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야파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 May 17. 2024

태양 마차를 훔친 디오니소스에게

2024_이야챌린지_031_이수민

임시 표지

취한 채로 몰던 신도 성좌라고 빛났던 게 그리워서 원망하다가도 간직하는 시간에서 좋은 만큼 괴로워지는 모순.

그 많은 추억 사이, 딱 한 번 얼룩졌는데 닦아내지 못하고 일어난 폭발이 이때까지 중에 가장 뜨거워서 그대로 타버린 끝에 그을린 것도 감내하고 참아냈어야 했던 걸까.


'너란 신을 좋아한 순간부터 각오했어야 한 거니?'


차라리 돈이 아까우면 좀 나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결국 다치는 건 마음이라, 함께해서 더 찬란했던 날을 미처 지키지도 못하고 구덩이에 처박은 게.


'기도했던 모든 날의 신전마저 무너뜨린 거야. 허락되지 않은 걸 탐해도 분별은 했어야지.'


아주 가끔, 그마저도 놓고 싶지 않은 게 꼭.

저 태양을 오르다 추락한 인간.

끝없는 열망을 품에 쥔, 나란 이카로스는 영영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떨어지는 순간에도 깨우치지 못한 순리를, 허망하고 외로운 낙하 속에서 다음을 희망하는-


'지독히도 멍청한 탓에, 구렁텅이에 빠진 채 오지 않을 시간만 그리다 부서지는 거지.'


깨달아야 하는 때에도, 헛된 이상만 좇는 것이었다.

그게 디오니소스를 사랑한 이카로스에게 어울리는 결말이라고.


'시선을 빼앗겨 잘못 보았다 해도, 그도 분명 사랑받아 마땅한 아들이었겠지. 아름다운 축복 속에서 지닌 재능으로 노래하고 적시며 즐기던 태는, 저 태양보다도 열렬했는데.'


아련하고도 미련한 마음으로 지푸라기를 잡아보는 손이 참 투박하다.

수민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젠 처분해야 할 때다.


"내가 버리는 거지만, 네가 버린 거야. 버리게 만든 거야."


떼어놓고 보고 싶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울컥.

푹 상자를 닫은 수민이 격하게 몸을 돌렸다.

정말이지 보낼 때다.

하지만 많이 응원하고 진심으로 좋아했던 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음주운전 아이돌. 그게 내 아이가 될 줄은 몰랐는데.'


막상 이 덕질을 시작하기 전에는, 막연했던 세상을 이렇게까지 낱낱이 알게 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이해할 수 없던, 그러고 싶지도 않았는데 직접 겪어보니 그 절절함을 느끼는 지금.


"대체 왜 그런 거냐고!"


당연히 하지 말았어야 할, 그 무책임한 행동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망쳐버릴 거였다면.


"한쪽에게만 소중했던 걸까."


좀 더 아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진 않을 텐데.

오매불망 걱정하는 팬들 마음 알면 적어도.


"한 번만 더 숙고해서 부르지."


그렇게 불러놓고, 정작 필요할 땐 외면하는 게 대체 무슨 모순인지.

혹 목이 아팠을까, 손이 다쳤을까, 쓸데없는 생각의 고리만 자꾸 이어지는 중이었다.

그만큼 힘든 이별이지만, 생각해 보면 가까웠던 것도 아닐까 싶어 훌쩍 멀어지는 이상한 끄트머리.

처량함만 단연 돋보이는 마지막이다.


"후우."


심란한 마음이 얼추 정리되자, 그제야 연신 울리던 폰에 눈길이 갔다.

기사가 뜨고 나서 사정을 아는 이들의 물음과 위로.


"모르겠다, 나도."


부은 눈으로 지새운 밤.

돌처럼 굳은 머리로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했다.

밉다가도 약해지고 싫다가도 붙잡게 되는.

진짜 미칠 노릇이다.

이 혼란함 속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10분 간격으로 발작하고 나니 체력도 닳은 지 오래였다.

