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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Apr 0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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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_이야챌린지_024

임시 표지

타닥타닥.

예원은 한창 작업에 집중했다.

쉬지 않고 써 내려가던 그때.

띠링.

알람이 울렸다.

예원의 눈이 자연스레 아래로 향했다.

플랫폼에서 보낸 메시지였다.


-작가님이 목표한 글자 수를 달성했습니다. 회차를 점검해 주세요.


그녀의 동공이 커졌다.


'벌써?'


놀란 그녀가 마우스를 붙잡았다.

휘리릭.

본문을 빠르게 읽은 예원은 가볍게 목을 움직였다.

이제 마무리할 단계였다.


'이렇게 정리하면 되려나.'


전보다 짧게 두드린 손이 공중으로 올라왔을 때, 예원의 눈이 다시 하단으로 향했다.


'후. 다행히 안 넘었네.'


그대로 한 편을 완성한 그녀는 주먹을 쥐었다.

따로 퇴고는 해야겠지만, 초안을 썼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축할 수 있었다.

이제 1년.

그동안 써온 회차만 120편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분량도, 편수도 현저히 부족하지만 그녀로서는 나쁘지 않은 도전이었다.


'언니한테 미안하긴 하지만.'


본인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나, 생계의 대부분은 언니가 책임지고 있는 실정.

그런 와중에 공부도 아니고, 취미에 불과한 글쓰기에 전념하겠다고 한 자신을 말리기보단 지지한 사람.

괜찮다고는 하지만, 철이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 명절마다 한 소리, 아니 여러 꾸중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래놓고 쓴 게 겨우 이거라니.'


스스로도 참 답답했다.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한 편의 분량도 훨씬 다.

간혹 목표 글자 수가 같은 이들이 있다지만, 그 비중은 크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자주 쓰지도 못했다.


'하루에 하나씩은 썼어야 했는데.'


이틀에 하나도 간신히 달성하고, 그마저도 주에 하나로 퉁칠 때가 많았다.

매일매일 써도 모자랄 판에, 이런 배짱이스러운 태도로 무엇을 해내겠다고.


'친구들은 벌써 다 취업했는데.'


대학까지 나와서 아르바이트만 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렇다고 자격증을 준비하거나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도 않은 예원은 앞날이 막막해졌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


플랫폼 속 자신의 작품을 관망한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조회 수는 30을 넘지 않았다.

그나마 자신의 클릭 수가 올라가지 않으니, 스물 언저리의 방문은 여러 사람의 것이겠지만 순위에 든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한참이지 부족했다.


'난 절대 못 올라가겠다.'


애초에 자신의 글은 대중성도, 상업성도 전무했다.

워낙 자기 세계에 갇혀 써낸 이야기들이라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럼에도 이것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정말 쓰고 싶었는데. 이대로면 그냥 취미에 불과하고, 그러면 이것 말고 다른 것도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어릴 때는 진로에 대한 포부가 있었다.

그러나 배울수록 자신과 맞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결국 회피한 뒤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 자신만 남았다.

또다시 우울해진 예원은 그대로 화면을 내렸다.

딸칵.

마음이 흔들릴 때면 찾아있는 글에 들어간 눈이 한 문장에서 멈춰 섰다.


-역시 쓰는 게 좋아.


그것을 곱씹은 그녀는 알았다.

혹 다른 길을 찾아도 결국 돌아와 여기에 앉아있을 거란 것.


'병행해서 할 수 있으면 좋은데. 경력도 없는 내가 될까?'


지금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최선일까.

아니면 자신의 눈이, 원하는 조건이 쓸데없이 높은 걸까.


'못할 것 같고 안될 것 같아 지레짐작하고 포기하긴 했는데.'


정말이지, 용기 없는 겁쟁이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쌓아둔 게 전혀 없으니 겁이 날 수밖에 없다.

누가 나를…?

자존감이 사라진 그녀는 구인 사이트를 보면서도 차마 지원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럴 것 같으면, 차라리 글이라도 한 자 더 적으라고 하겠지. 후. 다음 편 준비해 봐야지.'


결국 오늘도 취업을 포기한 그녀가 다시 플랫폼을 찾았다.

공백의 화면에 눈길을 둔 예원의 손이 키보드를 문질렀다.

뭐부터 써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한 그녀.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너머로 들리는 세탁기 소리에 반응한 그녀는 일단 빨래부터 마쳤다.

잠시 후.

건조기를 돌리고 오자 보이는 화면에는 물음표만 가득했다.


'떠오르는 게 없어.'


그러나 펼쳐둔 노트에는 여러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지워진 것도 있었고, 동그라미 안에 들어간 것도 있었지만.


'아냐. 이건 아직 못 쓰는 단계야. 뭔가 더 필요해.'


항상 급격하게 변하는 전개를 구사하면서도, 정작 기획은 점진적으로 나아갔다.

그런 모순에 쓴웃음을 삼킨 예원이 비어있는 머리를 붙잡았다.

제발 뭐라도 생각하라고.

다그쳐도, 회유해도 이렇다 할 아이디어는 찾지 못했다.


'실마리라도 생각해야 하는데. 하, 일단 이거 이전 거랑 이어지는 거니까 앞의 내용을 보고 오자.'


