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표지올성역 바깥으로 나온 사람들이 역 외부에 마련된 드론 설치대로 향했다.
삑.
단말기에 신분증을 찍자, 불빛이 들어왔다.
위이잉.
정상 작동한 드론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사람들의 머리 위를 배회하던 드론은 인식된 대상이 걷자 그를 따라갔다.
"시원하다~"
냉방 시스템을 가동한 드론.
열 감지를 통해 바짝 붙어오니, 더울 수가 없었다.
이제는 부채와 손풍기가 필요 없는 시기.
가만히 서서 쾌적한 바람을 쐬는 사람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바뀌지 않는 신호등에도 불쾌하지 않은 여름.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횡단보도를 건넌 뒤, 사람들의 표정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몇몇은 가방에서 하나둘 더위 대비용 물품을 꺼낸다.
드론의 사정거리가 끝나자 여전히 더운 여름날이었다.
잠시 후.
최대 거리까지 다녀온 드론이 본래 자리로 복귀했다.
역 외부에는 총 5대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다.
이것은 정부에서 지원한 기계로,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하는 기본 드론이었다.
간혹 버스정류장 한쪽에 마련된 것은 대다수가 기업의 소유라 광고 기능이 탑재되어 있기도 했다.
흘러나오는 테마곡을 따라 부르던 예진은 사람들이 하나둘 다가오자 입을 닫았다.
삑.
잠시 후, 버스에 탑승한 예진이 자리에 앉았다.
"흐아, 더워죽겠다아"
배터리 나간 손풍기.
약한 에어컨 바람.
쉽지 않은 이동이었다.
"아니. 왜 아직도 드론 없음?"
버스에서 내려 한참 걸어가던 예진이 작게 투덜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얄미웠다.
그렇다.
지하철역과 버스정거장에 마련된 드론은 하나같이 그녀의 상상에 불과했다.
"어떻게 개발하는 거야."
문과인 그녀는 이마를 문질렀다.
역시 알 수가 없다.
뒤늦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예진.
"이렇게 더워죽겠는데, 실내에만 에어컨을 두면 뭐해! 어떻게 걸어 다니라고!"
예진의 귀가에 반응한 사람은, 동생이었다.
"그러니까 차가 있어야 하는 거야."
"걔네 때문에 더 더운 거 아니야?"
"그것뿐이겠어? 우리가 집에서 쓰는 에어컨도 마찬가지거든?"
동생이 지적하자 입을 다문 예진이 곧장 냉장고를 열었다.
"하, 살 것 같다."
시원한 물을 들이켠 그녀가 에어컨 리모컨을 찾았다.
"여기."
"더 내려야 해. 더워서 죽겠음~ 이번 여름, 진짜 끔찍하다."
소파에 앉자 그대로 녹아내리는 예진.
그 모습을 보던 동생은 머리를 흔들며 방으로 들어갔다.
30분 후.
예진이 저녁 먹을 준비를 마쳤다.
똑똑.
"만년 지망생씨, 식사하시죠?"
"라면이네."
"어. 안 먹어?"
"먹을게. 고마워."
방에 들어온 예진이 쟁반을 내밀었다.
"네가 지금 이야모드에 글 올리고 있다고 했나?"
"응. 읽게?"
"내가 준 소재로도 썼다며. 괜히 확인하고 싶지 않아."
"그래. 그래도 읽게 되면 나중에 이야릴레이에서 읽어도 되고."
"갈 수는 있고?"
탁한 물음에 동생은 목이 메었는지, 콜라를 들이켰다.
"일단 계속 이야챌린지에서 쓰다 보면 뭐."
"그래. 잘해봐."
전부터 꾸준히 준비하는 동생.
그것을 아는 예진은 응원하고는 돌아섰다.
더위를 물리기 위해선 찬물 샤워가 간절했다.
예진이 상쾌함을 느낄 무렵.
해인은 레스토랑에 있었다.
"형, 여기 맛있다~"
맑은 미소를 짓는 동생.
그것을 바라보는 태인의 눈은 복잡했지만, 입가는 덩달아 올라갔다.
반면 해인은 점차 굳어갔다.
'대학교가 정말 힘들었나? 입가에 주름이…'
고된 얼굴을 보니 건강이 심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온 태인도 동생의 심각한 표정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직 고민하는 건가.'
하루 종일 같이 있었지만, 가끔씩 보이는 눈빛이 마음에 걸린 태인은 말을 아꼈다.
"형. 힘들어서 그렇지?"
마치 뭘 아는 듯한 물음에 태인의 걸음이 멈췄다.
"대학 생활이 많이 힘든 거 알았으면 형 원망 안 했을 거야. 나, 형이 대학 가서 멀어진 줄 알고 걱정하는 한편 많이 서운했거든."
"그게 무슨"
와락.
동생의 팔이 몸을 감쌌다.
갑작스럽지만 포근함이 싫지 않았다.
"왜 이렇게 늙었어!"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물론 지금의 자신과 18살이나 차이 난다지만, 자신이 보기엔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태인의 손이 등을 꼬집었다.
"아악."
"그래. 형이 일찍 늙었다. 이제 외국 가서 편히 살 생각이니까 어디로 가를 지나 잘 생각해."
"으앗. 형, 아파아파."
비록 등은 따가웠지만, 함께 걷는 길이 좋았다.
이윽고 집이 눈에 들어왔다.
태인은 익숙지 않은 외관을 보며 목을 문질렀다.
잠시 후, 집안.
