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친구들과 국회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동안, 두려움으로 인해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쿵쾅 거렸다. 괜히 국회에 갔다가 행방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끌려가 신원미상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떨칠 수 없었다. 돌이켜보니 그 두려움은 막연한 것이 아니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계엄 당일 현장에 동원된 군인들에게는 실탄과 함께 몇 천 구의 시신을 처리할 가방이 지급되었고, 노상원의 계획 속에는 반체제 인사로 지목한 이들을 서해바다에 수장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여태까지 참여해온 집회를 통해 나름 거리의 폭력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계엄이 주는 실감은 이전까지 집회에서 느끼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시간 속에서 마침내 한두명씩 친구들이 국회로 가야겠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고,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하던 나는 친구들 덕분에 겨우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이태원에서 택시를 잡아 국회로 가달라고 말하자 기사님은 국회 주변이 통제가 되고 있을 것이라며 걱정했다. 고민하던 기사님은 분위기를 봐서 서강대교 입구나 근처 다른 대교에서 걸어갈 수 있게 내려주겠다고 했다. 도착해보니 계엄 당시 군경 내부의 불복종과 혼란에 의해 국회 주변의 통제는 원활히 진행되고 있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꽝꽝 얼어붙은 서강대교 위를 내달려 손쉽게 국회로 갈 수 있었다.
12월 2일의 계엄령과 그 이후의 수습 과정은, 미쳐 청산되지 못한 독재에 대한 저항과 시민의 손으로 직접 일군 민주주의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재현된다. 하지만 한발짝 더 사태의 본질로 다가가면, 우리가 발딛고 서있는 민주주의 체제의 근원적인 불안정성이 보인다. 그 한계와 불안정성은 체제의 한시적 작동 오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선 계엄 전후 여야가 극한의 대치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는 점을 잘 생각해야 한다. 무력을 사용해 상대편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대립 상황을 해결하고자 한 윤석열의 선택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위법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진영 이념에 따라 분열될 가능성을 항시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한편 체제의 오작동은 한 차원 더 심층에서 태동한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계엄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을 주기적으로 산출 할 수 밖에 없는 내적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에 따르면, 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약속하고 보장하는 관념 혹은 체제 자체가 국가 권력을 강화시킨다. 존 로크가 이야기 했던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개인의 성립을 위해서는 국가 권력은 필연적으로 강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에 존재하던 장소와 전통, 문화와 결별해야 한다. 사적 이익과 욕구 충족을 방해하는 자연적 제한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개인의 이익을 창출하는데 핵심이 되는 상업, 교역, 생산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강력한 무력을 동원하여 시장 경제 외부에 존재하던 영역을 강제로 통합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한 개인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창출되는 것이다. 이렇게 개인주의와 국가주의는 나란히 전진한다. 그리고 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점차 비대해지는 국가 권력은 언젠가는 칼 끝을 자신들이 보호해야 하는 대상들에게로 돌린다. 국가는 체제의 수호를 위해 상시적인 감시와 주기적 폭력으로 개인을 옭아매고자 시도한다. 계엄은 그것을 증명했다. 따라서 계엄 이후에 분출하고 있는 개헌 논의는 반쪽 짜리에 그친다. 체제의 몇 군데만 손보는 개헌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주의에 대한 개인적인 의심은 오래된 것이었다. 의심의 출발점은 문재인 정부 시기에 이뤄진 탈원전 논의에 대한 안타까움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탈원전을 추진했고, 해당 논의를 전문가와 시민들이 동석하는 위원회에 일임했다. 