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야파티

한 떡국 하실래요?

2024_이야챌린지_001

by 이야
임시 표지

후루룩.

창 너머로 비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절로 침이 고였다.

아직 찬 기운이 사라지지 않은 신년 아침.

누나의 등쌀에 떠밀려 나온다고 투덜대는 것도 잊고, 며칠 못 먹은 사람마냥 응시했다.

쫘악.


"남 먹는 걸 왜 훔쳐봐!"

"악! 안 훔쳐봤거든? 대놓고 봤지!"


퍽퍽.

돌아오는 말대답에 추가로 얻어맞은 제성은 연신 엄살을 피웠다.

그런 동생을 한심스럽게 바라본 자윤이 낮게 혀를 찼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부모님만 데려올걸."

"아, 내가 뭘 어쨌다고? 어제 야식도 못 먹게 했으면서, 지금 배고픈 게 당연하지!"

"허? 오랜만에 집에 왔다고 저녁을 배 터지게 먹어놓고 뭔 야식 타령이야!"

"그건 그거고. 사람이 어? 하루 6끼 좀 먹고살겠다는데 왜 말려?"


당당한 동생의 외침에 눈살을 구긴 자윤이 말을 잃었다.

당장 대답이 없자 의기양양한 제성의 등을 이번에는 보윤이 때렸다.


"악, 엄마는 또 왜?"

"누나한테 말 예쁘게 안 해? 그리고 운동하겠다고 러닝머신도 샀으면서 뭔 밥을 그렇게 먹어?"


엄마의 말에 잔뜩 억울해진 제성과 달리, 이번에는 자윤의 입가가 올라갔다.


"아. 그건 층간 소음 때문에 넘기지가 언젠데."

"또 쓸데없는 데 돈 썼지!"

"그게 알고 봤더니 불량이었다고 했잖아. 그보다 추운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꼬투리를 잡힌 제성은 난감한 기색을 표하다 황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그리고 의외로 먹혀든 그 전환의 화살은 자윤에게로 꽂혔다.


"그래. 엄마도 이제 좀 출출하다."

"월야가 좀 유명해? 지금도 우리가 서둘러서 이 줄이었지, 좀만 늦었으면 근방에서는 못 먹어요."

"그냥 아빠가 해주는 떡국, 먹지. 뭣하러 나왔어?"

"…"


불퉁한 얼굴로 고수하던 정혁이 한 마디 내뱉자 모두 약속한 양 침묵을 지켰다.

정년이 되자 요리에 취미를 붙인 그였지만.

먹성이 좋은 제성조차도 혀를 내두르는 실력이었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가족 사이, 입을 연 것은 그들을 데려온 자윤이었다.


"이번에 놓치면 또 1년 기다려야 해요. 새해라고 1일부터 나흘만 파는 거라구요."

"그래. 엄마도 들어보니까 유명하더라고."

"아, 떡국이 다 그게 그거지."

"아부지가 끓인 것보다는-"


자연스레 말을 잇던 제성이 사나운 눈초리에 놀라 입을 다물었다.

가족 간의 관계가 위태로워질 무렵.

그들의 순서가 다가왔다.


"후. 안에는 따뜻하네."


자리를 잡은 자윤은 코트를 벗으며 온기를 만끽했다.

가족에게 제안한 책임 때문에 말은 못 했지만, 그녀도 밖에서 꽤나 추운 상태였다.

식당 내부를 둘러본 그녀는 곧 동생의 발을 건드렸다.


"뭐."

"뭐? 가서 물 떠와. 셀프잖아."

"…"

"안 가?"

"간다, 가."


구시렁대며 떠나는 제성을 흘깃 쳐다본 자윤이 여전히 뚱한 아빠를 바라봤다.

냄새부터가 맛있는데, 자신의 요리와 비교하며 큰 차이도 없을 거라 중얼거리는 모습에 조용히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듣던 보윤도 질색 어린 얼굴로, 남편을 돌아봤다.


"그만해요. 주방 출입 금지 당하고 싶지 않으면."

"큼. 알았어."

