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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답을 구해
2023_이야챌린지_084
by
이야
Nov 28. 2023
임시 표지
주시쿨 레스토랑.
해나는 단골에게 밑반찬을 내어주며 입을 열었다.
"오늘도 같은 거 드시죠?"
"예."
언제나처럼 짧게 대답하는 손님이어도 해나는 해사한 웃음으로 쟁반을 치웠다.
한편 주방으로 돌아가는 직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이제는 덥수룩한 머리를 살짝 올렸다.
가늘게 찢어진 눈매가 한참 주방을 응시하다 식탁으로 돌아왔다.
늑대 수인인 그의 코는 기가 막히게 국밥 냄새를 맡았다.
"맛있게 드세요."
금세 식사를 준비한 해나가 아까와 같은 미소로 돌아섰다.
반면 그녀를 다시 쳐다보던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수저를 들었다.
허연 국물에는 송송 잘린 파와 소고기가 뭉텅이로 올라가 있었다.
평상시 먹던 점심.
입에 음식을 나르는 손이 묵직했다.
후루룩.
당면까지 다 먹고 난 이제는 든든한 배를 문질렀다.
"계산."
"네. 9300원입니다."
만 원도 되지 않는 가격.
합리적인 소비에 고개를 끄덕인 이제가 종이컵을 들고 밖으로 나왔을 때.
빠악.
"이 원수!"
미처 피하지 못하고 뒤통수를 내어준 이제.
돌아보니,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있는 랑이였다.
"날 두고 싸우는 건 곤란해."
뒤늦게 도착한 방우가 랑이를 떼어냈다.
"어떻게 내 남편을!"
"나는 여기 있거든."
발작하는 랑이를 밀어내고.
"오랜만이다. 권이제."
"아직도 학교에 다닌다는 게 사실이었군."
"보다시피 제대로 사람 되려면 아직 먼 거지. 너처럼 차분해지려면 만년은 더
걸릴 것 같다."
한때 아카데미 동기였던 둘은 편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한편 저 멀리 물러났던 랑이는 방우의 눈을 피해 레스토랑에 진입했다.
그녀를 발견한 건 해나.
"먹으러 왔을 리는 없고. 또 영업 방해하면 떡집에도 확 못 가게 할 거야."
"헉- 미안! 내가 헷갈렸나 보다!"
"잠시만. 지금은 학교에 있을 시간이잖아."
"수업은 충분히 들었다고!"
해나의 잔소리를 피해 밖으로 도망친 랑이는 어느새 방우의 손에 잡혔다.
"이제야! 날 고용해라!"
끌려가는 랑이가 급하게 팔을 뻗었다.
"내가 가서 도와줄게!"
"잘도 돕겠다~ 저번에 네가 박살 낸 거 물어준다고 힘들었거든."
방우의 일침에 입을 다문 랑이가 몸에 힘을 뺐다.
질질.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둘을 바라보던 이제는 아래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내렸다.
"방우도 참 고생이 많아요."
"예."
언제부터 곁에 있었는지.
해나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지만.
"오늘도 마저 수고하세요~"
"예."
작게 목례한 이제는 또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이게 아닌데.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상대에게 단답만 하는 자신이 답답했다.
점심을 마치고 건설 현장으로 돌아온 이제의 정신은 온통 거기에 있었다.
"권 씨, 오늘은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해?"
"죄송합니다."
"뭐, 그런 날도 있는 거겠지~ 오늘은 그냥 일찍 퇴근해."
터벅터벅.
반장님의
배려로 한낮에 일을 마치게 된 이제는 집으로 걸어갔다.
집에 돌아오자 변장을 푼 이제의 몸이 미끄러졌다.
등에 닿는 차가운 문이 그를 환기시킬 때.
안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쫑긋.
"삼촌!"
"권이후?"
이제는 갑작스러운 조카의 등장에 당황했다.
띠리리.
마침 폰이 울렸다.
"그렇다고 그냥 애를 놓고 가면 어떡해?"
-미안하다. 너만 믿는다. 정 힘들면 거기에 맡기고.
형과의 통화를 끝낸 이제는 혼자 그림을 그리는 조카를 멍하니 바라봤다.
아침에 데려간다지만.
저녁마다 돌봐달라니.
마냥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만.
'후. 오늘 일찍 끝나서 오지 않았으면-'
이제의 시선이 열심히 움직이는 꼬리에 닿았다.
아직 변장이 서툰 이후.
그를 데리고 외식을 하는 것은 무리였다.
작게 한숨을 쉰 이제는 냉장고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애가 먹을만한 건 없네."
결국 배달을 시키는 그였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내일은 마트에서 장을 봐야겠단 생각을 하는 이제는 조카와 오붓한 저녁을 마쳤다.
긴 밤이 지나고.
