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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May 21. 2024

현대인의 꾸준한 기부로부터

2024_이야챌린지_032_홍예지

임시 표지

세상이 변했다.

그것을 체감한 예지는 손뼉을 쳤다.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이윽고 키보드 위에 손을 내려놓은 그녀가 빠르게 내용을 넣었다.

그러자 화면에는 큼지막한 글씨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의 흡연 문화는 오로지 비흡연자 잘못!


왠지 기자의 윤리 의식이 의심되는 제목을 작성한 예지가 뿌듯하게 웃었다.

시민기자 생활 2년 차.

AI한테 아직 잡히지 않은, 뺏기지 않은 자리를 오늘도 지켜낸 기분을 만끽한 그녀의 손가락이 다시 춤을 추고 있었다.


-MZ 세대들에게 여전히 어필되는 '마라탕후루'로 유명한 옥석거리, 실감되는 세대 차이가 무색하게 담배꽁초와 가래침으로 가득한 뿌리 깊은 흡연 문화는 비흡연자들이 잘못한 결과다.


예지는 통감했다.

그동안 무지성으로 흡연자들을 욕했던 지난날의 과오.

그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글을 쓰는 손놀림이 더욱 박차를 가했다.

비흡연자인 자신을 책망하며 내용을 덧붙이는 그녀는 생각이 바뀐 결정적인 이유를 작성했다.


-잘 관리된 다른 거리와 비교해 유독 상태가 좋지 못한 옥석거리, 아무리 맛있는 마라탕과 탕후루를 판다고 해도 입맛마저 잃게 만들었던 길이라 유명세가 아까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비흡연자인 홍 모 씨(24)는 흡연자인 친구들을 보며 생각을 고쳤다. 그들에겐 당연한 처사고 문화였기에, 흡연 금지라는 팻말이 걸려 있어도 옥석거리에는 그곳(정자)만큼 많은 사람들이 멈춰서 필 공간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필요성이 있었다. 그 행위에 눈살 찌푸리는 것은 비흡연자인 자신뿐이라면 오히려 잘못한 것은 내가 아닐까? 홍 씨는 그동안 흡연자들이 비흡연자에게 눈총을 받지 않을 구역을 얻으려면 흡연자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불편함을 느끼는 게 흡연자가 아닌 비흡연자라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자신이 나서서 그들과 분리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까지 쓴 후, 자신의 글을 천천히 확인하는 예지.

오타를 고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옥석거리에 방문해서 느낀 것을 간결하게 정리한 그녀는 찍어온 사진을 첨부했다.


-따라서 홍 씨는 국민청원과 민원으로 흡연자들을 책망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안전하게 흡연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흡연이 가능한 구역을 만들고 늘려달라고 건의할 것을 결정했다. 또한 자전거 거리처럼 꽁초 통로를 만들어 꽁초들이 무사히 재떨이까지 도착할 수 있게 길목에 설치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예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기술의 발전으로 담배꽁초도 돈이 되는 세상이다.

꽁초 통로는 분명 획기적일 것이라 자찬한 그녀의 입이 작게 씰룩였다.


"나 이러다 노벨상 받는 거 아니야?"


비흡연자들을 적으로 돌렸지만, 흡연자들을 적극 지지해 인망을 얻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한 예지가 시원하게 김칫국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신나서 다시 타자를 눌렀다.


-그동안 인터넷에서 무고하게 비난을 받은 흡연자들의 인권을 보장할 때가 온 것이다. 개인 재떨이의 편의성은 떨어지고, 흡연자들을 위한 공간은 협소한데도 담배 사업을 주관하는 정부는 무심했고 그에 따른 부당함은 오직 흡연자들의 몫이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으니 최악의 흡연 문화가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었다는 것을 결코 좌시해서는 안된다. 미래와 아이를 위해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다던 주장이 거짓이 아니라면 흡연 문화 개선에 앞장서는 것은 정부와 비흡연자가 되어야 한다. 담배 가격은 한 갑 당 4,500원이고 거기에는 세금이 크게 책정되어 있다. 그들은 재만 태운 게 아니라 나라 발전 자금도 열심히 보태고 있었는데, 돌아오는 것이 지탄이라면 누가 도의를 지키고 싶겠는가! 있는 정마저 떨굴 정도로 흡연자들을 향한 욕설과 폭언은 어디든 넘쳐나는 꽁초처럼 많았다. 이제는 우리가 먼저 발 벗고 나서 그들이 미처 누리지 못한 권리를 지켜줄 때였다.


