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딱 한 번 돌아가고 싶어. 맞는 게 무서웠던 때에 맞서 싸울 용기를 쥐여주고 싶은데.
우스운 얘기였다.
자신은 아직도 겁내고 있어, 학습된 개처럼 엎드리고 바짝 다물 수밖에 없다.
정말 어렸던 그날과 다를 것 없이.
상념에서 깨어난 다인은 또 털어냈다.
아주 잠깐, 종래에는 더 진득하게 돌아올지라도 지금의 슬픔은 찌그러진 종이에 담아두었다.
'이젠 아무한테 말할 수 없어.'
그나마 무언가 해보려던 때에, 선생님이 검사하는 일기에도 말해보고.
그러다 한 번 토로하니 올라온 용기로 꺼내보았지만 지나고 보니 객기에 불과해서.
그리고, 이 답답함을 풀어낼 동병상련의 끝에서조차 상대를 사물로 보았던 똑닮은 모습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쓰레기를 치운 다인의 입가가 조소로 번졌다.
기적이 있다면 제게 내린 벌처럼, 그에게도 부디 마땅한 처벌이 있기를.
나쁘고 잘못된 생각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의 꼴이 꼭 희극으로 보인다면, 그만큼 멀었던 손길이.
'진짜로 묶여있다면 영원히 상황을 탓할 수 있었겠지.'
사슬로 칭칭 감긴 손은 망상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 무엇도, 해낼 수 없는 모자람이 원망스럽다.
혹은 짓이겨 밟힌 채로 누워있는 것에 만족한 걸지도 모른다.
작은 실수마저 죄라고 이르던 많은 시간들이, 이끈 게 아니라면.
지끈.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이제는 희미해져서 다행인 지난날.
어딘가 묻어두고 파헤치지 않으려 맹목적으로 살아왔던 때와는 다른.
"어떻게 하고 싶냐고요?"
최소 50년도 훌쩍 넘은 시간.
다인은 젊었던 때로 돌아온 자신의 모습에 놀라기도 잠시.
들여다본 문턱에서 결정해야 했다.
"처음엔 제가 인형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난 모든 걸 해주는데, 정작 가만히 있는 건 내가 아니잖아? 정말 많은 감정을 삭였는데, 인형이라면 그럴 필요도 없잖아. 가만히 앉아 누릴 거 누리는 정다빈이야말로"
부쩍 드러난 태도에 짧게 숨을 고른 뒤.
"언니야말로 인형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그렇게 벌을 내릴 거라면 애초에 인형이라서 편하게 지냈던 거겠죠. 아, 다른 곳에서 힘들었다 해도. 적어도 내게는 그랬어요. 한때는 이해하려고, 부단히 생각했고 실제로 안타깝게 여겼고, 그런데 그게 정당한 건 아닐 테니까. 그러면"
그러면 내가 너무 불쌍해서.
나라도 동정해야겠어서.
"나 하나 품고 살기에도 벅차더라고요. 어린 시절에 상처받은 사람은 한평생 그 기억을 치유하면서 산대요. 행복했던 사람은 그걸 힘으로 살아간다던데."
저승은 열지 말아야 할,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같은 세상을 건드렸다.
겨우 욱여놓고 덮어둔, 어디서 꺼낼 수도 없던 학대의 흔적을 내밀어서.
묵혀둔 감정이 덮치기 딱 좋은 순간이었다.
"나도 저주인형 좀 사서 뭐라도 해볼 걸 그랬어. 그런데 그러다가 또 내가 책임져야 하면? 정신을 차린 건지, 놓은 건지 모를 시간 속에서 정말 고생했는데 왜!"
간단한 부탁.
아니, 그건 명령이었다.
거절하면 돌아오는 건 욕설과 폭력뿐.
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동생이 노예라도 된 양 부려먹던 그것.
절대 끊을 수 없을 것처럼 견고했던 고리.
"제가 얼마나 나빴냐면요. 가끔은, 학교폭력을 동경하기도 했어요."
어차피 피해자라면.
생판 모를 남한테 당했더라면 이해? 용서?
지금보다는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여섯 살 때부터 20년이 넘게, 겨우 받은 용돈부터, 억지로라도, 거짓으로라도 받아낸 돈도, 아르바이트로 벌어온 돈까지-"
전부 내어주어서.
돈에 대한 욕심이 있었더라면 달랐을까.
어린 시절, 고작 500원으로 시작한 빼앗음이 점차 커져도 말릴 수 없었다.
막지 못했다.
"숨겨서 겨우 모은 돈까지, 대학 등록금도. 생활비가 없어 쫄쫄 굶던 때도-"
단 한 번도 헤아려주지 않은 사람조차 언니라고.
되찾은 나라에서, 빼앗기는 기분을 알게 하는 세상에서.
만약 그 시대였다면, 자신은 결코 그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철없던 시절에, 맞는 게 두려워서 피했던 그때에, 나도 어려서. 같이 즐겼을지도 모르는 게"
온전히 크고 나서는 그게 더 힘들어서, 쉬이 도망칠 수가 없었다.
휘둘리던 때에, 그걸 방패로 자신도 그랬을까 봐.
"아니, 그랬어요. 언니한테 맞기 싫어서 시작했던 거짓말이 입에 붙었던 탓이라 해도, 편의주의적으로 이용했던 것도 사실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