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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를 찾아서
2023_이야챌린지_083
by
이야
Nov 25. 2023
임시 표지
주점 앞.
치이익.
라이터를 집어넣은 현승이 몸을 일으켰다.
"백솔지. 지금 한 눈 파는 거냐?"
"무거우니까 치워."
"지금 내 팔이 문제냐? 대체 어떤 놈한테 시선을 주는-"
현승은 솔지의 눈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면을 바라보자 왠지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관심 있어서 본 거 아니고, 아는 얼굴이라 그런 거야."
"쟤, 차은호잖아."
"엉. 오랜만에 보지?"
그제야 현승을 쳐다본 솔지가 애인의 등을 밀었다.
"뭐, 어쩌라고?"
"보니까 바빠 보이진 않던데. 데려오면 좋잖아. 모르는 얼굴도 아니고."
"아, 씨. 네가 하지, 왜 나 보고-"
"내가 갔다가 괜히 오해하면 어떡해?"
얼빠진 얼굴로 골목에서 벗어난 현승은 결국 그를 불러 세웠다.
"야, 차은호. 기억나냐?"
"같은 고등학교였나? 조편승?"
"조현승이거든."
"아아."
은호가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바쁘냐? 오랜만에 봤는데, 한 잔 어때?"
한편 자리를 지켰던 솔지는 꽁초를 밟았다.
다른 사람과 별로 어울리지 않던 차은호.
현승이 그를 데려올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익숙한 신발 뒤로 낯선 운동화도 보였다.
주점 안.
"솔직히 의외야. 그냥 갈 줄 알았는데."
"네가 데려오라 했으면서-"
"차은호, 아직도 반장이랑 사귀어?"
"반장, 지은이? 그렇지."
현승의 말을 끊고 묻고 싶은 질문을 던진 솔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현승이 끼어들었다.
"어떻게 같은 사람을 7년이나 만나? 어?"
정말 놀랍다는 듯 얼굴을 부담스럽게 들이민 그.
그를 밀어낸 것은 솔지의 하얀 손이었다.
"넌 어떻게 나랑 5년을 만났니?"
"아니. 우리는 몇 번 깨졌다가 다시 만난 거잖아."
"은호랑 반장도 그랬을 수 있지."
"그랬냐?"
은호가 고개를 젓자 현승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솔지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이번에는 아예 테이블에서 아웃되는 그였다.
"좀 신기해. 너랑 반장은 너무 뜬금없이 사귄 느낌이랄까? 차라리 괴상했지만, 부반장이었던 은우빈이라면 더 납득했을 전개라."
턱.
"아오, 백솔지. 넌 무슨 여자애가. 큼, 아니 뭐 지들끼리 진전이 있었으니까 연애했겠지. 이제 와서 그걸 왜 묻는"
"좋아했으니까. 2학년 때. 차은호, 좋아했거든."
테이블에 올려둔 현승의 손이 떨렸다.
"그때 이상했어."
"지금 네가 더 이상하거든?"
"방해하지 말고 비켜봐. 차은호, 너 좋아하는 애가 어디 나뿐이었겠어? 뭐, 해담고에서 넌 연예인이나 마찬가지였잖아. 그래서 지켜보는 애들이 많았는데, 그저 형식적으로 대했던 반장이랑 갑자기 사귄다는 얘기. 이번 동창회에서도 화두로 올랐거든."
"동창회?"
"빠지라고. 후, 며칠 전에 여자애들 몇 명만 모였던 거야. 아무튼 은우빈도 처음엔 인기 많았지만. 입만 열면, 깨는 부분이 있어서 결국 2학년 때는 너 하나 보겠다고 다른 반 애들도 수시로 와서 염탐한 사이에 어떻게
반장이랑 이어진 건지 궁금해하더라고."
솔지의 이야기를 들은 은호는 조용히 잔만 쳐다보았다.
"나도 좀 알고 싶네."
오랜 침묵에 현승과 말싸움을 벌이던 솔지는 그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온 은호는 소파에서 잠든 지은을 볼 수 있었다.
인기척에 일어난 그녀도 상대를 알아보았다.
"산책 좀 한다더니. 고새 술까지 마시고 온 거야?"
"통화 들었어."
"무슨 얘기야?"
딸깍.
불을 켠 지은은 주방으로 향했다.
그녀가 냉동고에서 얼음을 꺼내는 동안에도 은호는 답하지 않았다.
"난 너한테 뭐였냐."
"뭐였냐고? 내 남친이고, 지금은 취해서 귀가한- 주정뱅이?"
물 잔을 건넨 지은이 익살스럽게 말끝을 올렸다.
그러나 차가운 은호의 눈.
"저번에 내 얘기 하면서 저항력이 높아진다고 말하던 거. 난 그냥 실험체였냐?"
컵에 담긴 물이 출렁였다.
"아님 이번 연구에서 해고되는 걸 말한 거면."
"잠시만. 무슨 착각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후. 아니다. 제대로 설명 안한 내 잘못이지."
탁자에 잔을 내려둔 지은이 폰을 찾았다.
