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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조용히 좀 해요!

레이먼드 카버의 차갑지만 따뜻한 시선

by 코두 codu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제목에서부터 무신경함, 귀찮음, 예민함, 짜증스러움, 무미건조함이 느껴진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서 나타나는 현대인의 단상은 응축적이지만 날카롭다.

각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모두 외로움과 고립감에 몸부림치는 것만 같다.

본인조차 타인을 이해할 여력이 없지만, 누군가는 자신을 이해하고 소통해 주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감정들이 느껴진다. 나의 마음이기도 하고 당신의 마음이기도 한 그 모순적인 감정을 포착해 냈다.

카버가 포착해 내는 감정들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자연스레 받아들이기 껄끄러운 우리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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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며 받은 인상은 딱 이렇다. 무미건조하고 차가운 느낌.

가까운 이웃을 훔쳐보는 <이웃 사람들>과 <좋은 생각>에서는 엿보고, 뒤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받아들이는 건 불편하다. 이런 충동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기에 더욱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의 소설에서 많은 가정은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소통에 성공한 관계는 찾아볼 수 없다.

부모와 자식, 결혼한 부부, 친한 친구, 연인. 가장 가까운 거리라고 여겨지는 이들의 사이에는 무관심함이 자라나 두터운 벽이 솟아 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부부는 이혼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다.

그 상황에서 사춘기의 소년은 그릇된 성욕조차 어찌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

아이는 그저 엄마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을 뿐이다.

그 방법을 모를 뿐. 반토막 난 물고기처럼 혐오스러운 존재가 된 건 그 아이의 잘못은 아니다.

애정 한 톨 남지 않은 가정의 공기는 건조하고 싸늘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자라기 힘들다.


<그들은 당신 남편이 아니야>와 <무슨 일이요?>에서는 결혼 관계에서 여성의 처지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제시한다. 여성에게 결혼이란 종속이다. 기혼 여성은 각기 다양한 이유로 비극적이다.

여성은 남성의 재화와 다름없다. 옛날에 전쟁이 일어나면 전리품에 여성이 포함되는 것처럼.

남성은 자신의 전리품을 자랑하고 그것을 이용해 이득을 취한다.

여성이 사회적 아름다움에 부합할수록 그 전리품은 빛이 난다. 사회에서의 가치가 커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남성은 자신의 남성성을 높인다.




이렇게 보면 레이먼드 카버가 사회에 부정적이며 회의적이고 차갑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인본주의자로 선언한다.

현대인들의 현상을 날카롭게 해부하지만 그 시선의 끝에 따뜻함이 있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연인이 시골에서 함께 생활할지 말지에 대해 고민하는 이야기 <이건 어때?>에서 이런 대사로 끝이 난다.


“우린 정말로 서로 사랑해야만 할 거야.”


이 난관들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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