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야파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 Mar 05. 2024

저승돌의 막내 멤버가 되었다

2024_이야챌린지_017

임시 표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당연한 명제다.

울컥.

피를 토하는 그 순간에도, 생각보다는 초연하지 않았나.

오히려 팔이 움직이지 않아 분명 끔찍했을 광경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게 더 신경 쓰이지 않았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마저 아득해질 때.

비로소 떨군 것도 같다.

그러면서도 꽤나 꼰대스러운 말이 입을 맴돌았다.

공은 바깥에서 던지는 게 아니라고.


"커억-"


한참 뒤.

거친 숨을 토해내며 정신을 차린 지호는 제 몸을 더듬었다.

이상했다.


"분명 치였는데-?"


기억은 선명했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공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았다.

한 마디 하려고 했을 때, 일을 이미 벌어진 뒤였다.

역시나 공은 도로로 나갔고, 아이는 그곳이 어딘지 무지한 채 뛰쳐나갔다.


'하긴. 그러니까 거기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겠지.'


왠지 모르게 뻐근한 어깨와 목을 푼 지호는 멀쩡한 오른팔을 살폈다.

못 봤으면 모를까.

어쩌다가 쭉 지켜보게 된 자신의 몸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응했다.

그렇다고 죽겠다는 결심은 아니었다.


'좀만 더 빨랐다면 피할 수 있었을까.'


이미 지난 일.

후회하지는 않지만, 퍼져오는 고통 속에서도.

꺼져가는 삶을 마주한 눈동자가 더 거슬렸다.

자각 없는 친구였어도, 세상 맑은 눈으로 그 광경을 목도하게 된 것이 꼭.


'괜히 나랑 겹쳐볼 필욘 없겠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였다.

몸이 생각보다 멀쩡하다는 것을 파악한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이 많았다.

어림잡아 마흔은 넘어 보이는 숫자.

한 가지 특이점은 모두 남자라는 점?

나이대는 제각각으로 보였지만.


'나처럼 교복을 입은 사람은 없네.'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다 어른으로 보였다.

자신은 왜 이런 곳에 온 걸까.

혹 여기가 저승이라도 되나.

그런 생각을 할 무렵.

공간 한편에서 빛기둥이 솟구쳤다.

눈부신 광경이 지나가자, 한 형상이 보였다.

같은 인간의 모습이었지만 이질감이 느껴지는 남자.

아무도 섣불리 그를 제지할 수 없었다.

곧이어 남자는 좌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리저렉션49의 진행자 민해유입니다."


리저렉션?

그의 소개가 끝나자, 사람들의 웅성임이 광장을 채웠다.

반면 아는 사람이 없는 지호는 그저 혼자 곱씹었다.

모두가 그 뜻을 헤아리려 힘쓸 때, 민해유의 입술은 호선을 그렸다.


"유감스럽게도 여러분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 순간, 침묵이 도래했다.

다들 지호처럼 기억했던 것이다.

여기에 오기 전의 상황을.

하지만 현재는 몸도, 정신도 멀쩡하니 잠깐은 부정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해유의 한마디에 깨어날 수밖에 없었지만.


"하지만 현대 의학의 수준은 나쁘지 않지요. 여러분 중 몇 명은 의식을 되찾을지도 모릅니다만 우리 저승은 '개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곳 세케르노에서 여러분은 돌아갈 기회를 두고 '경쟁'해야 합니다."

"만약 경쟁하지 않으면요?"

"후후. 그렇다면 그냥 죽는 거죠?"

"여기 모인 사람 중 일부는 코마 상태라는 거죠? 그러면 저승은 무슨 권리로 그들에게 마땅한 것을 다른 이들에게 기회로 주는 겁니까?"


이번에는 아까와 다른 남자가 물었다.

민해유라는 저승의 관리자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승이 선을 넘었죠? 하지만 식물인간으로서 삶을 허락받는다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 않겠어요? 그리고 여기 세케르노에 모인 여러분은 그만한 의지가 있다고 판단해 들어온 겁니다. …인데, 그냥 아무나 들이는 곳일 수는 없죠."


그의 설명이 끝나자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관리자는 허락할 의중도 없었지만.

세케르노의 서바이벌 참가자들은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리저렉션49는 여러분의 부활을 두고 벌이는 오디션 프로그램입니다. 49명 중 최종 13명만이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는 한편으로, 향후 2년간 저승의 아이돌로서 활동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전처럼 조용하지 않았다.