그 행동을 관찰한 은호는 말을 아꼈다.
"이거였어. 네 얘기라기보단 하필 이름이 같아서. 내가 속인 건 잘못했지만, 당장 말할 수준은 아니라-"
와락.
그대로 안긴 지은의 손이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예지가 너랑 겹쳐 보인다고 질색한 거야. 말 안 해서 미안. 뭐라도 되면 알려주려고 했어. 내가 웹소설 쓰는 거."
오해가 풀린 은호는 그동안 느낀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둘의 새벽이 길게 이어질 때.
찬 바람을 쐬며 돌아가던 솔지는 삐진 현승의 팔을 붙잡았다.
"이제 눈에 들어오냐."
"글쎄. 은우빈이 마녀 타령만 하지 않았어도 나는 쭉 우빈이를 좋아했을 것 같은데."
"참나. 그거 안타깝네. 마녀 찾겠다고 아직도 외국에 나가있는 녀석인데 말이야."
솔지는 가로등 불빛을 지나 휑 떠난 현승을 뒤쫓았다.
다음날.
랩실.
예지는 안경을 고쳐 썼다.
"참 너도 너지만, 차은호도 대단해~"
"뭐. 저항력이 그렇게 높은 케이스는 처음이긴 했지만."
"그래봤자 구지은한테는 별거 아니죠? 그러니까 7년을 속여먹죠. 이쯤 되면 그냥 터놓아도 된다고 본다. 아니, 그때 은호가 들은 거 알아서 해결하겠다더니 웹소설?"
타앗.
예지가 빼앗은 폰을 다시 가져온 지은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이럴 것 같았으면 그냥 순리대로 쿨립 아카데미 가지. 복잡할 것도 없잖아."
"견제 받는 삶이 지쳤거든. 그래서 벗어나려고 선택한 건데."
"차라리 놓아주는 건 어때? 그냥 솔직해져 봐. 지금 네
눈이 딱 그거거든. 위프 주제에 명령하지 마."
"그런 적 없어. 나라고 마냥 다르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위프라고 차별하지 않아."
예지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저번에 그랬지? 어떻게 풀리든, 결국 변할 관계라고."
"…내 힘이 약해지거나 저항력이 높아지면 그렇게 되겠지."
"그걸로 도망칠 생각하지 마. 넌 기억 못 하겠지만, 나한테 털어놨으니까. 조건이 하나 더 있잖아."
"자그마치 7년이야. 거짓된 감정에 맹목적일 이유 없잖아."
말을 마친 지은은 연구실을 나갔다.
예지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모범 교과서로 부모님을 보여줄 수도 없고 말이야. 답답하네.'
예지가 한창 머리를 쓸어넘기고 있을 무렵.
지빈국제공항.
우연은 지루한 얼굴로 플래카드를 움직였다.
"뭐야. 왜 이러고 있어?"
"엄마가 하도 잔소리해서 왔다. 은우빈. 너, 진짜 그 마녀 찾기 좀 안 하면 안 되냐?"
딱.
우빈은 들고 있던 부채로 자신의 쌍둥이 동생의 머리를 때렸다.
"남들은 몰라도 넌 이해해야지. 우리가 죽을 뻔한 걸 살려준 게 마녀인데."
"그냥 운이 좋았던 거겠지. 아휴."
"그래, 그렇게 계속 부정해라. 나는 고등학생 때도 어릴 적 받았던 느낌을 또 겪었으니까."
같은 레퍼토리를 읊는 우빈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으나.
귀신같이 울리는 엄마의 전화에 결국 그를 데리고 택시에 오른 우연.
"그럼 해담고 애들 중에 있었다는 건데, 굳이 왜 외국을 나간 거야?"
"더 철저하게 조사하기 위해서지."
"꼭 그렇게 찾아야 직성이 풀리겠다면 걔를 추천할게."
"누구?"
"차은호 여자친구. 2학년 때 너랑 임원이었던 애."
얼마 전, 동창회를 다녀온 우연이 자연스레 지은을 언급했다.
"구지은? 걔는 내가 조사한지 오래거든. 그리고 마녀가 그렇게 가까이에 있었는데, 내가 몰랐겠냐. 아무튼 걔는 아니야."
"바로 그게 의심스러워. 남자도 차별하지 않고 마녀로 몰았으면서 유독 걔만 아니라고 하더라?"
"그건 당연히 나랑 같이 보낸 시간이-"
삐이이.
이명이 들리고 어지러운 머리를 짚은 우빈은 과거의 한 장면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너, 마녀지?'
돌아보는 여자의 미소만 맴도는 기억 속.
"안 내리고 뭐 하냐?"
"큼. 아무튼 이번엔 꼭 은혜를 갚을 예정이니까 은우연. 너도 감사 인사는 잊지 말아라."
어느새 그 순간을 지운 우빈이 트렁크에서 짐을 챙기며 말했다.
대충 고개를 끄덕인 우연은 엄마에게 공손히 오빠를 넘겼다.
*위프 : 마녀와 인간의 혼혈 (
직접 만든 단어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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