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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주는 선물
2024_이야챌린지_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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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Jan 15. 2024
임시 표지
철컥.
문이 열리자 이브의 미소가 한층 더 깊어졌다.
도도도.
"안녕하쩨요. 이쩔아예요."
"우리 설아, 첫니 빠졌구나?"
폭.
이브는 작게 열린 문틈으로 빠르게 달려온 설아를 품에 안았다.
꼼질.
자그마한 손으로 마주 안아오는 조카가 정말 사랑스러웠다.
"마짜요. 이 빼쪄요."
새는 발음으로 끝까지 말을 마친 설아가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에 덩달아 터진 이브의 시선이 문을 닫는 설하에게로 옮겨졌다.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강산이랑 이유가 잘 먹잖아~ 그런데 시유, 집에 있나 보다?"
탁.
신발을 벗기 위해 들고 있던 짐을 내려둔 설하가 물었다.
질문을 받은 이브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유랑 아침에 나갔어~"
"그래? 여분 신발인가 보네."
여전히 설아를 품에 안은 이브는 한 손을 내려 장바구니를 챙겼다.
그러다 설하의 중얼거림을 들은 이브의 눈길이 자연스레 이유의 방으로 향했다.
"아~ 그건 설영이 신발이야."
이제는 이유가 아닌 설영의 공간이 된 장소.
식탁으로 향하던 이브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멈춘 것은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방금…"
설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뒤늦게 아차 한 이브가 자신의 무신경함을 속으로 꾸짖었다.
"뭐라고 했어? 누구? 누구 신발이라고…?"
신발장을 바라보는 동공이 속절없이 흔들렸다.
이브가 말을 고르고 있을 때.
튀어나온 소리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가슴께에서 올라오는 그것이 대답을 대신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쩔영이."
"설아야, 그게 아니고"
"쩔영이!"
한층 더 커진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이번에는 그 이름을 똑똑히 들은 설하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장바구니를 내려둔 이브가 다가섰지만.
균형을 잡은 설하의 손이 그녀를 막았다.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
힘없이 부정하는 설하의 얼굴은 핏기가 싹 사라진 채였다.
이제는 어느 정도 괜찮아진 줄 알았지만.
덜컥, 내려앉은 심장은 여전히 붙잡고 있었다.
"미리 얘기했어야 하는데-"
곤란한 얼굴을 한 친구에게 차마 답하지도 못하는 자신.
헤어 나오지 못하고 쏟아지는 시간에 일순 세상이 변했다.
끼이이.
작은 문소리와 함께 방에서 나온 것은, 시유만큼 큰 키를 지닌 남자.
하지만 그에 비해서는 훨씬 앳된 소년, 그럼에도 언뜻 성인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설하의 눈이 커지자 이브도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아."
이 대치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한 이브가 당황했을 무렵.
쏙.
서서히 내려오던 설아가 온전히 고모를 벗어났다.
도도도.
"쩔영이!"
설아가 자랑스럽게 뻗은 검지는 온전히 설영을 가리켰다.
그것을 지켜본 설하의 눈이 핑 돌았다.
정말이지, 세상은 너무했다.
'우리 설영이도 살아있었으면 딱 저 정도였을까…?'
결코 알 수 없는 물음을 가진 채로 쓰러지는 그녀.
20년 전, 유산했던 아이의 영이 늘 그랬듯이 자신을 뒤덮었다.
쿵.
심장이 그대로 추락한다.
"-산아, 내가 잘못 들은 거지?"
그렇게 끊어졌을 리 없잖아. 분명 여기, 내 안에서 항상 울림을 전했는데 갑자기 사라질 리 없는 거잖아. 떠났을 리 없다고! 다시!
엉망으로 번진 소리가 병실을 채웠다.
그날의 기억이 선명했다.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준비한 모든 것들이, 단 한 번도 제 주인을 찾지 못했을 때.
절대 잊을 수 없는 상실의 순간.
딱.
"엄마-"
침대에서 정신을 차린 설하는 자신을 부르는 설아의 목소리를 들었다.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딸이 기적적으로 호전된 날.
불과 몇 개월 전에 있었던 일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설하의 손이 딸의 짧은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엄마, 괜찮아."
목소리 끝에는 옅은 떨림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눈빛은 결연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볼 시간이었다.
한편 설하가 쓰러지고 얼마 뒤.
아빠를 따돌리고 먼저 집으로 올라온 이유는,
"외숙모, 벌써 온 거야~?"
역시 아빠랑 쇼핑하는 게 아니었다며 투덜댄 그녀는 곧 거실에 나와있던 설영의 손에 잡혔다.
카앙.
한때 자신의 방이었던 곳에서 내던져진 이유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뭐야?"
"어째서-"
다리를 굽힌 설영이 위협적으로 이유의 눈을 바라봤다.
그때만큼은 설영이 아니라, 꼭 시린 눈의 공작이었다.
칸.
그 이름을 떠올린 이유가 꼴깍 침을 삼켰다.
"뭐,뭔데-"
"여기에 어머니가 계시는 거지?"
"어,머니?"
생각지도 못한 단어의 등장에 머리가 굳는 이유였지만.
날카로운 시선이 베일 듯이 닥쳐오자 덩달아 빨라지는 사고였다.
