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야파티

천국의 문을 두드려라!

2024_이야챌린지_002

by 이야
임시 표지

촤악.

커튼을 치자 따사로운 햇볕이 기분 좋게 스며들었다.

효정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했다.

카르륵.

입안까지 시원하게 헹군 그녀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가정용 식물재배기에서 청경채와 상추를 딴 그녀는 입맛을 다셨다.

식사를 준비하는 효정의 손길이 더욱 빨라졌다.

아삭.

신선한 채소를 맛본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냄비에 원하는 만큼 재료를 넣은 효정이 곧 냉장고를 열었다.


"와. 엄마가 준 반찬, 거의 다 먹었네?"


며칠 전에 가득 찼던 냉장고가 이제는 텅텅 비어있었다.

이전에는 항상 뭘 먹을지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있는 것을 먹어야 할 판.

그래도 망설이지 않고 그릇을 꺼낸 그녀는 정성이 담긴 반찬을 식탁에 옮겼다.


"떡국으로 새해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어?"


식탁에 올려둔 폰으로 날짜를 확인한 효정이 새삼 빠르게 흐른 시간을 돌아봤다.

부지런히 보내서 후회는 없었지만, 갈수록 흐르는 속도가 남다르게 느껴지긴 했다.

잠시 사색에 잠긴 그녀였지만 된장국이 끓자 깨어난 그녀가 맛있는 한 끼를 금방 완성해냈다.


"잘 먹겠습니다~"


자리에 앉은 효정의 손이 바삐 드나들었다.

여유로운 주말 아침.

효정은 기분 좋게 불러오는 배를 문지르며 식사를 마쳤다.

이윽고 미루지 않고 바로 설거지까지 끝낸 그녀가 소파에 앉았다.


"점심에는 영지랑 약속 있고."


스케줄을 확인한 뒤, 폰을 내려둔 그녀는 고른 숨을 내쉬었다.

딱 3분이 흐르자 또다시 몸을 움직이는 효정.

평일에 잘하지 못한 청소를 쭉 시작하는 그녀였다.

위이잉.

집이 어느 정도 깨끗해지자 청소기를 내려둔 손이 가벼워졌다.


"이제 요가 좀 해볼까?"


바닥에 매트를 깔은 그녀는 영상을 보며 자세를 잡았다.

효정의 일과가 척척 진행되고 있을 무렵.

번쩍.

눈을 뜬 영지는 급하게 화장실을 들어갔다.

쏴아아.


"아, 새벽에 자는 게 아니었는데."


빠르게 씻고 나온 그녀는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자 영지의 손이 분주하게 타자를 눌렀다.


-미안해. 금방 갈게!

-괜찮아. 천천히 와~


답장을 받았지만, 영지의 손놀림은 갈수록 빨라졌다.

푸석한 얼굴을 빠르게 덮고는, 외출 준비를 마친 그녀가 엉망인 방안을 확인했지만.

치울 시간은 없었다.

탁.

그대로 집을 나온 영지가 약속 장소로 빠르게 이동했다.


"허억. 헉."


일절 운동하지 않은 그녀의 신체가 비명을 질러댔다.

그래도 눈앞에 카페가 보이자 조금은 가라앉은 심장이 헐떡임을 그치고 있었다.


"여기~"

"진짜 미안해."

"아냐~ 별로 늦지도 않았는데."

"죽을 뻔했어. 완전 서둘렀다."


영지와 만난 효정은 미소를 띠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키오스크로 주문을 마친 둘은 편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주말이라 사람이 좀 많네."

"그러게. 그래도 자리 있어서 다행이다."

"와, 우리. 올해 되고 처음 보는 거네."

"그러니까 거의 보름 만인가?"


음료가 나오기 전 둘은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그때는 애들이랑 다 같이 봐서 우리끼리는 몇 마디 나누지도 못했지."

"아, 그치. 그래서 둘이만 따로 약속 잡은 건데, 프로젝트가 자꾸 밀려서 올해로 미뤄졌네."

"그래도 이렇게 봐서 다행이다."


영지가 반가움을 표하자 진동벨이 울렸다.

시킨 게 많아서 함께 쟁반을 들고 온 둘은 푸짐한 한상을 보며 웃음을 공유했다.


"정말 다 먹을 수 있어?"

"응. 나, 일어나자마자 나온 거라 출출해."

"그럼 그냥 밥 먹으러 갈 걸 그랬나?"

"아냐. 넌 밥 먹었잖아. 나도 이거면 돼."


정말로 배고팠던 영지는 계속 빵을 집어넣었다.

효정도 그런 친구를 기다려주며 음료를 넘겼다.


