속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저게 되나.
이해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손에 들린 통은 더 그랬다.
"3천 원으로 식물을 살 수 있던가?"
같이 쥐고 있던 지폐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주머니에 돈을 넣은 그녀의 손이 폰을 열었다.
"다양하네."
가격을 확인한 그녀의 발이 주변 꽃집으로 향했다.
"꽃 키우시게요?"
"생각 중이에요."
라원은 여러 후보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반면 대뜸 흙을 주고 떠난 피라는 언제나처럼 열심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후후. 역시 제로가 좋아."
거하게 땀을 흘린 그녀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엘프, 드워프 등 다양한 피조물들 중에서도 유독 좋은 인간은 제로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인간으로 부르지만 말이야. 이상하단 말이지? 웬만한 하나들은 애초에 제로였고, 주로 같은 인간인 제로를 창조하길 바라던데- 평가는 또 별개더라. 흠. 내가 이 좋은 흙을 싸게 팔아서 그런가?"
딱 좋은 경도의 흙을 토닥인 피라가 갸웃했다.
"어쩔 수 없잖아. 이건 지천에 널렸는걸. 뭐. 과도기에 접어든 세계가 아닌 곳에서만 그런 거긴 해도-"
향긋한 내음이 좋았다.
두더지 인형을 때리는 인간은 제로가 유일했지만, 엄마와 다른 관점을 가진 피라는 제로에게 유했다.
그래서 취향이 특이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하나들에게 파는 흙은 보통 이것이었다.
통에 흙을 잘 넣어둔 피라는 고된 노동 뒤 만찬을 즐겼다.
역시 붕어빵이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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