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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상의 세계수
2023_이야챌린지_101
by
이야
Dec 24. 2023
임시 표지
"시간이 벌써- 아, 큰일 났다. 빨리 자야지."
그제야 폰을 놓은 풀잎은 빠르게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잠깐만 보려고 했는데, 2시간이 훌쩍 지난 시각.
자정에서야 잠에 든 그녀는 알림이 울릴 때까지 고른 숨을 내쉬었다.
띠리리-
알림이 두어 번 반복되자 잔뜩 부운 눈으로 폰을 찾았다.
6시 35분.
비로소 몸을 꺼낸 그녀는 화장실로 직행했다.
금방 출근 준비를 마치고는, 에어팟을 끼고 밖으로 나온 풀잎.
"노래 좋네-"
며칠 전부터 그녀의 건조했던 저녁을 활기 있게 해준 그룹.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어 멀리했지만, 어느샌가 훌쩍 빠져버린 그녀였다.
버추얼 아이돌로 활동하고 있는 레플리카의 노래를 연속으로 들으며 버스를 기다리는 그녀의 고개가 까닥거렸다.
끼이익.
버스가 멈춰 서고 올라탄 그녀는 익숙하게 자리에 앉았다.
창가를 바라보며 여전히 흘러나오는 노래를 감상하는 그녀.
평소보다 더 밝은 시작이었다.
몇 시간 후, 회사.
"연말이라 정신이 없네-"
비품실에서 나온 풀잎은 떨어진 물건을 채워 넣으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들어온 프로젝트와 맞물려 해야 할 것이 늘어난 연말 시즌.
바쁘게 하루를 보낸 그녀는 지친 마음을 달래려 레플리카의 영상을 찾아봤다.
"언제 다 보나 했는데, 왜 이것밖에 없어-"
빨리 새로운 영상이 올라오길 바라며 이미 본 것도 돌려보던 중.
라이브 알림이 울렸다.
크리스마스의 선물로, 깜짝 라이브였다.
"헐. 대박. 야근한 거에 대한 보상인가?"
바로 라이브 영상에 들어와 시청하는 그녀의 시선이 멤버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완전체 5인방의 방송.
피곤했던 눈에 절로 불이 켜졌다.
집으로 가는 길이 설레는 시간.
"보다가 지나칠 뻔했네."
뒤늦게 벨을 누르고 내린 그녀가 다시 폰을 들며 영상에 집중했다.
유난히 더 재밌는 방송.
항상 그랬다.
갈수록 더 즐겁고 기쁜 마음을 들게 하는 매력적인 아이돌.
'와. 지금까지 살아있길 잘했어.'
신호등을 건너는 걸음이 당찼다.
찬 바람에 손이 빨개졌지만, 내려놓지 않은 그녀는 걸음을 재촉해 빨리 집에 들어갔다.
"오늘 방송도 진짜 알찼다. 게다가 내년에는 콘서트라니?"
이번에 전한 소식을 머릿속에 새긴 그녀는 들뜬 눈으로 일정을 정리했다.
한 해가 벌써 끝났다는 게 아쉬울 법도 한데, 내년에 있을 좋은 소식 때문일까.
새해가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비로소 폰에서 눈을 뗀 그녀는 잊고 있던 집안을 둘러봤다.
"맞다. 쓰레기봉투랑 필요한 거 사 온다면서 그냥 들어왔네."
풀잎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들고, 복도에 있던 장바구니를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휘이잉-
아까보다 훨씬 추운 겨울밤.
"으. 빨리 사갖고 들어와야지."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달려나간 그녀는 어두운 하늘 아래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불빛을 돌아봤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건 알았지만, 멈출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최근에 신호등 바닥을 새로 덮은 것이 떠올랐다.
'에이, 그래도 차량 신호등은 보일 거 아냐.'
그리고 그녀의 생각대로 코앞에서 운전을 멈춘 트럭.
원래도 여기가 좀 위험한 도로이긴 했다.
가령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더 빨리 지나가는 차량을 두 번 정도 본 적이 있었으니.
운전수에게 따질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추운데 그냥 빨리 지나가기로 결정한 그 순간.
끼릭.
멈춘 줄 알았던 트럭이 그대로 미끄러졌다.
'어?'
자신이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린 속도가 아니었다.
놀라서 발이 굳기도 했던 그녀는 익숙한 실루엣을 보았다.
도영준.
중학교 동창.
