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야파티

어느 날의 데자뷰

2023_이야챌린지_038

by 이야
임시 표지

"그러니까 11월 9일에 테러가 일어날 거라고요?"


​전화를 받은 민아가 상대의 말에 반문했다.

그에 상대는 소심한 대답을 전해왔다.

전화기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 민아는 이내 침착하게 대응했다.


​"예. 전달해 주신 내용은 상부에 전하겠습니다. 심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리 장난 전화 같아도 티를 낼 수는 없었다.

​통화를 끊은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민아 씨, 방금 무슨 전화야?"

"중학생 애들이 11월에 테러를 할 거라는 예언의 통화라고 할까요?"

"장난 전화네."

"그쵸. 그래도 기록은 해둬야겠어요."


그날 오후.

일을 마치고 나온 민아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위해 라운지로 향했다.

친구들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서로 근황을 전하던 중, 오늘 있었던 일도 자연스레 화두에 올랐다.


"더워서 미쳤나 본데?"

"아, 엄청 웃기네. 그래, 요즘 중학생 애들이 마약도 뚫는다는데. 테러, 일어날 수도 있지 왜~"

"코로나에 이어 이제 행사 기간이 애도하는 시간으로 바뀌면서 불만이 있을 거란 말은 좀 신빙성이 있네."

"듣고 보니 요즘 애들 불쌍하네."


친구들이 저마다 감상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왜 하필 63빌딩이야?"

"욕이 나오니까 그렇다던데?"

"아, 구구단. 그 전화 건 사람 진짜 이게"


말을 멈춘 친구가 손가락을 돌렸다.

그것을 본 이들이 다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큼 미친 사람들이 많은 여름이었다.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민아는 화장실로 직행했다.


​"흐아. 시원하다."


찬물로 적시고 나온 그녀는 문고리에 둔 봉투를 들었다.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

하루를 마무리하며 홀로 보내는 2차였다.


"아니. 진짜 그게 가능한 일이야?"


오늘 하루, 회사든 친구들과의 만남이든 그게 화제여서 그런 걸까.

그녀는 홀린 듯 인터넷에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오우. 요즘 애들 불쌍하다고 했는데, 애들이 더 영악해졌어."


몇몇 뉴스는 학교 폭력이나 교권 침해 등의 내용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그 말이 꼭 빈말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테러가 일어나겠어?"


그녀의 손이 캔을 구겼다.

컴퓨터를 끄고는 방에 들어간 민아.

잘 준비를 했다.

한편, 예진은 침대에 누워 한창 괴로워하고 있었다.


"우씨. 진예원은 왜 그런 말을 해서는."


오늘 저녁, 가끔씩 자신의 상상이 들어맞을 때가 있다던 동생의 말이 내심 신경 쓰였다.

그녀는 최근에 했던 생각을 다시금 되짚었다.


"하아. 일단 63빌딩엔 연락하긴 했는데, 근처 경찰서에 가서도 말해야 하나? 아니, 그러다 정신병원에 갇히는 거 아니야?"


일어나도 문제, 안 일어나도 문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예진은 간신히 잠에 들었다.


"경찰서까지는 너무 과하다.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겠어?"


다음날 아침.

피곤한 얼굴로 버스를 기다리던 예진이 혼자 떠들었다.

덜컹덜컹.

회사에 도착한 그녀는 바로 탕비실로 향했다.


"예진 씨, 왔어?"

"네. 안녕하세요~"


먼저 출근한 대리가 그녀를 반겼다.


"맞다. 예진 씨, 어제 내가 우연히 통화 내용을 들었는데."

"네? 아."

"아니, 우리 애가 중학생이잖아~ 그래서 나도 모르게 들었어."

"네. 괜찮아요."


생각을 관두기로 한 일을 재차 언급하는 게 불편했지만, 표를 내지 않은 예진이 웃었다.

커피를 들고 일을 시작한 예진의 오전은 빠르게 흘렀다.

아침보다 더욱 피로한 상태.

움직일 힘도 없었다.


"자기, 정말 안 먹어?"

"네~ 오늘은 패스할게요."


사무실에 혼자 남은 그녀는 생각을 정리할 겸 산책을 결정했다.

그렇게 밖을 배회하던 예진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이전에 온 카페 앞.


"아, 여기 디저트 맛있었지."


동료들은 물론, 동생과도 맛있게 먹었던 것을 떠올린 예진이 입가를 닦았다.


"먹고 갈까?"


갑자기 배고파진 그녀는 망설이다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주문하고 온 예진이 카페를 살펴봤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지? 깔끔하네. 아, 저기서 수업하는구나. 예원이 보고 해보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흘리며 기다리던 그녀의 진동벨이 곧 울렸다.

그녀가 쟁반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여기도 괜찮네."


처음 올라온 층은 생각보다 넓고 쾌적했다.

