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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야파티

나 혼자만 고래별

2024_이야챌린지_000

by 이야
임시 표지

"그러니까 여기가 정말…"


웬디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방금 전 들은 소식은 제게 청천벽력이었다.

도대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어디서 잘못됐는지, 짐작도 못하는 웬디

그런 조수를 보며 쓰게 웃은 야는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맞아. 이곳은 내가 아는 한 고래별이야."

"흐앙. 죄송해요."


확인사살을 받은 웬디의 작은 손이 야의 바지를 붙잡았다.

어느새 흐른 눈물이 한쪽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잔뜩 위축된 바람쥐의 모습에 곤란한 표정을 지은 야가 팔을 들었다.

토닥토닥.

쓰다듬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제게 화낼 법도 한데, 오히려 안아주는 것에 더욱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몇 분 후.

간신히 진정한 웬디가 여전히 그렁그렁한 눈으로 야를 올려다보았다.


"출발하기 전에 확인해 보지 않은 내 잘못이야."

"그렇지 않은걸요! 제가 제 할 일을 제대로 못한 걸 거예요."

"그러면 비긴 걸로 할까? 우리가 타고 온 포탈은 지구별로 가는 거라 생각했는데, 왜 여기로 왔는지는 모르지만 고래별에도 좋은 스토리가 있을 거야."


조수가 우는 동안 생각을 정리한 야는 허심탄회한 얼굴로 익숙한 장소를 둘러봤다.

한편 아직 야에게 딱 붙어있던 웬디의 눈은 감동으로 물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레사님이 남기신 궁극의 스토리는-"

"포기한 건 아니야. 아마 쉽게 찾을 수 없겠지. 우리가 지구별로 건너갈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긴 했지만, 그동안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정말 좋겠지만…"


야는 뜸 들이는 웬디의 뒷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것은 타는 것도 모를 행복회로였다.


"솔직히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런데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드네."

"네?"

"어쩌다 보니 남들은 다 지구별로 갔는데, 우리만 고래별로 왔잖아? 그렇다는 건, 우리가 이 별의 스토리를 독점할 수 있다는 거잖아."


눈을 빛내며 돌아보는 상사의 시선에, 웬디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자신의 이야님이 최고였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좋은 것을 발견하는 야에게 빠져든 웬디가 그제야 눈물을 거둘 수 있었다.


"제가 아주 많이 찾아드릴게요!"

"그래. 우린 질보단 양으로 승부해 보자!"


잔뜩 기합을 넣은 둘은 주변부를 더 살펴보기로 했다.

그리고 곧 웬디의 약속은 이뤄졌다.


"저기 나무가 있어요!"


한 그루의 나무를 발견한 웬디가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바람쥐의 열정에 미소를 지은 야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엇. 이건- 그."


하지만 먼저 열매를 마주한 웬디의 얼굴에 안개가 끼었다.

안색이 좋지 못한 웬디를 바라보다 시선을 올린 야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라던 스토리 대신 다른 게 열린 나무.


"흐아. 찾은 줄 알았는데, 사과네요."

"사과. 그렇지. 웬디야, 고래별에서는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아니?"

"어, 음. 저번에 고래별 수업에서 들었는데, 뭐였더라…"


웬디가 생각하려 애썼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답이 없었다.

별들의 수업 중에 유독 대충 들은 고래별 이야기가 그리운 순간이었다.


"제가 지구별만 주목했나 봐요."

"하하. 나랑 같이 안 들었다고 대충 들었던 거야?"


고래별 출신인 야가 장난스레 묻자, 웬디의 볼이 달아올랐다.

실제로 그랬기 때문에 빨개진 웬디가 말을 더듬었다.


"이거 나중에 내가 다시 가르쳐야겠는걸? 그래도 내가 고래별 출신인데~"

"으앗. 죄송해요. 열심히 배울게요."

"뭐, 어차피 우린 지금 고래별에 있으니까 직접 체험하며 배우는 게 낫겠네!"


말을 마친 야가 발끝을 살짝 들었다.

이윽고 뻗은 팔로 사과를 따낸 그녀가 웬디에게 선물했다.


"우리는 이걸 고백이라 불러. 그래서 이 나무는 고백나무지."

"아, 맞아요! 이제 기억났어요!"


뒤늦게 외쳤지만, 야는 그저 고백을 내밀 뿐이었다.

조심스레 품에 안은 웬디가 황홀한 눈빛을 보냈다.


"탐스러워 보여요."

"그러게. 딱 제철에 왔네. 흠. 그럼 이제 털어놔야겠는걸."

"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웬디의 고개가 올라갔다.

그녀의 놀란 눈을 본 야는 찡긋 코를 접었다.


"실은 며칠 전에 포탈 관련해서 공문이 왔거든. 그런데 내가 잉크를 쏟아서 내용을 못 봤지 뭐야. 딱히 중요 공문 표시가 없어서 그냥 흘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아무래도 포탈 변경 공지였던 것 같아."


갑작스럽게 이어진 상사의 고백에 웬디의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 반응을 살핀 야가 목덜미를 긁적이며 다가섰다.