"분명 기대 이상일 거예요."

"당연하겠지. 지금 기대가 없는데."


아내한테는 바로 꼬리를 말았지만, 딸에게는 차가운 아버지였다.

그런 태도에도 자윤은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그런데 주문은 안 해?"

"사람 말 좀 들어라. 메뉴가 하나라서 어차피 그냥 인원만큼 준다고."

"아, 나는 다섯 그릇은 먹어야 하는데."

"한정 수량에 욕심내지 마시지. 아빠, 제성이가 집 가서 아빠 떡국 네 그릇 먹는대요."


딸의 부름에 고개를 든 정혁이 뒷말에 표정을 풀었다.

오늘 외출하고는 처음으로 보는 밝은 얼굴이었다.

반면 제성은 당황한 손짓을 보였다.


"내가 언제? 아부지, 저 그렇게 많이 못 먹어요."

"내 새해 소원이 내가 차린 음식, 잘 먹어주는 거였는데."


자신의 먹성을 아는 아버지가 처연한 목소리를 내자 동공이 흔들린 제성은 엄마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지만.

황 여사도 외면한 채였다.

찌릿.

누나를 노려본 제성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럼 가서 끓여주세요. 집 가기 전에 먹고 갈라니까."

"그래. 맛있게 끓여주마."

"그냥 보통으로라도 해주세요. 그리고 누나는 나중에 두고 보자."


정혁이 모르게 복화술로 뜻을 전한 제성이 눈에 힘을 주고 누나를 봤지만.

자윤은 개의치 않은 얼굴로 엄마와 담소를 나눴다.

몇 분 뒤.

분위기가 좀 나아지자 기다렸던 떡국도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와~ 이건 찍어야지."


폰을 든 자윤이 각도를 찾으며 음식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모습조차 못마땅하게 바라본 제성이었지만, 손길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예쁘게 찍지도 못하면서. 줘 봐."

"오~ 이럴 땐 쓸모 있네~"

"난 언제나 그렇거든?"


퀄리티가 남다른 결과를 가져온 건 제성이었지만, 아쉽게도 칭찬은 자윤의 몫이었다.

이미 한술 큰 뜬 정혁의 눈이 번뜩 뜨였다.


"아빠는 뜨겁지도 않아요?"

"이 정도는 그냥 먹지. 그보다 이거 맛있네."

"제가 뭐랬어요. 그리고 이거 봐요. 그냥 떡이 아니라고요."


수저가 아닌 젓가락으로 그릇을 훑은 자윤이 뿌듯한 얼굴로 내밀었다.


"어? 청색 떡도 있네."

"용이 그려져있네?"


떡국에는 흰떡뿐만 아니라 청색의 떡도 몇 개 섞여있었다.

또한 떡마다 용의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이걸 어떻게 넣었대?"

"못할 게 뭐야~ 어떤 화가는 눈밭에도 용을 그려 넣는데."

"아, 나도 그거 봤어. 친구 아파트에서는 거기 학교 운동장이 보이더라고."

"야, 그런 게 있었으면 말을 했어야지!"

"누나가 내 친구 집을 왜 와?"


남매가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들에게 자랑을 끝낸 보윤도 한 숟가락 떴다.

후루룩.

지단과 함께 넘긴 국물이 일품이었다.


"너희들, 그만 좀 하고 먹어."

"네~"


엄마의 중재에 말싸움을 관둔 둘도 뒤늦게 떡국을 맛보았다.

잠시 후.

가장 먼저 그릇을 비운 정혁이 입을 열었다.


"갑진년이라고 이런 걸 다 했나 보구나."

"맞아요. 이번에는 용떡국이에요. 그리고 올해는 푸른 용의 해라서 청색 떡도 넣었나 봐요."

"아부지, 제 거에 손대지 마십쇼."

"거, 참."


뻘쭘한 정혁의 손을 잡은 것은 자윤이었다.

자윤은 자신의 음식을 아빠에게 넘겼다.


"아이. 딸, 먹지."

"맛있긴 한데, 양이 많아서 어차피 전 남길 것 같아요."

