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야파티

계속하여 언제나

2023_이야챌린지_999

by 이야
임시 표지

킁킁.

단잠에서 깨어난 레드 드래곤이 코를 씰룩였다.

피향이 도는 동굴.

잠시 한쪽 눈을 떴지만, 다시 감았다.

이곳에 오기까지는 수많은 함정들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걸 보니, 겁도 없이 들어온 무능한 자일 게 뻔했다.

살짝 자세를 고치고는 쩌억 하품을 쉰 그녀는 바로 잠에 들었다.

드래곤이 한창 고른 숨을 내쉴 무렵.

지척에 도착한 주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명 때문에 가만히 있는 드래곤을 공격해야 한다고?'


들어올 때처럼 여전히 내키지 않는 주이.

그녀는 조심스레 드래곤의 곁을 돌았다.

아직 흐르는 피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상대.

들고 온 검으로 끝내기만 하면 됐다.


'여기겠네. 가장 약한 부분.'


해치고 싶지 않았음에도 본능적으로 찾은 역린.

그곳을 긋기만 하면 결판날 일이었다.

하지만 주이의 손에는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푸르르.

드래곤이 소리를 내자 주이가 곧장 돌아봤지만.

한참 꿈나라에 빠진 채였다.

허무하게 시선을 거둔 그녀는 고개를 돌리다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건- 유물 사전에 나오던 거, 아닌가?"


물건이 있는 쪽으로 이동한 주이가 예리한 눈으로 깊게 살펴봤다.

자신이 아는 한, 같은 물건이 맞았다.

힐긋.

드래곤을 살피고는 거리낌 없이 물건을 잡은 그녀.

허리를 숙인 주이의 몸이 이내 빛으로 둘러싸였다.


'역시. 이거라면- 어쩌면 저들에 대해 알릴 수 있을지도 몰라.'


절로 힘이 들어가는 손.

하지만 그녀의 눈이 곧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 말을 믿어줄까?"


가깝게 지냈던 원로도 한패라고 했는데.

그들의 이간질일 수도 있지만.

대체 누구에게 가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역사서에 전혀 언급된 적 없던 이들의 존재를-


'믿어줄 리가 없는데. 어떡하지?'


고민에 빠진 그녀를 재촉하듯 더욱 강한 빛이 일렁였다.

그리고 영문을 알 수 없는 빛과 들리는 말소리에 드래곤이 몸을 뒤척였다.

감겼던 눈이 떠지자 주이는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넌 뭐야? 큭. 피 냄새의 범인이 너였구나?"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그리고-"


드래곤의 큰 발이 미처 다 내려오기도 전에, 물건이 끼릭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뒤늦게 그것을 확인한 리네의 눈이 커졌다.


"이, 이- 감히 공간 왜곡 장치를!"


침입자의 방자함에 열을 올린 드래곤이었지만.

이미 장치는 사용된 후였다.

생각했던 대로 동굴 전체를 울리는 반응에 주이가 더욱 쓰게 웃었다.


'드래곤하고 같이 나타낼 테니 신빙성은 있을 거야. 판단은-'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그래도 결심한 눈이 비장하게 빛났고.

자연스럽게 드래곤의 등에 오른 주이는,


"뭐야? 내려와!"


발버둥 치는 드래곤을 진정시켰다.


"커억- 뭘 꽂아 넣은-"


칼에 역린 근방을 내어준 리네는 당황한 한편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필멸자의 힘이 이 정도였나.

그동안 동굴에만 있어서 세상 돌아가는 걸 몰랐던 걸까.

지상 최강의 동물인 자신에게 펼쳐진 일을 쉬이 믿지 못하는 그녀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움푹.

동굴의 한쪽은 끝내 장치에 의해 홀연히 사라져있었다.


"끄아. 갑자기 웬 공중이야!"


순식간에 시야가 바뀐 리네는 급하게 날개를 제어했다.

하늘을 나는 드래곤에 겁먹을 만도 한데, 주이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저기 건물이야. 저쪽으로 가."

"누구한테 명령!"

"듣기 싫어?"


찌릿.

칼날이 좀 더 역린을 건드리자 리네의 방향은 확실해졌다.

빠르게 공중을 가르는 그녀는 곧 도심의 높은 건물에 도달했다.

리네가 멈추자, 등에서 내려온 주이는 옥상에 있었다.

주이가 드래곤을 올려보내려 손짓했지만, 리네는 낯선 형태에 호기심을 느꼈다.

목숨이 위협받는 순간에도 올라오는 궁금증을 떨치지 못한 그녀는 곧 폴리모프로 모습을 바꿨다.


"너 대체 누구야?"


붉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여인이 못마땅한 눈으로 따졌다.

