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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Apr 20. 2024

비상하기 좋은 날

2024_이야챌린지_027

임시 표지

"우리 너무 오랜만에 본다~"

"그러게. 아, 내가 주문할게. 뭐 먹을래?"


스타프레소에 방문한 두 사람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윽고 메뉴를 전해 들은 라원이 결제를 마치고, 폰을 내려놓았다.


"어플로 하니까 편리하네. 난 그런 거, 잘 못 쓰겠더라~"

"나도 쓰게 된 지는 얼마 안 됐어. 하원이 덕분에…"

"입사 동기?"


수연의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였다.

라원은 괜한 뻘쭘함을 느끼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머리를 매만졌다.


"뭐야~ 사내 연애는 하는 거 아니라던데~"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이래저래 몇 번, 얘기한 게 다야."

"그런 것치고는 너무 자연스레 나왔는걸?"

"그건…"


순간 말문이 막혀온 라원이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무리 그래도 쉽게 말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겉돌고 있는 자신을, 거의 유일하게 챙겨주는 사람이 그라는 것을.

적적한 기분 속에서, 그녀는 굳이 옮기고 싶지 않았다.

띠링.

타이밍 좋게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회색날개님, 맛있는 음료가 기다리고 있어요~


울리는 폰 위로 메시지 알람이 보이자, 둘의 시선이 동시에 움직였다.


"앗. 가져오는 건 내가 할게!"


내용을 확인한 수연은 냉큼 일어났다.

말릴 새도 없이 떠난 친구를 멍하니 바라보던 라원이 작게 숨을 터뜨렸다.


'그냥 스몰토크였을지도.'


자신만 크게 신경 쓴 것 같아 알싸한 민망함이 몰려왔다.

그런 라원의 속을 모르는 수연은 쟁반을 들고 상큼하게 돌아왔다.


"색감 예쁘다~ 사진 남겨둬야지."


찰칵.

바로 행동에 옮긴 수연을 기다려준 라원은 촬영이 끝나자 음료를 집어갔다.

라원의 손이 빨대를 찾을 즈음.


"그런데 라원아, 닉네임이 왜 회색날개야?"

"응? 아."


트레이 위에는 영수증이 있었고, 거기에는 라원의 닉네임이 적혀있었다.

물론 수연은 아까 알림을 통해서도 확인한 이름이었지만, 갑자기 궁금해진 참이었다.


"그냥 비둘기가 떠올라서 정한 거랄까."

"비둘기? 하긴. 비둘기들이 보통 회색이긴 하지."

"응."


쪼록.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신 라원은 말을 삼켰다.

당당한 태도로 자리를 차지한 비둘기는 마치 미련 없다는 듯 언제든 비상할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워서 쓰게 된 이름이란 것까지는 알려줄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배경이 왠지 부끄럽고, 스스로 한심하게 여기는 것도 속상했기 때문에 구태여 꺼내지 않은 라원.


"확실히 많긴 하더라~ 한강공원에서 피크닉 즐기는 데 자꾸 주변을 찾아오더라고."

"아, 남친이랑 지난주에 갔다고 했던가?"

"응~ 그런데 벚꽃이 금방 져서 아쉽더라. 나름 시간 내서 갔는데 이미 다 초록이야."


수연의 토로에 라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작년에 비해 벚꽃 핀 시기가 더 짧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너는? 주말에 보러 안 갔어?"

"그러게. 보러 갈 생각도 못 했네. 프로젝트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러면 오늘 좀 쉬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주말에 충분히 쉬었고, 또 어차피 나왔어야 하잖아?"

"그렇긴 하지."


라원의 손등을 확인한 수연이 그 뜻을 헤아렸다.

모처럼 쉬는 날이라지만, 해야 할 일을 잊어서는 안 됐고 그것을 이행한 둘은 뿌듯한 웃음을 나눴다.


"나도 사전투표 때 남겨놓았지."

"sns에 올린 거 봤어~ 아, 곧 애들 전시한다면서?"

"맞아~ 오빠가 기회를 줘서 내가 가르치는 애들 데리고 할 것 같아."

"학생들한테도 정말 좋은 경험이겠다."

"내 말이~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인데, 애들만 몰라~"


수연의 자랑을 들은 라원이 고개를 내저었다.


"에이~ 분명 감사해할 거야. 솔직히 네가 해도 되는 판인데, 양보한 거 아냐?"

"그렇지. 하지만 인정하기로 했어. 난 아무래도 가르치는 재능이 더 뛰어나다는 걸."

"그냥 마침 담당한 애들이 괜찮은 건 아니고?"

