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두 codu Dec 14. 2019

누군가 결혼이 뭐냐고 묻는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결혼 이야기> 리뷰

니콜 키드먼의 이혼 사진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이혼하고 싶어 질 만큼 해방감이 느껴진다. 사실 평소에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다. 결혼을 생각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명절, 하나는 인터넷에서 '결시친(결혼/시집/친정) 류의 글'을 볼 때다. 그리고 생각의 끝은 항상 '아, 나는 결혼 안 해야지.'라는 결심으로 귀결되곤 한다. 모든 결혼 생활이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겠지만 지옥불에 스스로 걸어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나.


결국 우리는 뭔가 엉망이라고 느낄 때에야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관계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제도에 대해서. 결혼도 안 할 사람이 본 《결혼 이야기》의 간단한 감상은 '다들 결혼하기 전에 한번 봤으면 좋겠다'이다. 왜 결혼을 결심했고, 어떻게 서로를 힘들게 했으며, 어떤 길로 각자 나아갈지. 결혼의 A to Z가 담겨 있는 영화다.

노아 바움백 Noah Baumbach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결혼 이야기》는 한 부부의 이혼 과정을 보여주며 결국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결혼은 환상, 이혼은 현실

영화는 내레이션으로 서로의 매력을 들려주고, 다정했던 결혼생활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니콜 (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아담 드라이버)의 결혼 생활 중 행복했던 부분을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다.  니콜은 다정하고 남을 잘 챙긴다. 찰리는 확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밀고 나가며 자신이 만든 가족에 애착이 크다. 그리고 둘 다 장난 아니게 지기 싫어한다.


우리는 사랑스러운 장면을 흐뭇한 마음으로 보고 있다가 적막하게 라디에이터 소리만 웅웅 거리는 부부 상담실로 끌려온다. 방금 전까지 한 편의 영화 같았던 그 시절은 지나갔다. 날카로운 공기와 불편한 감정이 그들의 현실이다.

찰리는 뉴욕에 있는 극단의 감독이고 니콜은 극단의 주연 배우였다. 니콜은 LA에서 촬영하는 파일럿의 제의가 들어와 아들인 헨리와 뉴욕을 떠나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 한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 시간에도 둘은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도 니콜은 앉아 있고, 찰리는 수많은 빈 의자들을 둔 채 문에 기대어 서 있다. 한 집에 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처럼 보인다. 이 두 사람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화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집에 온 찰리가 우물쭈물 대자 니콜은 이런 찰리가 익숙한 듯 연기를 지적하라고 한다. 찰리는 연기 지적을 꼭 해야만 잠이 오는 사람이기 때문에 니콜은 찰리를 편하게 해 준다. 찰리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자마자 니콜은 눈물을 흘린다. 이 부분에서 니콜에게 그 관계는 이미 끝이라는 것과 그동안 누가 더 상대를 받아주고 감내했는지 느낄 수 있다.


나를 작게 만드는 사람

파일럿 촬영을 위해 LA로 온 니콜은 제작 스태프의 추천으로 변호사 노라 팬쇼(로라 던)를 만나게 된다. 노라는 편안하고 능숙하게 니콜의 마음을 풀어준다. 노라가 어디에 살고 싶냐고 묻자 니콜은 LA에 살고 싶지만 찰리가 싫어할 것이라고 한다. 그때 노라는 이렇게 말한다.

"우린 당신 뜻이 중요해요"

노라는 전적으로 니콜의 편이 되어주고, 그의 욕구를 대변해 준다. 능력 있고, 열정적이고, 부드러운 이혼 전문 변호사라니! 나라마다, 아니 도시마다 한 명씩 계셔야 할 그런 분이다. 노라와 대비되는 찰리의 남성 변호사 두 명이 영화의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다.

노라에게 마음을 연 니콜은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말한다. 이 장면은 꽤 긴 롱테이크로 찍었는데 니콜의 감정을 세심하게 표현한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니콜은 자신이 찰리와 지내며 생기를 찾은 게 아니라 찰리에게 생기를 더해주었다고 말한다. 찰리의 집에는 찰리의 취향이 작은 부분까지 반영되어 있었고 니콜은 자신의 취향을 잊어가고 있었다. 니콜도 찰리의 취향인 가구들 중의 하나처럼 살았다.

