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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을 위한 시험

2023_이야챌린지_036

by 이야
임시 표지

"승현쌤, 이번에 방과후 개설할 거야?"


교무회의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가는 길.

승현은 친근하게 물어오는 수현을 돌아봤다.


​"네. 해볼 생각이에요."

"확실히 우리가 담임을 안 맡으니까 여유가 좀 있구나?"

"그렇죠. 작년에도 생각은 했는데, 이제야 하네요."

"애들이 좋아하겠어~ 승현쌤은 인기 많잖아~"

"하하. 그런가요?"


수연의 말에 멋쩍게 웃은 승현이 교무실 문을 열었다.

대화는 그대로 끝났다.

자리에 앉은 그는 도착한 안내문들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다음날 학교.


"수아야, 이번에 승현쌤이 방과후 열었어~"

"나도 아까 확인했어. 비교과 학습이라던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잘생긴 승현쌤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는 기회인데~"


무심한 수아와는 달리 기대감 섞인 희연의 눈이 여느 때보다 반짝였다.


"그래, 너처럼 생각하는 애들이 많아서 정원 다 차겠네."

"아. 어떻게든 듣고 말겠어!"

"잘해봐~ 나는 비교과라서 안 들을래. 왠지 책 읽으라고 할 것 같아."

"하긴, 그게 승현쌤 단골 멘트긴 하지. 아무튼 내가 후기 남겨줄게!"


자신은 꼭 들을 거라며 확신하는 희연의 모습을 재밌게 본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난 정원이 승현쌤보다 적은데도 미달이네~"

"반이 여러 개라 그런가 봐요."


수업 하나를 개설하지 못한 수연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시무룩한 수연을 위로한 승현은 방과후 수업에 필요한 물건들을 확인했다.

드르륵.

교실에 도착한 그가 문을 열자 학생들이 일제히 승현을 바라봤다.

교탁에 서 교실을 둘러본 승현은 여학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문학과 자유;비교과 학습'을 맡은 추승현입니다. 여기서 주로 다룰 교재는 이거예요."


승현이 허리를 숙여 들고 온 상자에서 책을 꺼냈다.

몇몇 학생들은 그가 교탁 위로 묵직하게 내려둔 책을 흥미롭게 살펴봤다.


"선생님이 쓴 장편소설인데, 이번에 선생님이 준비한 수업과 잘 맞을 것 같아서 이걸로 정했어요."


설명을 마친 승현이 학생들에게 자신의 책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딱 인원수에 맞게 준비한 교재의 배분이 끝나자 앞으로 돌아온 승현이 분필을 들었다.

서걱서걱. 칠판에 무언가를 적은 그가 다시 학생들을 돌아봤다.


"뒤져서 나오면 맞는다?"


한 학생이 승현이 적은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일순 친한 친구끼리 앉은 곳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자. 보통 이 말을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요?"

"어, 일진이 돈 뺏을 때요?"

"학창 시절 체격이 왜소했던 저는 늘 골목에서 시달렸어요. 그러다 생각했죠."


승현이 상자와 함께 가져온 파일에서 종이를 꺼냈다.


"그게 뭐예요?"


한 학생이 펄럭이는 종이를 보며 물었다.

승현이 자신 있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문제지에요. 오픈북 시험을 위한 문제지. 선생님은 대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됐어요. 뒤져서 나오면 맞을 수 있는 합법적인 시간을."


아까보다 웅성이는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제부터 진정한 일진이 되는 겁니다."


승현의 선언에 일진이 된 그들은 문제지를 받고는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오면 맞을 테니, 그의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생각과는 전혀 다른 수업에 학생들이 의아한 얼굴로 책과 문제지 사이를 여러 차례 오갔다.

사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만족한 얼굴로 학생들의 통수를 바라본 승현이 물을 마셨다.


"다음 수업에선 15분간 도서관 투어를 할 거예요. 거기서 책을 대여해서 각자 일진을 맞이할 준비를 할 겁니다."

"예?"

"직접 오픈북 시험에서 풀 문제를 낸다는 뜻이에요. 이제 5분 뒤에 걷을게요~"


승현의 말에 아이들의 속도가 이전보다 빨라졌다.

문제지를 거둔 승현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는 조언을 건넨 뒤, 수업을 마쳤다.


"다혜야, 수업 어땠어?"


가방에 책을 챙긴 희연은 같이 수업을 듣게 된 다혜에게 물었다.


