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야파티

희망이 걸어온다

2023_이야챌린지_074

by 이야
임시 표지

"이쪽으로 와요!"


민하가 위험에 처한 이들을 불렀다.

득희는 먼저 친구 동생인 지영부터 안쪽으로 밀었다.


"오빠!"


지영이 소리쳤다.

며칠간 자신을 지키겠다고 애쓴 오빠의 친구.

특히 중간에 오빠와 갈라지고는 더욱 책임감에 불탄 그였다.


"이 정도는 괜찮아!"


호기롭게 말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운 좋게 마트를 찾았어도 그들이 이끌고 온 좀비의 수는 적지 않았다.

사각.

득희의 눈이 커졌다.

순식간에 좀비를 해치운 여자.

자신들을 부르던 또래의 여자였다.


"후. 좀 힘드네요. 노아였다면 쉽게 처리했을 텐데."


노아에 비하면 부족했지만 괜찮은 체력을 지닌 민하도 어느새 이 세상에 잘 적응했다.

일대를 정리한 민하는 멍하게 서있는 득희를 불렀다.


"동생 아니에요? 잘 챙겨야죠."

"아. 고맙습니다."

"마트 내부라 식량은 넉넉해요."


물론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줄어가고 있는 실정이었지만.

그런 사정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반면 득희는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는 매고 있던 가방을 보여줬다.


"기초 식량?"

"네. 배급카드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두 개뿐이라 6개만 가져왔지만 이거면 일주일은 버텨요."

"그 15분 거리긴 하지만, 내일 가면 또 6개 구할 수도 있어요!"


지영이 득희의 말을 거들었다.


"그럼 일단 배급카드가 있는 분들을 찾아봐야겠네요. 그리고 그걸 가지고 갈 사람들도 구해야 하고요. 일단 힘들었을 텐데 저쪽에서 쉬어요."

"그냥 받아주는 건가요?"


지영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에 민하가 살포시 웃었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어도 같이 살아야죠. 그보다 혹시 보조배터리가 있진 않겠죠?"

"제가 있긴 한데, 필요하면 드릴 수 있어요!"

"받아도 될까요?"

"네!"


득희가 가방 안쪽을 더 뒤적였다.

혹시 몰라 챙겨둔 게 도움이 되어 다행이다.

보조배터리를 건네준 득희는 지영을 데리고 안쪽으로 이동했다.


"후. 이건 돼야 할 텐데."


민하가 있는 곳이 마트인 만큼 보조배터리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전혀 반응이 없었다.

자신의 폰은 잘만 되는데, 아무래도 노아의 기기는 망가진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이거.'

'핸드폰?'

'충전하고 켜두면 도와줄 사람이 연락 올지도 몰라.'


요한과 떠나기 전, 노아는 그렇게 일러주었다.

상황은 계속해서 나빠지는데, 그녀의 말에 기대는 게 최선이었다.


"역시 안 되나? 하긴. 망가진 게 반응할 리가 없지."


이번에도 뜨지 않는 충전 표시.

실망한 그녀가 다시 분리하려고 할 때, 올라가기 시작했다.


"헉. 된다. 제발, 제발 켜져라!"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민하가 경건한 마음으로 폰을 응시했다.

진동이 울렸다.

드디어 노아의 폰을 켰다.

다행히 잠금은 걸려있지 않았다.


"하긴. 있으면 알려줬겠지. 응? 뭐야. 연락처가 하나밖에 없잖아?"


'2'라고 적힌 하나뿐인 연락처.

민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번호를 눌렀다.


"제발 받아주세요."


그 염원이 통한 듯 신호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딸깍.


-성노아! 너 왜 학교에 없어?


대뜸 소리치는 상대편에 놀란 민하가 수화기를 떼어냈다.

잠시 진정한 그녀는 조심스레 폰에 응답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노아 친구인데요. 노아는 지금 같이 있지 않지만, 학교에서부터 여기까지는 함께 왔거든요."

-노아 친구? 누나, 노아가 아니라 친구라는데?

-줘봐. 내가 연락할게. 안녕하세요. 노아 언니인 만세이에요.


바뀐 상대의 음성을 들은 민하는 또다시 놀랐다.

만세이?

내가 아는 그 만세이?

폰을 바짝 댄 민하가 긴장한 채로 입을 열었다.


"그 혹시, 여배우 만세이님이 맞을까요?"

-네. 맞아요. 일단 우리가 만나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은 해가 져서 곤란하고. 내일 아침에 보면 좋겠는데 괜찮을까요?

"네. 저야 좋죠! 아. 일단 제가 마트에 있는데 학교에서는 좀 멀긴 할 텐데."

-걱정 말아요. 우리가 갈게요.


통화를 끝낸 민하는 떨리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이런 세상 속에서도 연예인을 볼 날을 기대하다니.

그런데 그만큼 좋아하는 스타였다.


"와. 노아의 가족이었을 줄이야. 이게 더 안 믿기네."


성이 다르긴 했지만,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넘긴 민하가 걸음을 옮겼다.


"충전기 빌려줘서 고마워요."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에요. 저 내일 만약 배급자판기로 가게 되면 저도 지원할게요. 간 김에 친구도 찾아야 해서."

"그래요. 그렇게 해요."


이 셀터의 실질적 리더인 민하는 득희의 의견을 받아주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깬 그녀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중간에서 만나자고?

"네. 어차피 배급자판기에서 식량을 가져올 거라 나가야 하거든요. 그리고 그 편이 안전할 것 같고요."