"아우. 미안. 어제저녁도 제대로 못 먹어서."

"괜찮아~ 먹방 보는 재미가 있었어."

"그래? 그럼 다행이네."


에이드로 목을 축인 영지가 앞에 앉은 효정을 빤히 응시했다.

잔에서 입을 뗀 영지의 입에서 곧 탄성이 나왔다.


"와~ 넌 일도 바쁘다면서 피부가 왜 이렇게 좋아? 따로 관리받는 거야?"

"가끔 받긴 하지만, 밥을 잘 먹어서 그런가? 건강식 위주로 먹고 있긴 하거든."

"그래? 엄청 매끈하네. 나만 나이 먹는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우리 중에 가장 어리면서~"


빠른 년생인 영지의 생일은 친구들 중에 가장 느렸다.

그래서 만으로 따지면 이제야 동갑이 된 것과도 마찬가지인 그녀.


"난 엄청 푸석한데, 너는 진짜 아기 피부다."

"하하, 그런가? 아. 잘 자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잠?"

"응. 내가 일이 바빠도 꼭 지키는 게 있거든."


거기까지 말한 효정은 핸드폰을 꺼냈다.

연동된 어플을 킨 그녀는 곧 화면을 영지에게 보여줬다.


"코인? 7개나 있네."

"응. 올해도 아직 내 수면 시간을 잘 지키고 있어."


눈 결정 모양의 코인은 어느새 7이란 숫자를 담고 있었다.

새해가 시작한 지 일주일 지났으니, 효정의 수면 패턴은 확실했다.


"대단하네. 나는 항상 폰 보다가 늦게 자고 적게 자는데."

"나도 옛날엔 그랬는데, 정부에서 진행한 수면 챌린지 연구에 참여한 덕분에 변할 수 있었어."

"어? 너, 그거 신청했던 거야?"

"응. 그거 시행되자마자 넣었지. 이것 봐. 눈사람 배지."


영지는 효정의 가슴께 달린 배지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도 어렴풋이 그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뇌파를 측정해 특정 수면 시간을 달성할 때마다 눈이 차오르는 원리의 배지.

즉, 효정은 수면 시간을 다 지킨 것이 맞았다.


"그거 따로 연구도 참여해야 하는 거 아냐?"

"맞아. 평균적으로는 적정 수면 시간이 8시간이긴 한데,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니까 그걸 연구한 다음 지급하는 형태야."

"그럼 너는 너한테 맞는 수면량을 알겠네?"

"그렇지. 난 7시간 조금 넘으면 개운하더라고."


스스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효정이 새삼 다르게 보였다.

음료 한 모금을 더 마신 그녀가 어떤 사실을 기억해 내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 그러면 너, 이제 3년 넘은 거야?"

"맞아. 2021년부터는 계속 지켰으니까. 그래서 파츠도 벌써 3개나 모았다?"


핸드폰을 터치한 효정이 바뀐 화면을 다시 보여줬다.

티켓 조각 중 세 개를 모은 효정.


"천국행? 이거 진짜 10개 모으면 천국 가는 거야?"

"정부에서 20년부터 준비하는 중이니까 그렇지 않을까?"

"이거 지금이라도 신청되나?"

"상시 진행하고 있지."


효정의 대답을 들은 영지가 생각에 잠겼다.

수면 패턴이 엉망인 자신.

오늘도 약속에 늦었던 것이 떠올리자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도 올해부터는 잠을 좀 제대로 필요한 만큼 잘 자야겠다."

"맞아. 잠만 잘 자도 능률이 오른다니까? 내가 도와줄게!"

"정말?"


영지의 반문에 효정이 대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친구에게 감동한 영지가 바로 신청서를 넣었다.


"눈 코인은 300개만 모으면 되는 거지?"

"응. 1년 동안 300일 이상만 지키면 조각을 구매할 수 있어."

"아슬아슬하겠지만, 빠지지 않고 지키면 나도 올해 1조각 얻을 수 있겠다."

"설날 연휴로 신청했지? 생각보다 넉넉하겠는데?"


효정이 계산한 디데이를 보자 생각과는 달리,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하지만 영지는 자신이 정말 지킬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이참에 폰 사용 방지 상자도 마련하면 되겠네!"

"그것도 주문해야겠다. 설날에 패턴 연구하러 가면 집안 잔소리는 피할 수 있겠어."


달칵.

빈 쟁반과 함께 음료마저 다 비운 영지가 기대 가득한 얼굴로 친구를 바라봤다.

자신의 피부도 저렇게 매끈해질 수 있을까.

천국만큼이나 기다려지는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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