"형, 먼저 씻어~"
욕실로 들어온 태인이 거울을 응시했다.
"늙었네. 용케도 알아봤네."
그제야 인정한 손이 물을 틀었다.
1시간 뒤.
"그럼 대학교는 자퇴한 거야?"
태인 다음으로 씻고 나온 해인이 물었다.
"그렇지. 해외로 갈 거니까."
"와. 형이 간 대학은 명문대인데, 대박."
"가서 자라. 가기 전까지는 학교 다니겠다며."
해인의 순수한 답문에 머쓱해진 태인이 그를 방으로 밀어 넣었다.
"알았어~ 잘게~"
싱거운 태도에도 웃음을 머금은 해인이 침대에 누웠다.
정말 뜻밖의 하루였다.
한편, 다음날 아침.
"으아, 지각이다!"
밖으로 나온 예진이 서둘렀다.
위이잉.
풀충전한 바람과 함께 달린 그녀는 안도의 숨을 뱉었다.
"딱 맞춰 들어가겠네."
다행히 정시에 도착한 예진.
"어우, 예진씨 엄청 더웠나 보다."
"그러게요. 아침인데도 이렇네요."
"이번 여름이 진짜 최악이네, 그래."
"이번 여름만 그러면 다행이죠. 앞으로 여름이 계속 이러면 저 못 살 것 같아요."
책상 위 미니 선풍기를 튼 예진도 앓는 소리로 답했다.
"그러게 말이야. 업무 시작하자고."
부장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동료의 말.
그것으로 사적인 대화를 마친 예진은 업무에 집중했다.
"으. 곧 점심이네. 아, 예진씨 오늘 볼일 있다고 했나?"
"네. AS센터에 다녀오려고요."
"그래~ 오늘은 따로 먹겠네."
점심시간.
AS센터에 도착한 예진이 물었다.
"지금 맡기면 저녁에 찾을 수 있나요?"
"네~ 저녁 시간에 맞춰 오시면 됩니다."
용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예진은 신호등에서 걸음을 멈췄다.
"앗. 놓쳤네."
마침 바뀐 신호.
아쉽긴 하지만,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핸드폰이 없으니까 상상기를 더 가동할 수 있겠네.'
상상기.
형태는 없지만, 게임기 같은 느낌으로 상상할 때 주로 사용하는 예진의 언어였다.
허전한 주머니 대신 머릿속에 상상기를 꺼내든 예진.
한창 상상하다 보니 금방 신호가 돌아왔다.
"엇?"
반대편 도보에 도착한 그녀는 그대로 넘어졌다.
"죄송합니다."
예진은 자신과 부딪힌 중년 남성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다치셨습니까?"
"아. 손바닥이 좀 까졌네요."
비어있는 손이 그대로 도보와 마찰하면서 까진 것을 본 예진은 그제야 쓰라리기 시작했다.
"병원으로 가시겠습니까?"
"아뇨. 약국이면 될 것 같은데요."
"그럼, 약국으로."
소독약과 반창고를 산 태인은 자신의 부주의로 부딪혀 다친 예진을 데리고 카페로 향했다.
"아, 굳이 카페까지 갈 필요는 없는데."
수습을 끝낸 예진은 과할 정도로 미안해하는 태인에게 말했다.
"그래도 저 때문에 다치셨는데, 커피 한 잔 사겠습니다."
태인의 제안을 거절하던 그녀는 그의 완곡한 태도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 안.
예진을 앉혀두고 주문하러 간 태인은 그녀가 말한 메뉴와 함께 디저트류를 몇 가지 더 사 왔다.
"아니, 포장까지…"
커피만 생각했던 예진은 디저트 포장을 보자 괜찮다고 손을 저었지만, 이번에도 태인은 완강했다.
"네, 잘 먹겠습니다."
끝내 디저트와 커피를 받은 그녀는 잠시 쉬었다 가기로 결정했다.
"바쁘시면 먼저 가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동생 기다리는 중이라 할 일 없습니다."
"네."
태인은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근처로 왔다가 과거의 자신을 발견하고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중이었다.
그러다 부딪히게 된 예진과 카페에 들어온 그는 이맘때쯤 자신이 이런 곳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했다.
"대학생들이 많네요."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예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근처에 학교가 있습니다. 저도 거기, 졸업생이고."
뻘쭘해하는 예진을 눈치챈 태인이 편한 어투로 답했다.
"아하, 그러시구나. 혹시 전공이?"
"이과 계열이었습니다."
그의 말은 전혀 거짓이 아니었지만, 시기가 달랐다.
태인은 그녀의 질문에 대략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과? 그러면 말이에요."
어느새 가까워진 예진은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다.
문과의 상상력이 폭발하는 때였다.
"제가 너무 더워서 그런 상상을 했거든요~"
"예, 확실히 흥미로운 생각이네요. 정말 투자하고 싶을 정도로."
그녀와 마찬가지로 더운 것을 싫어하는 태인의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정말요? 와~ 진짜 그런 게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생기면 좋겠어요!"
"아마 언젠가는 나올 겁니다."
"어머.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제가 이제 들어가 봐야 해서! 저 이제 하나도 안 아파요~ 그러니까 너무 마음 쓰지 않으셔도 돼요! 디저트 잘 먹을게요~"
활기찬 얼굴로 말하는 예진에게서 동생이 떠오른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예진이 떠나고도 한참 앉아있던 태인은 그동안 보지 못한 세상을 새삼스레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