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두 codu Nov 28. 2019

전하지 못한 마음으로 너를 꿈꾼다

영화 "윤희에게" 리뷰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윤희에게, 잘 지내니?


윤희는 남편과 이혼하고 딸 새봄과 단둘이 살고 있다. 어느 날 새봄은 윤희에게 온 한 통의 편지를 보게 된다. '잘 지내니?'라는 평범한 문장으로 시작한 편지에는 윤희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사실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새봄은 잘 모른다. 삼촌에게, 아빠에게 물어보아도 여전히 알 수 없다. 편지를 쓴 사람은 윤희와 어떤 사이일까? 궁금해진다. 새봄은 편지가 쓰인 곳, 일본 오타루로 여행을 윤희에게 제안한다. 윤희는 내키지 않아 하지만 (윤희에게는 처음인) 두 번째 편지를 읽고 여행을 결심한다. 그렇게 윤희와 새봄의 여행이 시작된다.



잊을 수 없는 추억, 참을 수 없는 그리움


20년 전 쥰은 일본으로 갔고 윤희는 한국에 남았다.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쥰은 계속 윤희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오랫동안 네 꿈을 꾸지 않았는데,
이상하지. 어제 네 꿈을 꿨어.
나는 가끔 네 꿈을 꾸게 되는 날이면
너에게 편지를 쓰곤 했어."

쥰은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저 참을 수 없는 마음을 편지에 담았을 뿐이다. 

"머지않아 나는 아마 또 처음인 것처럼 이 편지를 다시 쓰게 되겠지?"

누군가의 꿈을 꾸며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쓰는 이의 마음은 어떠한가. 쥰에게 있어 윤희가 얼마나 잊을 수 없는 존재인지 알 수 있다. 계속해서 윤희의 꿈을 꾸는 한, 계속해서 마음은 쌓이고, 결국 다시 편지를 쓰게 될 것이다. 열렬한 불과 같은 애정이 아니라 끝없이 내리고 쌓여 치우기 버거운 눈과 같은 마음이다.



엄마와 딸의 여행


영화의 주된 서사는 편지의 주인공인 쥰과 유희다. 하지만 윤희와 딸 새봄의 관계 변화 또한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 윤희와 새봄의 사이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윤희는 우울했고, 스스로 벌을 주듯이 살았다. 엄마의 그런 마음이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을 리 없다. 

"내가 엄마에게 짐이었나 봐."

새봄은 늘 힘들고, 외로워 보이는 윤희에게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가 아니라 엄마의 곁에 남았다. 자신을 억누르고 딸에게 헌신하며 산 윤희의 마음은 새봄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봄은 윤희가 좀 더 자신을 위해 살기를 바란다. 

여행의 본 목적은 '엄마의 사랑 찾기'이지만, 여행을 통해 윤희와 새봄 또한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엄마의 카메라에 담긴 의미, 서로의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흡연 여부까지. 아름다운 것만 찍기 때문에 인물 사진은 안 찍는다던 새봄의 카메라에는 엄마와 자신의 모습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윤희와 새봄이 눈사람을 만드는 장면은 개인과 관계의 성장을 보여준다. 처음에 각자의 눈덩이를 굴리는 모습은 각자 하나의 화면에 잡힌다. 그리고 대화를 주고받으며 윤희는 자신을 조금 털어놓게 된다. 그러다 장난스레 서로에게 눈을 던지며 그 모습은 한 화면에 잡힌다. 작은 눈 뭉치 속에 애정이 담겨 서로에게 전해진다. 그런데 완성된 눈사람은 보여주지 않은 채 다른 장면으로 전환된다. 눈사람의 완성된 모습은 마침내 쥰과 윤희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나타난다. 윤희가 자신의 마음을 열고 그 마음을 전하면서 성장했음을 눈사람으로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윤희의 성장을 이끄는 가장 큰 주역이 새봄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눈사람이 완성된 순간에 새봄이 함께한 인물은 남자 친구인 경수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잔잔하고 채도가 낮은데, 그 속에서 생동감을 불어넣는 인물이 바로 새봄과 경수다. 경수가 리폼한 장갑을 한쪽씩 나누어 끼고 작당을 모의(?)하는 모습은 사랑스럽다. 두 아이의 관계 또한 여행을 통해 더욱 돈독해진다. 


아픔을 뒤로하고


윤희는 오빠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을 해야 했다. 어머니는 그런 윤희가 안쓰러워 카메라를 사주셨다. 말하자면 카메라는 윤희의 희생에 대한 대가이자 아픔이다. 그 필름 카메라는 곧 대학생이 되는 새봄에게 전해진다. 사회가 나아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희생과 아픔을 기억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처럼 그 시절의 아픔은 고스란히 남는다. 시간이 지나 바랠지언정 여전히 남아있다. 윤희의 가족은 그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모질게 대했다.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윤희는 아픔을 뒤로하고 흘려보낸다. 



여전히 너를 꿈꾼다


편지에 담긴 마음은 어떤 매체보다 울림이 크다. 쉽고, 빠르게 전해져 휘발되는 매체가 아니다. 느리게, 오래도록 그리고 은은하게 남는다. 영화 <윤희에게>도 그런 영화다. 천천히 조금씩 전해지는 마음이 보는 이에게도 스며든다.

잊을 수 없는 추억, 잊을 수 없는 냄새,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오래도록 누른 그 마음들은 꿈이 되어 찾아온다. 꿈은 닿을 수 없고, 이루어질 수 없다. 꿈을 꾸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손을 들어 그 마음을 종이에 옮기면 어쩌면 그 마음은 전해질 수도 있다. 꿈을 꾸고 그 마음을 참을 수 없어 쓴 쥰의 편지를 마사코 고모가 전한 것처럼 말이다.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나도 여전히 너의 꿈을 꾸고 있다고 '추가로'나마 적는다. 단지 '꿈'이 아니라 전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 당신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은 어떤 '룸'에 갇혀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