"고마워요. 어제는 너무 갑자기 일이 생겨서. 다음 주부터는 키즈니아에 맡길 생각인데, 그때까지만 부탁해도 될까요?"
"네."
"우앙. 이제 삼촌이랑 더 있을래!"
형수에게 안긴 이후가 발버둥을 쳤지만.
"저녁에 보자, 이후야."
형수는 아직 약한 조카를 제압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평소와는 다른 시끌벅적한 아침.
이제도 잔뜩 기합이 들어갔다.
"확실히 쉬고 오니까 다르네!"
반장은 착실하게 일하는 그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아침부터 열심히 옮겼지만, 어제 못한 작업량으로 인해 생각보다 늦어진 퇴근.
점심도 제대로 먹지 않은 그는 어둠이 깔리자 레스토랑에 들어올 수 있었다.
"2개 포장이요."
"네~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어제 보니 이후의 입맛이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여.
마트 대신 식당을 찾은 이제는 자리에 없는 해나를 알아차렸다.
"혹시 낮에 일하는 직원은."
"네? 아, 해나 씨요? 그 친구는 저녁에 다른 곳에서 일해요. 주시쿨 키즈니아, 밤 담당이거든요. 참 사람이 부지런하죠?"
"예."
"걱정 마세요! 해나 못지않게 요리에 자신 있답니다."
사슴 수인인 이선이 예쁜 눈망울을 빛내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해나의 맑은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며칠 후.
"이제 삼촌은 못 보는 거야?"
"가끔씩 보는 거지."
"그냥 계속 삼촌 집에 있으면 안 돼?"
"민폐래도."
마지막 날은 직접 데리러 온 형이 아들의 말에 성실히 답하고 있었다.
"키즈니아로 가끔 찾아갈게."
"삼촌, 정말이야?"
"뭘 그렇게까지 해. 애 버릇 나빠져. 그리고 그동안 봐준 거. 저녁 값에 더 보탰다."
봉투를 건넨 이상은 변신에 서툴러 귀가 튀어나온 이후를 담요로 덮으며 데리고 나갔다.
"안 줘도 되는데."
"받아. 말로만 고맙다고 하기도 뭐하다~ 또 제대로 얘기도 못하고 맡겼잖아."
결국 돈을 받은 이제는 떠난 이후의 빈자리에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꼈다.
5일 동안 한 사람이 는 것뿐인데, 새삼 집에 따뜻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흐르고.
이제는 약속대로 키즈니아에 방문했다.
혹 어린 수인들이 놀랄까 지저분한 머리도 다듬고 온 이제.
"음? 누구 보호자인가요?"
처음 보는 방문자에 해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권이후입니다."
"아, 이후 아버님이시구나~"
해나가 살갑게 반겼지만, 이제는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삼촌입니다."
"앗. 죄송해요. 아버님이 아직 한 번도 안 오셔서."
"예."
"어?"
이 익숙한 음성.
오늘 낮에도 들었던 손님의 목소리.
그것을 알아차린 해나는 깔끔해진 손님의 얼굴을 재차 확인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한 인상은 말끔하면서도.
'와. 조폭이 따로 없네.'
실례되는 생각을 잠시 해버린 해나가 머리를 흔들었다.
"삼촌이다!"
"무,무서운 사람."
그들이 안으로 들어오자 오직 이후만이 그를 반겼고.
다른 수인들은 공포에 떨었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애들에게 낯설기 충분했다.
"앗. 얘들아,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다닥다닥.
다들 해나의 뒤로 숨어 이후와 처음 보는 아저씨를 번갈아 바라봤다.
"선생님."
"응?"
해나는 자신을 부르는 예빈을 바라봤다.
꼬옥.
제 앞치마를 붙들은 토끼 수인의 하얀 털이 들어왔다.
변신에 미숙한 아이들.
"이제 야시장 갈 수 있어요?"
"응? 아."
그 물음에 며칠 전 기억이 떠올랐다.
'야시장은 위험해서 갈 수 없어. 지켜줄 만한 든든한 사람도 없고 말이야.'
예빈의 질문에 한참 몸을 떨던 아이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전부터 가고 싶다는 건 알았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도 아이들의 귀는 머리띠라고 충분히 속일 수 있었다.
하지만 혼자 10명이 넘는 인원을 통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간 반려한 상황에서 구세주가 등장하니.
"아무래도 바쁘시지 않을까?"
해나의 대답에 축 처지는 귀.
시무룩한 표정에 힐끗 이제를 바라본 해나는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엉성하고 어색한 미소를 보인 해나는 랑이라도 불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조카에게 설명을 들은 이제의 입이 절로 움직였다.
"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환호가 쏟아지고.
그런 친구들을 보자 이후는 우쭐대며 어깨를 올렸다.
반면 이제의 어깨는 여리게 떨리기 시작했다.
항상 웃는 해나였지만, 그녀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 화사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의 뇌리에
그녀가
또 각인되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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