-그래. 누나한테 말해둘게. 더 전달할 사항은 없고?

"제가 노아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으니까 알아보기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렇겠네. 좀 이따 보자.


오랜만에 다시 교복으로 갈아입은 민하는 몇몇 인원들과 원정 준비를 마쳤다.

노아는 스페이드 트럼프.

그러니 그들도 그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민하는 왠지 설레는 마음으로 마트를 벗어났다.

하지만 곧 긴장했다.

언제든 좀비에게 당할지도 모르는 세계다.


'마르코를 데려와야 했을까?'


긍지를 잃은 스페이드.

그는 전력에 결코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아와 같은 종족이란 것에 걸어보지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여전히 창고 구석에서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후. 나름 정예 멤버야. 침착하자.'


그러나 역시 좀비는 많았다.

중심지인 올성이다.

이곳까지 오기 전에는 노아 덕분에 수월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노아도 없을뿐더러 시간도 많이 지난 후.

좀비가 늘면 늘었지, 결코 그 수가 줄진 않았다.

어제 이 길을 뚫고 마트에 도달한 득희와 지영이 새삼 대단했다.


'하긴.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들도 줄고 있긴 했지.'


그의 전투력을 높게 평가한 민하가 명령을 내렸다.

한참 어린 학생이었어도 그녀의 지시에 따르는 사람들.

지금은 나이보다는 생존력이 더 중요했다.


"저쪽으로 가야 해요."


이쪽 지리를 어느 정도 아는 이들이 대다수였지만, 정확하고 빠르게 찾기 위해 다들 득희를 따랐다.

금세 올성시청 근방에 다다른 이들.

그 앞으로 좀비들이 돌아다녔지만, 그들은 과감하게 나아갔다.

하나씩 착실히 쓰러트리며 전진한 그들의 눈에 보상이 들어왔다.

작년에 설치된 배급자판기.


"혹시 몰라 카드를 발급받길 잘했어."


민하를 비롯해 몇 명이 망을 보고, 득희를 주도로 배급을 시작했다.

기초 식량 봉지가 하나씩 나오고 있었다.

주위를 경계하던 민하는 이상한 움직임을 발견했다.


'응? 좀비는 아닌 것 같은데? 사람인가? 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몫을 맡긴 민하는 신속하게 이동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여자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꾀죄죄한 상태라 구분하기 어렵다 해도 그 복장과 스타일은 민하가 익히 아는 것.


"영양사 선생님?"

"어머, 우리 학교 애구나!"


그녀를 반가워한 채영이 덥석 손을 잡았다.


"볼 일이 있어 나왔다가 며칠 동안 여기에 있었는지 몰라."


자신의 차에 찌그러져 있었던 채영은 평소와는 달리 좀 더 많은 인원이 찾아오자 드디어 나올 용기가 생겼다.


"가끔씩 한두 명 정도가 자판기 이용한다고 지나가긴 했는데, 내가 도움이 전혀 안 될 것 같아서 계속 버텼어."


누구보다 굶는 게 싫었던 그녀는 차량에 음식이 많았다.

그것들이 박스에 있었기 때문에 차량을 털리지 않고 여태껏 생존할 수 있었던 그녀.

하지만 그 식량도 이제는 동이 났다.

그럼에도 도저히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염없이 카드만 만지작거렸던 시간.

느닷없이 민하의 일행이 나타났다.


"저희와 함께 가요."


모르는 사람이어도 데려갈 판국에 아는 분이었기에 단번에 결정을 내린 민하가 그녀를 이끌었다.


"정말 고마워."


자판기 앞에 도착한 둘.


"여기에 넣어주세요."

"아아. 그렇지."


채영이 자판기에서 나온 식량을 가방에 넣었다.


"본거지는 15분 떨어진 마트예요. 이제부터 두 조로 나눌게요."

"응? 같이 가는 게 아니야?"

"만날 분들이 있거든요."

"그렇구나."

"선생님은 이분들과 함께 마트로 가시면 돼요."


불안했지만, 가방 하나를 맨 채영은 민하가 가리킨 사람들에게로 합류했다.

다행히 그들은 채영을 밀어내지 않았다.


"효인이 형에 이어 세이 누나라니."


득희는 몇 개월 전 만난 인연을 떠올렸다.


"어? 그러고 보니, 너튜브에서!"


그의 혼잣말을 들은 민하가 그를 알아보았다.

광고 속에 등장한 남학생.


"밴러피 행사에 이어 광고 촬영까지 출연한 사람인 걸 이제 알았네요! 와, 이렇게 만나다니 신기해요. 혹시 찾아야 하는 친구가 광고에 같이 출연했던?"


생각해 보니 지영의 얼굴도 낯설지 않았다.

앞서 걸어가던 민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는 멍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잘못 보는 거 아니죠?"

"저도 보이네요."


득희가 답하자 민하가 제 볼을 꼬집었다.

분명한 현실.


"좀비가 어, 저렇게 따를 수도 있던 걸까요?"


걸어오는 생존자들.

그중 단연코 빛나는 배우, 세이.

그들의 뒤로 일정 거리를 둔 좀비들이 즐비했다.

코앞에 도착한 세이는 교복을 알아봤다.


"네가 민하니?"

"네. 맞아요."

"반득희!"

"오지성!"


세이의 뒤에 있던 남자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이윽고 재회의 포옹을 나누는 둘.

민하는 그들을 지켜보면서도 좀비들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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