"헉. 우소라, 웬일이야~"


갑자기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는 손길에 놀란 수연이 상대를 확인하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전혀 몰랐다는 듯 눈을 굴리는 수연의 모습에 소라와 라원이 남모를 눈짓을 교환했다.


"서프라이즈란다~"

"라원이도 알고 있었어?"

"하하, 미안. 소라가 꼭 놀래주고 싶다고 해서."

"이거 복수하는 거지? 예전에 내가 생일 몰카 했던 거."


수연이 자연스레 옆자리를 앉는 소라를 노려보며 물었다.


"설마 고등학생 때 일을 아직도 담고 있겠어? 벌써 7년도 다 됐다."

"그럼 어떻게 날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지?"

"어제 우연히 라원이랑 만났거든. 오락실에서~ 그러다가 알게 됐지."

"오락실? 아, 우리 라원이 스트레스 해소하는 곳? 거기 아직도 있구나."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 셋이 모이자 라원은 즐거움을 느꼈다.

3시간 후.

카페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던 세 사람은, 뒤늦게 시간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밀린 얘기가 이렇게나 많다니."

"우리가 진짜 오랜만에 모이긴 했나 봐."

"이제 좀 자주 만나자."


잠시 후, 카페를 나온 셋은 인사치레를 나누고 헤어졌다.

저녁까지 먹었으면 좋았겠지만 수연과 소라는 각각 약속이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기에 라원은 섭섭해하지 않고 버스정류장으로 몸을 틀었다.


"흐아, 오늘 정말 좋았다."


엄청 대단한 얘기를 나눈 건 아니지만, 사소한 일상을 나누고 지난 얘기들을 추억하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됐던 하루였다.

게다가 그 몽글몽글한 분위기 사이로 속해있다는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회사… 가기 싫다.'


아직 반나절이나 남았지만, 벌써부터 권태로웠다.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어-?"

"오늘도 볼 줄은 몰랐는데."

"운동 중이야?"

"이제 끝나고 가는 길."

"부지런하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 눈에 띄는 사람은 직장 동료인 하원이었다.

가끔씩, 어쩌면 생각보다 자주 말을 걸어주는 그가 있어 조금은 힘낼 수 있었던 회사 생활.

한때는 아주 살짝, 질투하기도 했지만.


"오늘 투표하고 친구 만난다더니, 벌써 헤어진 거야?"

"응. 저녁은 남친이랑 먹는다고 해서."

"아. 그럼 아직 식사 전이겠네?"

"그렇지?"

"괜찮으면 같이 먹을래?"


무슨 용기였을까.

물론 그와 어느 정도 친해진 것은 맞지만, 그 거리감이 오묘했다.

그럼에도 라원의 고개는 긍정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럴까?"


괜스레 긴장하기 좋은 때.

꿀꺽.

같이 밥을 먹는 것까지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그게, 그 장소가 여기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어딨는 거지…?'


도르륵.

어색함에 눈만 굴리는 사이.

띵.

엘리베이터는 이미 도착한 뒤였다.


"여기서 조금 기다릴래? 금방 정리하고 부를게."

"어? 그래."


먼저 집안으로 들어간 하원이 무언가 하는 동안, 라원은 문밖에서 발을 굴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이제 들어와도 돼."

"고마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신발장까지 들어온 그 순간.

순간적으로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좋은 향이 퍼지자 기분이 간지러워지는 라원이었다.


'진정해. 그냥 밥 한 끼야.'


동기끼리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하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다시금 심장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감정을 떨치기 위해 라원이 말을 골랐다.


"정말 쾌적하다. 우리 집이랑 완전히 딴판인 것 같아."

"그런가? 그냥 평범한 것 같은데."

"아냐, 대단하네. 응? 이건 키트?"

"아. 버섯 키우는 건데-"

"직접 해먹는다더니, 키트로 키우기까지 하는 거야?"


라원의 눈이 빛나자 가슴께가 뻐근해진 하원이 하나씩 소개하기 시작했다.

가성비 좋은 키트 제품은 버섯이 끝이 아니었다.

상추와 콩나물까지도, 이것저것 열심히 키우는 작은 농부였던 하원.


"멋있다. 나도 반려 식물을 들이긴 했는데-"


작게 감탄한 라원을 보자 오늘은 유독 더 실력 발휘를 하고 싶은 그는, 농부에서 요리사로 전직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혹시나 싶었던 재회에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던 하원의 어깨가 작게 진동했다.

그런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라원조차도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가 왠지 더 좋아질 것만 같은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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