침대로 이동한 수민이 몸을 눕혔다.


"깨고 나면 꿈일지도 몰라."


우리 애가 그럴 리 없어.

단단하게 부정했으나, 곧바로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기사가 올라왔는데, 커뮤니티가 난리 났는데.


"이럴 순 없다고, 진짜아"


다 뿜어낸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나올 구석이 있었는지 마른 볼이 다시 축축해졌다.

눈물이 지나간 자리가 까슬해도 잠들 때까지 계속해서 흘렀다.

잠든 이후에도 찔끔 나오는 눈물을 달고, 많은 걸 도려내고 싶은 심정으로 수렁에 들어가는 그녀였다.

3시간 후.

몸을 일으킨 수민은 멍한 얼굴로 비어있는 벽을 응시했다.

그제야 현실이 차츰 드리우기 시작했다.


"하하, 하아."


웃음과 한숨이 뒤섞이는 때.

꼬르륵.

입맛은 없지만 허언 속이 허전한 곳을 더욱 훑으니, 침대에서 내려온 수민은 주방으로 직행했다.


"떡볶이를 먹어야겠어."


탁탁.

애써 기분을 내려고 했으나, 파를 써는 손이 점차 느려졌다.

결국 칼을 내려둔 수민은 끓는 물을 바라보다 불을 껐다.

탓.

슬펐다, 서글펐다, 모든 게 허무해지기 충분했다.


"정말 많이 좋아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빠질 줄 모를 정도로 엄청"


훌쩍.

괜히 매운 눈을 부채질한 수민의 손이 다시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활활.

거센 화력으로 달아오르는 냄비 안으로 온갖 재료를 넣고는 뚜껑을 덮은 뒤.

그릇을 준비한 수민은 완성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래도 먹을 순 있구나."


잠시 후.

식탁으로 넘어온 그녀는 떡볶이 국물을 음미했다.

얼얼한 게 지금 처지와 비슷했지만, 주는 느낌은 달랐다.


"후."


평소처럼 확 풀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들끓었던 스트레스를 잠시 벗어나는 기분.

잘 익은 떡을 집어 짧게 식히고는 입에 넣자 더욱 와닿았다.


"맛있네."


오물오물.

한참을 식사한 후.

평소라면 영상을 돌려보고 있을 시간.

뭘 해야 할지 방황하던 끝에,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온 수민은 공원으로 향했다.


"노래는 죄가 없으니까."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듣는 수민은 흘러나오는 가사를 되새겼다.

예쁜 노랫말이 언제나처럼 가슴을 두드렸지만, 더욱 묵직한 울림으로 찾아왔다.

결국 플레이리스트에서 삭제하고는, 고개 숙인 그녀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흐릿하긴 했지만 기어코 떨어지는 소리가 알맞게 가려주었다.

홀로 남은 공원에서 한바탕 쏟아낸 뒤야, 다시 탈진한 정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하늘, 별거 없네.'


아마도 이카로스는 올라가는 시간보다 내려가는 시간을 더 편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깊이 갈망하다가 멀어지는 와중에 오히려 더 쉬이 안을 수 있어서, 끌어안은 품으로 간직한 뒤라-

도달하지 못해도 닿았을 그때에, 다른 걸 보았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가령 자신을 붙잡으려 애쓰는 아버지의 손길도, 그 간절함이 깃든 눈동자 속에 남은 자신을.


'녹을 거라 주의해도 철없던 날 지키려고 뻗은 손이 있는 곳으로'


그제야 아래로 가는 꿈을 꿨을 이카로스의 소원대로 도착한 지하세계는, 꼭 닮은 미궁이라 모으기 좋았다.

한껏 젖은 채로 이동하던 수민의 발길이 멈췄다.

지하철 속 설치된 광고판.

아직 내려가지 않은 화사한 미소 위로 응원의 메시지들이 가득했던 때.