운전자를 알아본 풀잎의 몸은 이미 공중에 올라가있었고.
엄청난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의식이 빠르게 날아갔다.
그리고 그녀가 정신을 놓았을 무렵.
평소처럼 차에서 내린 영준은, 사라진 자리를 착잡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는 사람은 처음인데-'
귓가에서 들리는 시스템 알림을 무시한 그는 한참을 서성였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진 풀잎을 위한 묵념이었다.
한편, 서서히 의식이 돌아온 풀잎은 꿈쩍도 않는 몸을 느꼈다.
'아. 교통사고 당하고, 못 움직이게 된 건가?'
자신의 처지가 떠오른 그녀의 몸이 여리게 떨렸다.
불어오는 바람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낀 그녀는 벌써 봄이 됐다는 사실에 놀랐다.
'3개월 동안 누워있었던 거야?'
못해도 그 정도는 됐을 거란 생각이 드는 날씨.
그런데 아무리 봄이라도 창문을 열어둔 건-
'뭐야? 밖이잖아. 병실이 아닌가?'
차츰 자신의 형태가 그려지는 풀잎은 세차게 몸을 흔들었지만 소용없었다.
자신은 바닥에 완전히 뿌리박힌 나무였으니 말이다.
트럭에 치여 이세계로 환생하는 판타지는 익숙했다.
그리고 환생이 꼭 사람이 아닌 유형도 많았다.
'나무라니? 내가 나무라니!'
한참 당황하고 있을 그녀의 앞으로, 누군가 찾아왔다.
꿀꺽.
긴장한 그녀가 상대를 확인했다.
어떻게든 움직이고 싶었지만, 그저 가지 끝에 돋아난 잎이 봄바람에 흔들릴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날씨가 좋네요!"
대뜸 나무, 아니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상대는 너무나도 잘 아는 이였다.
하민오.
레플리카의 막내.
"형들도 곧 인사를 올 거예요."
사락.
바람을 만끽하는 나무, 세계수를 관리하는 민오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윽고 그의 말처럼 레플리카의 다른 멤버들이 모습을 보였다.
첫째인 노아신부터 예준성, 봉구원, 은호연까지.
그들을 보자 없는 심장도 술렁였지만 풀잎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들의 손길에 자신을 맡기는 것뿐이었다.
'잠만. 그럼 내가 레플리카와 지구를 잇는 세계수, 리프가 된 거야?'
레플리카의 세계관을 떠올린 그녀는 순식간에 상황을 이해했다.
리프가 자리 잡은 곳에는 영험한 힘이 있어 거리가 먼 지구와도 소통이 가능했다.
우연히 그것을 발견한 준성은 친구들과 함께 리프의 관리자가 되었고, 지구의 아이돌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리프님 덕분에 저희가 카피들을 만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카피.
레플리카의 팬덤명.
자신도 분명한 카피였다.
'그러고 보니까 영상으로 지켜보다가 이렇게 코앞에서 볼 수 있는 거면- 좋은 거네?'
직관하게 된 자신의 상황이 오히려 좋다고 느낀 풀잎, 리프는 그냥 즐기기로 했다.
레플리카를 흐뭇하게 바라본 그녀는 따스한 바람에 일렁였다.
유난히 건강해 보이는 세계수의 모습에 멤버들의 미소도 한층 더 밝아졌다.
리프의 영향 아래 있는 리프네에서 평화로운 나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번에 준비한 앨범은-"
호연이 다가와 만든 곡에 대해 설명했다.
더 격렬히 반응하고 싶지만, 나무는 쉽지 않았다.
최애인 그를 뜨거운 눈길로 보고 있는 리프였지만,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여기 인간 있어요.'
이 특수한 동거를 뭐라고 해야 하나.
리프는 호연의 곡에 맞춰 춤을 짜고 있는 구원을 보다가 놀고 있는 준성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도 자신이 360도, 어디든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하긴.
나무에도 앞뒤가 있었을까.
"지구에는 재밌는 게임이 많네."
레플리카의 일상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제약은 확실히 버거웠다.
그나마 아신이 운동한다고 자신을 여기저기 옮겨주기는 하지만.
'내가 직접 움직이고 싶은데. 쩝. 욕심이겠지.'
그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오늘도 지구의 카피들과 소통하는 멤버들을 보는 세계수는 남모를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수가 기뻐할수록 연결된 두 세상, 지구와 카탄은 천천히 정화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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