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야파티

돌아오는 순간을 위해

2023_이야챌린지_072

by 이야
임시 표지

"언니도 주민이에요?"


수향이 고개를 내렸다.

아직 앳된 얼굴.

상기된 볼을 보아하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 그분은 유나 양과 같은 도전자예요."


유나를 뒤따라온 안내자가 말했다.

성훈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둘을 보았다.

이제 막 이테라토로 오게 된 유나가 모르는 것은 이해하지만.

성훈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여기서 나름 오래 지낸 만큼 그녀를 어느 정도는 파악한 상태.

어서 벗어나야겠다고 판단한 그가 옷깃을 당겼다.


"그렇구나. 아쉽네요. 음. 언니는 혹시 추천해 줄 npc 없어요?"


하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 유나.

여전히 곤란한 표정을 내비치는 안내자의 사정은 전혀 모르는 아가씨였다.

그녀의 손이 맹랑하게 수향을 건드렸다.


"저는 다시 살아날 거예요! 그래서 엄마, 아빠랑 다시 만날 거고 수빈 오빠랑도 꼭 볼 거예요."

"환생도 아니고, 부활이라면 응해줄 주민이 거의 없을 텐데-"


성훈은 그녀가 금방 뿌리칠 줄 알았다.

하지만 기존과는 다른 태도.

말리려던 성훈의 팔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래도 성훈 아저씨는 도와준대요!"

"그런가? 두 명만 구하면 되겠네. 한 가지 팁을 줄게. 너보다 늦게 죽은 이들을 찾아봐. 이테라토의 시간은 현실과 다르니까 네가 살던 때보다 얼마 차이 나지 않은, 그래서 네가 다시 돌아가서 그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구해보란 거야."

"움. 저는 2011년에 있었으니까 그 이후의 주민들을 찾으란 거죠? 언니, 고마워요!"


안내자를 데리고 떠나는 유나의 얼굴이 밝았다.

그래서일까.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

괜한 기분이 든 수향이 눈을 감았다.

결코 허락되지 않은 해.


'정말 그럴까?'


눈을 뜨자 시선에 달이 걸렸다.

이윽고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나라고 했던가.

대다수의 도전자는 그녀처럼 굴었다.

억울하게 죽은 만큼 살고 싶을 테니, 삶을 갈망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꼭 그런 이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수향.

자신은 딱히 그 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재만 남은 저택에 홀로 살아봤자 무엇을 더 얻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이곳으로 와 기회를 얻었을지도 모르지만-"


지난 세월, 그들을 마주친 적은 없었다.

저보다 빨랐거나 혹은 오지 못했거나.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다른 생인들 무엇이 변한다고."


환생조차 바라지 않은 수향은 방향을 틀었다.

제아무리 바라는 삶을 기획할 수 있다 해도 자신은 생각지도 않았다.

정처 없이 이테라토의 거리를 걷는 수향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정말이지 상관없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는 말이다.

도대체 돌아다니는 자신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 걸까.

묘한 눈이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유나의 옆얼굴을 훑었다.


"언니. 이제 한 명만 더 찾으면 저도 던전에 들어갈 수 있어요. 게다가 공략도 받아왔어요!"


총 세 개의 던전을 클리어하면 얻는 기회.

그것을 가장 최적의 루트로 깰 수 있는 공략집을 흔들며 자랑하는 유나.

수향은 도망가기를 포기했다.


"그래. 꼭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해서 다시 네 삶으로 돌아가."

"언니는 300년 전 사람이잖아요. 궁금하지 않아요? 조선이 어떻게 변했을지!"

"글쎄. 애국심이 높지는 않아서 관심 없어."

"에이~ 오빠들이 말해줬는데, 언니네 집안은 충신 가문이었다면서요! 역적으로 오해받아 사지로 몰렸지만 결국 그 오명을 벗어내 지금도 엄청 유명한-"


신나서 떠들던 유나가 제 입을 막았다.

수향의 큰 눈망울에서 흐르는 것은 분명 눈물이었다.


"죄송해요."


유나의 사과에 자신의 상태를 깨달은 수향이 급히 소매를 들었다.


"실은 볼 자신이 없었어."


그녀는 기억했다.

가문의 화를 면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

사대부 집안과의 혼인.

원래라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

하지만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이런 마음으로 어찌 도리를 다하겠는가.


"그러고도 받아들이지 못한 거야."


나를 대신해 자처한 오라버니는.

표면상 장남이라 하여도 실상은 이 집안과 연을 놓아도 되는 이.

그런데도 직접 나서 가문의 누명을 벗겼다.


'진짜 동생도 아닌 날, 어떻게든 데리고 사려고 했겠지. 그런 사람이니까.'


그래서 어떤 것도 원치 않았던 지난날.

수향은 주눅 든 유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름대로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봐. 미련은 많았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포기했던 거야."

"저도 그랬어요! 콘서트 자리가 너무 안 나와서 포기했는데, 그냥 계속 도전해 볼 걸 후회가 되는 거예요! 막 트렁크에 실려가는 중에 '아, 나도 애들이랑 PC방 가서 예매했다면 여기 없었겠구나. 또 실패하더라도 아예 오빠들 못 보는 것보단 나은데.' 이런 생각만 나더라구요."


유나의 사정을 이미 들은 수향이 침묵했다.

