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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신호등을 건너지 않을래요
2023_이야챌린지_097
by
이야
Dec 15. 2023
임시 표지
'정말 나를 좋아하는 거라고?'
찬 바람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다예는 방금 전 대화를 곱씹어 봤다.
화장실에 간 자신을 기다리던 두 친구들.
고등학생 때부터 함께 한 녀석들로, 성인이 되자 함께 술을 마신 것이 화근이었을까.
아니, 화장실에서 곱게 돌아오지 않고 놀래 키려고 살금살금 온 게 문제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 말을 듣지 못했을 테니까.
'백다예, 좋아하는 거. 아직 고백 안 했지?'
'했으면 이러고 있겠냐. 그러는 너도 1일에 못 했나 보다?'
'후. 우리 둘 다 가망이 있긴 한 거냐?'
딸꾹.
빠르게 자리에서 도망친 그녀는 쉴 새 없이 나오는 숨을 멈추려 노력했다.
그리고 비로소 말도 없이 사라진 자신을 찾을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아- 말도 안 돼. 난 당연히 둘이!"
"화장실 간다더니,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혼자 집에 가는 게 어딨냐."
어느새 따라잡은 둘이 말을 건네도, 다예는 그저 눈만 굴릴 뿐이었다.
저 둘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었다.
그동안 자신이 해온 망측한 상상이, 아찔한 순간이었다.
'둘이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고등학교 1학년.
신유성, 유성호.
짝꿍이었던 둘은 이름부터가 운명이었다.
실제로 친해진 두 사람은 학급 임원도 같이 할 정도로 두터웠던 사이.
자신은 그저 서기로서 출석부만 들고 다니는 나부랭이였을 뿐인데.
'오해받지 않으려고 날 끼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옛날과 달리, 좀 더 자유로워진 세상이었지만 비껴가는 시선은 여전했다.
서로 좋아하겠다는데, 그게 무슨 죄라고.
응원하는 친구로 든든하게 지탱해 줄 생각이었던 자신.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속인 사람은 없는데, 속은 사람만 있다는 게 이런 건가?'
남몰래 신호커플을 지지해왔던 순간이 와장창 깨지는 시간이었다.
반면 그녀의 속내를 모르는 둘은 또 생각에 잠긴 그녀를 잠자코 지켜봤다.
그녀는 몰랐지만, 그들에게는 꽤나 익숙한 상황.
시선을 교환한 둘은 각각 그녀의 팔을 잡고 집으로 데려갔다.
"뭐야? 날 왜 연행하는 건데?"
키가 큰 두 남정네에게 붙들린 다예가 다리를 흔들었지만, 효과 없는 저항이었다.
결국 둘에게 질질 끌려 집 앞에 도착한 그녀.
"나, 안 취했어."
"그렇겠지."
"가서 자라."
평소처럼 반응하는 유성과 성호.
오히려 둘의 손짓에 이상한 기분이 든 것은 다예였다.
'이게 아닌데? 쟤네, 나 좋아한다며. 뭘 바란 건 아니지만. 뭔가 좀-'
자신이 빤히 쳐다봐도 아무렇지 않은 두 얼굴.
그녀의 눈썹이 절로 움직였다.
"너희 뭐 할 말 없어?"
"? 난 없는데, 넌 있냐."
"없음. 시간도 늦었는데, 올라가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그녀의 등을 밀었다.
그대로 떠밀린 다예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점차 작아지는 그녀를 지켜보던 둘은 그제야 참고 있던 숨을 뱉었다.
"어떤 것 같아?"
"백퍼 들었어."
"하- 이제 어쩌냐."
한참 자리에 서있던 둘은 난감한 얼굴로 그녀의 집을 바라봤다.
마침 집에 들어온 다예는 그들처럼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나 좋아하는 건 쟤네잖아. 근데 내가 왜 이런 기분이야."
워낙 생각도 못 한 마음이라 그런 걸까.
왠지 울렁이는 속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도 올라오는 중이었다.
"우웩. 아오, 이제 술 안 먹어."
여러 번 양치를 하고 나온 그녀는 다짐했다.
음주는 자신과 맞지 않았다.
비록 그녀가 많이 마시지 않도록 두 남자가 손을 써서 생각보다 먹은 건 없지만.
그것에 무지한 다예는 이내 방으로 들어갔다.
"3년간 많은 일이 있었네."
어떻게 친해졌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 셋의 관계.
당연하다는 듯이 이어져온 인연.
그런데 그게 오늘부로 달라지려고 하는 게, 다예의 마음을 건드렸다.
'모르는 척해야 하나? 아니면- 어떡하지? 대체 언제부터 나를? 왜 날?'
보고 있던 사진들을 내려놓고, 침대에 올라온 그녀는 인형을 잡았다.
같이 갔던 오락실에서 오기로 뽑은 몬스터 인형.
푹신함이 밀려오자 그들에 대한 생각이 점차 멀어졌다.
다음날 아침.
"헐. 언제 잠들었지?"
시간을 확인한 그녀가 놀라서 일어났다.
찌푸둥한 어깨를 풀자 곧 전화가 울렸다.
"해장? 어- 갈게."
고민한 그녀가 가볍게 세수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앞에는 둘 다 도착해 있었다.
아직 추운데도 코트를 입고 나온 둘.