"언어유희인가?"

"얘들아, 방과후 듣고 이제 가는 거니?"

"네~"


복도를 걷던 둘은 담임인 시현에게 인사를 했다.


"국어 방과후라고 했나?"

"맞아요. 아, 쌤. 저희 이제 일진이에요!"

"응?"

"뒤져서 나오면 맞을 거라서요!"


희연이 개구장한 얼굴로 말한 다음, 다혜를 이끌고 복도를 떠났다.

희연의 말에 의문을 띄운 시현이 교무실 앞에서 상자를 정리하고 있는 승현을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전담실에 들어가려던 시현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승현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희 반 애들이 일진이 됐다던데, 혹시 아시나요?"

"네. 앞으로 도인고등학교에 많아질 겁니다."


승현의 선전포고를 들은 시현이 더 따질 틈도 없이 그가 박스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시현쌤, 무슨 고민 있어?"

"아. 별 건 아니고, 혹시 수업 참관이요. 방과후 수업도 되나요?"

"방과후도 이제 3주차라 되지 않을까? 수업 시작하고 3주 뒤엔 참관할 수 있게 해주잖아. 왜 듣고 싶은 수업 있어?"

"예. 한 번 들어보려고요."


표정이 풀린 시현의 얼굴을 의아하게 바라본 주연이 굳이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연과의 대화로 마음을 정리한 시현은 곧장 승현의 방과후를 들으러 복도로 나왔다.


"오늘 수업일 아닌가?"


교실에 도착해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본 시현은 비어있는 교실을 보며 중얼거렸다.


"쌤, 여기서 뭐해요?"

"아. 희연이구나. 참관하려고~"

"그러면 컴퓨터실로 가야 해요. 오늘은 거기서 진행한대요!"


시현은 교실에서 가방을 챙겨 나온 희연과 함께 컴퓨터실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다혜한테 문자 왔어요. 제가 오늘 상태가 안 좋아서 보건실 다녀왔거든요."

"지금은 괜찮고?"

"네~ 불편해도 승현쌤 수업을 놓칠 순 없죠!"


걱정스레 묻는 시현의 모습에 기운찬 대답을 한 희연이 컴퓨터실로 들어갔다.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온 시현도 뒷자리에 앉아 승현을 바라봤다.


"일진 능력 검증?"


칠판에 적힌 문장을 읽은 시현이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요즘은 어릴 때부터 사용해서 그런지, 이걸 다루는 능력이 다들 뛰어납니다."


컴퓨터를 가리키고 있는 승현의 손가락을 따라 모니터를 확인한 시현이었다.


"오늘은 검색형 시험을 볼 거예요."

"검색형 시험이요?"

"네. 이것도 오픈북과 마찬가지죠. 이번에는 정보의 바다를 뒤질 거니까 수학여행 왔다고 생각해요."


수학여행을 떠난 일진들은 승현이 띄어준 링크를 따라 사이트에 접속했다.

시현의 손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진짜 시험지야?"


사이트에 들어간 시현이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이거 창 내리면 부정행위 나오는데요?"

"스마트하게 갈 수 있죠."


톡톡. 스마트폰을 흔든 승현의 의도를 알아차린 일진들이 자신의 폰을 꺼냈다.


"정말 검색해서 풀라는 거야?"


말문이 막히는 한편, 어느새 폰으로 검색하고 있는 시현도 덩달아 일진이 되어가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자신의 시험 점수를 확인한 시현은 학생들이 다 나가고 뒷정리를 하는 승현에게 다가갔다.


"3주차여서 참관하러 왔어요."

"네. 괜찮았나요?"

"진짜 뒤지니까 나와서 맞더라고요."


시현이 폰으로 찍어둔 사진을 보여줬다.

그것을 확인한 승현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일진이 되는 거, 어렵지 않죠. 시험이 뒤따르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러게요."

"이제 교내 대회도 열 생각이에요. 일진들이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게요."

"문제가 아주 어렵겠네요."


그를 도와 컴퓨터실을 정리한 시현이 답했다.


"왜 안 들어가?"


컴퓨터 끄는 걸 잊고 나온 다혜가 움직이지 않자 희연이 물었다.


"아, 선생님이 꺼주셨어."

"그래? 그러면 빨리 가자~ 이제 한계야."


아랫배를 문지르는 희연을 따라 내려가던 다혜가 생각했다.


'추방커플이라.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네.'


선생님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그녀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학교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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