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야파티

열여덟의 XX

2023_이야챌린지_080

by 이야
임시 표지

"야, 천서빈. 일어나."

"엄마, 5분만 더 잘게요."

"누가 네 엄마야. 너만 일어나면 된다고."


거칠게 어깨가 흔들리자 서빈은 그제야 눈을 떴다.

빙 둘러본 그는 제 눈을 의심했다.


'도대체 얘네들이 왜?'


10년 전.

고등학교 2학년.

당시 같은 반이었던 녀석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다 자신을 향한 채였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머리로 그나마 생각해 본 것은.

동창회, 납치.

그런 것들이었다.


"천서빈, 너 솔직히 말해라."

"뭘?"

"네가 우리 여기 모았냐?"

"너희가 날 납치한 게 아냐?"


서빈의 대답을 들은 민철이 제 머리를 흩트렸다.


"야, 얘도 아닌가 봐."

"뭐가 아니야?"


민철의 몸이 애들을 향하자 이불을 걷은 서빈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딱딱한 침대에 푸석한 이불까지.

그것을 돌아본 서빈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우리 중에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 보네."

"연기하면 박해준, 너 아니냐?"

"맞아. 박 배우님이 우릴 속이는 거면 감쪽같겠지."


모두의 눈이 이번에는 해준으로 모였다.

해준은 연기자인 자신을 의심하는 이들 사이로 아무렇지 않게 걸었다.


"오히려 작가로 승승장구한 지성이가 더 맞지 않겠냐?"

"뭐? 난 아니거든!"


해준에게 지목당한 지성은 곧장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때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서빈이 나섰다.


"뭐 어쩌다 여기에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엮였든 그냥 나가면 되는 거 아니냐."

"그럴 수 있으면 진작 갔겠지. 저기 봐라."


민철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서빈은 여전히 모르겠단 얼굴로 친구들을 돌아봤다.

답답했던 지성이 빠르게 그쪽으로 달렸다.

탕탕.


"들리냐. 여기 사방이 투명한 벽으로 막혀있다. 게다가 침대를 던져도 멀쩡해."


그제야 서빈의 눈에 뒤집힌 침대가 보였다.

지성과 약간 떨어진 거리에 놓인 그것.


"갇힌 거네."


끝내 이해한 서빈이 말했다.

다들 착잡한 눈으로 침묵을 지켰을 때.


"야, 저쪽에 축구장 있어! 어? 천서빈, 고재겸 일어났냐."


반대쪽에서 뛰어온 녀석은 마찬가지로 같은 반이었던 영석.

영석은 깨어난 장소에 모여있던 나머지를 데리고 축구장으로 이끌었다.


"이 상황에 무슨 축구야?"


재겸이 따졌지만.


"아, 어차피 나가지도 못하는데 하자 이거야. 할 것도 없잖아."


축구장에 도착한 무리들은 아까 먼저 출발했던 이들과 재회했다.

그들은 이미 축구복으로 갈아입었거나 입고 있는 상태.


"저기 있으니까 다들 입어라. 제대로 놀아보자. 10년 만인데."


영석 역시도 그들과 합류해 축구복을 잡았다.


"난 어제도 뛰었음~ 매주 일요일마다 축구동호회 가거든."


막 바꿔 입은 순영이 영석과 머뭇거리는 후발주자들을 향해 말했다.


"어? 그러면 오늘 월요일이네."


목을 뺀 영석은 순영의 말에서 힌트를 찾았다.


"월요일?"


재겸도 갑갑한 얼굴로 넥타이를 풀었다.

원래라면 회사에 있을 시간.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야! 너희들 안 할 거야? 이왕 뛰는 거 제대로 하자고. 딱 9 대 9인데."

"9 대 9? 18명?"


축구장에서 부르는 재영의 외침을 듣자 서빈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두 명이나 비잖아."

"엉. 반장이랑 걔."

"우영이가 없다니."


민철의 말에 순영이 슬픈 눈으로 머리를 털었다.

장우영.

2학년 8반 반장.

서빈은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반장이 없는 것보다 걔가 없는 게 더 신경 쓰이는데."


이윽고 또 다른 얼굴을 기억해 낸 서빈이 작게 중얼거렸다.

팍.

우림은 혼자 멍 때리는 서빈에게 마지막 축구복을 건넸다.


"뭐냐."

"뛰어야지."


엄지로 이미 축구장에 모인 애들을 가리키는 우림.

한가하게 축구나 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후. 알았다."


군복을 벗은 서빈까지 갈아입자 모든 준비가 끝났다.


"팀은 어떻게 나누는데?"

"기태랑 석호가 한 명씩 데려가기로 함."

"아."


10년 전, 그때처럼 같은 방식으로 나누는 팀.

언제나 꼴찌로 불린 서빈은 역시 마지막으로 기태에게 호명됐다.

송기태, 김성준, 박해준, 성태준, 신정현, 김지성, 백한기, 고재겸, 천서빈.

이석호, 조재영, 최진혁, 박순영, 임영석, 우재호, 이우림, 김민철, 민석훈.


"한 반이 20명이면 어떡하냐. 22명은 돼야 제대로 축구하는 맛이 나는 건데."

"아니지. 우리 반은 24명이어야지. 반장은 안 뛰고, 그 자식은-"

"야, 그만 떠들고 빨리 시작하자!"


재영이 외치자 모두의 이목이 공에 집중됐다.

예전처럼 골키퍼를 맡은 서빈은 축구장을 달리는 16인을 지켜봤다.

아직 공은 저쪽 골대에 가까웠다.


'하, 웬일로 이 팀에 들어왔냐.'


