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이야파티
love signal
2023_이야챌린지_039
by
이야
Oct 20. 2023
임시 표지
-에로스가 내 심장을 적중시킨 게 분명해.
오늘도 어김없이 펼친 수첩의 첫 페이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체육시간에 짝피구라니! 정말 대박이었어. 같은 팀 하면 무조건 이겨!
유하는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수첩에 마음을 적었다.
그녀의 짝사랑 노트, 6학년이 되어 같은 반으로 만난 친구를 좋아하게 되면서 지금껏 꾸준히 작성해오고 있었다.
"내일 자리 바꾼다는데, 제발 짝이 되게 해주세요!"
침대에 누운 유하는 천장을 향해 손을 뻗으며 빌었다.
다음날, 교실에 도착한 그녀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후아. 선생님, 부디 잘 뽑아주세요.'
TV를 보며 원하는 짝꿍을 희망하는 그때, 유하의 이름이 나왔다.
3분단 4번째 자리 왼쪽에 놓인 것을 본 그녀는 오른쪽에 자신이 바라는 이름이 안착하길 기도했다.
"아…"
허나 그것은 1분단 3번째 자리로 떠났다.
이번에도 짝의 기회를 놓친 유하는 우울한 표정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눈 나쁘다고 옮기기도 뭐 하네.'
그래봤자 첫 번째나 두 번째 자리일 테니 말이다.
상심한 유하를 모르는 짝꿍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또 짝이네?"
"그러게. 지겹다."
뚱한 얼굴로 답한 유하에도 상대방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교과서를 꺼냈다.
수업 시간 내내 따분한 표정이던 유하는 점심시간이 되자 눈을 빛냈다.
오늘부터 1분단이 급식실 나눔이었기 때문에 급식을 받으면서 정면을 볼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조금만 줘~"
대부분의 채소를 편식하는 유하는 도우미에게 부탁하며 드디어 국 앞에 도착했다.
국을 푸고 있는 한욱을 보니 심장박동이 전보다 더 빨리지는 유하였다.
"고맙습니다!"
급식을 받을 때마다 빼놓지 않은 인사를 건넨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는 한욱을 바라보다 아쉬운 얼굴로 몸을 돌렸다.
자리에 돌아온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급식을 나눠주는 쪽을 계속 바라봤다.
"안 먹냐?"
"먹을 거거든."
한참 한욱을 응시하던 때, 짝꿍의 물음에 답한 유하는 급식 도우미 일이 끝났음을 알아차렸다.
자신의 급식판에 한가득 담고 자리로 가는 한욱을 끝까지 지켜보다 그제야 식사를 시작하는 유하는 오늘따라 밥이 달았다.
"뭐야, 백유하. 아직 안 먹었어?"
보통은 10분 안팎으로 식사를 끝내는 유하에게 다가온 세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다 먹었어!"
식사를 흡입한 유하는 급식판을 정리하고 세진과 함께 운동장으로 향했다.
"오늘 좀 늦게 나왔네."
"그래도 우리 정도면 엄청 빠른 거지! 아직 놀이터 비어있잖아."
운동장을 가로지른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도착했다.
"추워서 그런가?"
"좀 춥긴 하네. 하, 왜 저 강당은 우리가 졸업하니까 짓고 난리여."
"그러게~ 우린 쓰지도 못하고 가네."
조금 쌀쌀하지만, 따뜻하게 두꺼운 외투를 입고 나온 둘은 타이어 의자에 걸터앉았다.
"쟤넨 지금도 축구하네."
세진의 말에 운동장으로 고개를 돌린 유하는 혹시나 한욱이 있을까 싶어 눈을 굴렸다.
"계속 축구 볼 거야?"
"어? 응. 조금만 보자. 우리 반 애들이 하는 것 같은데."
"그래. 맞다. 우리 다음 주부터는 졸업식 무대 연습해야 해."
