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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Mar 23. 2024

회춘으로 시작하는 방범용 헌터 생활

2024_이야챌린지_021

임시 표지

달그락, 달그락.

허리춤에서 흔들거리는 깡통에도 아랑곳 않고 걸어가는 노인은 이내 전봇대에서 멈춰 섰다.


"운이 좋구먼."


누군가 가득 내놓은 상자를 접은 뒤 옮기는 노인의 손은 나이에 맞게 쭈글거렸다.

그럼에도 그 기세는 젊은이 못지않게 튼튼하다는 양, 고이 접힌 폐지들이 한꺼번에 짐차에 실렸다.

덜컹.

어느새 높이 차오른 손수레를 이끌고, 익숙한 듯 거리를 지나가는 노인의 이름은 준수였다.

연준수.

이제 여든까지 얼마 남지 않은 그는, 오늘부터 부지런하게 새벽바람을 맞았다.

끼이.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문짝을 지나 집으로 돌아온 준수의 손이 흥건한 모자를 벗겨냈다.

아침인데도 쉬지 않고 움직여서 그런지 꿉꿉한 땀이 새어 나왔다.


"삭신이야."


휙.

모자를 던져놓은 그가 어깨를 두드렸지만, 입가는 웃음기가 있었다.

평소랑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어제보단 좋은 날이었다.

꽁초도 수북이 쌓아뒀으니 이 담뱃재가 향기로울 정도였다.


"그럴 리가. 콜록. 아익, 아주 그냥 코를 후벼파는구만."


연신 기침을 내뱉은 그가 깡통을 멀리 치웠다.

겨우 숨을 내쉰 후, 달력을 들여다본 준수의 눈빛이 촉촉해졌다.


"아따, 먹을 만큼 먹었으니 이제 가부려."


하루.

내일이면 그의 나이도 80에 달한다.

나름 긴 시간을 살며 따로 생일을 챙기지도 않았고, 이렇다 할 여념도 없지만.

쿨쩍.

그래도 죽을 때가 코앞이니, 한 번 정도는 신경 써보기로 했다.

지난주에 준비해둔 양복도 깔끔하게 벽 한편에 걸려있었다.


"오늘까저만 일하고- 내일은 거기도 가보고, 그것도 먹어야제."


대강 써놓았던 리스트를 손에 쥔 준수는 어느 때보다 결연했다.

80.

옛날 같았으면 마냥 높은 나이는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백세가 넘은 노인들은 수두룩했다.

다만 다른 점은.

그들은 모두 각성자라는 점.

꼭 전투 능력이 아니더라도 각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변모한 지구에 적응하여 살기 수월했다.

그러나 연준수는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65년 동안 각성하지 못한, 불우의 사나이였다.

차원의 틈이라는 게 벌어지고 그 여파로 던전이 생기기 시작한 지구.

바야흐로 2025년.

당시 15살이었던 준수도 언제고 던전에 들어가 활약하는 헌터가 되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그 꿈은 끝내 이룰 수 없는 벽이었다.

마흔까지도 각성하지 못한 그는 사실상 포기한지 오래였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그라도 비각성자인데 잔병치레 없이 여지껏 살아온 게 어데냐.'


지구의 기운은 변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각성할 수도 있었지만, 각성하지 못한 자에게 세상은 험난했다.

대다수의 비각성자들은 눈에 띄게 허약하고 대체로 단명하기 일쑤였으나, 준수는 달랐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마흔까지도 기대를 접지 못한 거였지만, 이제는 다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연구원들이 이것저것 들쑤셨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폐지와 꽁초를 줍는 삶만이 그를 반긴 게 아닌가.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좋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았다.

반짝.


"뭐, 오래 산 게 대수라고 상까저 받어?"


필요 없다는데도 한사코 쥐여주던 정부.

거, 돈으로 달라니까 듣는 척도 하지 않는 양반들이 이런 건 또 준다야.


"이건 갖다 팔지도 못하는디. 아주 그냥 애물단지여."


상장과 함께 수여된 것은 특수 처리된 마나석이었다.

한때는 이계의 산물을 통해서라도 각성할 심산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얻는 결과는 참혹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거부증.

그리고 준수는 어김없이 해당했다.

마나석에 비친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본 준수가 팔을 뻗었다.

만지작.


"아따. 고놈 잘생겼네."


마나석에 흐릿하게 보이는 자신.

희끗한 머리에도 아직 죽지 않은 외모였다.


"오늘 염색을 때리고 와야겠고먼?"


몇 주 전, 정부가 마련한 자리에 참석한다고 머리를 했음에도 금세 상한 머릿결이었다.

완벽한 하루를 위해 외모에도 투자할 생각이었던 그는 나름 묵직한 마나석을 내려놓으려 했다.

데굴.


"에고. 그걸 놓치나!"


비각성자임에도 비교적 건강하고 오래 산 준수였으나, 그래도 여전히 여든이 코앞인 노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본인도 잘 느끼는 바.

전보다 더욱 무겁게 가라앉는 몸을 애써 외면한 그의 손가락이 마나석에 닿았다.

까앙-

삐이이.

그러나 끝내 잡지 못한 그는 그대로 쓰러졌다.

