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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야파티

차원이동이 세계를 발전시킵니다

2023_이야챌린지_073

by 이야
임시 표지

성철은 교류원을 방문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그는 복도를 거닐었다.

세 번째 문 앞에서 멈춘 그.

전이희망부였다.

끼이익.


"신부님, 오셨어요?"

"역시 두영 씨는 일찍 나오네요."

"하하. 제가 아침잠이 별로 없어서요."


그것을 아는 성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 중에 다른 지역에 방문할 일이 있어서 오늘은 두영 씨 혼자 봐줘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그럼요. 제가 더 신경 쓸게요. 걱정하지 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고마워요. 두영 씨가 있어서 든든해요."


두영은 신부를 배웅했다.

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이전의 파일들을 정리했다.

많은 이들의 희망을 듣고, 그것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전이희망부.

자신이 그곳에서 일하는 게 자랑스러웠다.

뿌듯한 얼굴로 문서를 확인한 두영이 고개를 올렸다.

도착할 시작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노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송채영입니다!"


씩씩한 인사였다.


"반갑습니다. 전이희망부 이두영입니다."

"여기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시고, 원하는 세계를 말하면 됩니다."

"네! 잠시만요."


착실하게 적어가는 채영.

금방이라도 차원이동이 일어날 듯 두근거리는 순간이었다.

정갈한 글씨체 속 원하는 세계가 나타났다.


"저는 아무도 굶지 않는 세계를 원해요! 어릴 때, 집안 환경이 좋지 않은데도 이게 뭐랄까? 정부의 지원을 받기 애매한 조건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부모님이 저한테 크게 관심이 없기도 했고, 제가 그런 걸 잘 모르기도 했고. 그래서 받을 수 있는데도 못 받은 걸 수도 있지만 요즘 그게 생각나서 조사해 보니까 저는 해당이 안 되더라구요. 그런데 너무 억울한 거예요. 마땅히 지원받아야 할 아이들이 있다는 거 알지만, 저처럼 분명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하나? 상황 자체를 보면 그런데, 저는 학창 시절 내내 굶었거든요. 그나마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으로 버텼지만 그것도 평일만 그렇죠. 그래서 일찍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부모님으로부터 지원받지도 못해서 생활비에 교통비까지 스스로 해결하느라 한창 커야 할 성장기에 먹지 못한 게 한이에요. 지금이야 하루 한 끼 먹어도 괜찮지만, 그때는 그게 너무 힘들더라구요.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했고 정신적으로 몰리기도 해서. 전이도, 환생도 믿진 않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모르잖아요.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상하다는 거 알지만, 인간의 기본 욕구는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요."


두영은 잠자코 긴 말을 들었다.

그녀의 바람을 이룰 방법을 빠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요즘 차원이동물에서 주인공이 자판기로도 활약하는 거 아시나요?"

"자판기? 아, 너튜브에서 본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게 힌트였나 봐요."

"네?"


채영이 영문을 몰라 반문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두영이 설명했다.


"현대에서도 자판기는 자주 보이잖아요. 지하철이나 버스정류장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설치되어 있죠. 그걸 활용하는 거예요. 기초 식량의 형태만 무료로 지급되는 자판기. 배급카드를 만들어서 국민 누구나 받을 수 있게 하는 거죠."

"오, 그런데 필요 없는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아서 방치되거나 아니면 너무 무분별하게 이용되지 않을까요?"

"아침, 점심, 저녁. 3끼만 먹는 거죠. 배급카드로 하루 최대 3회분만 지급하는 거예요. 그리고 카드는 누구나 받을 수 있지만, 필수로 발급받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관리하기 용이하게 자판기는 관공서 옆으로 설치할 거고. 또, 지역별로 인구 분포나 경제적 수준에 따라 설치하는 개수를 조정하면 좋겠네요."

"그렇군요. 그런데 기초 식량이어도 그걸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들지 않을까요?"

"후후. 뭘 하든 재정적 문제는 늘 걸려있죠. 하지만 이제 목표를 알았잖아요."


머그컵을 내려둔 두영이 벽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을 따라 채영의 시선이 이동했다.

익숙한 사람의 사진.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되는 거예요."

"네?"

"원하는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당신의 진로는 분명해요. 일단 인간의 영양을 위한 기초 식량을 만들어야겠죠. 연구원이 되세요. 그리고 그걸 자판기에 도입해야겠죠. 사장이 되세요. 그러다 보면 원하는 세계에 도착해있을 겁니다."


충분한 시간 후에 일어나는 차원이동이었다.

두영과 상담을 마친 채영은 영양학과를 목표로 다시 수능을 준비하겠다 결심했다.

채영을 보내고, 다시 혼자가 됐지만 금방 다른 이를 맞이했다.

유빈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박유빈입니다."

"반가워요. 여기 앉아요."


소파에 착석한 유빈이 사무실을 둘러봤다.

그녀를 기다려준 두영이 전처럼 서류를 내밀었다.