"그래? 그러면 아빠가 먹어야지."

"네. 그리고 그것도 먹을 거예요."

"그거?"


자윤의 말에 가족들이 동시에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웃음으로 받은 자윤의 손이 벨을 눌렀다.


"후후. 이게 끝이 아니라구요."


자신감 넘치는 누나의 표정이 괜스레 불안해지는 제성이었지만.

찰칵.

채 1분도 안 돼서 준비된 음식을 찍는 그의 손은 흥분으로 떨렸다.


"아부지, 건드리지 마세요."

"쩝. 이제 먹어도 되냐?"

"정확히 한 개만 드세요. 한 개만."

"알았다, 알았어. 됐냐?"


디저트로 나온 가래떡을 하나만 가져간 정혁이 입을 삐죽거렸다.

이번에는 나눠줄 수 없는 자윤도 냉큼 하나를 챙겼다.


"여보. 내 것도 먹어요."

"엄마, 나는!"

"제성이, 네가 딱 하나만 가져가라 했잖아."


자신보다 더 먹은 아버지가 부럽다는 듯 쳐다보는 제성이었다.

그런 제성을 자극하는 것은 역시나 자윤.


"아빠가 맛.있.게 떡국 해줄 거야."

"이거 조청이 블루베리로도 있네. 어울리나 한 번 봐야겠다."


빤히 보이는 수였지만, 그냥 넘어간 자윤도 한쪽은 블루베리를 콕 찍었다.

조심히 입에 댄 그녀는 생각보다 괜찮은 맛에 계속 그 잼을 선택했다.

반면 정혁은 한 줄은 조청에 먹고, 나머지 한 줄은 그냥 먹었다.

번갈아 먹는 것은 제성이 유일했다.


"고마워, 딸. 덕분에 새해를 든든하게 시작하네."

"아빠도 요리에 대한 영감이 온다."

"큼. 뭐, 따라오길 잘했네."


제성까지 소감을 말하자 자윤이 화사하게 웃었다.

함께 온 보람이 있었다.


"새해에 떡국 먹는 건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대요. 그러니까 엄마, 아빠 그리고 인제성 너도 올해도 건강하게 한 해 보내요!"

"그래, 우리 자윤이도 건강히 회사 다니자."

"그래야죠. 이렇게 얇게 썬 떡은 돈을 많이 벌라는 뜻도 있다고 하니까 왕창 벌어다 줄게요."

"엄만 큰 거 안 바라."


자리를 정리한 제성의 가족이 덕담을 나누며 밖으로 나왔다.

아까만큼 차갑지 않은 공기가 그들을 반겼다.


"올해에는 대박 나자!"

"엄마, 아빠. 빨리 가요."

"이참에 이름도 황제성으로 바꿀까 봐요."

"너, 매년 그 얘기 했거든?"

"아. 맞다. 누나도 황자윤으로 바꾸면 내 아들이 되지, 참."


동생의 말을 무시한 자윤은 부모님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저만치 멀어진 가족의 모습을 보며 제성은 문자 하나를 남겼다.


-일이 생겨서 갈게요. 아부지, 떡국은 누나가 저녁으로 또 먹고 싶대요.


슬그머니 도망친 그의 계략을 안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 후였다.

하지만 정혁이 음식을 준비할 무렵 빠르게 눈치챈 자윤은 모녀와의 데이트를 핑계로 도망 나왔고.

그리고 떡국을 완성한 정혁은 희생양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자네, 내 떡국 좀 먹을 텐가?"

"가족끼리 드셔야 하는데 제가 방해되는 건 아닙니까?"

"아닐세. 우리 자윤이 직장 부하인데, 오히려 환영일세."


그렇게 성준에게는 신년에 직장 상사의 아버지와 단둘이 떡국을 먹게 된 썰이 생겼다.

한편 잘 먹는 성준을 보며 요리 솜씨가 는 것을 기뻐하는 정혁이었지만, 그는 몰랐다.

앞에 앉아있는 청년이 꽤나 특이식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운명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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