자신의 기력이 다했음을 예견한 준수는 그저 받아들였다.

원하는 내일을 즐기지 못한 게 아쉽긴 했으나, 그래봤자 미련만 남겠지 싶었던 그.

점점 의식이 멀어지고 있었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마나석이 요동치고 있는 건 분명 착각이겠지 싶었다.

진동하는 그것에 간신히 손가락을 걸친 그가 기절한 뒤.

연준수가 본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한참을 흔들리던 마나석에서 푸른 기운이 실처럼 뿜어져 나왔고, 이내 그것은 노인의 손끝을 타고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나석의 크기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이내 자취를 감췄다.

이윽고 모든 기운을 흡수한 노인의 몸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화아아-

빛에 감싸인 노인, 아니 사내의 눈이 열린 것은 그로부터 10분 후였다.


"어? 천국, 천국에 왔나?"


깨질 듯한 이마를 짚은 준수는 울렁이는 공간을 살피었다.

자신의 방이었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는 그에게로 친절한 음성이 울렸다.


[각성으로 특성 '회춘(EX)'을 습득했습니다.]


귀를 훔친 그가 놀란 눈으로 거울을 찾았다.

달력에 박힌 작은 거울에 시선을 둔 그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이상할 정도로 잘생겼다.

아니, 젊다.


"각성? 상태창?"


[상태창을 불러옵니다.]


"이름, 연준수. 나이, 79."


각성자라면 응당 보인다는 상태창을 일일이 소리 내어 읽던 그는 당연한 정보에서 빠르게 시선을 내렸다.


"특성, 회춘. 봉인 상태?"


띄엄띄엄.

설명을 확인한 그는 선명한 글씨에 감탄했다.

회춘을 했다더니, 시력도 좋아진 걸까?

돋보기도, 대신 읽어줄 사람도 필요 없어진 자신.


"가장 최적의 상태를 찾는다라."


이제는 봉인되어 사용할 수 없다지만 자신의 의식이 끊긴 사이, 특성이 발휘된 것으로 추정하는 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거기에는 육체의 나이도 적혀있었다.

스물넷.


"아, 군대 다녀오고 몸이 제대로 만들어졌던 때인가."


큼큼.

말을 하는 데도 특유의 쇳소리가 없었다.

거기에 감각도 젊어진 느낌이었다.

그 증거로, 노인 때 썼던 말투가 아니라 그 당시의 말투를 구사하고 있었으니.


"이 나이에 각성할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마나석으로는 거부증이 나타날 텐데-?"


의문이 든 그가 방바닥과 자신의 몸을 살폈으나 딱히 짚이는 건 없었다.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태였다.

좀 더 상태창을 확인할 요량이었던 그는 다시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특성이 하나 더 있잖아?"


미처 확인하지 못한 특성이 그 아래, 깜박이고 있었다.

이내 손가락으로 누른 그의 눈에 그것이 나타났다.


"연륜(EX)?"


혹은 관록이라고도 한다는 그 특성에 대한 설명은 회춘만큼이나 심플했다.

남들이 쉽게 파악하지 못한 것을 알게 해주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을 찾아내기도 한다는 특성.


"늙은 나이에 각성해서 그런가? 하긴. 비각성자 중에 이만큼 산 사람은 전 세계에서 내가 유일하다는데, 지금 노인들은 죄다 어릴 때 각성했을 테니."


자신이 이러한 능력을 얻은 게 납득이 가는 한편으로는, 착잡했다.

사람인 이상, 늙는 게 마땅했다.

그것이 가끔 버거울 때도 있고, 한스러울 때도 분명 있었으나 가시밭길이었어도 지금껏 걸어온 길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한순간에 젊어진 자신이, 이 세월에서 벗어난 것이 마냥 좋지만은 못했다.


'그렇게 바랐거늘, 이제는-'


특히 며칠 전부터 정리하고 있던 것은 자신 아니었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이, 그를 다시 현실로 돌려놓았다.


[특성 회귀(봉인)가 각성자의 상태에 맞게 변화합니다.]


아직 적응하지 못한 그에게로, 시스템은 끝이 아니라는 듯 소식을 전했다.

금방 나타났던 글귀가 사라지고, 새로운 문장이 새겨졌다.


[특성(불로)를 습득했습니다. 상태 이상 '노화'에 완전히 면역됩니다.]


귓가에 울리는 음성과 함께 내용을 읽는 준수의 눈이 미묘하게 변했다.

순리를 거스르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제는 늙지도 않는다니. 참."


영원한 스물넷이 되어버린 자신.

그때 너무 간절하게 바랐던 게 이제야 효력을 발휘하는 걸까.

젊은 자신과의 재회는 생각보다-

두근.


'좀 더 살아볼까 한다.'


가슴이 뜨거웠다.

이것 역시 삶이라고.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는, 새로운 흐름 앞에 이미 벌어진 일을 반납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받아들이고 나아가기로 결정한 준수는 그간 모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금방 정할 수 있었다.


"일단 하, 등록부터 하러 가볼까?"


찰랑이는 머릿결이 그를 더욱 어리게 만들었다.

당분간은 염색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혹 한다면 아마도 쨍한 색이 되지 않을까.

문고리가 평소와 달리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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