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 유월

단상100-1

by 베란다 고양이

여름이 서늘하다. 바스락 거리는 햇살이 머리카락을 간지럽히는 걸 가만히 느끼다 보면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지 발걸음이 한층 무거워진다. 세월이 흘렀나. 이제는 시간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세월들이 옆구리를 스쳐간다. 한 해의 절반을 뚝 떼어놓고 보면 아까운 행복들이 올망졸망 따라붙는 것만 같아. 뒤를 돌아보고 그렇게 두고 온 것들을 다시 주워담고 싶어지는 계절. 지겨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쩌면 가장 큰 미련의 표현이었을지 몰라. 너도 그렇게 두고 온 것일지도 몰라.

놓치고 싶지 않다 보면 필연적으로 놓아줘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손아귀를 타고 그렇게 흘러내리는 모든 것들을 보며 다시 주워담을 손을 펼쳐보게 되는 날이 있다. 너무 가지고 싶었지만 결국 내 손을 찢어내고 그렇게 사라진 것들이 있다. 손가락 마디마디를 힘주어 피면서 어렵게 떨쳐야 했던 것도 있다. 그렇게 절반을 비워내고 이제는 다시 그 절반을 채우려고 손을 뻗는다. 가장 소중한 것부터 가장 먼저 담았다. 일단 담아놓고 보았지만 나도 이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해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는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른이 되었다. 점점 모르겠는 것들이 늘어난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늘어난다. 생각하기를 즐기던 어린 아이는 생각이 아파서 또 하나를 내려 놓는 어른이 되었다. 절반쯤 와 있다. 모든 것을 절반으로 뚝 떼어놓고 찬찬히 살펴볼 시간이 왔다.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살다 보니 단순하게 살아지는 것이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