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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야파티

네버 다이 피치홀, 초인의 탄생

2024_이야챌린지_008

by 이야
임시 표지

"아~ 내가 할 수 있다구~"

"종일 안에만 있으면서 힘이 어딨다고?"

"아빠는 내가 엄청 허약한 줄 아는데, 아빠 닮아서 한 튼튼하거든요?"


한 가정집.

실랑이를 벌이는 부녀.

꼭 듣고 싶던 음성으로,


"아빠. 듣고 있어?"

"어? 어, 듣지."


기어코 빼앗은 연장으로 가구를 조립하는 그였다.

결국 할 일이 사라진 딸은 주방으로 향했다.


"오렌지 주스 괜찮지?"


이미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낸 그녀는 한가득 컵에 따랐다.

잠시 손은 멈춘 연우는 가만히 딸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게 꿈이라면 절대 깨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흔들리는 세상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듯 지워버렸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몸이 반동하는 것을 느꼈다.


"소장님, 처음으로 성과가 나온 것 같네요."

"일단 당분간 지켜보고-"


웅웅.

기계음 너머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사무적인 목소리마저 그를 움직이게 했다.


"어, 아직 무리해서 움직이면 안 돼요!"

"어떻게 된 겁니까."


느리지만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한 연우.

그를 만류한 연구원도 그 질문에 답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보는 게 이해가 빠르겠네요. 잠시만요."


붙잡을새도 없이 사라진 연구원 뒤로 또 다른 젊은이가 나타났다.

앳된 얼굴의 남자가 흥미로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물으려고 입을 뗀 연우였지만, 이내 포기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딱히 남자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돌아섰다.

그러고는 곧 방을 나간 남자를 지켜보던 시선은 무언가를 들고 오는 여자 연구원에게 닿았다.

그 손에 있는 물건은,


"자. 보세요!"


대뜸 거울을 내미는 여자를 보던 눈길을 내린 연우의 손이 제 볼을 문질렀다.

감히 상상도 못했던 탄력적인 피부.

그 탱탱함이 손가락 끝에서 느껴졌다.


"실험, 성공했군요."


그제야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왜 이 연구실 침대에 있는지부터 해서 현재 자신의 상태까지도.

어느 정도 파악을 마친 연우가 연구원의 명찰을 들여다봤다.

이보라.

그녀는 생각보다 밝은 미소로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 얼굴에 고개를 돌린 것은 연우였다.


"기적이에요. 샘플 중에 첫 성공이거든요."

"그 말은 다른 실험자들은-"


뒷말을 생략한 연우는 여전히 다른 곳을 바라본 채였다.


"아, 죽지는 않았아요. 다만 조직이 괴사돼서 다들 입원 치료 중이고, 아마도 당분간 정상 생활은 어려울 것으로 보여요."

"그렇군요."

"정연우 님 덕분에 조금은 안심했어요. 워낙 꿈의 기술이잖아요. 또 인체를 대상으로 한 것도 처음이다 보니 성공 사례가 나오지 않으면 폐기될 수밖에 없는데, 유일하게 안정적인 상태를 보여주고 계셔서 정말 마지막 희망이었네요."


꿈의 기술.

머리맡에서 울리는 소리를 잠자코 들은 연우가 되뇌었다.

확실히 처음 이 연구에 신청했을 때만 해도 가능할 것이라 여기진 않았다.

그저 가족도 없고, 퇴직을 앞둔 군인으로서 마지막까지 세상에 보탬이 되길 바랐을 뿐이다.

그러니 성공을 상정하지 않은 연우는 지금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제 뭘 하면 됩니까."

"아, 일단 당분간은 상태를 확인할 거예요. 겉으로 봤을 땐 문제가 없지만, 정부에서 원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여러 검사를 통해 지켜봐야 하거든요."


그는 침착하게 해야 할 것을 인지했다.

노쇠했던 몸이 사라지고, 이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젊은 시절의 자신.

결국 역행한 신체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국가에 귀속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한 연우가 다른 것을 물었다.


"기대 수명은 어떻게 됩니까?"

"음. 추론하기로는 자연사한다는 가정하에 원래 나이까지는 사시는 데 어려움이 없을 거예요. 56세였죠? 지금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니 30년은 거뜬하실 겁니다."


어느새 차트를 들고 있는 연구원이 재차 입을 열었다.


"혹시 이마 흉터는 언제부터 있었나요?"

"이건 삼십, 아니 스물에 생긴 겁니다."


36년 전을 말하려던 연우가 말을 바꿨다.

고개를 끄덕인 보라는 연우의 차트를 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손에 있던 화상 자국은요?"


그 말에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 연우는 눈빛이 흔들렸다.

말끔한 손이 그를 반겼다.


"사라졌군요. 그건 스물둘에 겪었습니다."

"그럼 추정 나이는 그 사이겠네요."


스물에 생긴 이마 흉터는 있고, 스물둘에 겪은 화상은 사라졌다.

현재 그의 신체 나이는 스물과 스물둘 사이로 짐작할 수 있었다.

합리적인 추론을 끝낸 보라는 축하 인사를 건넸다.


