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소모 시간 3시간 30분. 쿨타임 개인 컨디션에 따라 상이함.
"…? 해당 스킬을 사용하면 창작 스탯이 무조건 1이 오른다는 건가?"
스킬을 파악한 그녀는 바로 발동하려고 했지만.
"스킬 사용에 실패? 컨디션이 안 된다고? 조건이 뭐 이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그녀는 홧김에 이불을 발로 찼다.
하나 남아있는 등불이 미처 꺼지지 않은 듯, 알림이 울렸다.
[조건을 충족합니다. 본 스킬의 연계 스킬이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연계 스킬? 오? 해야지!"
수락하자 나오는 메시지는 그녀를 들뜨게 만들기 충분했다.
가이드 원고(F).
비록 F급 직업에 어울리는 동일한 등급의 스킬이었지만.
그녀의 처지에는 과분한 사항이었다.
"매일 3개의 가이드 원고 중 하나를 볼 수 있다니. 이거면 나도 글을 쓸 수 있겠네!"
마찬가지로 빠르게 파악한 그녀는 스킬을 발동했고, 이번에는 확실히 성공했다.
그리고 설명대로 3개의 가이드 목록이 보였다.
-이 엔딩은 억울하다, 구름으로 짓는 밥, 인형 레스토랑
그중 하나를 클릭하자 원고에 대한 정보가 나왔다.
"후속 원고가 존재하는 건 장편인 건가?"
세 원고를 모두 살펴본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일단 확실한 후속 원고가 있는 것은 둘.
신중하게 고민한 그녀는 곧 결정했다.
하지만.
"후. 컨디션, 그거 어떻게 좋아지는 거야?"
선택된 원고를 쓰기 위해선 즉석글볶이가 발동해야 했다.
그냥 스킬 없이라도 쓸 작정으로 침대에서 내려왔지만.
실패 문구만 눈앞을 가득 채웠다.
결국 포기한 그녀는 이왕 일어난 김에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컵라면을 집었다.
온수를 받고 내려둔 그때.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킬의 영향 아래, 노트북 앞에 앉은 그녀의 손은 타자를 연속적으로 눌렀다.
그로부터 3시간 30분 후.
라면 냄새가 퍼진 방안.
모니터의 하얀 불빛 너머 빼곡한 글자가 자리 잡았다.
"헉."
탈진한 그녀는 힘겹게 젓가락을 들었다.
물은 사라지고, 퉁퉁 불은 라면.
하지만 울리는 뱃속은 그것마저도 반기고 있었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자, 확인한 글은 그녀를 뿌듯하게 만들었고.
"창작 스탯이 정말 올랐잖아?"
1로 가득했던 창에 변수가 생겼다.
2.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나타났다.
"스탯 50마다 체감이 된다고?"
갈길이 한참 멀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서투른 젓가락질로 남은 면을 넘겼다.
하아.
"그래도 448만 올리면 나 E급 되는 거 맞지?"
앞으로 엄청난 노가다가 기다리고 있는 미래 앞.
단순 지망생이었던 그녀를 어떤 세상은 작가로 임명했다.
하지만 자신의 세계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2998. 그만큼 더 쓰면 되는 거야."
누구나 바라는 EX급 라이터가 되기까지.
남은 창작 스탯을 본 그녀는 배부른 한편으로도 떡볶이가 당겼다.
그러나 잔고를 확인한 하늘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배달비가 왜 이렇게 비싸? 떡볶이 자체도 가격이 되는데."
고물가 시대.
뒤늦은 각성에,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은 직업.
찡그린 눈썹이 좀 더 일그러졌다.
"나만 아포칼립스지만."
SNS에서는 다들 화려한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데.
자신은 치열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생존해야만 했다.
그런 것치고는 안일한 삶을 보내온 것도 사실이지만.
각성이란 성과가 없다면 사람 취급도 해주지 않는 세상.
고작 3개월 만에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이전에도 비슷한 판국이었다.
"누굴 탓해. 무능한 내 잘못이지."
쓰레기를 정리한 그녀는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왔다.
그대로 잠에 들려고 했던 하늘은 천장을 바라봤다.
얼룩이 신경 쓰이던 그녀의 팔이 위로 향했을 때.
균열이 생겨났다.
[근방에서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나도 알아!"
하얀 파편이 위험스레 곁을 지날 때쯤.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안으로 빨려 들어간 그녀의 정신이 아득해지고.
이후 정신을 차렸을 때는.
"왜? 침대야?"
낯설지 않은 방 안을 둘러본 그녀는 멀쩡한 천장을 발견했다.
"꿈이었구나. 하긴. 각성이라니."
필사적으로 꿈의 내용을 떠올리려 애쓰던 하늘이 눈살을 찌푸렸다.
꿈에서 쓴 원고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고.
이제는 꿈마저 희미해졌다.
그래도 책상 앞에 앉은 그녀는 뭐라도 쓰려고 화면을 바라봤지만.
오랜 공백이었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손은 키보드 위를 드나들었다.
"스킬 따위 없어도 그냥 쓸 수 있어!"
기합을 넣은 그녀가 글을 써내려 갈 때.
하늘을 지켜보는 수많은 눈이 끔벅거렸다.
어쩌면 환상 던전에 빠진 걸지도 모르는 현실은, 그녀를 나아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너머의 어떤 눈조차도.
손을 멈춘 주인은 자신의 우주를 탐색했다.
"시험을 통해 내 능력을 수치화하는 세상이잖아. 그러면 저런 게 있어도 되는 거 아닌가?"
실제로 정말 바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꽤나 많다.
상태창이 생긴 이들의 이야기.
그 도움으로 성장하고 성공하는 삶 속에서 소원해도 되지 않을까.
또 어떤 세상은 그 기술을 만들어 활용하기도 했으니.
주인은 다시 하늘을 구경했다.
-이 우주의 시나리오는 꼭 멸망이길 바라.
어떤 세상은 그런 대사로 시작했다.
마치 저주하듯 쓰인 이야기는 주인의 흥미를 끌었다.
-그리 보여 알려줬는데도 자각하지 못한 이들에게 전하는 경고는 사악했다. 누군가 애쓰는 시간.그 사이로 사연 있는 악역들이 판치는 세상에, 주인공이 선할 거라 믿는 건. 선한 신이 끝내 기적을 행할 거라 여기는 것과도 같아서 우스웠다. 계속 이어지는 운명 속에서 이름을 감추고 활동한 작가는 담았다.지구란 세트장에 가장 어울리는 소품을.바라보는 눈이 어디를 향해도 잘 보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