바로 실행에 옮긴 그녀는 지난 글을 읽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한 문장이 많았다.

나름 퇴고한다고 했는데, 여전히 남은 것들을 보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기어코 수정한 그녀는 그제야 만족스럽게 웃었다.


"내가 이런 걸 썼다니. 직접 쓴 게 맞던가?"


전체적인 내용은 괜찮았던 것도 같다.

자잘하게 따지면 별로인 부분도 있었지만, 이제 와 삭제하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뒤로 밀린 게시글들은 더 이상 읽히지 않았지만, 어쩌면 자신에게는 일종의 트로피일지도 몰랐다.

자신이 한때 했던 생각을 기록하고 기념한.


'스스로 쟁취한 거지. 어쨌든 최초의 등수는 1등이었잖아.'


그러다 무수한 1등 사이에서는 도태되었으나.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이라도 분명한 1등이었다.

앞선 친구들의 희생으로 얻은 것이라 해도 그것만은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기도 했다.


"라고 포장해도 무슨 의미겠냐마는. 으아, 시간이-"


후다닥.

예원은 부엌으로 몸을 날렸다.

정신 놓고 있다 보니 벌써 저녁때였다.

과거에는 언니가 챙겨준 적이 많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허송세월을 보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집안일.


'둘이 살아서 할 게 많지도 않지만.'


탁탁.

야채를 써는 손이 더욱 빨라졌다.

칼질도 못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다행히 순조롭게 된장찌개를 준비하던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오~ 맛있는 냄새."


괜스레 더 배 고파진 예진이 빠르게 거실로 들어왔다.

밑반찬이 세팅된 식탁을 보니, 흡족한 웃음을 띤 그녀가 싱크대로 향했다.

쏴아아.


"가방 줘."

"어~ 거기에 약과 있어."

"진짜? 밥 먹고 먹어야겠다."


가방을 잘 내려둔 예원이 간식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바로 꺼낸 그녀가 책상 위에 두고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되게 급하게 했나 보네?"

"핫.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났더라고."

"그렇겠지~ 이건 내가 옮길게."


찌개를 뒤적인 후, 불을 끈 예진이 냄비를 옮겼다.

예원이 밥까지 대령하자, 저녁이 완전히 준비된 채였다.


"먹자."

"응."


탁, 딱.

한동안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 거실을 울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예진이었다.


"글 쓰는 건 잘 돼가고?"

"어, 똑같지. 뭐."

"언제 이야릴레이 가나~"


정식 작가의 길.

아직도 이야챌린지에서 도는 예원에게는 머나먼 일이었다.


"…아직 어려울 것 같아."

"그래? 뭐, 하다 보면 되겠지~ 그보다 내가 오늘 버스 기다리면서-"


예원의 답변에 개의치 않은 예진이 오늘 상상한 것들을 읊었다.

글 쓰는 것에는 관심이 없지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이따금 자신의 상상을 동생에게 말해주었고.

동생은 그것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이야기를 작성했다.


"어때? 쓸 수 있겠어?"

"한 번 해볼게. 한나 이야기랑 엮으면 될 것도 같고."

"그래, 부탁해."


대화가 끝나자 다시 먹는 데 집중한 둘은 어느새 빈 그릇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배불리 식사를 마친 예진은 기분 좋게 씻을 준비를 했고, 예원은 식탁을 정리하며 설거지할 것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쉬었다 해~ 나도 물 쓰니까."

"응. 약과 먹고 하려고."


언니가 가끔씩 챙겨오는 간식, 오늘은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게다가 요즘 약과를 활용한 상품들이 많이 나왔고, 한 번씩 먹어본 결과.


'역시 근본이지.'


미니 약과인 게 아쉽지만, 그래도 다른 디저트류와 융합된 것보다는 나았다.

작은 크기인 만큼 금세 모습을 감춘 약과들.

아쉽게 입맛을 다신 예원은 천천히 싱크대로 이동했다.

쏴아아.


"그러고 보니 이제 그 문제는 해결했어?"


탈탈.

화장실에서 나온 언니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물었다.


"어떤 거였지? 문제가 하도 많아서."

"이야기를 편식하는 것 같아서 고민이라고 했잖아."

"아, 그건 여전하지."

"그래? 그런데 원래 사람이 좋아하는 거나 재밌는 것만 보는 게 당연하지 싶어. 아직도 고민이면 좀 더 가볍게 생각해 봐."


그릇의 물기를 털어낸 예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의자에 앉은 예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또 뭐가 고민이야?"

"음. 내 글은 대체로 디테일이 부족한 것 같아. 또 전개가 너무 단순하고, 매력이 없어. 그것 말고도-"


뒷말은 물소리에 묻혔지만, 동생의 걱정을 파악한 예진은 수건을 개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가끔씩 읽어본 동생의 글은 그렇게 촘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근데 난 요즘 세상에 네 글이 괜찮은 것 같더라. 자극적인 것들만 보다가 네가 쓴 걸 보면 뭐랄까, 잔잔한 게 밋밋하기보다는 잠시 휴식이 돼."


모든 그릇을 선반에 올려둔 예원의 손이 멈췄다.

이내 고무장갑을 빼면서 그 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추구했던 방향과 같은 평을 듣자, 가슴이 뻐근해지는 예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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