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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기 좋은 그늘
2023_이야챌린지_075
by
이야
Nov 15. 2023
임시 표지
"가서 좀 쉬어~"
동생의 말에 그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마주친 둘은 알았다.
"할머니 방금 잠들었으니까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공부할 건 챙겨왔어?"
"응. 내 걱정은 말구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가시죠?"
"알았어~ 잘 부탁할게!"
병실을 나온 그늘이 하얀 복도를 바라봤다.
결코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머니는 홀로 둘이나 돌보셨다.
"후우, 그래도 그림이가 있어서 다행이야."
묵직한 가방을 올린 그녀가 걸음을 재촉했다.
금방 집에 도착한 그늘이 찬 기운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보일러 틀라니까."
아마도 혼자 집을 지키는 게 미안해 틀지 않았을 그림이를 떠올리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머니가 집에 계실 때만 해도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는데.
"금방 퇴원해서 돌아오실 거야."
짝짝.
쏟아지는 졸음을 떨친 그늘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집안일이 많진 않았지만, 오래 신경 쓰지 않아 할 일이 이것저것 쌓이긴 했다.
할머니 옷가지부터 하나씩 정리하는 그녀는 알람이 울리자 손을 멈췄다.
"후. 출근해야겠네."
벌써 일하러 나갈 시간.
짐도 별로 없는데 전보다 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온 그늘이 눈을 비볐다.
한때 할머니가 일하던 곳에서 근무하게 된 그늘의 손이 식당 문을 밀었다.
"안녕하세요~"
"그늘이 왔어? 오늘은 이것부터 좀 해줄래?"
원래라면 밥부터 제공해 주지만.
고개를 끄덕인 그늘이 의자에 앉았다.
오자마자 마늘을 까게 됐지만, 오히려 잠을 깰 수 있어서 괜찮았다.
"곧 손님 올 때라서 오늘은 간단히 먹어도 괜찮지?"
"네~"
산뜻한 답을 마친 그녀는 그제야 칼을 내려두었다.
평소처럼 푸짐하진 않지만, 충분히 든든한 식사였다.
김밥을 다 먹은 그늘은 테이블을 치우고 손님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두 시간 후.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늘.
정신없이 일하던 그녀는 불쑥 튀어나온 손에 몸을 굳혔다.
"아이고. 미안해, 학생."
"아니에요."
우연한 손짓.
그렇게 믿었지만, 떨어진 젓가락을 줍는 자신의 허리춤에 무언가 닿았다.
마찬가지로 숙인 손님의 머리카락.
안심한 그녀가 이만 떠나려 할 때.
"에고, 고마워~"
분명했다.
착각이라고 하기엔 확실히 스친 손가락.
하지만 고개를 돌리니 새로 꺼낸 젓가락으로 음식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늘아, 거기 서서 뭐해?"
"아. 아니에요. 주문받을게요."
앞치마에 주운 것을 넣은 그녀는 마침 들어온 손님들을 테이블로 안내했다.
미처 따지지도 못하고, 그저 바쁘게 돌아다니던 그늘은 그 손님이 떠나자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때 한 번이 아니었다.
그쪽 테이블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부딪히려 다가오던 손길.
몇 번은 간신히 피했지만.
"잊자. 처음 있는 일이잖아."
그녀는 곧 앞치마를 걸어두고 나왔다.
"오늘도 수고했어~ 바빠서 쉴 틈도 없었네~"
"장사가 잘 되면 좋죠! 이모,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래~ 이것만 하나 내다 주고 가~"
"네!"
음식물 봉투를 건네받은 그늘은 불편한 기색 없이 바로 처리했다.
가방에서 티슈를 꺼내 닦은 그녀는 바로 집에 들어가 쓰러질 예정.
드디어 고단한 하루에서 해방된 그녀였다.
어두컴컴한 동네.
그나마 몇 개 없는 가로등도 그 불빛이 희미했다.
"저건 곧 꺼지겠네. 민원에 넣어야겠다."
이제는 쌀쌀해진 날씨에 카디건을 여민 그늘이 언덕을 올랐다.
골목만 돌면 집.
몸에서 가방을 뺀 그늘의 다리가 휘청였다.
"억?"
간신히 균형을 잡은 그늘의 시선이 발아래로 향했다.
사람.
누군가 길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놀란 그녀가 뒤로 물러났다.
"헉. 살아계시나?"
처음 보는 할아버지.
다행히 숨결은 느껴졌다.
바로 구급차를 부른 그녀는 할아버지의 몸을 돌렸다.
"응급처치해야 하나? cpr?"
숨이 너무 옅어서 고민하고 있던 그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할아버지, 뭐라구요?"
"-경이. 경아."
"일단 곧 119 올 거예요. 조금만 버티세요!"
낯선 노인에게서 할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늘.
최초 발견자이기도 했지만, 도울 이유는 충분했다.
잠시 후.
병원에 도착한 그늘은 수납처로 이동했다.
"네. 네, 맞아요. 이걸로 해주세요."