하지만 탈원전에 대한 논의는 당시 원전 가동의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현재로서 원전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이 전향적으로 바뀌긴 하였지만(신속히 탄소배출량을 감축함과 동시에 적정한 수준의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여전히 원전이 미래 세대에 남기는 커다란 부담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트랜스크리틱』에 따르면 민주주의 체제는 미래 세대 혹은 투표권이 없는 존재들의 이해를 반영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쾌적한 문명생활로 인해 다량의 폐기물과 탄소, 생태계 파괴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미래 세대가 이어받을 예정이다. 쾌적한 문명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환경오염은 미래세대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현세대의 ‘공공적 합의’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민주주의 체제가 미래 세대의 이해를 고려하는 체제가 되기 원한다면, 미래 세대가 겪어야 할 재앙적인 상황을 감안해 문명생활의 후퇴를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수준의 문명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원전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그럴수록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커져간다. 『차이나 모델 :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에서는 이를 ‘투표 집단의 전횡’이라 표현한다. 민주주의는 투표권을 지닌 이들의 의사만을 쫓을 뿐 공공적 합의를 초월하는 도덕적 올바름에 대해서는 무시한다는 의미이다. 이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대중의 권리 행사에 의해 발생하는 포퓰리즘, 국정 운영의 방향을 결정짓는 소수의 이해관계자들, 진영 이념을 기준으로 사회를 분열시키는 정치인들의 존재를 문제로 지적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트랜스크리틱』은 지도자 선거를 추첨식으로 진행하는 것을 주장하고, 『차이나 모델』은 현능주의, 즉 싱가폴과 중국처럼 직접 선거 대신 훈련된 정치 엘리트가 국가를 통치하는 구조를 제안한다. 하지만 이미 1인 1표와 직접 선거권에 대한 권리가 깊게 자리잡은 한국에서 앞서 언급한 두 아이디어를 도입하는 것은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민주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위기에 대해서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무력을 동원한 쿠데타가 전례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 지어진 상황에서,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의 기능부전을 이야기 하는 것이 논리적 비약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계엄으로 인해 체제의 한계가 노정된 상황에 마주하여, 우리가 발딛고 서있는 기반을 근본부터 다시 톱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1989년 독일에 세워져 있던 장벽이 허물어지자 터져나왔던 자신만만한 선언, 즉 계몽주의와 자유주의는 인간이 만든 경계를 타파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역사의 종언’에 대한 선언은 매우 빈약한 것이었다. 더 넓은 역사적 시간에서 바라보면, 계몽의 완수를 위한 헤겔식의 ‘진보’, 즉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질서와 폭력, 반동과 혼란에 대한 예감은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열정이 분출하던 1800년대 후반부터 충분히 개진된 것이었다.
『분노의 시대』는 계몽주의와 자유주의가 실패해온 여정을 추적한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계몽주의에 비판적인 루소와 같은 사상가들이 지적한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의 위험성과 근대화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소외된(혹은 거절한) 국가와 민족들이 표출하는 분노의 모습이다. 루소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근대화 되어가는 세상에서 버림 받았다고 느끼는 이들의 심리였다. 계몽주의 정치철학자들이 가졌던 자기 이익의 추구, 생명의 보존, 사유 재산의 향유가 보장되는 공화국에 대한 이상은, 특정 계층, 즉 부르주아로 칭해지는 소수 엘리트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레토릭일뿐 사회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기층 민중에 대한 폭압을 해소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편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 사회는 도덕성을 공론장의 영역에서 퇴출시키고 오로지 상업화된 이익만 탐하는 불건전한 구조가 되어간다. 