펜을 든 유빈은 그것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저는 꽁초를 버리지 않는 세계를 원해요. 제가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바닥을 쓸고 또 쓸어도 항상 가득한 거예요. 또 그 앞은 금연이라고 적혀 있는데도 다들 무시하고 하는데, 테이블이며 바닥이며 다들 버리고 가요. 그것뿐이면 다행이게요? 남은 음료 위를 재떨이처럼 사용해요. 그래서 축축해진 걸 또 따로 분리해서 버리고, 재가 가득한 음료를 처리하는 것도 곤욕이에요. 요즘은 꽁초도 다르게 활용할 수 있다던데, 아직 제대로 시행하지 않기도 했고 또 그걸 하더라도 사람들은 계속 버릴 것 같아요. 가뜩이나 길거리 지나다니면서 피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아무렇게나 버리기까지. 마음 같아선 아예 담배가 없어졌으면 좋겠지만, 고달픈 삶에 나름의 기호식품까지 없애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처리를 제대로만 해줬으면 좋겠어요."


유빈의 이야기를 들은 두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흡연 문화, 처참하죠. 벌금을 강하게 매겨도 할 사람들은 해요. 아무리 cctv가 세상을 점령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이들이 많죠. 그래서 애초에 그걸 만들어야 해요. 개인 재떨이 소지증. 바닥에 꽁초를 버리지 않고, 또 담배를 피우면서 침을 뱉지 않는다는 교육을 수료한 다음 실제로 재떨이를 구매하게 하는 거죠. 그러면 기관에서 담배를 구매해도 좋다는 걸 허가하는 소지증을 주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담배를 살 때, 신분증이 아니라 소지증을 지참해 보여주면 되죠. 소지증은 애초에 성인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걸로 증명이 되기도 하고요."

"오, 번거롭긴 하겠지만 그걸 먼저 한다면 흡연 문화가 조금은 변하겠네요. 그걸 지니지 않으면 담배를 살 수도 없고, 그리고 결국 피게 되면 사용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이뤄질까요?"


현실적인 문제를 걱정하는 유빈에게 두영이 웃어 보였다.


"대통령이 되는 거예요."

"예?"


두영의 말에 제 귀를 의심한 유빈.


"일단 유학을 가세요. 싱가포르는 되게 철저한 거 알죠? 거기서 시작하는 거예요. 이곳보다는 먼저 받아줄 테니까 말이에요."


밖으로 나온 유빈은 유독교의 도움을 받아 이민을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이어서 들어온 이도 서류를 적었다.

그의 이름은 정민.

항목을 다 채우자 두영이 안내했다.

이해한 그가 바람을 얘기했다.


"저는 배려와 예의가 있는 세계를 원합니다. 동방 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도 무례한 이들이 많아요. 예절교육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에티켓이라는 개념으로도 충분히 자리 잡았지만 이기적인 사람들은 여전히 많네요. 학교를 다니는데, 따라오지 말라는 겁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제 등록금 내서 다니고 있는데 촬영을 한다고 거기를 막고 있는 것도 이상한데 제 갈 길 가고 있는 중에 그런 식의 듣도 못한 요구를 받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아, 요즘 유명하죠? 너튜브 촬영을 한다고 캠퍼스를 이용하는 학생들에게 오히려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고 들었어요."

"네. 이제는 그런 게 더 깡패 같아요. 비단 그들뿐만 아니에요. 곳곳에 더한 이들도 많으니까 말이죠."


그에 동의한 두영이 마땅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행사를 기획해 보는 거예요."

"행사요?"

"네. 러피가 무례한 놈이란 뜻이거든요. 일단 청소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게 좋겠어요. 밴러피 행사. 아예 국제 행사로 키우는 거죠. 한국에겐 동방 예의지국이란 확실한 명분도 있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해도 결국 관심을 받게 될 거예요."

"하지만 대학생인 제가 그걸 어떻게 실현하죠?"

"유독교가 도와드릴 거예요. 그리고-"


입버릇처럼 대통령이 되라고 하려던 그녀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시장부터 되는 거예요."


두영은 변화구를 날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대통령을 희망하는 문장이 적혀 있었으니.


"정치에 뜻이 있긴 했는데, 한 번 고민해 보겠습니다."


정민이 사무실을 나갔다.

똑똑.

이제 점심을 먹으려고 준비하던 그녀는 노크 소리에 의아함을 느꼈다.


"들어오세요."

"제가 방해가 될까요?"

"아니요. 영광입니다."


사진 속 사람이 튀어나왔지만, 두영은 평정심을 유지했다.

안희철 대통령.

이따금 찾아오는 그에게 준비된 파일을 건넨 두영이 침을 삼켰다.


"고마워요. 국민청원으로도 열심히 듣지만, 이것도 빼먹을 순 없죠."

"선배님 덕분에 저도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허허. 어릴 적엔 생각했죠. 이왕 간다면 아무 세계에 끌려갈 게 아니라 원하는 세계로 이끌어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희철은 그리운 손길로 전이희망 파일을 쓸었다.

시간이 흐를 때마다 자전하는 세계 속 매번 이동하는 우리였다.

그저 느끼지 못해도 알아버린 후에는 주인공으로서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지문을 소유했다면 분명한 목표를 지닌 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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