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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에 대한 고찰
2023_이야챌린지_050
by
이야
Oct 26. 2023
임시 표지
여자는 높이 자란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귓가로 곧 작은 웅성임이 들렸다.
고개를 내리자 평원 너머로 누군가 보였다.
처음 보는 얼굴.
상대도 여자를 발견하고는 호선을 그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어떤 특별한 열매를 찾고 있는 이야라고 하는데요."
야가 다가오자 쭈욱 둘러보던 시선이 상기된 볼에서 멈췄다.
"
코이예요."
"아, 이건 스토리가 아니네요."
"선악과라고 해요."
야는 놀란 눈으로 다시 나무를 바라봤다.
레사와 마찬가지로 지구별 출신인 그녀는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아아. 이렇게 볼 줄이야."
"하나님께서는 제게 이걸 먹지 말라고 하셨어요."
"맞아요. 먹으면 안 돼요. 이 낙원에서 쫓겨날 거고, 죄의 본성으로 살아가게 될 거예요."
"그래요? 그래서 지금 안 보이시나 봐요."
코이의 반응에 의문을 띄운 야가 바닥에 떨어진 선악과를 발견했다.
선명한 잇자국.
야가 허리를 숙였다.
"벌써 시작됐군요."
"그건, 하나님께서 드신 거예요."
"예?"
"위험하다는 걸 알려주려고 직접 시범을 보여주셨거든요."
선악과를 주우려던 손이 삐끗했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
"보여주는 사랑으로 가르침을 내리신 거예요."
코이의 검은 머릿결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녀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선악과에는 독이 있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쓰러지셨고요."
"어, 그, 제가 아는 거랑 많이 다른데요?"
"아마 그럴 거예요. 그리고 제가 그 독을 빨았어요."
몸을 바로 세운 야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힐끔.
빼꼼 내민 혀는 후유증 때문일까.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저, 어, 괜찮으세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뻗은 팔.
하지만 닿지는 못했다.
한편 코이의 눈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변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독이 있는 이유, 하나님을 살린 대가예요. 부활하기 마련이잖아요."
휘이잉.
하늘이 어두워지고,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우리는 그녀를 이브라고 불러요."
"네?"
"낙원에서 쫓겨난 신, 하나님은 입으로 알려주셨지요."
강한 돌풍이 불자 몸집이 작은 바람쥐들은 야의 옷깃을 붙잡았다.
"언젠가는 우리가 그녀를 유혹했다 하더라도, 괜찮은 건. 말리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때는 알 수 없었거든요.
새로 발견한 선악과가 얼마나 위험했던 건지.
누군가는 시도해야 했다.
"가장 앞장서서 먹은 하나는요, 내 언니였어요."
"어, 그. 그러면."
"언니는 인간이 되었고, 저는 뱀이 되는 거죠."
코이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추위에 떨고 있는 바람쥐들을 감싸 안은 야의 몸도 떨렸다.
전혀 다른 의미로.
"그럼 아담은?"
코이는 하늘을 찌를 듯 뻗은 나무에 손을 얹었다.
야는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머리를 가리켰다.
"맞아요. 이 나무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우리예요."
"어떻게 열매를 딴-"
"처음부터 하나가 먹으려던 건 아니에요. 그저 열매를 쥔 사람이 하나였을 뿐인 거죠."
그제야 기둥 뒤로 묻어있는 핏자국이 보였다.
여기서 다친 흔적이 분명한 그것.
야가 눈살을 찌푸렸다.
"굳이 그랬어야 했나요?"
"네. 먹을 게 없었거든요. 유일한 희망은 절망을 불렀고, 우리는 결정해야 했어요."
오랜 떠돌이 생활에 지친 그들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했던 걸까.
자조적인 웃음을 흘린 코이는 눈을 감고 그때를 떠올렸다.
"저건 위험한 거야."
"높은 곳에 있어서?"
"모르는 거라서."
그러니 이제 알아갈 차례라고 했다.
생존에는 반드시 필요한 희생.
먼저 나무를 짚은 손은,
"카인. 네가 할 필욘 없어."
"하지만 누나들, 내가 가장 크잖아?"
"그래도-"
"던져주면 잘 받기나 하셔."
말릴 새도 없이 나무를 타기 시작한 동생.
그는 성공했다.
다만 순간의 방심이 불러온 죄는 꽤나 컸다.
"카인!!!"
"끄아아!"
한참 소리를 지르던 동생의 숨이 옅어졌다.
목에 닿은 손가락마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이제 어떡해, 언니?"
"너까지
잃을 순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그 결과는.
당시의 상황을 들은 야의 팔이 움찔거렸다.
"유감이에요."
"전부 잃은 날, 나는 이 나무를 베려고 쳐다보고 있었어."
그런데 우린 너무 늦게 알았다.
이 나무에서 액이 흐른다는 것도.
그건 충분히 먹어도 되는 종류였단 것도.
"부족을 위해서 결국 보존할 수밖에 없었어."
뱀을 닮은 미녀는 비로소 눈을 떴다.
"끔찍하지? 가족은 다 죽고, 나만 남았는데 다들 괴물이라고 내쫓았어. 아름답다 칭송받은 내가, 이렇게 변한 거야."
처연한 목소리.
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충분히 왜곡될 만하지?"
"그, 이야기 속에 이런 비화가 있을 줄은."
"베지 않기로 약조했어. 하지만 그들은 간과했지."
나무를 죽이는 데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을.
"그러면 위험-"
"마녀를 불에 태우는 건 말이야."
