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야파티

원대한 나의 구세주

2023_이야챌린지_096

by 이야
임시 표지

짝짝짝.

패널들의 박수가 세트장을 울렸다.

비로소 대결하게 된 대한은 요리를 들고나오는 세준을 지켜봤다.

이번 주제로 만든 두 개의 이색 요리.

하나는 세준의 것이오,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꿀꺽.

새삼 심장이 떨린다.

반드시 이기고 싶은 마음에 불끈 주먹 쥔 손이 남몰래 경련했다.


"그럼 먼저 대한 씨가 준비한 '샤베트 파스타'부터 시식하겠습니다."


MC의 멘트가 이어지자 네 명의 심사위원들이 빠르게 수저를 들었다.

세준의 영상을 보면서 돌았던 군침이 실제 음식을 보니, 더욱 고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세준의 음식을 먹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지만.

항상 좋은 요리를 선보인 대한의 것이라면 맛은 보장되어 있었다.

이색적인 파스타 앞에서도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모두의 입으로 면이 들어가는 때.

경련하던 손안으로 땀이 흥건했다.

필사적으로 웃는 입가는 자그마하게 떨렸지만, 다행히 카메라는 비워진 접시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음~ 생각보다 더 상큼하네요. 호불호가 갈릴 맛인데, 제 입맛에는 괜찮네요."


짧게 이어진 심사평.

투표와 결과를 위해 말을 아끼는 이들.

기존의 접시가 치워지고, 새 그릇이 식탁에 올랐을 즘.

MC의 진행이 이어졌다.


"이름부터가 신선해요. 다음은 차세준 씨의 '요르닭칼국수'를 맛보겠습니다!"


사실 닭칼국수 자체는 익숙한 명칭이었지만.

요구르트를 줄여서 붙인 앞 두 글자가 색다른 느낌을 더했다.


"둘 다 면 요리라서 기대되는 매칭이 아닐 수가 없겠는데요."


그 말처럼 첫 대결부터 만만찮은 상대였다.

세준도 대한만큼이나 긴장했는지, 이마에 땀이 맺혀있었다.

게스트로 출연한 자신이었지만, 이왕 나온 거 이겨야 하지 않나.

시식이 끝나자 MC는 둘의 의중을 떠보기 시작했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의 선택이 결과를 좌지우지할 때.

도전자들의 심리전이 이 고스트랑의 묘미였으니, 마땅한 질문이었다.


"이길 것 같나요?"

"지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열심히 준비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출연진의 우승을 향한 욕심이 잘 담기자, 감독과 사인을 주고받은 MC가 외쳤다.

그에 바짝 긴장한 두 사람은 전보다 좀 더 풀어졌다.


"바로 결과를 보면 재미가 없죠?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촬영이 잠시 중단된 시각, 고스트랑 팀 일부는 난색을 표했다.

먼저 투표지를 확인한 제작진들.

2 대 2 동점이 나오자 긴급회의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음. 일단 이런 경우엔 보통 MC가 랜덤으로 뽑은 패널 중에 한 분이 드시긴 하니까, 평소처럼 할까요?"


여정은 스태프의 질문에 잠시 고민했다.

몇 주째 견제 받고 있는 대한.

최대한 투명하게 투표할 것이라 믿지만,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견제표든, 친분표든 뭐 결국 한 사람이 올라가는 거니까 깐깐할 필욘 없겠지만-'


그녀가 한참 생각에 잠겼을 때, 한쪽에서 술렁임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주의가 분산될 무렵.

여정도 소란의 주인공을 알아봤다.


"오랜만이에요, 선배님!"

"어머, 백 대표!"


여정이 반갑게 맞이한 이는 EO엔터 대표였다.

같은 사옥에서 라디오를 끝내고 들렸다는 그녀.

마침 촬영이 쉬고 있어서 들어올 수 있었던 이오는 축하 인사만 짤막하게 하고 갈 참이었다.

잠시 후, 상황을 전해 들은 이오는 반문했다.


"네? 제가요?"

"그래. 이전에도 한 적 있잖아~"

"어, 하지만-"


말끝을 흐린 이오는 멀리서 대기 중인 두 남자를 살폈다.


"남자친구랑 소속 배우 중에 누굴 선택할지, 사람들도 궁금하겠는걸!"

"저번엔 제가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었잖아요."

"그래도 백 대표의 투표도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잖아~"


여정은 여전히 맛 칼럼니스트로 활발히 활동 중인 이오의 이력을 덧붙였다.

결국 손사래 치던 이오도 그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로 쫀득한 대결이면 두 요리 다 매력적이란 거잖아~"


맛볼 기회를 놓치기에는 비주얼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아직 식사를 못한 이오는 각각의 그릇을 보자 절로 입술이 달싹였다.

이내 그것을 포착한 여정이 강하게 밀어붙였고, 결국 재개된 촬영에서 어느새 고스트랑에 출연하고 있는 이오였다.


