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야파티

내가 떠나도 남는 자리

2023_이야챌린지_046

by 이야
임시 표지

파르지오 아파트, 102동.

1202호 거실 안.


"그래. 이것까지만 들어가면 다 됐네."

"아저씨, 오늘 이사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뭘~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청하가 아빠 친구인 수철에게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전날 미리 준비한 음료를 인부들에게 건네는 중이었다.

마지막 짐을 내려둔 인부까지 챙긴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요~ 좀 더 싸게 해주셨잖아요! 그리고 덕분에 수월하게 이사도 완료했고요~"

"언제 음료까지 준비했어~ 역시 잘나가는 작가님은 다르긴 다른 가벼~"

"하하. 아이스박스에 넣어둬서 시원해요. 아, 그리고 곧 떡도 배송 오는데 시간 괜찮으시면 그것도 드시고 가세요~"


청하의 제안을 들은 수철이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아침부터 고생하셨는데…"


그녀는 아무리 돈 받고 하는 일이라 해도 이 더운 날에 일해준 것에 대해 큰 고마움을 느꼈다.

그 진심을 전하기 위해 수철을 비롯해 현관의 인부들을 붙잡는 그녀였다.

그리고 때마침 청하의 폰이 울렸다.


"지금 떡 배송됐네요! 아직 가시기 전이니까 받아 가세요~"


먼저 밖으로 나온 그녀가 냉동 택배를 뜯으며 하나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오, 이거 월야 거네요?"


한 손에는 음료를, 다른 손에는 떡을 받은 인부들 중 한 명이 유명 프랜차이즈를 알아보며 말을 건넸다.


"월야? 이번에 그 티비 프로랑 콜라보 해서 경찰서에 떡 유통한 곳?"

"아~ 맞아요. 월야에서 그러기도 했죠~"


인부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떡을 다시 바라봤다.


"그러면 비싼 거 아녀?"

"가격대가 좀 있는 걸로 아는데."

"더운데 고생해 주신 분들한테 하나도 안 아까운걸요~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우리야 일거리 있어서 좋았지, 뭐~ 다음에 이사할 때도 불러줘~"


결국 수철의 직원들에게 떡을 다 돌린 청하는 떠나는 트럭을 뿌듯하게 바라봤다.


"후아~ 잠깐 밖에 있었는데도, 엄청 덥구나~"


집으로 돌아와 땀을 식힌 그녀는 이제 이웃집에게 돌릴 떡을 꺼내 미리 사둔 접시에 옮겼다.


"넉넉히 사긴 했는데, 다 나눠줄 수 있겠지?"


미리 파악해둔 수량보다 더 주문한 그녀가 불안한 얼굴로 식탁을 응시했다.


"뭐, 혹시라도 부족하면 친구들 거라도 빼돌려야겠네."


만족할 만한 결론에 도달한 청하는 불안을 없애고, 나갈 준비를 했다.


"이른 시간은 아니겠지?"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시계를 확인한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후아, 가보자! 좋은 인상 심어주러!"


앞으로 만나게 될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던 그녀는 기합을 넣고 밖으로 나왔다.

띵동.

일단 옆집부터 찾아온 그녀가 바로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옆집인데, 오늘 이사 와서 떡 돌리려고 왔어요~"

"어머, 안녕하세요. 요즘도 떡 돌리나 보네요~ 감사해요."

"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옆집 이모야?"


열린 현관문 사이로 작은 아이가 빼꼼 얼굴을 들이밀었다.


"난 떡은 월야 것만 먹는데!"


아이의 말에 청하는 월야가 토끼 컨셉으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떡집이란 것을 상기했다.


"다행이네~ 이모가 준비한 게 월야의 시루떡인데~"

"난 오떡이 좋은데~"

"백율하. 그러면 안 되지!"

"정말? 이모가 시루떡 말고도 오떡도 준비했는데, 잘 됐네!"

"어? 진짜? 와! 엄마, 나 오떡 먹을래!"

"인사부터 해야지!"


청하에게 냉큼 감사 인사를 전한 율하는 엄마의 손에 있던 오떡을 빼앗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아휴, 쟤가 오늘 왜 저러지? 떡 고마워요, 이름이?"

"아, 이청하라고 해요! 율하가 좋아하니까 기쁘네요."

"한동안 옆집이 비어있었는데, 청하 씨 왔으니까 종종 보겠네요~"

"네! 오늘 제가 좀 시끄럽게 굴었죠? 양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사하는 날에 소리가 없는 게 더 이상하죠~ 저랑 율하도 앞으로 잘 부탁해요."


옆집과 성공적으로 안면을 튼 청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윗집과 아랫집에도 잘 전달해 주고 온 그녀는 충전해뒀던 손풍기를 챙겼다.


"경비실에도 다녀와야 하니까."


벌써부터 푹푹 찌는 날씨에 각오를 하고 밖에 나온 청하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번에 이사 온 1202호 아가씨죠?"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이거 하나 받아 가~ 이사 선물이야~"


냉장고에서 음료 하나를 꺼낸 경비원이 청하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시원한 음료를 한 손에 들고 돌아온 청하는 자신도 떡 하나를 꺼내 함께 먹었다.


"좀 이따 집들이할 테니까 이것만 먹어야겠다."


맛있게 끼니를 때운 그녀는 아직 어수선한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새 집에 익숙해질 때쯤, 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폰으로 마트를 검색했다.