이래서야.
야가 손을 뻗었지만, 그녀를 걱정하는 조수들에 의해 뒤로 밀려났다.
"들어줘서 고마워. 부디 꼭 원하는 열매를 찾길 바랄게."
불길에 뛰어든 코이는, 아름다웠다.
그대로 돌처럼 굳기 충분한 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야가 바람쥐를 데리고 멀리 물러났다.
화르륵.
그렇게 소중한 식량을 품은 거대한 그루는 바싹 타들어갔다.
"하,하. 이런 걸 보고 싶었던 게 아닌데."
허망한 얼굴의 야는 이내 겁먹은 바람쥐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때때로 진실은, 정말 무섭다는 게 이해가 돼요."
"그러게. 어째서 여기를 처음으로 방문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그들의 손을 잡고 돌아선 야는 타는 향을 애써 외면했다.
정말이지 낯선 땅이었다.
고향 행성일지라도, 이 시기의 별은.
"저리 빼곡했는데-"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의 놀림은, 뱀의 혀와 닮아있었다.
달리 보면 결국.
"오히려 더 뱀이었을지도."
살아남은 인류가 그 말에 독을 품은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그녀.
푹 꺼지는 발에 더욱 힘을 준 야가 조수들과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
"포탈을 찾는 게 쉽지 않네요."
"그렇지. 장소도, 시간도 랜덤으로 열리니까 그저 운이 따르길 바라는 수밖에."
"그래도 그때까지 여기를 좀 더 느긋하게 둘러봐요!"
1호가 밝은 목소리로 제안했다.
고개를 끄덕인 야가 이전의 일을 머릿속에서 털어냈다.
쉬이 충격이 가실 것 같진 않았지만.
"저기 뭐가 빛나요!"
2호의 외침에 둘의 시선이 일제히 움직였다.
정말 무언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들의 방향은 확실했다.
"가보자."
야는 조수들을 이끌고 광야를 건넜다.
부디 좋은 스토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깥을 둘러본 야의 시선이 검은 재가 날리는 하늘로 향했다.
검은 머리카락의 사인을 본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蛇婪)으로 불렸나 봐."
자연스레 따라오는 뱀이 그리 탐했나 보다.
욕심을 배우게 된 그때부터 시작된 지옥은 그녀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사그락.
태운 잎이 바짝 갈라졌다.
"왜, 이렇게까지 한 거야."
불타 죽은 나무를 바라본 이브는 숨을 죽여 울었다.
더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생을 잃고,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후로 나쁜 일은 더 생기지 않을 줄 알았다.
"괜찮아요?"
야는 여자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아직 떠나지 않은 그녀.
"동생 일은 유감이에요."
"여전히 슬프지만, 카인은 잘 보내줬어요."
"아, 코이 말이에요. 어, 그쪽이 언니인 하나 아니에요?"
이브의 침묵이 길어지자 야가 덧붙였다.
"아마 절 말한 것 같네요. 코이브라서."
"코이브?"
"코끼리 부족이거든요."
"…그럼 혹시 코하나, 코카인?"
이브가 고개를 끄덕이자 야는 이마를 짚었다.
"그럼 왜 자신을 코이라 했던 거죠?"
야가 묻자 이브는 슬픈 눈으로 검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았다.
"언니는 독 때문에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어요. 제가 한눈팔지 않았더라면 여기 오지 않았을 텐데."
이브가 말을 흐렸다.
야는 심란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 그게 대체 무슨 얘기였던 거야. 망상증? 이게 선악과가 맞긴 해?'
혼란스러운 야는 생각을 멈추고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이건 무슨 열매였어요?"
"선악과라고, 언니가 붙인 이름으로 부르긴 해요. 겉보기엔 맛있어 보이지만 독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어울려서 계속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거짓과 진실을 오묘히 섞은 코이, 아니 하나.
그녀의 마지막을 떠올린 야는 속을 가라앉혔다.
"며칠간 굶지 않았다면 그대로 먹진 않았을 거예요. 나무에서 떨어지지도 않았을 거고."
중화해서 먹으면 괜찮은 그것.
이브는 동생과 언니의 비명을 기억했다.
"정말로, 어울리는 명칭인 거죠."
먼저 겪은 이들이 무지함 끝에 악을 썼으니까.
터덜터덜.
바람쥐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야의 귓가에는 계속 이브의 쓸쓸한 말이 맴돌았다.
"이야님! 이제 가는 거 맞죠?"
씁쓸한 야를 반긴 1호가 물었다.
그러고는 놀란 눈으로 야의 얼굴을 가리켰다.
"어? 이야님, 볼에 생채기가."
"괜찮아. 난 괜찮지."
차분하게 답한 야는 몇 분 전 일을 떠올렸다.
"저기 마녀의 동생이 왔어요!"
사람들은 수액과 열매를 빼앗은 하나에게 단단히 화가 났고.
그 분노를 풀어줄 상대는 이브뿐이었다.
그리고 슬픔에 잠긴 그녀는 무력했다.
"뱀이 돌로 만든 게 아니라 돌에 맞은 건 아닐까?"
"네? 돌 좀 주워갈까요?"
중얼거림을 잘못 들은 2호가 허리를 숙였다.
조용히 고개를 저은 야는 조수들을 이끌고 포탈에 올랐다.
어디까지 진실이었는지.
더는 알 수 없었다.
처음처럼 그들은 긴 비명을 질렀다.
낯선 별에서의 시작은 그랬다.
그리도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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