처음 그가 등장할 때와 마찬가지의 웅성임이 공간을 울렸다.


"하하. 아이돌 활동은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는 주민들의 투표에 대한 대가성 활동이며, 살아난 여러분의 빠른 회복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도 타격을 입은 상태니까요. 이 서바이벌 과정에서 어느 정도 해소한다 해도 후유증은 생각보다 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 나이가 50인데!"

"참 부러운 나이겠군요. 여기는 기본이 네 자리라, 두 자리에 불과한 여러분은 이제 막 태어난 아기와 크게 다를 바도 없지요."

"혹시 아까 언급한 주민이-"

"여러분의 조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게 큰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군요. 그럼 임시 순위부터 확인해 볼까요?"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하늘 위에 큰 일렁임이 생겼다.

까드득.

거대한 스크린이 허공을 채우고, 그곳에는 49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름이 순위에 따라 나열되어 있었다.


"현 순위는 여러분이 살아돌아갔을 경우, 세상에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에 중점을 두고 임시로 정한 순위입니다."


리저렉션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확인해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지호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지호(19), 13위, 딱 턱걸이네.'


첫 순위 발표에서 그는 겨우 13명 안에 들었다.

하지만 마냥 기쁘지는 않은 게, 결국 최종에서는 변동되기 마련이라는 것.


'사촌 누나가 방송국 PD라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종종 보긴 했는데. 그런 거랑 비슷한 거에 내가 뛰게 되다니.'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열아홉이라는 젊은 나이?

물론 네 자리의 나이대라는 주민들에게는 어필이 될지 모르겠으나.

이름 옆에 쓰인 것은 나이로 짐작되고, 그 수는 자신이 가장 낮았다.

즉 이 중에서는 지호 본인이 가장 어린 친구라는 것이었다.


'춤은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노래는 어떡하냐?'


그러나 첫 번째 미션은 그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보통 레벨 테스트 다음 커버 팀 대결을 했던 걸로 아는데.

의아한 마음이 들면서도 이해가 가는 배경이었다.


'하긴. 여긴 저승이지. 그리고 조상들이라고 할 때, 이런 게 더 맞는 거겠지?'


우웅.

진동과 함께 변경된 장소에는 낯설지만 익숙한 게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사람들 중 일부는 환호했다.


"레벨 테스트는 '국궁'으로 하겠습니다."


아이돌 오디션보다는 체육대회에 더 어울리는 상황이었지만, 관리자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심사위원을 데려왔다.

그리고 그중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얼굴은 방송과 다를 수밖에 없다지만, 골격은 확실했다.


"시방, 방금 잘못 들은 게 아니제?"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아까 자신을 50이라고 소개했던 아저씨가 물어보자 가까이에 있던 지호는 바로 답했다.


"주몽이라니. 이게 다 뭔 일이냐."


이 쇼도 기가 막힌데, 거기에 데려온 사람도 예상을 뛰어넘는 순간이었다.

특히 국궁을 보고 들떴던 사람들도 심사위원을 소개받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최고 등급은커녕, 평가조차 못 받는 건 아니겠지?'


딱히 활을 다뤄본 적 없는 지호는 높은 등급으로 갈 거란 기대는 일찌감치 접었다.

다만 가장 낮은 등급은 피하고 싶었다.

아래서 올라오는 서사의 힘이라는 게 있다는 걸 누나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13위. 언제든 라인 밖으로 나갈 순위야. 확실하지도 않은 것에 걸 수는 없지.'


꿀꺽.

세 손가락으로 당기는 양궁과는 달리, 엄지를 활용해 활시위를 당기는 국궁은 역시 낯설다.

연습의 기회를 준다고는 하지만 방송에서 흔히 보던 건 아니라.


'양궁은 폼이라도 내봤지. 국궁은 진짜 처음인데.'


후.

긴장한 순간이었지만, 앞에서 알게 된 것을 빼먹을 수는 없었다.


"활 배웁니다."

"많이 맞히세요."


국궁을 즐겨 한다는 30대 중반의 회사원이 알려준 초시례를 나누고 나자.

떨리는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왼쪽 눈을 감고 자세를 잡은 지호의 활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휙.

정면을 향해 날아간 화살은 새로운 운명을 이끌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할 때 더 좋은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