짝.
이내 이름 하나를 떠올린 이유가 손뼉을 쳤다.
"아, 칸초 라우드? 맞아.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먹다가 정했었는데!"
어떻게 그 이름을 잊고 지냈는지.
설정을 짜던 당시를 되돌아본 이유의 톤이 절로 높아졌다.
반면 알고 싶지 않았던 결정을 들은 칸의 낯은 일그러졌다.
신나서 떠들던 이유도 그것을 읽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으런데 어머니가 여기에 있다고? 대체 어디…?"
아직 속도를 늦추지 않은 그녀의 사고는 잊었던 사실을 끄집어냈다.
어른들은 잘 얘기해 주지 않았지만.
명절마다 한 번씩은 오가는 걱정을 빙자한 공격.
'8촌 집안에서 도대체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유도 찾아가고 싶진 않았지만, 항상 엄마를 따라가던 외갓집은 끔찍했다.
그래서 결국 외삼촌 네는 발길을 끊었고.
잠시 생각이 딴 곳으로 샌 이유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설마 외숙모 얘기는 아니지?"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하지만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했다.
그만큼 진지한 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니까 아빠는 악마고, 엄마는 천사고, 외숙모는 선대 공작부인이고?"
그러면 이제 외삼촌도 선대 공작이 되겠지만.
이유의 생각은 다르게 튀었다.
"와. 우리 외삼촌이 진짜 산타였던 건가?"
자신처럼 모계성으로 바꾼 외삼촌.
그러나 자신과는 달리 개명까지 한 그의 원래 이름이 떠올랐다.
강산타.
크리스마스가 생일인 그와 무척 어울리는 이름이 사실은!
"이럴 줄 알았으면 선물을 더 화끈하게 지를걸."
이상한 말을 내뱉는
그녀를 가뿐하게 무시한 칸이 몸을 일으켰다.
그것을 확인한 이유도 팔을 뻗었지만.
눈길도 주지 않자 홀로 일어서는 그녀였다.
"내가 의도한 건 진짜 아니었다?"
한곁같이 무시당한 이유는 재빨리 방을 나섰다.
그 우왁스러운 손에 잡힐까 도망친 그녀였지만.
어느새 다시 그의 방이었다.
'엄마는 왜 나에게 떠넘긴 거야.'
물론 그를 책 속 세상에 넣어두고, 꺼낸 것은 본인이 맞았지만.
그녀는 정말 몰랐다.
'뭐, 예은이랑 이어지는 얘기를 쓸 때 이름을 그렇게 정한 건 살짝 의도가 담기긴 했지만.'
일명, 리돌남.
이제는 잊고 싶은 '리셋하고 돌아온 서브남주를 만나버렸다'의 그것.
과거, 예은이랑 같이 재밌게 읽으려고 쓴 이 글에서 굳이 설영이란 이름을 쓴 건 어릴 때부터 은연중에 들어왔기 때문이겠지만.
외숙모 아들.
그러니까 자신이 태어나기 몇 개월 전, 하늘의 부름을 받은 그의 물건은 모두 제 몫이었다.
'또래가 나밖에 없었으니까, 다 내가 물려받았지? 전부 새것이었다고 들었는데. 하, 그걸로 엄마 보고 돈 아꼈으니 잘 됐다고 하는 정신 나간 외갓집.'
건강으로 인해 일찍 돌아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특히 외할머니 몸이 약했던 것이 탐탁지 않았는지, 그 얘기를 지겹도록 하는 외할아버지의 여동생이었다.
'엄마는 어릴 때, 돌봐준 정이 있으니 그런다 하지만-'
추석이라고 또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린 이유의 눈썹이 내려앉았다.
고모할머니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 것이다.
붕붕.
최대한 기억하지 않으려 애쓴 이유가 곁눈질로 외숙모를 살폈다.
자신이 썼던 글을 읽고 있는 외숙모.
정말 어질어질한 광경이었다.
'지난번에 칸이 저 책을 내려놓았을 때, 아주 그냥 불태워버렸어야 했어.'
탁.
책이 덮였다.
숨 막히는 시간.
입을 연 것은 설하였다.
"여기서 왔다는 거니?"
"맞아요. 믿기진 않겠지만-"
"믿어. 믿어서 그래."
설하의 맑은 눈이 설영을 담았다.
달그락.
팽팽하게 감겨진 사슬을 보던 다름이 시선을 돌렸다.
셋의 모습을 구슬로 지켜보던 그녀는 스산한 웃음을 흘렸다.
"이걸로 약속은 지킨 거야, 온설하."
지난 기억을 되새기는 다름은 막 아이스크림 집을 방문한 설아를 확인했다.
그 곁에는 시유와 이브가 있었다.
"아니, 칸초 라우드라 해야 하나?"
낮은 웃음이 공간을 둘렀다.
한때 자신의 밑에서 일하던 아이가, 해맑은 미소로 인사하는 게.
조금은 따뜻했던 것도 같다.
왠지 모르게 그리운 빈자리에, 다름의 손끝이 구슬을 스쳤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냥 빌어줄게. 나에게도 소중한 연이었으니까."
칸나.
미처 진동하지 않은 이름이 이제는 오로지 다름만을 파고들었다.
어느새 홀로 짊어지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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