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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하나 주면 잘 먹겠습니다!
2023_이야챌린지_044
by
이야
Oct 23. 2023
임시 표지
"아빠!!"
한가득 짐을 들고 집에 들어오니, 딸이 격한 환영을 보냈다.
반가운 목소리에 힘을 얻은 형준이 밝은 미소를 띠었다.
"우리 희라, 아빠 기다렸어?"
희라의 고개가 힘차게 내려갔다.
그 모습을 기특하게 바라본 형준은 신발장 앞에 짐을 내려뒀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아빠의 품에 안기는 희라.
따스한 온기로 흐뭇해진 형준의 손이 딸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아빠. 선물은?"
머리에 얹은 손이 어색하게 멈췄다.
희라의 모습에 살짝 서운함이 들었지만, 여전히 꼼지락거리는 딸에 그저 피식 웃은 형준이 딸의 어깨를 잡았다.
"그래. 아빠가 도넛 사 왔어~"
"예~~ 맛있겠다!"
아빠가 내려둔 짐을 살핀 그녀가 진심으로 기뻐했다.
평소에는 잘 먹지 못하는 당 높은 음식.
하지만 이렇듯 특별한 때에는 아빠의 엄한 지갑도 열렸다.
"그렇게 좋아?"
"웅! 잘 먹겠습니다~"
어느새 아빠의 손에서 벗어난 희라가 도넛 상자를 들었다.
신난 얼굴로 식탁으로 뛰어가는 딸.
그 뒷모습을 지켜본 형준이 고개를 저었다.
무너진 짐을 한쪽에 정리한 뒤, 화장실로 들어간 그가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아빠, 손 씻고 올 테니까 기다려!"
"…네."
대답이 많이 늦었지만, 희라는 아빠의 말을 지켰다.
박스를 열어둔 채 침만 흘리는 딸.
웃음을 지은 형준이 자리에 앉으며 허락했다.
"이제 먹자~"
"잘 먹겠습니다!"
부리나케 손을 움직인 그녀는 가장 먹고 싶었던 도넛을 집었다.
그러고는 바로 한입 가득 물었다.
우물우물.
달콤한 딸기잼이 입안에서 녹아내렸다.
"아빠, 이번에 미국 다녀온 거야?"
오랜만에 도넛의 달달한 맛을 즐긴 희라는 그제야 아빠에게 관심을 내보였다.
며칠간 출장을 다녀온 형준.
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자신이 사 온 음식을 맛있게 먹는 딸이 그저 흐뭇했다.
"나도 미국 가고 싶다!! 거기는 이렇게 총을-"
어느새 도넛 하나를 다 먹은 희라가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며 아빠를 겨냥했다.
"위험하게 그러면 못 써~"
"하나도 안 위험한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총을 집어넣은 희라는 다시 도넛 상자로 팔을 뻗었다.
그런 딸을 바라보던 형준은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냈다.
"경찰이 될 거라면서 안 위험하다고~?"
"그니까~ 내가 쓰면 안전하지!"
"그래, 우리 딸이 도넛 잘 먹는 거 보니까 미국 경찰이 떠오른다~"
희라의 듬직한 체형을 보니 출장 중에 몇 번 지나가다 마주친 경찰들이 떠오른 형준이 컵에 음료를 따랐다.
그것을 자연스레 건네받은 희라가 바로 목을 축였다.
"뭐야~ 왜 미국 경찰이야?"
"미국의 도넛 가게는 치안이 안 좋아서 경찰한테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보안을 맡겼거든. 그래서 미국에선 경찰이 도넛을 먹고 있는 게 흔해."
"에, 진짜? 오, 나도 미국 가야 하나?"
자신의 설명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희라를 마주한 형준은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그러면 이제부터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겠네~"
"아… 미국 안 갈래! 흐엥, 한국은 그런 거 없어요?"
"우리나라는 미국하고 치안이 다르잖아~ 어디 가게에서 무료로 주겠어?"
"힝. 아빠, 나중에 치킨집 차리면 무료로 주면 안 돼? 그러면 나도 공짜로 치킨 먹고, 그때 나 도와준 경찰오빠도 먹을 수 있잖아~"
웬만한 부탁은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형준이었지만, 이번에 들은 딸의 요청에는 절로 침음을 흘린 그였다.
"그건 어렵지 않을까?"
"헉. 나도 치킨 돈 내고 먹어야 해? 평생 무료 아냐?"
"뭐, 딸이랑 그때 경찰관님 해서 두 명 정도는 되겠지만 경찰 전체에게는 아무래도 무리겠지?"