실제로 표트르 대제가 군사적으로 강력한 관료 국가를 기반으로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자 러시아의 소농들은 극심한 압제와 착취를 견뎌내야 했다. 이는 아타튀르크 치하의 터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러시아와 터키 뿐만 아니라 근대화 시기 내내 비서구 국가의 민중들이 겪어왔던 공통의 경험이기도 했다. 강압적인 근대화 과정 속에서 겪는 각 지역이 가진 고유한 문화의 파괴와 그에 따른 존재 상실은, 자연스럽게 이데올로기적 급진성을 쫓는 민중의 분노와 반동으로 연결됐다. 2차 대전 시기 독일에서 분출했던 파시즘, 사이드 쿠틉이 개창했던 IS의 지하드, 1979년 호메이니가 추동한 이란의 이슬람 혁명,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의 힌두 민족주의 등은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분노와 반동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분노와 반동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심화되고 있다. 세계화가 가속화시키고 있는 불평등에 피해의식을 느끼는 민중을 등에 업고 등장한 극우의 준동은, 200년 전 분노의 시대를 예감했던 루소의 일성에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며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의 사상적 본산으로 여겨지는 서구 조차 근대화에 대한 반동으로 인해 심중한 위기에 빠져있음을 증명한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의 위기와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회의, 근대화의 이탈자들이 보여주는 반발이 세계적 트랜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에서는 ‘역사의 종언의 종언’을 주장한다. 러우 전쟁을 말미암아 부상한 러시아의 권위주의 정부는, 1989년 터져나왔던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신성한 믿음의 정반대편에서 그것들을 무너트릴 수 있을 만큼의 거대한 위협이 나타났음을 시사한다. 소련이 붕괴되고 불완전하지만 그럭저럭 국가를 지탱하던 사회주의 체제가 거칠게 자유주의 경제로 재편되는 동안, 러시아의 민중들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가난, 비리로 얼룩진 과두 재벌의 등장과 변경 지역의 독립 요구에 따른 혼란을 오롯이 겪어내야 했다. 그들에게 서구화 내지 자유주의식 근대화는 끝모를 재앙을 선사한 체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편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서구 세계의 일원이 되기를 꿈꿨으나, 동양적 전제국가에 근접한 러시아의 과거는 서구 정부에게 큰 의심 대상이었다. 거기다 국경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러시아가 이웃 지역을 무력으로 강제 병합하는 과정은 서구 정부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이에 따라 자유주의 국가로의 체질 개선을 도모하던 러시아에 서구 정부의 재정적, 행정적 지원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사회 갈등과 혼란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지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의 독립 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서구 정부가 후방지원하기 시작하자, 러시아는 이를 국권 침탈로 규정하고 서구 정부에 반기를 들며 성전을 개시한다. 러우 전쟁은 성전의 일환이었다. 러시아의 성전은 ‘신유라시아주의’에 기반하여 전개되었다. 신유라시아주의의 주창자들은 반서방, 반계몽주의, 반자유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러시아만의 독자적인 국가와 세계질서를 운영하자고 주장했다. 러시아 뿐만 아니라 ‘신전통주의’를 내걸고 미국식 세계질서에 맞서 본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인도, 터키, 이란, 중국도 러시아의 투쟁 전선에 속속 참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반자유주의를 구현하는 국가들이 모두 민족문화 혹은 종교적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 체제의 구성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인도, 이란, 중국은 각각 정교회, 힌두와 불교, 이슬람, 유교 등 오래된 민족성에 기대어 국가 정체성의 확립을 간구하고 있고, 인구 규모와 세계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막대한 해당 문명권의 국가들이 서구적 근대화의 이후를 모색하는 현실은 자유주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길 요청한다.
