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2025년, 올성에 위치한 도인고등학교에서 최초로 청소년 전문가가 담임이 되는 제도를 시행했다.
출근 준비를 마친 시현이 밖으로 나왔다.
도인고에서 2학년 담임을 맡았다는 사실이 떠오른 그녀는 긴장을 풀기 위해 약국을 찾았다.
"하, 지금이야 고2지. 완전 중2병을 가질 나이의 애들이라 걱정되네."
몇 해 전부터 교과 과정이 변경되어 입학 나이가 빨라지고, 그로 인해 실제 고등학교 2학년은 만 14세의 나이에 해당했다.
그렇기에 더욱 불안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녀는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상 평범한 친구들이 더 많을 것임을 알지만 어떤 학생을 만나도 멘탈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그녀가 마주할 상상 속 학생들은 하나같이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였다.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든 시현이 걸음을 좀 더 빨리하며 못된 생각을 지워냈다.
"만나기도 전에 색안경 끼면 안 되지! 어떤 애들이라도 담임으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잘 이끌어줄 거라고!"
혼자 결심을 완곡히 다진 후, 당당하게 정문을 들어온 그녀가 앞으로 자신이 일할 도인고등학교를 바라봤다.
"잘하자. 방시현."
자신에 잔뜩 기합을 넣고는 전담실로 향한 그녀가 문을 열었다.
안에는 이미 도착한 선생님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방시현 선생님이죠?"
"네. 방시현입니다."
먼저 온 사람에게 자리를 안내받은 시현이 책상에 가방을 내려두고 자신을 소개했다.
"어제 업무 매뉴얼 전달받았죠?"
"네. 숙지했습니다~"
"그래요. 오늘 아침 조회 시간 맞춰서 잘 들어가면 되고, 시현 씨까지 마지막으로 다 왔으니까 전 이만 가볼게요."
아직 공석인 전담부장 자리를 대신해 찾아온 교무부장이 전담실을 나갔다.
부장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자 옆자리의 선생님이 의자를 끌고 시현에게 다가왔다.
"원래 교무실에서 처리했던 걸 전담실로 다 이전하느라 어수선하죠?"
시현의 또래로 보이는 여자는 시현과 마찬가지로 한 반의 담임으로 부임한 청소년 심리 전문가였다.
"송주연이에요. 잘 부탁해요."
"저도 잘 부탁드려요."
마주 인사한 시현이 자리에 앉으며 책상을 확인했다.
2학년 4반의 담임이 된 그녀는 책상에 놓인 출석부를 열어 반 학생들의 이름을 훑어봤다.
이내 노트북에서 출결 관리 시스템을 파악한 그녀는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는 선생님들을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시현 쌤도 떨리죠?"
"그렇네요. 오다가 청심환을 먹었는데도 긴장되네요."
"어머. 그것까지 챙겨 먹었어요? 아, 난 7반이라 이쪽으로 갈게요."
주연과 복도에서 갈라진 시현은 문 앞에서 옷차림을 한 번 더 정리했다.
탁탁.
드르륵.
문이 열리자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다.
새 학기라 아직 어색함이 감도는 교실 안으로 시현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교탁에 서서 20명 남짓의 학생들을 마주한 그녀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4반 담임을 맡게 된, 방시현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과목 담당 선생님이 담임이었을 텐데, 올해부터는 따로 과목은 맡고 있지 않은 청소년 관련 담당을 하고 있는 제가 이렇게 담임으로 오게 됐어요."
"와아아- 안녕하세요."
시현의 설명이 끝나자 아이들이 환호성과 함께 반가움을 표현했다.
다행히 밝은 반 분위기에 마음을 놓은 시현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서로 이번 학기는 처음이지만, 우리 4반 학생들은 이 학교에서 저보다 1년 먼저 있었으니까 많이 가르쳐 주면 좋겠어요~ 학기 첫날이어도 정상 수업을 진행하니까 여기 걸어둔 시간표 참조해서 수업 준비 잘하고, 임시 반장은 2교시 담임 시간에 와서 정할 테니까 지금은 인사를 생략할게요~"
"네!"
"담임 선생님은 교무실이 아니라 전담실에 있으니까요. 할 망이 있거나 물을 게 있다면 전담실로 오세요~"
풋풋한 기운이 묻어나는 교실에서 나온 시현이 생각보다 좋은 스타트에 미소를 지으며 전담실로 돌아갔다.
"시현 쌤, 어땠어요?"
"일단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2교시 시간에 더 살펴봐야겠지만요~"
"우린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전적으로 보조하는 역할이니까 잘해보자고요~"
응원을 들은 시현은 반 학생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2교시가 더욱 기다려졌다.
학생들을 더욱 집중 관리할 수 있는 그녀는 그동안 과목을 함께 병행해 담임이 된 이들보다는 학생들과 그 학교생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이 시기가 중요한 때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계획인 시현이었다.
"뭐, 관심이 간섭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적정선을 지키며 다가가야겠지만."