드래곤의 변한 모습에 살짝 놀란 주이가 허리를 숙였다.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사정이 있었지만. 저도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느닷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산책하는 도중, 평소 따라오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낸 오늘.

출생의 비밀과 맞먹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이도 정신을 차리기 쉽지 않았다.

주춤.

솔직하게 사과해오는 상대에게서 한 발짝 물러선 리네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그래도 다시 치켜뜬 눈으로 떨어진 검을 노려볼 때.

끼이익.

옥상의 문이 열렸다.


"내가 잘못 본 건가 했는데-"


차박차박.

그들에게 다가오는 이는, 주이가 익히 아는 이었다.


"아."

"공주이였던가?"

"원리우- 여기서 일하는구나."

"어쩌다 보니. 그보다 저건-"


저거라 가리켜진 리네가 눈썹을 까닥였다.


"난 리네야. 그래서 남의 동굴에 쳐들어와서 납치한 연유가 뭐야?"

"동굴? 납치?"

"말하자면 긴데. 혹시 내가 선우진을 만날 수 있을까?"

"지금은 자리를 비웠는데. 내가 대리자니까 나에게 말해."


리우의 말에 고민에 빠진 그녀의 결정은 빨랐다.

채근하는 리네를 진정시키고, 사무실에 온 주이는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말을 마친 그녀의 시선이 소파 아래 기절해있는 리네에게 닿았다.


"그들이 그랬어. 드래곤을 죽이면 수명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고."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네."


확실한 다이아 트럼프.

리우의 눈빛을 읽은 주이는 쓴웃음을 삼켰다.

곧 그가 누군가를 호출했다.

잠시 후.

부름을 받은 이가 찾아왔다.

똑똑.


"들어와."


방문을 연 상대는 주이에게도 낯익은 자였다.

하트 트럼프.

원리우만큼이나 재능으로 유명했던 아이.

반모나.


"그러니까 이게 드래곤이고, 이걸로 우리가 정해진 수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간단하게 설명을 들은 모나의 눈빛이 반짝였다.

항상 연구에 메말라있었던 그녀.

새로운 연구 재료를 보자 들뜨기 시작했다.


"방법이 죽여서라고 했지? 꼭 그게 아닐 수도 있겠어. 상관관계를 밝혀내면, 이거 꽤나 재밌는 연구가 되겠어."


움찔.

잠에서 깨어난 리네는 살짝 돌아간 눈을 보자 어깨가 떨렸다.

그러고는 퍼뜩 정신을 차렸지만, 한 번 새겨진 공포는 떨쳐낼 수 없는 무언가였다.


"드래곤과 트럼프라."

"그것뿐만 아니지. 나이트 트럼프. 그 존재에 대해도 조사해야 해."

"그건 내가 아는 조커 트럼프에게 맡길게. 추적을 좀 잘하거든."

"조커-"


모나의 말에 반응한 것은 주이였다.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재밌어 보인다고 합류한 조커의 얼굴이 떠올랐다.


"걱정 마. 후이는 믿을만한 조커니까."

"한동안 바빠지겠군. 트럼프 세계에서 위장된 나이트를 찾아내려면."


본인이 알든, 모르든.

위협이 되는 존재를 두고만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생각을 멈춘 리우는 주이에게 안전한 장소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나의 손에 이끌려가는 리네를 따랐다.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셋이 나가자 홀로 남은 리우는 멈췄던 생각을 이었다.


'어쩌면 어머니도 이쪽과 연관된 게 아닐까?'


그의 합리적 의심은 잊고 싶은, 하지만 절대 잊지 못할 과거에 머물렀다.

살짝 그을린 왼쪽 손목이 뜨겁게 타올랐다.

남은 자국은 여전했다.


"배후가 나이트 트럼프가 맞다면-"


인간의 역사와는 달리 전쟁의 역사가 전무한 트럼프에게도.

어쩌면 첫 전쟁이 시작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혹은 이미 깊숙이 파고든 나이트 트럼프가,


'어디까지 뻗었는지 곧 알게 되겠지. 역시 원로는 믿을 게 못돼.'


사건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던 원로들을 떠올린 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한편 뒤늦게 상황을 전달받은 선우진의 금빛 눈동자에도 이채가 어렸다.


"지금껏 나이트만 누렸다 이건가."


모든 부의 중심, 다이아 트럼프로서 참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컵에 들린 얼음이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일수를 가렸다.

연구의 속도가 빠르면, 혹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더라도.


'죽이는 거야 어렵진 않겠지.'


수많은 스페이드 트럼프를 용병으로 고용한 그로서는, 죽음에서 벗어난다는 게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평화적으로 이뤄내길 바라며 최대한 시일을 줄 그였지만.

100 아래로 떨어진 숫자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트럼프가 공감할 통감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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