한욱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던 유하는 자신의 팔을 흔들며 말하는 세진을 돌아봤다.
"아. 그거 벌써 다음 주야?"
"웅. 노래는 '샌디'라던데?"
"사실은 오늘 너와의 만남을 계속하고 싶어~ 이 노래?"
유하의 물음에 세진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우리가 태어나기 전 노래라던데."
"대신 부모님들은 알 거라고 선생님이 그랬어."
"흐아. 나 몸친데, 그래서 학예회도 망쳤구먼. 무대 빠지면 안 됨?"
"필참입니다~"
한창 세진과 떠들고 돌아가던 유하는 축구를 마치고 들어가는 한욱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욱과 같이 교실에 도착한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으. 찬 기운 대박."
6학년 교실은 1층이라 그런지, 1반인 유하는 실내화만 갈아 신고 바로 반에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바깥의 한기가 여전히 남아있던 걸까.
누워있던 짝꿍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앗. 쏘리~"
짝꿍에게 사과한 유하가 자신의 외투를 의자에 걸쳤다.
"으. 영어네."
5교시를 확인한 유하는 절망스러운 얼굴로 교과서를 꺼냈다.
유독 영어를 못하는 그녀는 이번 시험에선 영어 과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수업이 사라지진 않았다.
'1학기 때, 끔찍했지.'
상장 때문에 한자를 늘 90점 이상 받던 그녀는 더는 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공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온 점수가 68점.
공부를 안 했으니 이해가 갔지만 그와 같은 영어 점수를 받았을 때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아예 공부를 안 한 건 아닌데.'
같은 학원을 다니는 세진과 비교해 영어만 못하는 유하는 덕분에 망친 1학기 시험 결과를 떠올렸다.
'국수사과는 잘했는데! 뭐, 대신 이번에 1등 했지.'
2학기 때는 영어가 빠지자 반 1등을 차지한 그녀는 원래라면 못 갔을 상위반에 올라가게 됐다.
'세진이랑 헤어질 뻔했어.'
예비 중등 공부는 학생들 수준에 따라 서로 다른 층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위층으로 올라가는 게 확정인 세진과는 다르게 유하는 아래층으로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수학선생님이 반 1등을 하게 된 유하를 좋게 평가해 준 덕분에 그녀도 세진과 같은 층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흐아. 오늘도 학원 가야 해~'
세진과 같이 하교한 유하는 집 앞에서 학원 버스에 탑승했다.
"유하야, 이 수첩은 뭐야?"
"응? 아무것도 아냐!"
학원에 도착한 유하는 자신이 책상에 올려둔 것을 묻는 세진에 크게 당황하며 대답했다.
'후, 들킬 뻔했어.'
남들은 모르는 짝사랑 중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수첩을 숨긴 유하는 꺼내둔 수학 문제집을 펼쳤다.
학원에서 집에 돌아온 그녀는 늘 그랬듯 수첩을 꺼내 문장을 적었다.
-오늘은 국을 직접 퍼줬어~ 약간 부부 같은 느낌?
하루 일과를 마친 유하는 근 1년간 적은 노트를 훑어봤다.
'이거 주면서 고백할까?'
다른 학교에 가게 될 확률이 높은 유하는 고민됐다.
'1, 2지망이 다 여중인데 당연히 갈라지지.'
그것으로 며칠을 고민하던 그녀는 졸업식 날 고백하기로 결심했다.
'그래. 첫 짝사랑인데 이대로 보내고 싶진 않아!'
결정을 내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그녀는 졸업식 무대와 함께 고백을 준비해나갔다.
"와. 부모님들로 북적북적해."
새 강당은 아직 공사 중이라 별관에 있는 강당에는 학생들과 부모들로 가득했다.
"무대, 우리가 가장 먼저 하네. 떨린다~"
여러 차례 상을 받는 시간이 지나가고, 맞춘 의상으로 갈아입고 온 1반 친구들은 곧 시작할 무대를 위해 문 뒤쪽으로 줄을 섰다.