그렇게 유괴되어 이동하는 중에 사고가 나서 죽게 된 그녀.


"저는 기적을 믿어요.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이테라토에 와서 돌아갈 기회를 얻었잖아요!"


나머지 한 명도 금방 구할 거라고 호언장담한 유나가 기특했다.

그 순간에도 마치 삶처럼 뜨거운 그녀의 의지를 조금은 잡고 싶었다.


"그래. 여기 찾아가 봐. 너보다 3-4년 뒤의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지금은 없을 수도 있지만.

수향이 뒷말을 덧붙였다.

또다시 그녀에게 도움받은 유나가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언니, 만약 환생한다면 제 딸로 오세요! 저 수빈 오빠랑 결혼해서 알콩달콩 오순도순 살 거니까요!"

"됐네요. 그리고 그 수빈?이란 사람은 너랑 나이 차이가 많지 않아?"

"저랑 9살밖에 차이 안 나는데요?"

"…그럼 나보다도 많아."

"에잇. 언니는 300을 더해야죠!"


유나의 나이가 열 살 이란 것을 아는 수향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다고 네가 날 할머니라 부르지는 않잖아."

"그,그건 그렇지만. 아잇. 아무튼 9살이면 괜찮다고요. 제가 20이 되어도 같은 20대니까 말이에요!"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그것도 응원할게."


언제나 그랬듯 밝은 미소로 인사하는 유나가 떠났다.

근방에서 대기하던 성훈이 멀리서 꾸벅 허리를 숙였다.

대강 고개를 끄덕여준 수향은 기지개를 폈다.


"좋을 때네. 뭐, 환생을 선택한다면 이뤄지기 더 쉽겠지만 말이야."


이미 부활 쪽으로 마음을 굳힌 유나에게 일러주진 않았다.

이따금 소식을 전하러 오는 그녀였지만, 그녀의 걸음이 끊기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이걸 굳이 주고 갈 필요는 없는데."


수향은 손에 들린 공략집을 바라보며 그녀를 떠올렸다.

언젠가 언니도 가게 될 날이 올 거라는 확언.

깊게 생각하지 않은 그녀는 이 시간이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유나의 자리가 생각보다 컸다.


"그래도 뭐 잘 살았으면 좋겠네."


텅 빈 얼굴의 주민들을 보면서 할 말은 아닌 듯했지만.

수향은 여전히 그 거리를 걸어 다녔다.

며칠 뒤.

같은 일과를 보내던 그녀의 눈에 중앙에 모인 여자들이 들어왔다.


"진짜 문수빈이래?"

"수빈이가 여기 왜-"

"맞아. 세상이 좀 괜찮아지고 알게 된 소식이긴 하지만 자살이라고 했던 것 같긴 해."


그들의 곁을 지나던 수향은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딱히 들을 생각이었던 건 아니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아, 유나가 좋아한 친구였나. 열아홉이라던.'


동명이인일 수도 있으니,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수향은 계속 가던 길을 갔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인파가 꽤 몰려 있어 길을 지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여자들이 호들갑인 걸 보니, 연예인이 맞긴 한가 보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도전자나 주민으로 연예인이 오면 떠들썩하긴 하니까. 그것도 오래가는 일은 아니지만.'


다른 길을 알아본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


"주민이라고? 그럼-"


그녀가 말을 아꼈다.

지금도 유나가 그를 좋아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를 보겠다고 돌아간 유나.

물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런 희망 속에서 씩씩하게 던전을 돌았었다.

살아돌아간 유나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지는 전적으로 수빈에게 달려있다.


"잠시 지나가도 될까?"

"대체 누가 새- 아, 언니. 예, 가셔야죠."


실상 스물 넘어 죽은 자신이 더 나이가 많았지만, 깍듯할 수밖에 없었다.

외견으로 구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실제 온 연도로 재는 이들이 많기 때문.


"피곤해 보이는데, 벗어나게 해줄게."

"누구-?"

"싫으면 계속 여기 있고."


수빈은 갑작스레 나타난 여자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사인을 해달라던 팬들도 물러서게 만든 기묘한 사람.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녀를 따라가기로 결정했지만, 수빈은 정중히 인사했다.

아쉬운 웅성임이 있었지만 그를 데려가는 이의 시선에 붙잡는 이들은 없었다.


"언제 죽었지?"

"네? 오늘. 어, 10월에-"

"연도."

"아. 2018년이요."


어려 보이는 여자의 반말이 신경 쓰였지만, 착실히 답했다.

반면 수향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열일곱이 됐겠네."

"예? 저 스물다섯인데-"

"너 말고 네 팬. 너 보겠다고 살아난 친구가 있었거든."

"그,렇군요."


예상치 못한 대답.

수빈의 얼굴도 착잡해졌다.


"솔직히 난 이곳에 오래 머물면서도 너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탓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지만, 예외를 두고 싶네."


앞의 남자가 이곳에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향은 결정했다.

자신의 파티원에 그를 넣어야겠다고.

그리고 과거 자신을 도우려 했던 안내자가 있다면 그 역시.

마지막으로 남은 한자리도 구하기 쉬울 것이다.

생각을 마친 그녀가 입맛을 다셨다.


"넌 운 좋은 거야."


왠지 피할 수 없는 여인의 시선.

사로잡힌 수빈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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