민족과 국민국가의 문제를 다룬 고전 『상상의 공동체』는 내셔널리즘과 네이션, 즉 민족주의와 국민국가는 전적으로 상상된 허구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민국가 이전에는 종교와 왕정이 존재했다. 하지만 16세기 이후 국민국가 건설에 대한 열풍이 들이닥치자 종교와 왕정은 점차 힘을 잃는다. 그 과정에서 종교가 신민들에게 제공했던 정신적인 보호장치도 사라진다. 보호장치가 사라졌다고 해서 인간들이 느끼던 정신적인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인간들은 종교를 대체할 새로운 안식처를 민족에서 찾았다. 이와 더불어 체제의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신민들은 국민으로 전환 될 필요가 있었고, 인쇄기술의 발전에 힘 입은 신문과 문학의 도움을 받아 국민들의 정체성이 민족에 기반하고 있음을 부각한다. 그러니까 민족주의는 국민들이 국경 내 이웃들에 대한 일체감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국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허구적인 장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상상의 공동체』에서 이렇게 민족 문제를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민족주의가 파괴적인 파시즘의 기억과 얽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폭력성을 인정하더라도, 민족은 상상된 무엇이 아니라 실체적인 것이다. 『민족』은 ‘정치적 종족성’이 인류 문화를 형성하는데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다룬다. 민족의 종족성은 애초부터 국가 건설에 있어서 필수적이었으며, 종족과 국가의 연관은 언제나 긴밀했다. 그리고 친족과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의 종족성은 국가가 출현한 이래로 항상 정치적이었다. 그러니까 정치적 종족성은, 종족적으로 가까운 집단들이 거주하는 공간 위에서 통일과 분열의 과정을 거치며 더 큰 국가로의 성장과 확대를 가능케 한 거대한 힘인 것이다. 『상상의 공동체』에서는 인쇄라는 문화적 도구의 혁신으로 인해 대중적인 차원에서 의사소통의 약진이 일어나며 비로소 국민들 간의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인쇄 문화 외에도 언어와 종교 같은 문화적 도구들은 전근대 세계에도 널리 확산되어 일상적인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었으며 민족 정체성과 연대를 형성하는데 주된 매개체로 기능했다. 이렇듯 민족을 포함한 종족정치적 기제는 인간 정신과 문명에 아주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만약 민족주의의 퇴행성을 지적하며 민족 문제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가진 폭발성을 간과하고 적절한 대처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세계 문명권의 대부분이 민족성과 종족성에 기반하여 서구적 근대성 이후를 담지하는 국가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민족성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몇 차례의 위기가 있긴 했지만 비교적 평화롭게 계엄 사태가 마무리 되고 민주진영의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상황에서, 여전히 나는 12월 2일 시민들을 국회로 이끌었던 힘에 대해서 생각한다. 굳게 닫힌 국회 담장 너머로 계엄 해제 의결을 위해 의원들에게 어깨를 내어준 시민들과 뉴스를 보자마자 카카오 택시의 앱을 켰던 친구들은 분명 계엄령에 대해 강한 분노와 당혹감, 그리고 목적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앞서 비판한 민주주의라는 현 체제와 더불어 민주화된 사회가 제공하는 안전함과 안온함을 지키기 위함이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 수록 뚜렷해지는 것은, 12월 2일 두려움을 뚫고 거리로 나왔던 시민들의 용기는 단순히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주기적으로 기능부전에 빠지는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의지에서 한발 더 나아간, 불의와 폭력에 대한 저항과 생명이 스러지는 것을 목격하며 느끼는 윤리적 고통과 같은 민족문화적이고 생물학적으로 훨씬 근본적인 무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는 『맹자의 땀 성왕의 피』에서 이야기 하는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 내지 ‘유교적 윤리의식’을 지닌 한민족의 ‘우환 의식’에 기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으로 대표되는 반자유주의 진영의 등장(자유주의의 산실로 여겨지는 미국마저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상식처럼 받아들이던 서구적 근대 이후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한국인의 유교적 민족성이 드러났다는 것이 왠지 절묘해보인다. 따라서 체제의 질적 도약은 각 민족 권역의 문명적 자의식을 고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계엄 사태에 드러난 한국인들의 유교적 민족성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즉, 권력투쟁의 중심에 선 군주를 ‘도덕적으로 무결한 성스러운 임금’이라는 교의를 통해 규율하여 폭력적 현실을 다스리고자 했던 선현들의 오랜 ‘유교적 안티노미’를 진지하게 숙고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근본을 돌이켜 볼 때야 비로소, 자유주의의 한계와 민주주의의 혼란 이후를 상상해야 하는 문명사적 전환기 속에서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