"고래별에선 10월 10일이 고백의 날이거든. 오늘이 10일인지는 몰라도, 10월인 것 같긴 해. 이날은 고백을 나눠 먹으면서 속마음, 잘못, 약점 등을 털어놓아도 그걸로 책잡지 않고 받아들이는 날이야."

"그,그런 날이 다 있어요?"

"응. 특히 고래별에서 믿는 유독교에서는, 서로 개인 교리를 공개하는 날이기도 해."

"아. 유독교는 알아요! 고래별의 통합 종교잖아요!"


아는 단어가 나오자 웬디의 귀가 크게 움직였다.


"여기서는 종교를 다른 말로 부르긴 하지만. 아무튼 맞아. 유독교의 중심 교리 중 하나가 '믿음에 자유를 보장한다'라서 무교도 여기에 결국 포함되니까 말이야."

"와. 확실히 지구별하고는 뭔가 차이가 있네요."

"그렇지? 내 고향 행성이긴 하지만, 솔직히 지구별보다는 이곳이 훨씬 좋은 땅이지."


한껏 올린 어깨에 웬디도 고개를 끄덕였다.

태생이 페리도트 출신인 그녀는 어느 별이 좋든 상관이 없었다.

반면 야는 자신의 별이 자랑스러웠다.


"스토리우먼 비율은 지구별이 월등히 많아도, 결국 엘리트들은 꽤나 고래별 출신이니까 말이야."

"맞아요! 레사님도 고래별 출신이잖아요?"

"아. 그건 아니야. 고래별에 있었던 건 맞지만, 출신 자체는 지구별이니까. 뭐, 그래도 레사님도 결국 고래별에서 수행했기 때문에 빅토리우먼이 된 게 아닐까?"


잘못 알고 있던 정보를 바로잡은 웬디가 야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고는 사과, 아니 고백을 웬디에게 넘겼다.


"맞아요! 그러니 다음 엘리트는 이야님이 될 거예요!"

"그게 속마음이야? 정말 고마운걸. 내가 조수를 잘 두긴 했네!"

"헤헤. 별거 아닌걸요."


투명하게 내비치는 웬디의 마음이 진심으로 고마운 야였다.

고백을 든 야가 맛있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웬디의 침샘도 절로 반응했다.

곧바로 새 고백을 따준 야에게 감사를 표한 그녀는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정말 달콤해요!"

"응~ 우리가 찾는 스토리도 이런 맛이 나면 좋겠네!"

"저만 믿으세요! 이야님에게 어울리는 최고의 바람쥐가 될게요!"


믿음직한 웬디의 등이 든든했다.

비록 아주 작은 크기일지라도.

야는 웬디와 함께 남은 고백을 먹었다.


"고백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더 없나요?"

"많지~ 뭐부터 얘기해 줄지 고민인걸?"

"다 들을래요!"


의욕을 불태우는 열혈 수강생이 반가웠다.

야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음. 일단 고백나무에 사는 진주 얘기부터 해줄까?"

"진주? 바닷속에 있는 조개의 알을 말하는 건가요?"

"알이라기보단 덩어리지만. 맞아. 그거야."

"그게 어떻게 나무에 살아요?"

"그건 바로-"


궁금증에 눈을 반짝이는 웬디를 보자 말을 끊은 야.

그에 웬디의 귀가 펄럭였다.

그녀의 재촉에 웃음기를 거둔 야가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고백나무에 반한 수달여왕이 선물했기 때문이야."

"진짜요?"

"좋아하는 거, 두 가지를 한 번에 먹으려던 여왕은 진주를 고백나무에게 줬지만.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었어. 진주의 속마음을 들은 고백나무가 숨을 나눠줬기 때문에, 진주는 진짜로 생명이 되어 고백나무에 안착했지."

"오, 그러면 이 나무도 진짜 살아있는 건가요?"

"나무는 원래 살아있어. 아무튼 진주도 나무와 하나 되어 생명을 얻었지. 그리고 여왕을 물리치는 데 성공하지."

"어떻게요?"


웬디의 질문에 야는 행동으로 보였다.

야의 손에서 나무가 흔들리자 수많은 고백들이 주변을 채웠다.


"아. 이걸 받고 떠났군요!"

"아니. 고백나무와 하나된 진주의 춤에 반해서 존경을 표하며 놓아준 거지!"

"예?"

"이건 내가 직접 흔들었지만, 진주가 있는 고백나무는 혼자 춤을 출 수 있어. 그러니까 다음에 또 발견하면 한 번 지켜봐!"


야의 설명을 들은 웬디가 찝찝한 눈으로 나무를 쳐다봤다.

하지만 곧 웃음을 머금은 야를 발견한 그녀는 볼에 잔뜩 공기를 넣었다.


"차라리 여기에 포탈이 생기는 게 더 믿음직하겠어요!"

"에이~ 거짓말한 거 아니야. 그리고 포탈은 이미 저기 있는걸."

"엇. 흠. 다음 장소에 도착하면 또 얘기해 주세요!"

"알았어~ 자, 손."


곧 어지러울 것을 예상한 웬디가 눈을 꼬옥 감았다.

반면 야의 시선은 아직 바깥에 머물렀다.

예상 못 한 채로 다시 만난 별이 반가운 날이었다.

홀로 고백을 떨구는 저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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