"내가 작아졌어요"

자신을 그저 작게만 만드는 사람과 함께할 수는 없다. 니콜은 찰리의 뮤즈이자 극단의 주연 배우, 감독의 아내 그리고 헨리의 엄마로 살았다. 하지만 찰리는 그냥 찰리였다. 재능 있는 연극 감독이자 좋은 아빠 노릇을 하고 싶은 남자. 찰리는 자신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대로 살았다. 찰리는 니콜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니콜의 파일럿 촬영을 무시했고, 출연료는 극단에 쓰자고 말했다. 심지어 니콜의 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니콜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남자들은 막연하게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밖에 모른다. 아내이자, 내 아이의 엄마이자, 나의 조력자인 존재가 자신의 꿈과 욕구가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 한 채 사는 것이 무섭다. 욕구를 표현하고, 주장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상대가 참고 살아왔음을 아주 조금, 알게 되는 것이다.


니콜은 LA에 살고 싶었고, 연기뿐만 아니라 감독이 되어 연출을 하고 싶었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싶었다. 뉴욕이 삶의 터전이라고 하면서 반년 동안의 코펜하겐 생활은 아무렇지도 않은 찰리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작품 속에 나오는 캘리포니아 법원의 여성 친화적 제도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영화 속의 상황으로만 보면 니콜의 집은 잘 살고, 찰리는 주정뱅이 아버지를 둔 고아와 다름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찰리에게 동정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더욱 신경 써야 할 대상은 니콜의 백그라운드가 없는 니콜과 같은 여성들이다.


Being Alive

찰리는 공격적인 변호사를 다시 고용했고, 재판은 서로를 헐뜯는 싸움의 장이 되었다. 스치듯 지나가며 했던 말과 행동이 두 사람을 부적절한 양육자로 만들었다. 좋게 이야기하고 싶어도 얘기할수록 분노는 극에 달한다. 그렇게 펼쳐지는 싸움 장면은 굉장하다. 이혼은 막연히 해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말 '개싸움'이다. 서로를 욕하고, 해서는 안될 말까지 내뱉고, 마침내 무너진다. 이 싸움 뒤에 남는 것은 대체 무얼까?


모든 일이 일단락된 뒤 찰리는 극단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진다. 그러다 뮤지컬 <Company>의 넘버"Being Alive"를 완창 하게 되는데 이 노래의 가사는 어쩌면 이 영화의 메시지를 3분으로 줄여 놓은 듯하다.

너무 꼭 안는 사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
내 자리를 뺏고 단잠을 방해하는 사람

날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
날 너무 잘 아는 사람
충격으로 날 마비시키고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사람
 
넘치는 사랑을 주는 사람
관심을 요구하는 사람
내가 이겨나가게 해 주는 사람
난 늘 그 자리에 있을 거야
너만큼 겁은 나지만 같이 살아가야지

살아가자


찰리는 이 노래를 부르며 문득 깨달은 것 같다. 자신에게 니콜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찰리는 니콜과 헤어졌지만, 이 사건으로 니콜은 자신을 찾았다. 니콜은 아마 영원히 찰리를 사랑할 테지만 다시는 그와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각각의 제멋대로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걸까? 지옥같은 미래가 펼쳐질 것을 알면서도 손잡고 지옥불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걸 하나 보다.




영화 추천

《결혼 이야기》를 재밌게 본 비혼 혹은 미혼인 분들에게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프란시스 하>도 추천하고 싶다. 세상과 어울리지 못해 삐그덕 거리며 살아가던 프란시스(그레타 거윅)가 세상에 '적응'하고 '조화'를 찾아가게 되는 작품이다. 감독이 인디 예술 장르를 좋아하는지 프란시스의 직업도 현대무용수다. 그리고 여기에도 아담 드라이버가 출연한다. 청춘의 방황과 갈등을 일상적이고 낭만적으로 그려낸 영화다. 뉴욕의 거리를 흑백의 감성으로 느껴볼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하지 못한 마음으로 너를 꿈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