"유하야, 우리 이제 올라가야 해."
"어? 어."
고백에 정신이 쏠린 유하는 세진의 말을 간신히 듣고 반 친구들과 함께 무대로 이동했다.
무슨 정신으로 추고 내려온 지 모르는 그녀는 1반 의자에 앉으면서도 눈으로는 한욱을 쫓았다.
'하아. 왜 이렇게 타이밍이 안 맞냐. 같은 반인데, 따로 보기가 어렵네.'
그렇다고 애들 앞에서 고백하는 건 곧 죽어도 못할 것 같은 유하는 자신이 받은 상을 챙기며 그 안에 가져온 수첩을 끼어 넣었다.
'줄 수 있을까?'
6반까지의 무대가 이어지고, 마지막 연설 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해진 유하는 교실로 돌아가기 전에 그를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상, 졸업을 축하합니다!"
박수 소리가 가득한 강당을 벗어나 교실로 돌아가던 유하는 이미 저만치 간 한욱을 따라 걸음을 바삐 옮겼다.
"백유하, 같이 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유하를 따라 덩달아 뛰어온 세진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흐앗. 아, 미안."
"오늘 엄청 정신없지 않아? 겨울방학 내내 연습했는데도, 나 실수했음."
결국 세진에게 붙잡혀 같이 교실로 돌아온 유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자, 금방 선생님이 들어왔다.
"드디어 졸업이네. 중학교 가서도"
목이 멘 선생님을 따라 몇몇 친구들도 글썽였다.
그 사이에서 유하도 이대로 더 한욱을 볼 수 없단 사실에 찔끔 눈물이 나왔다.
"옷 갈아입을 거지?"
"응. 바지만."
세진과 같이 화장실로 향한 유하는 바지만 원래 입었던 것으로 갈아입었다.
"우리 왜 다른 학교야!"
먼저 옷을 갈아입고 세진을 기다리던 유하는 안타깝게 소리 지르는 세진을 마주 안았다.
"그러게. 나도 1지망 붙었으면 좋았을 텐데."
뺑뺑이에서 떨어진 유하는 2지망 학교에 붙었고, 그 결과 둘은 다른 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래도 우린 학원에서 보니까 다행이지~"
비록 학교는 달라졌어도 같은 학원에 다니는 둘은 교실로 돌아갔다.
'없네. 하긴. 갔겠지.'
한욱의 빈자리를 쓸쓸히 바라보던 유하는 부모님의 연락을 받은 세진을 먼저 떠나보냈다.
"그래, 학원에서 봐~"
교실에 홀로 남아 둘러보던 유하는 지난 6년을 돌아보며 웃음을 흘렸다.
'나는 이 교실만 3번째야.'
4학년 때부터 쭉 1반이었던 그녀는 이상하게도 매년 학년 층이 달라지면서 같은 교실을 3년 연속 쓰게 되었다.
"이젠 진짜 안녕이네."
매번 이 교실로 배정받았지만, 이젠 그럴 리 없단 것을 안 유하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신발을 갈아 신고 운동장으로 나온 그녀는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을 봤다.
'할머니 보고 오지 말라 했는데, 괜히 그랬나?'
혼자 저기를 지나야 한다는 것을 알아챈 유하는 뻘쭘하게 걸어가다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한욱이다. 옆엔 동생? 음. 이 마음마저 정리해야 할 줄 알았는데, 어쩌면…'
용기를 낸 유하는 드디어 오늘 하루 종일, 아니 옛날부터 계속 시선 끝의 주인이었던 한욱에게로 걸어갔다.
7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이야
직업
작가지망생
3,000자 내외의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내용을 수정할 수 있으니 감상에 참조 바랍니다.
팔로워
101
제안하기
팔로우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날의 데자뷰
너로 가득한 순간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