이제 보니 기사가 아닌 느낌도 받았지만, 시민기자로서 항상 자유롭게 세상을 보고 받아들이며 전달한 예지는 개의치 않았다.

그러니 대체로 사설로서 활동한 까닭이다.


"후우, 이 정도면 반성문으로 충분하겠지?"


어릴 때부터 흡연자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특히 고등학생 때 용돈이 필요해서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또래의 애들이 같은 이유로 일하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걸 넘어서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도 놀랐다.

미성년자가 담배를 구매하는 게 불가한데도 어디서 구해왔는지.

휴게 시간에 쉬러 가기 바쁜 자신과 달리 흡연장으로 향하는 동료들이 낯설었다.


"일이 정말 힘들 때는 이해가 되긴 했지만. 내 인생이 너무 달았던 걸까. 아니면 그 친구들이 썼던 걸까."


지금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 알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마냥 나쁘게 보고 싶진 않았다.

이미 그런 시선들이 많고, 그들로 인해 가게를 닫아야 하는 안타까운 사장들도 있었지만 자신이 보탠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 말이다.


"요즘은 그나마 청소년용 담배라도 나오지. 옛날은 대체제도 없으니 영악해질 수밖에 없었겠지."


때문에 이 문제도 영업장 사장들이 합세해서 미성년자들이 펴도 되는 담배를 일찍이 만들었다면 곤란한 상황은 닥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손해 보기 싫으면 직접 나서는 게 마땅한 사회가 되었다.


"어쩌면 그게 어른의 책임이었을지도 몰라. 하지 말라고 엄격히 금하는 것보단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거."


결국 그 틈을 비집고 할 사람은 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도 가득하다.

다 이 공식이 적용되지 않을뿐더러, 혹 이것을 통해서도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쉽게 해결하고 고쳐놓는 게 가능했다면 자신도 이것저것 건드려서 망가진 걸 수리하는 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더 부서져 있지는 않을까.


"이거 올리면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다행스럽고 불행스럽게도 자신은 전혀 유명하지 않았다.

방구석 시민기자에게 그 정도 관심을 주기엔 세상은 콘텐츠로 넘쳐났다.

특히 튜브로 유영하는 세계로 진입한 이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이곳은 비교적 한산했다.

조용한 곳에서 잔잔하게 퍼지더라도 그 끝에는 닿지 않을 게 분명했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절실히 느낀 부분이라 걱정은 다소 사라졌다.


"언젠가 주목받더라도 난 없겠지. 혹 있더라도 까먹었을 걸."


실제로 쓴 논설 중 일부는 기억에서 지워졌다.

가끔 찾아봐야 생각나지, 평소에는 잊고 있어서 그럴 때에도 놀람을 금치 못한다.


'내가 이런 것도 썼다고?'


생각하다 보면 쓴 기억이 나지만, 그러기 전에는 정말 초면인 것처럼 낯설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쓴 것 역시 잊힐 게 뻔했다.


'그래도 당분간은 뇌리에 박히겠지.'


어딜 가도 보이는 꽁초들은 그렇다.

이 생각을 더 견고하고 확고히 만들어줄 테니, 어쩌면 선택하지 않은 자의 의무일지도 몰랐다.


"하루 한 갑씩 사면 한 달에 13만 원가량인데, 그걸 아꼈으니 이 정도 도움은 충분한 기부 앤 테이크 아닐까? 아니, 기브."


순간 잘못 나온 발음에 서둘러 정정한 예지가 기침을 뱉었다.

얼마 전부터 시작된 담배 냄새.

그제야 베란다 문을 열어놓은 것을 기억한 예지는 다시 환기되는 방 안에서 새겼다.


'흡연자들 다 죽었으면.'


습관처럼 한 생각에 퍼뜩 놀란 예지가 생각을 바꾸려고 애썼다.

꽁꽁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니, 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아래층에 사는 자신의 베란다 벽 위에 냄새를 차단할 수 있는 막 같은 벽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고 다짐한 예지는 이런 것도 특수 제작이 되는지 알아볼 참이었다.

찍.

베란다를 두고 넘어온 가래침에 아득해지는 이성을 겨우 붙잡고 커튼을 친 예지가 실성하듯 웃었다.


"층간소음보단 나은 거잖아-"


지난 거주자를 떠올린 그녀가 빠르게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생수를 들이켰다.

올해는 꼭 이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눈이 시리게 빛났다.

참 평화로운 주말의 낮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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