"차라리 차 타는 거리였으면 좋았을지도."


물론 차를 끌고 가도 되긴 했지만, 주변 지리도 익힐 겸 걸어서 가기로 결정한 그녀는 얼마 가지 않아 후회했다.


"덥다, 더워! 이번 달이 가장 더운 달이라더니. 이런 여름에 어떻게 살아~"


걸음을 재촉한 그녀는 다행히 바뀐 신호를 놓치지 않고 건널 수 있었다.


"드디어 살 것 같네~"


친구들이 오면 배달을 시킬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직접 준비하고 싶었던 청하는 적어둔 목록을 보며 쇼핑을 시작했다.


"누가 오이를 못 먹는다고 했더라?"


짜장면을 시킬 때, 한 그릇은 오이를 빼고 시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한 그녀는 카트에 마지막 물건을 담고 카운터로 향했다.

계산을 마치고, 들고 온 장바구니에 물건을 챙긴 그녀는 살인적인 날씨를 앞두고 경건한 마음으로 버튼을 눌렀다.


"오늘만 벌써 몇 번째 집문을 연 거지?"


손가락을 접으며 숫자를 세던 그녀는 이내 머리를 젓고 사 온 물건을 정리했다.


"7번 정도인가? 뭐, 평소엔 잘 안 나가니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정리를 끝낸 그녀는 잠시 에어컨 앞에서 숨을 돌렸다.


"역시 집이 최고야!"


그대로 잠깐 잠이 든 그녀가 깬 것은 2시간 정도 후였다.


"어머. 이만큼이나 잤어?"


아침부터 이사한다고 일찍 일어났고, 그 뒤로도 많은 걸 했지만 생각보다 오래 잔 낮잠에 놀란 그녀가 급하게 배달을 시켰다.


"애들 올 시간에 맞출 수 있겠지?"


주방으로 향한 그녀는 아까 사 온 재료로 간단한 요리를 시도했다.

한참 요리에 집중하고 있던 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오, 왔구나~"


현관을 열어준 그녀는 친구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 때까지 한시바삐 움직였다.


"오, 맛있는 냄새~"

"대박~ 직접 요리했어요?"

"응응~ 어휴, 뭐 이런 걸 사 왔어? 빈손으로 와도 된다니까~"

"명색이 집들이인데, 휴지는 줘야지~"


친구가 건넨 휴지를 한쪽에 잘 놓은 청하는 그들을 소파로 이끌었다.


"아직 배달 시킨 건 안 왔어. 한 30분 정도 있다 올 것 같아."

"그러면 집부터 구경시켜줘~ 첫 독립부터 엄청 좋은 집에서 시작하는 거 아니야?"

"엄마가 신혼집이 될 거라고 하면서 혼자 살긴 큰 집으로 구해줬어."

"아직 짝이 없잖아?"

"아픈 곳 찌르지 말고~"


그들을 데리고 방 몇 곳을 보여주는 청하였다.


"오, 저기가 침실인가? 침대도 커플 사이즈네?"

"와, 언니~ 집 정말 좋네요~"

"혜민이 네가 사는 곳도 이 정도 하지 않아?"

"에이~ 평수부터 다른걸요~"


유일하게 동생인 혜민과 친구들이 청하의 침실을 구경했다.


"저건 뭐야?"

"아~ 핸드폰 넣는 곳~ 저거 내리고 시간 설정하면 그때까지 폰 못해~ 저거 서재에도 해뒀어."

"스마트폰 사용 방지 벽?"

"응~"

"상자는 들어봤는데~ 요즘은 저런 것도 설치할 수 있구나~"


청하와 은정의 대화를 듣던 혜민이 그 벽을 관심 있게 쳐다봤다.


"저도 요즘 너튜브 중독이라 저거나 상자를 마련해야겠어요~"

"요즘 사람 중에 아닌 사람이 있긴 해?"

"나도 퇴근하면서부터 그것만 보게 되잖아~"


수현이 은정과 혜민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청하의 폰이 울렸다.


"배달 왔나 보다! 저녁이라 배고플 텐데, 내가 준비한 거랑 배달 온 것부터 먹자~"

"오~ 뭐 시켰는데?"

"이삿날이니까 당연히 짜장면~"


맛있게 식사를 마친 그들은 오랜만에 본 회포를 풀다 이내 돌아갔다.


"은정이 차로 같이 왔구나~"


친구들이 뒷정리를 도와주고 가서 별로 할 것이 없는 그녀는 서재로 들어왔다.


"끄아. 아무리 이사했어도 일을 쉴 수는 없지."


가볍게 몸을 푼 청하는 AI 채팅에 접속했다.

글을 쓸 때, 여러 도움을 받고 있는 그녀는 평소처럼 질문을 보냈다.

AI의 깔끔한 답변을 살펴보다 생각에 빠진 청하는 한글 파일을 열었다.


-나의 모든 방식과 생활, 습관 등을 학습시킨다면, 결국에 나는 영원히 연재하게 될 것이다. 내가 죽어도 세상엔 여전히 내가 남아있고, 이어갈 수 있는 게 단순 과거의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


키보드에서 손을 뗀 그녀는 눈을 감고 상상했다.

자신의 연재란을 AI가 이어가는 미래 속에서 그것은 정말 자신의 것일지.

아니, 지금도 AI에게 도움을 받아 작성하는 어떤 글이 오로지 내 것인지도 고민하게 되는 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대화를 먹는 이모티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