2교시에 전달해야 할 내용을 정리하며 1시간을 보낸 시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그녀는 교사용 화장실로 직행했다.
"전담실에 사람들 봤어요? 그동안 우리가 했던 일을 맡아주는 게 고맙긴 하지만 솔직히 이제 와서 뭔가 뺏기는 기분도 드네요."
"하긴, 수영 쌤은 작년 담임이었지? 앞으론 과목 맡는 우리가 담임을 병행할 일이 없으니까 업무 줄고 좋지, 뭐~"
문 너머로 들리는 교무실 선생님들의 대화에 잠시 멈칫한 시현이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시현이 먼저 밝게 인사하자 그들도 마주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도 참 운도 좋지. 도인고에 떡하니 붙고 말이야."
연신 비누로 손을 문지른 시현이 수도를 틀었다.
쏴아아.
손에 물을 묻힌 그녀가 깨끗이 비눗물을 닦아냈다.
"저출산 시대에, 전망 낮은 직업이라고 말들 많았지만. 오히려 인구 절벽이 다가오니까 있는 학생들에게 더욱 신경 써주는 환경을 마련한 게 아닐까?"
복도로 나온 그녀가 좀 더 사명감을 가지고 4반으로 이동했다.
"일단 임시 반장을 뽑아야 하는데, 지원이나 추천 있을까?"
어수선한 반을 정리한 그녀는 아침에 말한 사항을 시작으로 교실의 중대사를 학생들과 함께 정해나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학교생활만큼 규칙적인 생활이 없다고 봐. 사실 이게 웬만한 사람은 잘 맞을 테지만 스스로 느끼기에 그러면 더 좋겠지?"
"지각하면 벌금 있어요?"
"그건 학급회의에서 정하는 게 좋을 것 같고~ 선생님 얘기는 주간 에너지 파악을 하기 좋은 시기가 지금이란 거야."
"주간 에너지 파악이요?"
"응. 사람마다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양이 다 다를 텐데, 그게 하루에 얼마나 유지되고 언제 에너지가 잘 사용될지 주 단위로 알아보는 거야."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가 시현의 입에서 나오자 학생들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화요일에 에너지가 막 뿜어져 나와서 그때 주로 필요한 활동이나 하고 싶은 걸 몰아서 하는 편이었어. 어차피 해야 할 일, 능률이 높을 때 하면 더 잘 되기 마련이잖아? 그걸 나름 간파하는 거지."
"그게 쉽나요?"
"데이터가 일정량 쌓이면? 그래서 꾸준히 기록해두는 게 좋지. 아, 강요는 아니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동일한 한편으론 상대적이야. 그래서 좀 더 전략적으로, 효율적으로 쓰고 싶다면 한 번쯤 고려해 보는 게 좋지 않겠니? 나중에 스케줄이 비규칙적일 때 하게 되면 구분하기 어렵지만, 지금은 딱 규칙적인 생활을 보내잖아?"
말을 멈춘 시현이 좌우간 학생들을 쭉 둘러봤다.
"이걸 파악하게 된다면 선생님이 너희 에너지 타임에 맞춰서 수업도 빼줄 수 있어. 그 시간에 수업 듣는 것보다 더 너희에게 필요하거나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말이지~"
"와, 그거 어떻게 하면 돼요?"
"선생님이 쓰는 양식이 있는데, 종례 시간에 예시로 나눠줄게~ 그거 보고 한번 자기한테 맞게끔 변형해서 사용해 봐."
몇몇 학생들이 받을지, 말지 고민하며 서로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잠시 그들이 떠드는 것을 지켜보다 금방 조용히 시킨 시현이 무언가를 교탁에 올려뒀다.
"선생님은 학창 시절에 아침을 안 먹고 다녔어. 특히 2교시, 3교시가 힘들어서 참을 수 없었거든? 보니까 도인고는 조식 신청이 있어서 빵이나 간편식 제공을 하던데, 그래도 소화가 빠른 친구들은 버티기 힘들겠지?"
"간식이에요?"
"에너지바야. 여기에 둘 테니까 이곳에 이름이랑 시간 써두고 꺼내 먹으면 돼~"
파일 하나와 상자를 들고 창가 쪽으로 움직인 시현이 그것들을 서랍장 위에 잘 비치해뒀다.
"우리 예상 수명이 140이야. 선생님은 수명의 연장이 곧 노동력 기간의 연장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우리가 이 준비 기간을 잘 보내려면 괜히 굶지 말고 잘 먹어야 해~"
시현이 거기까지 말하자 때마침 종이 울렸다.
수업을 마친 그녀는 에너지바에 열광하는 몇몇 친구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밖으로 나왔다.
"어, 여기 뭔가 적혀있다."
"한 번에 많이 먹지 말래. 수업 시간에도 허락 맡은 게 아니라면 먹지 말래."
"이건 뭐야? 판자?"
"수업 시간에 배고파서 집중 못 하면 이거 흔들래. 선생님들이 허락해 주면 복도에서 먹고 오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