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리뷰
나는 주로 SF 장르를 영화로 접했다. 영화에서 펼쳐진 미래는 잿빛 도시와 규격화된 인간, 두려운 외계 생명체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지금도 미래를 생각하면 우울하고 불안해진다.
하지만 김 초엽 작가의 작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내가 그동안 봐왔던 미래와 색감 자체가 다르다. 잿빛의 차가움이 아닌 밝고 따뜻함이 느껴진다. 미래의 모습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작가에게 고맙다.
기술이 변하면 사회는 어떻게 바뀔까? 1982년에 만들어진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2019년과 달리 지금의 도시는 디스토피아도 아니고, 복제 인간을 잡으러 다니지도 않는다. 40년 전에 생각했던 모습과는 다르지만 우리는 상상하지 못한 일상을 살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삶의 곳곳에 스며들어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다.
7개의 단편에서는 가까운 미래에서 먼 미래의 모습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각각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주된 기술도 다르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 안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캄캄한 우주처럼 막막하고 아득한 미래의 모습이 펼쳐지다가도, 그 끝에서 우리는 빛나는 작은 별을 찾을 수 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진흙탕 속에서 행복을 찾는 인간
'마을'에 사는 데이지는 '왜 시초지(지구)에 간 순례자들이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그들은 어째서 갈등도 폭력도 없는 평화로운 '마을'을 떠난 걸까? 누구 하나 차별로 고통받지 않는 친절한 공동체를 떠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일상의 균열을 맞닥뜨린 사람들만이 세계의 진실을 뒤쫓게 되는 걸까?
나에게는 분명한 균열이었던 그 울고 있던 남자와의 만남 이후로,
나는 한 가지 충격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어.
우리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
'마을'은 평화롭지만 서로 사랑과 성애의 감정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리고 순례자들 중 일부는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다. 데이지는 이 작은 균열을 느꼈고, 지구로 향한다.
지구는 인간 배아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계급체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에서 지구로 향한 사람들은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마주한다. 그들은 커다란 비참함과 고통 그리고 사랑을 알았고, 함께 싸운다.
고통이 없는 상태는 '행복'이 아니다. 인간이 바라는 유토피아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함께 싸우고, 눈을 감을 사람을 찾을 것이고, 그와 손잡고 나아갈 것이다.
<스펙트럼>
인간의 반경이 우주 범위로 확장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수많은 낯서 존재들과의 만남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작품 속 희진은 낯선 행성에 홀로 떨어진다. 그곳에서 만난 생명체는 희진을 지켜준다. 히진은 생소한 환경, 생명체,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구 외부의 낯선 존재와 조우한다면, 어떤 도구가 필요할까? 각종 과학도구, 컴퓨터, 분석 기구? 어쩌면 우리의 감각 그리고 관심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공생 가설>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실은 외계성이었군요."
많은 SF 장르에서 인간의 몸에 침투하는 외계 생명체들은 인간의 몸을 장악해 지구를 침략하는 적대 세력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는 유년기 인간에게 이타성과 윤리를 가르쳐준 뒤 사라진다. 인간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지성적 존재다. 인간은 그들에게 그리움을 느낀다. 작품을 읽으며 놀랐던 점은 나조차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세계가 넓어지면 우리는 더욱 외로워질까?
우리는 곁에 누군가가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하물며 우주로 이민이 가능한 세상이 온다면 가족과 혹은 소중한 누군가와 수억만 년의 거리가 멀어진다. 사랑하는 이들과 수만 년이나 떨어져 100년을 기다리는 그리움과 외로움의 깊이와 무게는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정부의 경제적인 효용성에 의해 버려진 이주민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이 배경이 우주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인간의 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하나하나의 개인은 소외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우주적인 스케일의 외로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감정의 물성>
사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 주인공과 비슷한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감정의 물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 위안을 주는 걸까.
<관내 분실>
'엄마'가 되어 자신을 잃어버린 많은 여성들에게.
"엄마는 세계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인덱스가 지워지기 전에도."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엄마'가 되기 위해 사회에서 물러나야 했을까 생각해본다. 주인공의 이해한다는 말에 눈물이 났다. 아빠도 남동생도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영원히. 하지만 딸은 같은 희생을 함으로써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마침내 엄마를 이해하게 된 모녀의 모습은 감동적이기보다 안타깝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나의 용기는 누군가의 꿈이 되어...
여성, 동양인, 비혼모.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조건들 속에서 모진 비난과 무시를 견뎌낸 재경의 일탈은 통쾌하다. 그의 선택이 책임감 있고, 도덕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의 용기를 양분 삼아 수많은 어린 여성은 꿈을 피워냈다. 그렇다면 그의 말처럼 정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재경의 길을 다시 새롭게 걸어가는 가윤이 이를 증명한다. 두 사람의 목표와 꿈은 달랐지만 그 용기만큼은 재경에게 이어받은 것이다.
인간 배아 디자인, 죽은 이들의 뇌파를 박제한 마인드 도서관, 우주 정거장과 웜홀, 인체 개조까지. 혁신적인 기술들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서는 소외받는 계층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모든 이들이 존중받고,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세상이 저절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더 큰 차별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올리브처럼 행복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그리고 가윤처럼 누군가가 맞섰던 길을 밟아가면서 계속 싸울 것이다.
그러면서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