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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_이야챌린지_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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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Nov 20. 2023
임시 표지
투명한 벽 너머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한곳에 모인 그들의 표정도 전보다 풀어진 채였다.
"이제 마지막은 기태인가?"
"송기태. 대체 그동안 뭐 하고 지냈냐? 마지막 연락은 2년 전 같은데."
석호가 묻자 모두의 시선이 기태에게로 모였다.
졸업하고도 8년이 지난 시점.
느슨해진 관계 속에서도 활발히 이어가는 녀석들도 제법 있었다.
'뭐, 나 같은 경우엔 고3 때부터 아예 손절했지만.'
서빈은 구겨진 생수통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다시 얼굴을 든 것은 생각지 못한 기태의 과거를 들었을 때였다.
"교,도소?"
"그래. 감옥에 있었다. 솔직히 난 여기나 거기나 다를 바 없어."
"어, 근데 죄수복을 입고 있지 않았잖아?"
처음 그들이 눈을 떴을 때.
그들의 복장은 각기 달랐다.
재겸을 비롯한 몇몇은 정장을 입고 있었고.
또 편한 복장을 입은 친구들도 있었으며.
어떤 이들의 차림은 고가의 명품 옷이었다.
적어도 방금 언급된 죄수복은 없었던 것.
"일요일이라고 했지? 어제 마침 휴가를 나왔다."
"기태, 그럼 모범수였어?"
순영이 놀란 눈으로 묻자 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 누구는 고위급 인사에, 누구는 평범한 월급쟁이고. 또- 아무튼 10년 사이에 많은 게 달라졌네."
한때는 같은 학생이었는데.
재겸이 허탈한 얼굴로 조용히 읊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서빈은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가 좋았네."
서빈의 말에 주변에 있던 몇몇은 동의했다.
"하, 그 시절엔 내가 날아다녔는데 말이야."
지성이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코를 문질렀다.
그를 시작으로 학창 시절을 돌아본 이들이 저마다의 추억을 꺼냈다.
"아~ 맞아. 다 같이 수업 째고 피시방 갔었지. 킥킥. 그럼 지금도 나름 회사 째고 놀러 온 건가?"
재겸처럼 회사원인 석훈의 얘기에 공감하는 이들이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어떻게 우리 중에 결혼한 애가 한 명도 없냐?"
"에이~ 모르지. 지금 우리 기억이 온전한 건 아니니까 했을 수도 있지. 그리고 했을 것 같음. 이 얼굴에 안 하면 안 되지 않겠냐?"
"예~ 자뻑남이라 가장 없을 것 같은데~"
"뭐?!"
마치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듯 서로 놀리며 장난치는 그들.
한참 떠들던 중 한 명이 외쳤다.
"아! 나 최근에 댄스 배웠다!"
영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생각난 기억.
"웬 댄스?"
"딸이 배 나왔다고 뭐라고 해서 바로 댄스 학원 끊었다 이거야."
"영석이 너 딸이 있었냐?"
"결혼했었, 어? 맞아. 우리가 그때 축가 불러주지 않았냐."
서서히 기억이 떠오르는 그들.
"그러게~ 네 와이프가 만삭인 채였잖아. 와, 졸업하고 바로 사고 쳤으니, 지금 애가 8살이던가?"
"흑. 우리 해솔이 보러 가야 하는데!"
딸의 어여쁜 미소가 떠오르자 영석이 괴로운 눈으로 바깥을 바라봤다.
"야야, 진정해. 계속 여기 있게 하지는 않겠지. 그럼 그냥 굶어죽으란 건데."
"맞아. 지금 힘 빼봤자 배만 더 고파지지."
한창 축구를 뛴 다음이라 허기가 지긴 했지만.
"하. 햄버거 땡긴다. 체육대회 했을 때 먹던 그거."
"아~ 요즘 없어진 브랜드인데 그 당시 되게 비쌌던 거. 우영이가 쏜 거잖아."
배고픔을 느낀 이들이 잔디 위로 드러누웠다.
서빈도 갈증을 참으며 누운 그때.
무언가 눈에 들어왔다.
"야, 저기. 박스가 있는데?"
"음식 아냐?"
덩그러니 놓인 상자.
아까는 보지 못한 그것을 향해 놀란 이들 몇몇이 달려나갔다.
"심봤다!!"
"뭐야? 그거 그 햄버거잖아. 이게 여기 왜 있어?"
"그게 중요하냐? 일단 먹어! 야, 콜라도 있어!"
고민은 길지 않았다.
"기태, 넌 안 먹냐."
"됐다. 니들 먹어라."
오로지 기태만이 입에 대지 않았다.
진혁조차 그냥 먹었는데, 더 묻지 않은 석호는 가장 잘 먹는 재영에게 넘겼다.
"고맙다. 기태야!"
재영이 금세 하나를 비우고, 다음 버거를 먹어치웠다.
"키야. 살 것 같다."
칼칼한 탄산까지 넘기고 나서 체력이 회복된 그들이 활기를 띠었다.
"단순한 것들."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냐~ 그냥 하는 거지."
