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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두 codu Nov 16. 2019

당신은 어떤 '룸'에 갇혀 있나요?

영화 <룸>(2015) 리뷰

2008년 요제프 프리츨 사건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소설 『룸』을 영화화 한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의 《룸》(2015) 


올드 닉은 17살 조이를 납치하고 도망치지 못하게 감금한 뒤 지속적으로 강간한다.

조이는 납치범의 아이인 잭을 낳게 된다. 7년 후 잭은 5살이 된다.

조이와 잭은 '룸'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다. 

영화는 자극적인 사건(실제 사건보다는 아니지만)을 다루고 있지만 폭력적인 장면들은 절제되어 있다.

폭력적이거나 잔인하거나 고통스러운 장면을 못 보는 사람이라도 무리 없이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극을 이끌어 나간다.

스릴러지만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호불호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작품이다. 

본 리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살기 위해서는 '연결'이 필요하다 


인간이 극한의 상황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올드 닉에게 7년 동안 지속적인 강간과 폭력을 당한 조이는 아들 잭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모성으로 극복한 시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조이가 살기 위해서는 잭이 필요했고, 잭은 엄마가 필요했다.

그들은 '룸'에 홀로 남겨지지 않기 위한 서로의 버팀목이자 숨구멍이었다. 

영화는 잭의 시선을 따라간다. 올드 닉이 오면 잭은 옷장 안에 들어가 숨죽이고 있는다.

우리는 같이 숨죽여 조이의 고통을 가늠할 뿐이다.

'룸'에서 태어나 5살이 될 때까지 나가본 적 없는 잭에게 이 작은 방은 세상의 전부다.

조이는 잭을 위해 세상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지만 마침내 탈출을 결심하고 잭에게 현실을 말해준다.

'룸' 이외의 세상을 모르는 잭은 진짜 세상을 부정하고 탈출 작전을 미루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한번뿐인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조이는 계획을 실행한다. 마침내 잭은 태어나 처음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진짜 나무, 진짜 고양이, 진짜 개, 엄마가 아닌 진짜 사람, 

작고 더러운 창문을 통해 보이는 하늘이 아니라 진짜 하늘.

조이는 잭을 위해 세상으로 아이를 내보낸다. 조이는 그런 잭이 있었기에 닉에게 벗어날 수 있었다.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그들을 버틸 수 있게 만들었고, 세상을 만나게 해 주었다. 

처음 세상을 만난 잭

 

세상을 만난 아이와 사회에 내던져진 엄마 


조이와 잭의 탈출 작전은 영화의 약 절반 지점에서 성공한다.

감금과 폭력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뿐 아니라 이후의 상황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우리는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들이 견뎌내야 하는 모진 사람들과 사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 행복하게 산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조이는 7년이라는 세월을 잃었다.

17살이었던 그는 성인이 되었고, 엄마가 되었다. '착한 아이'가 되려고 한 선행의 대가는 컸다.

'착한 아이'에서 '엄마'가 된 조이는 7년 전에 멈춰버린 자신의 방과 추억을 복잡한 감정으로 마주한다. 

극적인 사건에 이끌리듯 구름 떼 같이 모여든 대중들과 언론은 이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인터뷰 내용은 조이가 자살을 시도했는지, 잭에게 미안하지 않은지, 닉을 아빠로 인정할 것인지 조이를 배려하지 않는다.

조이를 힘들게 한 건 닉뿐만이 아니다. 쏟아지는 질문과 시선, 그리고 응원조차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룸'에서는 살아남아 탈출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벗어났음에도 조이는 행복하지 않다.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조이는 주변의 도움을 거절하고 홀로 견딘다. 결국 조이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된다.

조이가 세상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죽음밖에 없었다. 그리고 잭은 다시 한번 조이의 죽음을 막아주게 된다.


"누구나 서로에게 힘을 주는 거야. 혼자서 강한 사람은 없단다."


우리가 누군가의 혼자됨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면 많은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약자들의 연대 


올드 닉은 이런 말을 한다. '너희들이 먹고 잘 수 있는 건 다 내 덕분이니 감사하라. 직장을 잃어서 나도 힘들다'라고.

부부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지만 그들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미친 소리가 없다.

영화 속 올드 닉은 잔인한 범죄자고 이들은 부부가 아니다. 그런데 이 대화에서 우리는 가족 같은 느낌을 받는다.

경제력으로 가족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행위를 한다면 올드 닉과 다를게 무엇인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정폭력은 영화 속 올드 닉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탈출에 성공한 잭을 구조한 두 명의 경찰관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분명히 느껴진다.

여성인 파커 경관은 잭의 말을 기다려주고, 사건의 단서를 얻어 또 다른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남성 경관은 광신교의 짓으로 치부하고 미아보호소에 보내자고 한다.

남자 경관은 불안정하고 횡설수설하는 어린 잭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본다.

일상에서 위협적인 상황을 느끼는 경우가 적기 때문일까? 남자 경관은 잭을 보고도 범죄를 예상하지 못한다.

파커 경관과 남성의 차이는 여성이 모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강자가 아니기에 예민하고 직관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도 '룸'에 작별 인사해야지." 


'룸'에서 잭은 자신의 완전한 세계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잭은 자신만의 행복을 찾았다.

아침마다 방의 물건들에게 인사하고, 쥐와 친구가 되고, 무엇보다 엄마와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잭은 '룸'을 벗어나서도 종종 그곳을 그리워한다. 마지막으로 조이와 잭은 룸을 다시 마주한다.

잭은 테이블, 세면대 그리고 옷장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룸'에게 하는 작별 인사는 다음 문장을 위한 마침표와 같다. 끝내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

'룸'은 더 이상 공포로 걸어 잠겨 있지 않다. 원한다면 벗어날 수 있다.

"문이 열려 있으면 '룸'이 아니거든"


문은 열렸고, 어디로 갈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갇혀 있는 그곳은 어디인가. 그 문은 누가 닫았는가. 문을 열자. 혼자서 버겁다면 누군가와 함께.

하지만 어떻게든 그 문을 향해 나와 '룸'과 작별을 고하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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