"오! 아빠 최고!"
어느새 비어있는 도넛 상자를 자랑스레 보여준 희라가 쌍 엄지를 들며 아빠를 찬양했다.
이번에 도넛을 사 온 것과 앞으로 치킨은 평생 공짜라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에 대한 건지는 몰랐지만 아마도 둘 다에 기뻐하는 딸의 얼굴을 보니 덩달아 웃게 되는 하루였다.
"단 거 먹었으니까 양치하고~ 그리고 당분간은 고칼로리 음식 먹으면 안 돼~"
"에에. 경찰이 되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그렇지. 단백질 위주로~"
"치사해!"
뾰로통한 얼굴로 화장실에 들어가는 희라였다.
"한참 성장기인데 먹는 걸로 너무 빡빡하게 구나?"
상자를 접으며 고민하는 형준은 방금 전에 얘기했던 경찰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긴. 우리 희라가 건강하기만 하면 되니까."
몇 개월 전, 집에 오다 쓰러진 희라를 구해준 사람은 마침 지나가던 젊은 경찰이었다.
웬만한 사람이면 어린아이를 도와주겠지만, 요즘같이 흉흉한 때에 딸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 경찰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러나 그때부터 형준은 희라의 식단에 더욱 간섭이 심해졌다.
"참, 딸의 은인인데 선물을 받지 못하는 직업이라 감사 인사만 전한 게 마음에 걸리네."
사용한 컵의 설거지를 끝낸 형준은 어느새 소파에서 TV를 보는 희라를 보며 중얼거렸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경찰한테 뭔가 준다면 좋겠네. 거기에 보탤 비용은 전혀 아깝지 않은데."
그가 경찰이라 바로 도움을 줬다는 것에는 감사하지만, 만약 경찰이 아니라 일반 청년이었다면 단순 인사뿐만 아니라 여러 선물도 챙겨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만 드는 형준이었다.
"오, 아빠! 내일은 떡 좀 사다 줘!"
TV의 한 광고를 보던 희라가 입가를 닦으며 아빠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뒤늦게 화면을 확인했다.
금방 다른 광고로 바뀌었지만, 토끼들이 가득한 것을 확인한 형준은 어떤 곳이었는지 단번에 알았다.
달 토끼가 생산해 밤 토끼가 판다는 설정으로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떡집인 월야는 마침 집 근처에 있어 형준이 자주 들리는 곳 중 하나였다.
"그래, 내일 퇴근하면서 사 올게~"
아빠의 대답을 들은 희라가 기분 좋게 웃으며 아빠의 품에 파고들었다.
"아빠, 빨리 씻어야겠다."
금방 다시 빠져나온 그녀의 직언에 시무룩한 얼굴로 화장실에 들어간 형준은 월야의 유명 상품이 떠올랐다.
도넛 모양을 본떠 만든 떡으로, 희라가 주로 도넛을 상상하며 먹는 오떡이었다.
"월야가 유명 프랜차이즈니까 그걸 납품한다면…!"
희라가 미리 받아둔 물을 본 그가 감동한 얼굴로 욕조에 몸을 담갔다.
"역시 우리 딸이야. 나중에 희라가 경찰이 된다면 오떡을 먹고 있겠지…?"
나른한 얼굴로 상상을 이어가는 그였다.
그러다 몸이 아팠던 자신의 아내가 떠오른 형준이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여보…"
어릴 적 먹을 게 없어 고생이었다는 아내의 얘기가 떠오른 그는 딸을 굶기지 않으려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이왕이면 아내까지 잘 먹였으면 좋았겠지만, 작년에 별이 된 그녀였다.
"여보, 부족하지만 좋은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게. 하늘에서 응원해 줘."
화장실의 천장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형준이었다.
눈을 감은 형준은 어두웠던 곳에 불이 들어오니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딸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으로 사진첩에서 본 아내가 꼬리를 흔들었다.
유치원에서 입었다는 호랑이 옷이었다.
"언니!"
"꼬맹이, 또 왔어?"
"떡 하나 주면 잘 먹겠습니다!"
어린아이의 말을 재밌게 들은 희라가 자신의 몫으로 빼둔 오떡을 꺼내 위협적인 호랑이에게 양보했다.
더욱 거세게 흔들리는 꼬리가 그녀의 기쁨을 나타냈다.
"맛있다~"
상상을 마친 형준은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다.
어느새 소파에서 잠이 든 희라의 앳된 얼굴에는 아내의 웃음이 가득했다.
형준의 입꼬리도 둘을 따라 잔뜩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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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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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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