할아버지의 성함은 소청우.
그분의 병원비를 대신 결제하고 의자에 앉은 그늘은 이마를 문질렀다.
'좋게 생각하자. 만약 할머니가 쓰려져서 병원에 왔는데 납부를 안 해서 입원하지 못하는 상황이면 안 되잖아.'
가족들에게도 연락이 갔으니, 나중에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늘은 이미 떠난 돈이라 생각했지만.
언젠가 혹여라도 할머니가 같은 상황일 때, 누군가 자신처럼 도와주길 바라려면 자신도 그래야 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그녀는 할머니 병실로 향했다.
같은 병원이었다.
"엥? 언니, 오늘 나오는 날 아니잖아?"
"아. 일이 생겨서."
설명을 들은 그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그래도 피곤할 텐데, 집에 가지~"
"아냐. 가는 길이 더 낭비야. 그냥 여기서 잘게."
"알았어. 그럼 내가 내일 다시 나올게."
"그래. 너도 공부한다고 너무 무리하진 말고."
떠나는 동생을 배웅한 그늘은 바로 간이침대를 꺼냈다.
"할머니, 계속 티비 볼 거예요?"
"네. 이거 봐야 해요."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불러야 해요."
"네. 유경이는 조용히 티비 볼게요!"
낮에 많이 자서 깨어있는 할머니.
불안하긴 했지만, 더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대로 단잠에 빠진 그늘.
힐끗.
유경은 곤히 자는 손녀를 두고 몰래 빠져나왔다.
"어휴, 언니들. 나 왔어~"
"판을 시작해 볼까?"
한창 고스톱 삼매경.
"이번에 어떤 영감이 실려왔대."
"그래?"
"그짝 손주랑 같이 왔던데?"
"잉? 우리 영감은 나 젊을 때 갔는데~"
할머니들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새벽 4시.
덜컥.
아까처럼 조용히 돌아온 유경은 아직 꿈나라인 그늘을 보며 침대로 올라갔다.
턱.
"에구머니. 깜짝이야."
"또 고스톱 치고 왔어요?"
"언니야, 귀신인 줄 알았잖아!"
"무릎도 아프면서 돌아다니면 어떡해요."
"그럼 뭐 앉아만 있나~"
할머니의 태도에 한 마디 하려던 그늘은 입을 다물었다.
그저 눈만 끔뻑거리는 할머니.
짧게 숨을 내쉰 그늘이 머리를 정리했다.
"차라리 이쪽으로 불러요."
"그럼 못 자는데."
"…휴우,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다시 얘기해요."
할머니를 눕히고 이불을 올려준 그늘은 폰을 바라봤다.
더는 울리지 않는 메시지.
'친구들하고 너무 소원해졌네.'
아무도 잘못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감내하는 인생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동생인 그림이 돌봄 청년 지원 대상자로 뽑힌 일.
물론 자신도 신청하면 되겠지만 당장 생활비를 충당해야 해서 아직은 그림이만 해당됐다.
"덕분에 그림이가 하고 싶었던 공부는 할 수 있으니까."
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찾은 그늘도 다시 잠에 빠졌다.
다음날.
"일찍 올 필욘 없는데."
"그냥 눈이 바로 떠져서 그래~ 그리고 여기가 다른 곳보다 이상하게 공부가 잘되더라고~"
그림의 보챔에 결국 밖으로 나온 그늘이 하루를 시작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그녀가 떠나려 계단을 내려올 때.
"저기 혹시 어제 소청우 씨 도와주신 분입니까?"
"네? 아, 할아버지. 몸은 괜찮으시다고 하나요?"
"네. 지금은 나아지셔서 아침 일찍 집으로 모셨습니다."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그 할아버지의 손자인 듯했다.
"할아버지 손자, 소남우입니다."
"네. 진그늘이라고 해요."
"어제 납부한 병원비랑 도와주신 사례금 입금해 드릴게요."
"아. 그, 병원비만 주셔도 되는데요."
한사코 거절했지만.
찍힌 금액은.
"잠시만요. 이거 0을 하나 잘못 붙인 것 같아요!"
"아닙니다. 제대로 드렸습니다."
"너무 과한데요."
"유청 그룹의 회장님을 도와주셨으니, 그것도 모자랍니다."
깍듯이 허리를 숙인 뒤 떠난 남우.
그를 바라보던 그늘은 딸꾹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물을 받으러 나온 그림은 계단에 서있는 언니에게로 다가갔다.
"집에 안 가고 여기서 뭐해?"
"…우리 부자 된 것 같아."
"응? 로또라도 당첨됐어?"
아침이라 헛것을 본 줄 알았지만.
재차 확인한 금액은 하나가 더 붙은 게 아니었다.
머리가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이게 대체 얼마야? 이렇게 보낼 수 있던 거야?"
거래가 가능한지도 몰랐던 액수.
상류층 사회를 코앞에서 마주한 그늘은 멍한 얼굴로 동생에게 등짝을 내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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