"오, 이제 결과는 백이오 심사위원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결승전이 아니었기에, 도전자는 물론이고 패널과 심사위원들도 그녀를 받아들였다.

같은 순서로 음식을 접한 이오의 눈이 빛났다.


"아. 이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거죠?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인데요-"


이오의 말에 뒤에 있던 심사위원 중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훌륭한 이색 요리였던 것.

방송을 아는 이오가 뜸 들이던 찰나.

지지직.

신 사옥에, 새 세트장이어서 그랬을까?

조명이 위태롭게 반짝이더니 금방이라도 추락할 기세였다.

한동안 이오의 입에 집중됐던 시선이 공중을 향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무대감독이 움직였지만.

이미 조명을 비롯한 지지대는 무섭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이오의 바로 위에서.


"백이오!!!"


대다수가 놀라 몸을 굳혔을 때.

같은 자리에서 심사를 기다리던 도전자들은 순식간에 달려나갔다.

한편, 충격으로 쓰러진 이오는 흐릿한 시야로 자신을 잡은 사람을 확인했다.

곧 기절한 그녀의 손은 걱정하는 눈빛에 닿지 못했다.

까맣게 물든 자리.

얼마나 흘렀을까?

천천히 눈을 뜬 이오는 하얀 천장을 볼 수 있었다.


"살,았네? 어? 다른 사람들은-"


급하게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현기증만 날 뿐이었다.


"백이오, 괜찮아?"


커튼 너머로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음성이 다정해서 꼭 옛날로 돌아간 기분.


'바로 앞에서 그랬으니 걱정할 만하지. 울기까지 했나. 울음기보다는 약간 앳된 것 같기도 한-'


침대에 누워 생각하던 이오는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불 아래, 예상치 못한 자신의 복장.


'이거 뭐야? 환자복도 아니고 웬 교복?'


눈을 비빈 그녀는 다시 봐도 같은 옷에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커튼에 닿아 움직이자 상대편도 그 뜻을 헤아렸는지 금방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너, 왜. 아니, 이게 무슨-"

"미안. 네가 무리하는 줄 알았으면 데이트하자고 안 했을 거야. 시험기간 끝났다고 주말에 만나자고 해서 미안."

"도대체 무슨 얘기를. 너. 차, 아. 아?"

"차?"


이오는 되묻는 남자를 보고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았다.

결단코 말이 되지 않는 상황.

이건 꿈일 게 분명했다.


'여기서 구세준이 나온다는 건- 그래, 어지간히 고마웠나 보네. 이 원수를 용서할 정도긴 하지, 생명의 은인이면.'


이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를 지켜보던 세준은 커다란 의문을 품었다.


'빈혈이 이렇게 심각한 거였나. 일시적으로 머리가-'


이오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음을 깨달은 그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반면 이오는 그 낯에 다소 시니컬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지가 차 놓고도 저런 얼굴이더니만. 대체 왜- 하, 이 꿈은 언제 깨는 거냐.'


생각보다 더 생생한 꿈.

설마, 꿈이 아닌가.

싶다가도 오히려 더 말도 되지 않는 회귀가 서서히 납득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와. 사후세계 체험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나도, 쟤도-"


홀로 중얼거리던 이오는 멀찍이서 따라오던 세준을 흘겨봤다.

이틀 전.

이별을 말했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이 더 잘하겠다고 하더니 저렇게 눈치를 보며 따라오는 그.


'아니. 원래 네가 나를 찼다고요.'


오히려 이유도 모른 채 헤어진 건 자신 아니었던가.

복수하려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복수처럼 된 지금.

답답한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땐 왜 헤어지자고 했는데! 물어도 대답할 구세준은 쟤가 아닌 거라고!'


이미 과거와 달라진 상태.

애초에 미래를 알고 있는 자신은 이 우주의 이물질일지도 몰랐다.

뚝.

그녀의 걸음이 멈추자 세준도 빠르게 보폭을 줄였다.

이윽고 그의 발도 그녀의 근방에서 멈췄다.


'미래를 안다? 오? 인생 2회차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혹 사후세계일지도 모르는 이곳.

죽었다고 생각하기보다 다시 사는 거라 보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았다.

이오는 쭈뼛대며 곁을 도는 세준을 붙잡았다.


"구세준. 넌 이제 차세준이야."

"어?"

"내가 널 최고의 배우로 만들어줄게."


그는 영문을 몰랐지만, 눈을 빛내는 이오를 보자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운동장을 돌던 대한은 정문에서 함께하는 두 사람을 보자 더욱더 속도를 냈다.


'봉지훈. 감히 거짓말을 했겠다.'


빠득.

다리 근육만큼이나 요동치는 심장이 점차 그를 조였다.

헤어졌다는 소식을 전한 친구가 원망스러울 만큼 기분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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