자신의 것도 분명 그 사이에 있었더라지.


"한순간의 안일함?"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질렀는데, 정말 딱 한 번이었을까.

이전에도 자주 이랬는데, 이번에야 비로소 걸린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연말연시 올라오는 사건사고 중에,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평소에도 쉽게 봤으니까, 그 상태로 오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잡았던 그 시간에, 놓은 것들을 꼭 되새기면 좋겠다.


"네가 있어 고마웠던 순간들이 엉망이 되는 게 맞아?"


발길을 돌리는 수민은 여전히 홀딱 젖은 꼴이었다.

집과 회사 사이, 이 길이 너무 좋았다.

힘든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크게 걸린 그를 볼 때면 힘내서 출근하고, 또 돌아가서 기운낼 수 있었던 시간들.

그렇게 위로가 되었던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생길 때조차.


'네 안위를 걱정하는 꼴이 우스울 지경이야.'


전부 망친 사람이 뭐가 예쁘다고.

저주스럽고 절망스러운데, 그런데도.

매몰차게 버릴 수 있었다면 혹 같을까 싶어.

그만큼 진심이 가득했었던지라.

유난히 힘든 오늘.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수민에겐 차가운 바람도, 쓰라린 얼굴도 문제 되지 않았다.

그저.

커다랗게 뚫린 구멍에, 허물어지는 성전이 애틋하다가도 서럽고, 증오스러운 게 뒤집힌 속만 가소로울 뿐이었다.

한참을 걷다 자주 가는 편의점에 들른 수민이 소화제를 집었다.


"결제해 주세요."


창에 비치는 꼴이 아득해서 수건과 우산도 같이 구매한 그녀가 카드를 내밀었다.

이내 밖으로 나와 몸을 털고는 소화제를 넘긴 그녀.

쓰레기를 버린 뒤에야 우산을 펼친 수민은 다시 빗속을 걸었다.

이대로 집에 가고 싶진 않다.

그곳에서 행복했던 날들이 지금은 너무 쓰라렸기에.

정처 없이 주변을 돌던 수민의 눈에 미용실이 들어왔다.


"혹시 지금 되나요?"

"예약이 많아서-"


다른 곳에서도 같은 이유로 거절당한 그녀는 한참을 배회하다 찾은 곳으로 들어갔다.

여기에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마침 손님이 없었다.


"머리 자르시게요?"

"네."

"여기로 앉으시면 돼요."


무더기로 잘리는 머리에도 감흥은 없었다.

그냥 이전과는 달라져야 할 것 같은 그런 강박증에 시도한 단발은, 얼추 어울렸다.


"짧은 머리가 잘 맞으시네요."

"감사합니다."


빠르게 진행된 컷으로 새로이 맞이한 하늘은 요망했다.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우산을 지팡이 삼아 나아가는 길목이 낯설다.

충동적이었던 결정.

그래도 시원했다.


"다시"


알고 싶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많이 모으고 싶다.

그로 인해 많이 웃고 즐거웠지만, 그 하나에 휘둘린 탓에 심력 소모가 컸다.

여전히 떡볶이를 좋아하고, 음악을 듣고 싶으며, 또 내일은 출근해야 하니까.


"며칠 쉴까 싶었는데, 그럴 필요까진 없겠지."


뒤늦게 핸드폰을 찾자 연락은 더 늘어있었다.

답장을 누르는 손이 굼떴다.


-괜찮아.


정말 그렇지 않아도 기적처럼 괜찮을 수 있으면, 진짜로 나아지면 좋겠어서.

랜덤으로 노래를 돌린 그녀는 바랐다.

흥얼흥얼.

공원을 산책하다 보니, 흔들리던 꽃이 그 자리에서 버티는 것이 보였다.

정말 아프고 신기한 날이다.

찰칵.

이 여정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가장 좋을지도 모르겠다.

찰칵.

저 하늘마저 반기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에 젖은 인형놀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