뭔가 어제만큼 꾸민 듯한 모습을 보자 다예는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아무 겉옷이나 입고 나온 데다 감지 않은 머리는 모자로 누른 자신.
"큼. 밥 먹으러 가는데, 왜 다들-"
괜한 뻘쭘함에 말을 얹던 다예는 잊고 있던 어제의 기억이 되살아나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따라오지 않는 자신이 이상했는지, 동시에 뒤돌아보는 남자들.
'아. 설마 나한테 잘 보이려고?'
괜스레 부끄러워진 그녀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다예의 행동을 지켜보던 둘 중 먼저 움직인 것은 유성이었다.
유성의 손에 팔이 잡히자 고개를 든 다예가 놀란 눈으로 앞을 바라봤다.
"왜, 왜?"
"너-"
"밥, 배고픈데 빨리 가자."
그의 말을 끊고 팔까지 떼어낸 그녀는 빠르게 성호에게 다가갔다.
성호까지 지나쳐 먼저 식당으로 향하는 그녀.
"안녕하세요!"
평소보다 더 큰 소리로 인사한 그녀가 뒤늦게 아차 했지만.
짐짓 의연한 얼굴로 자리를 잡았다.
몇 분 후.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왠지 모르게 흐르는 어색한 공기를 애써 무시한 다예는 바로 수저를 들었다.
"읏, 뜨뜨-"
"정말 배고팠나 보네."
유성이 혀를 데인 다예에게 물컵을 건넸다.
그걸로 뜨거운 입안을 식힌 다예는 일그러진 미소로 화답했다.
"맞아. 배고팠어."
그 말이 사실이라는 듯, 후후 불고는 빠르게 입안에 넣는 다예.
그것을 지켜보던 유성도 한 번 더 물을 따라주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한창 식사 도중.
정적이 흐르는 테이블 위로, 한참 조용했던 성호가 입을 열었다.
"어제 들었지?"
"컥,컥. 뭘? 뭘 들어야 하지? 수저?"
"우리가 너 좋아하는 거."
타앙.
성호의 무덤덤한 말에 들고 있던 수저가 그대로 떨어졌다.
그것을 주우려고 움직인 것은 유성이었고, 다예는 반 정도 비운 그릇만을 응시했다.
"자리를 좀 옮길까?"
잠시 후, 말문을 연 다예의 제안에 셋은 카페에 도착했다.
아까보다 더 무거운 공기가 그들 사이를 둘렀고.
다예는 칼칼한 목을 에이드로 적셨다.
"이건 말도 안 돼-!"
"그게 그렇게 충격적이야?"
"솔직히 이제야 안 것도 뭐-"
"대체 언제부터?"
"네가 우리를 신호등 트리오로 정했을 때부터?"
유성의 장난스런 대답에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다예의 어깨가 떨렸다.
신호등 트리오.
1학년 때, 반장과 부반장 그리고 서기를 맡은 세 사람을 두고 자신이 붙인 별명.
"잠만. 그걸 알고 있었다고? 나 혼자 재미로 불렀던 건데."
"네가 구석에서 웃고 있길래 뭘 하나 보다가 알았지."
"그리고 그게 애들 이름을 외우다가 만든 거였잖아."
출석부를 통해 반 친구들의 이름을 살피던 학기 초.
'반장은 신유성이고, 부반장은 유성호. 신유성호, 신호- 오? 나는 백이니까- 오? 신호등이 되네?'
억지인 건 알았지만, 그냥 이것저것 연상하던 때.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간 함께 지내온 녀석들이었다니.
"허허, 난 둘이-"
"네가 오해하는 것도 어찌 보면 우리 업보지."
"서로 견제한다고 붙어있었으니까."
다예에게서 항상 받아오던 시선을 아는 둘이 그간의 고충을 토로했다.
둘의 마음을 전해 들은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역시.
"-친구로만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긴 해. 너희가 싫은 건 아닌데,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그녀가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자 둘은 곧 눈빛을 교환했다.
나름 짜둔 플랜은,
"그러면 일단 한 명씩 만나보는 건 어때?"
"항상 셋이 있었으니까 모르는 걸 수도 있잖아."
"돌아가면서 데이트해보고 그때 결정해도 돼."
"둘 다 아닌 것보다 둘 중 한 명이라도 되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함께 한 시간이 긴 만큼 서로를 인정하게 된 둘.
그들의 생각을 존중한 다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구부터?"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지, 뭐."
"그래."
두 사람은 다예의 앞에서 가위바위보를 진행했고.
그 결과, 성호부터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며칠 후, 약속 날.
"어땠어?"
기대하는 눈빛이 두 개나 되니, 다예는 여전히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정말 즐거웠던 두 데이트.
하나는, 영화관에서.
다른 하나는, 수족관에서.
자신의 취향을 아는 두 사람이 준비한 만남은 모두 훌륭했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죽는대.'
자신이 스포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던 성호도.
'물 너머의 세계, 보는 거 좋아하잖아.'
들어가는 건 무서워도 관람은 좋아하는 걸 알고 있던 유성도.
'으아. 이대로 도망치면 실망하겠지?'
애써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킨 다예는 곧은 손가락을 뻗었다.
그녀가 가리킨 것은, 그들의 중앙.
"이렇게가 어울리지 않아? 백신커플도, 백호커플도 좋지만 역시 신호등 트리오지!"
그녀의 외침에 긴장한 둘이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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