그럼에도 바짝 긴장한 그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평소 석호에게 자주 불렸던 그.

하지만 이번에는 유독 다른 팀 구성.


"마이 볼! 마이 볼!"


그들 대부분은 순간 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함께 축구하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라, 더욱 활기를 띤 그들은 비록 그 시절과 다른 체력일지라도 즐길 수밖에 없었다.


"하아. 전반전 15분이 이렇게 힘든 거였냐."


그래도 빠르게 지친 재호가 옷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석훈도 더위를 식히며 주변을 둘러봤다.


"오, 야. 저기 물 있다."

"엥? 진짜?"


그의 말에 쏜살같이 반응한 순영이 생수를 발견했다.

콸콸콸.


"하, 살 것 같다."

"어, 그거 그렇게 막 부으면 안 되지 않아?"

"그러게. 18개밖에 없네."

"언제 나갈지도 모르는데."


각자 자기가 든 물병을 소중히 챙겼다.

순식간에 물 절반 이상을 머리에 부운 순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큼. 야, 천서빈. 바꾸자?"


거절하려던 서빈의 손에서 막무가내로 낚아챈 순영.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그가 불쾌한 눈빛으로 날아오는 병을 받았다.


"아아. 미안. 뚜껑이 안 닫혀있었네."


얼마 되지 않은 물이 더 바닥으로 흘렀다.

서빈은 그거라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털어도 더는 나오지 않았지만.


"후반전 할 거냐?"

"아, 지금 3 대 2인가? 해야지."


점수를 확인한 석호가 말했다.

조금 쉬려던 이들은 결국 다시 축구장을 달렸다.


"허억- 더는 못해."

"7 대 4라니. 최악이네."


영석이 못마땅한 눈으로 점수판을 응시했다.


"뭐, 진다고 걸린 것도 없는데~"


이번에도 물을 부으려던 순영이 손을 멈췄다.


"근데 이제 우리 어떡하냐."

"일단 쉬고 생각해~"


다들 대자로 뻗은 무렵.

서빈은 빈 생수통을 구겼다.


"누가 우릴 여기 작정하고 가둔 거면 연승호가 분명해."

"연승호? 걔가 무슨 수로 그래?"


서빈의 추론에 태준이 반론했다.


"맞아. 연승호, 그 자식이 제아무리 복수하고 싶다 해도 어떻게 그러겠어?"


지성도 태준의 의견에 동조했다.


"복수? 걔가 우리한테 왜 복수해?"


진혁이 묻자 장내가 고요해졌다.


"큼. 그냥 우영이가 벌인 쇼가 아닐까? 우영이 걔가 이런 거 좋아하잖아."


오랜 침묵을 깬 것은 재호였다.

재호의 말에 대다수가 우영을 주모자로 인정했다.


"그럼 그냥 기다리면 되겠네."

"더 위험한 거 아니야? 우리가 약점을 알고 있으니까 이참에 한꺼번에-"

"장우영, 약점이 뭔데."


이번에도 진혁이 물었고,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아오. 야, 얘기 안 하냐!"

"진정해, 최진혁."


재영이 화내는 그를 말렸다.


"니들이라도 말해보든가. 도대체 뭔데?"


작게 한숨을 쉰 재영은 눈짓을 보냈다.

다들 자리를 비우자 그곳에는 둘만 남았다.


"우리가 단체로 연승호 괴롭혔으니까."

"뭐?"

"애초에 우영이가 짠 판이었어. 이사장 아들이라 반 배정도 직접 했고."

"그걸 왜 이제 말해."


진혁이 싸늘하게 재영을 내려다봤다.


"넌 별로 반에 관심이 없었잖아. 이 일을 모르는 애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했어. 그래야 혹시 문제 생겼을 때, 네가 도움이 될 거라고."


아는 거 하나 없는 진혁은 우영의 보험이었다.


"그래서 장우영이 나한테는 여태까지 말도 안 하고, 여기로 불렀다는 거야?"


진혁이 몹시 불쾌한 기분일 때.

나머지 16명은 연승호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연승호가 뭔 재주로 우리한테 이러겠냐고. 그리고 가둔 거 말곤 뭐 없잖아?"

"맞아. 승호 걔가 그럴 배짱이나 있겠어? 지금도 어디 가서 빌빌 기지만 않으면."


재호가 익살스럽게 그를 따라 하자 지켜보던 대부분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때 기억난다. 그 녀석한테 그것도 시켰었잖아."

"아아, PDX 춤?"


유명 남돌의 코믹한 춤을 시켰던 걸 떠올린 이들이 더욱 크게 웃었다.


"야, 천서빈. 너도 기억나지? 생각난 김에 한 번 춰봐라~"

"내가 왜?"

"그야 보고 싶으니까?"


순영의 손이 서빈의 어깨를 건드렸다.


"친구가 보고 싶다는데 안 되는 거냐?"


그들 사이에서도 명백히 존재하는 서열.

10년이나 지났는데도 분명한 선에 허탈한 웃음이 나오려는 그때.


"박순영, 그만 둬라."


그를 말린 것은 기태였다.

뜻밖의 인물이 나서자 모두 놀란 눈으로 기태를 바라봤다.


"지금 우리끼리 이래봤자야."


그는 곧 순영의 팔을 서빈에게서 치웠다.


"분위기, 왜 이래?"


진혁과 돌아온 재영은 어색한 기운을 느꼈다.

석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근황이나 얘기해 보자. 어쨌든 우리 동창회도 안 해서 다 같이 모인 건 10년 만이잖아."


다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서빈부터 차례로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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