"와, 이제 저보다 어리시네요! 내일부터는 좀 더 본격적으로 검사하고 확인해 볼 거예요."


따로 대답을 듣지 않은 그녀는 앞으로 있을 검사 등을 간단하게 안내했다.


"제가 전담이니까 불편한 게 있으시면 바로 말씀해 주셔야 해요~"


그녀에게서 종이를 건네받은 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할 일을 마친 보라가 나갔다.

철컥.

병실에 혼자 남은 연우는 미처 가져가지 않은 거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탁.

곧 거울을 뒤집은 그가 마른 세수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크게 흔들릴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미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치러야 할 죗값이 크다는 거겠지."


한순간에 노인에서 청년이 된 자신.

언뜻 보면 새로운 삶을 부여받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며칠 후.

검사라고 해봤자, 일종의 체력 테스트를 비롯해 신체 상태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오히려 별다른 활동이 없는 지금.

연우는 이전과 큰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지. 컨디션만큼은 최상이군."


휙휙.

오늘도 단련실을 찾은 그가 날렵하게 잽을 날렸다.


"아직도 운동 중이시네요?"


원래도 귀가 밝았지만, 젊어진 이후 한층 더 예민해진 청각은 분명히 소리를 들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바로 알았기에 침묵을 지키는 연우였다.

그리고 섭섭할 법도 한데, 보라는 되려 그것이 편했다.

제아무리 스물 초반으로 보여도 실상은 퇴직을 앞둔 군인이었으니까.


"그런데 정말… 재입대 하셔도 되는 건가요?"


그제야 몸을 돌린 연우가 가볍게 끄덕이며 물을 집었다.

벌컥벌컥.

쏴아아.


"상관없습니다."

"가족들이 걱정할 텐데요."

"서류를 제대로 안 봤나 봅니다."

"아. 착각했나 봐요. 죄송해요."


연우의 의중을 알아챈 보라가 곧장 사과를 건넸다.

별로 개의치 않은 얼굴로 물병을 내려둔 연우가 물었다.


"오늘은 단체로 일정이 있습니까?"

"네? 아~ 경호원들이 훈련한다고 들었는데, 오늘이었나 봐요."

"생각보다 요란하게 하는군요."


그가 눈썹을 까닥였다.

단련실 밖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거슬렸던 것이다.


"이만 돌아가야-"


연우는 미처 말을 잇지 못했다.

큰 소리와 함께 열린 문 너머 완전히 무장한 이들이 금세 방을 채웠다.

상황을 눈치챈 그는 빠르게 나섰지만, 총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탕-

타앙-

몸을 날려 여러 번 발사된 총알을 최대한 틀어막았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소리 한 번 안 내지르고 총알받이가 된 연우를 충격적으로 바라본 보라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앞이 흐릿했다.

정체 모를 괴한들이 주고받는 손짓, 그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아선 그의 모습이 꽤나 필사적으로 보였다.

보라가 쓴웃음을 삼켰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착각이라고.

삐이이-


'진짜 날 위해 저러는 건가?'


그러면 조금은.

정말 아주 조금,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보라! 정신 차려!"

"엄,마가 엄청 보고 싶어 한다? 나도 그랬나 봐. 이거-"


아직 끊어지지 않은 정신으로 목에 걸린 것을 뺀 보라는 그것을 넘겼다.

그녀가 기절하지 않도록 지혈하는 연우였지만.


"나보다 어린 아빠라니. 정말 재밌다."


본인이 뭐라고 말하는지는 알까.

한순간 연우의 세상이 멈췄다.


"아빠, 재입대 하지 말고 아빠 인생 살아. 그게 내 소원이야."


삐이이-

심장이 요동쳤다.

쓰러지는 순간, 깨달았다.

운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운이라는 걸.

떨어지는 손을 놓칠 세라 붙잡았지만, 자신은 너무 늦게 알았다.

까득.


"아따, 이 여자 맞제?"

"이름표 보니까 맞네예. 근데 형님, 이거 괜찮은 겁니까?"

"그놈 아, 눈깔이 미칫드라. 시신이라도 가져오라 했다야~ 음마야. 이건 뭔데, 아직 살아있노."

"쏠까예?"

"됐다. 그냥 냅두라. 곧 디지겄지~"


어눌한 말투로 대화를 마친 괴한들이 보라를 챙기려 했으나, 큰 힘에 가로막혔다.


"또 뭐고."

"그 여자 경호하는 얼라인가 보네예~"

"아따, 거 줘봐라."


척 알아듣는 부하가 칼을 넘겼다.

푸욱.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연신 쑤셔준 다음에야 그들은 원하는 것을 챙겨 떠날 수 있었다.

한편, 흥건하게 젖은 피는 부녀의 것이 섞여있었다.

내장이 파열되어도 서슬 퍼런 눈빛으로 문을 노려본 연우는 각인했다.

그들의 손등에 있던 문신을.

꿈틀.

단 한 번의 비명도 지르지 않은 그의 손에는 딸이 건네준 usb가 있었다.

그것을 소중히 쥔 그의 몸이 느리지만 확실히 회복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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