성준은 신난 그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 그도 합류했다.
"뭔 먹자마자 춤이야?"
"아, 내가 제대로 배워왔다니까? 어차피 여기서 축구 아님 할 게 있냐? 가서 낮잠 잘 거 아니면 흔들어 제껴!"
춤바람이 난 2학년 8반 녀석들.
"오~ 기태, 너도 추려고?"
"밥도 안 먹었으면서 괜찮겠냐?"
그는 춤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수련회 가서 췄던 안무.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에 모두가 합을 맞췄다.
끝까지 참여하지 않으려던 진혁도 어느새 그들 사이에 껴있었다.
"어째 아직도 기억하냐?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맞춰보는 단체 군무.
벽에 막혀있었지만, 충분한 장소였던 그곳에서 그들은 열심히 몸을 흔들었다.
"다음 곡은 이번에 우리 딸이 좋아하는 걸로!"
벌써 서너 곡 함께 춘 그들.
가장 앞에 있는 영석을 따라 배우는 8반 친구들이었다.
"야, 나 이제 못해. 그만-!"
"어허. 지치지 않습니다. 빠지지 않습니다."
"못한대도! 춤추다가 뒤지겠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발은 변함없이 움직이는 순영.
"어? 야, 뭐야? 이거?"
그는 정말로 이제 관두고 싶었다.
"왜?"
"이거 춤이 안 멈추잖아."
"역시 계속 출 수 있다니까~"
영석이 한가롭게 말했다.
"아니. 진짜 안 멈춘다고! 이거 왜 이래?"
"뭐라는 거야. 그냥 추기 싫으면 관두면 되잖아. 이렇-? 어?"
"다리가 내 말을 안 듣는데?"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이들이 멈추려고 했지만.
다리는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의지와는 다르게 계속 스텝을 밟는 발.
"미친. 어떡하란 거야!"
마치 동화 빨간 구두처럼, 축구화를 신은 그들의 몸부림은 계속되었다.
탁탁탁.
아무리 몸을 배배 꼬아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들이 좌절하는 사이.
끼리릭.
돔 안으로 들어온 승호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오랜만에 보네.]
"연승호?"
서빈은 그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교복을 입고 있는 그는 꼭 18살 때와 같아 보였다.
"너였냐? 네가 여기로 우릴 모은 거야?"
[글쎄. 너희들이 한 행동이 오게 한 건 아닐까?]
"뭐라는 거야? 당장 이거나 멈추게 해."
간신히 승호가 있는 쪽으로 이동한 순영이 팔을 뻗었다.
쉬릭.
하지만 그의 손은 승호를 스치지도 못했다.
"홀로그램?"
IT 쪽에서 일하는 석훈이 중얼거렸다.
"아오. 진짜! 야, 너 나가면 진짜 가만 안 둬."
[춤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야.]
불같이 화내는 순영을 무시한 채 승호는 말했다.
"그게 뭔데?"
[축구를 해서 이긴 팀은 벗어날 수 있어.]
"이 상태로 축구는 무슨-! 아니, 아예 안 될 건 아닌데."
"뭔 말이야, 박순영."
"너튜브에 요즘 춤추는 축구로 유명한 게 있었는데. 야, 연승호. 설마 그걸 하란 거냐?"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방법은 축구를 진행하는 중에 알려주지. 더 쉬운 방법이거든.]
"하, 이 새끼가. 결국 축구는 하란 거잖아?"
[싫으면 계속 그렇게, 추면 되고.]
잠시 말을 멈춘 승호의 눈이 역동적인 다리를 스쳤다.
그 시선에 수치심을 느낀 순영의 얼굴이 더욱 빨갛게 물들었다.
"저 새끼 앞에서 춤추는 축구?"
"축구가 아니어도 춰야 하는 건 맞잖아."
"그럼 해야겠네."
진혁이 결정하자 약간의 불만도 있었지만 끝내 그 뜻에 따랐다.
다시 축구장에 모인 이들은 아직도 멈추지 않은 발로 간신히 축구공을 건드렸다.
"젠장! 두 번째 방법은 언제 알려줘!"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아까 나눈 팀으로 편성된 경기.
순영이 연신 투덜댔다.
분노를 담은 채 축구공을 힘차게 날린 그는 감각을 느꼈다.
제 의지로 멈출 수 있게 된 발.
"야, 이거- 끄아악!"
"뭐야, 왜 저래? 뭔 일이야?"
고통스럽다는 듯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잔디를 구르는 순영.
춤추며 다가온 이들은 목격했다.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이 물드는 것을.
하얀색이었던 그것이 붉게 변했고, 그 안에 무엇이 흐르는지는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끄으읍. 가시가 박힌. 끄악!"
[저렇게 될 거야. 멈춘다면 말이지.]
비명 사이 싸늘한 목소리가 꽂혔다.
경악한 그들은 이젠 자발적으로 출 수밖에 없었다.
순영의 선례를 보고 나니, 도저히 멈출 의지가 들지 않은 것.
한결같이 냉랭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승호의 복수는 비로소 막을 올린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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