마땅한 자리를 찾은 그녀가 늦은 식사를 시작했다.

한편, 민아는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고 나왔다.


"민아 씨, 오늘 상태 좋네~"

"네. 맥주 덕분에 잘 잤거든요."


맑은 대답을 건넨 민아는 커피를 시켰다.


"최근에 여기서 촬영했었잖아~"

"아, 그쵸. 그때 방송국에서 왔죠."

"민아 씨는 사인 안 받았다고 했나?"

"네. 연예인은 별로 관심이 없어서요."


63빌딩에 위치한 카페에서 시간을 때운 민아는 여유를 즐겼다.

마찬가지로 토스트를 먹던 예진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그녀가 그쪽으로 다가갔다.


"어, 안녕하세요! 와, 여기서 다시 뵙네요. 맞다. 저희 그때, 통성명도 안 했죠? 전 진예진이라고 해요."

"아, 반갑습니다. 인태인입니다."


노트북을 내린 태인이 상대를 확인하고는 마주 인사했다.


"이제 반창고도 뗐고, 흉도 안 졌어요~ 디저트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한 번 봤다고 전처럼 어색하지 않은 예진이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괜찮다니 다행이네요."

"혹시 합석 가능한가요? 이렇게 다시 본 것도 인연인데!"

"예, 따로 일행이 없으니 여기 앉으셔도"


태인의 답을 듣자마자 짐을 챙겨 넘어온 예진이 그의 앞에 앉았다.


"제가 좀 많이 시켰는데, 이거 드셔보세요! 맛있더라구요."

"감사합니다."

"저는 27인데, 저보다 많으시면 말 놓으셔도 돼요."

"스물입니다."


중년 남성인 줄 알았던 예진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듣고는 멈칫했다.

커피를 잡으려던 손이 공중에서 돌다가 턱 아래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제가 놔야,겠네요."

"마음이 그렇습니다."

"아,하하. 역시 아저씨 맞죠?"

"17살인 동생과 세 살 차이 납니다."


​다시 찾아든 침묵이었다.

그가 시간여행을 해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예진은 뻘쭘함에 빨대만 돌렸다.


"이번에는 상상한 게 더 없습니까?"

"예? 아, 있죠! 그게 있는데."

"말하기 곤란하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제가 입 열면 좀 깨는 부분이 있어서 동생이 밖에서 얘기하지 말라는데요. 저번에 저도 모르게 태인, 씨에게 말하게 돼서 조금 용기가 났어요."


태인이 이어지는 예진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원래라면 생각만 하고 말았을 텐데, 지난번에 얘기해서 그런지 이번엔 전화도 해봤어요."

"전화?"

"네, 63빌딩에요. 테러 사건이 일어나거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자신의 말을 정정하려던 예진은 그러지 못했다.

불쑥 일어난 태인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네? 딸꾹- 저 상상을 한 건데, 간혹 예언처럼 맞을 때가 있어서 딸꾹-"


잠시 추궁당한 예진이 커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반면 태인의 눈이 오묘하게 변했다.


'63빌딩 테러를 이미 알고 있다고?'


태인은 자신의 시간선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을 떠올렸다.

그것을 미리 짐작한 사람이 있다니.

그는 예진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왠지 중학생 친구들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고요."

"63빌딩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아, 상부에 전달하겠다고 했어요."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그는 생각했다.


'글쎄.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겠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들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자신일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알고 있는 그만이 허투루 듣지 않을 수 있었다.


"사실 저도 안 믿겨요. 그냥 제 생각이겠죠. 그런데 하필 날짜도 11월 9일인 것 같아서, 약간 끼워 맞추긴 했는데-"

"최대한 막을 준비를 해야겠군요."

"예? 네?"


​어느새 딸꾹질이 멈춘 예진은 자신보다 더 심각한 얼굴의 태인을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저 놀리시는 거예요?"


나이에 이어 이번 상상을 받아들이는 태인의 태도는 합리적 의심을 들게 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충분히 예진 씨 말대로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낮은 확률일지라도, 0%는 아니니까요."


태인은 해인과 해외로 갈 생각만 해서 미처 고려하지 못한 일을 짚어준 예진을 보다가 앞에 놓인 디저트로 당을 채웠다.


"그럼 제가 약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한 번 들어주실래요?"

"그러죠."


아직 점심시간이 남은 예진은 자신이 한 생각을 얘기해나갔다.


"63빌딩에서 촬영 일정을 잡는 거예요. 최근에도 한 걸로 알거든요? 유명인들이 거기에 있단 걸 알면 쉽게 테러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테러하는 친구들이어도 좋아하는 연예인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뭐, 웬만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거기 있으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예진의 터무니없는 소리도 조용히 들은 태인이 수긍했다.


"그렇죠?"


눈을 빛내는 예진에게 도저히 이상하단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앞에 놓인 음료로 목을 축인 태인이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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