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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유코치 티아라 Dec 14. 2021

집을 팔아서라도 수유센터에 가야겠어 ㅠ.ㅠ

그곳이 어디인들, 몇 시 인들 무조건 가야 해!!

젖몸살로, 유선염으로 혹은 유구염 등 가슴 트러블을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첫째를 출산했을 땐, 경제활동을 신랑만 하고 있었고 나는 결혼과 출산으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지역을 

옮기게 되면서 직장생활을 끝내야 했다. 결혼 전에는 늘 내가 벌어서 생활을 했었는데 신랑만 경제활동을 하고 그 돈으로 둘.. 아닌 뱃속 첫째까지 셋이서 생활하려고 하니 여유가 없었다. 


아이에게 좋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분유값을 아끼기 위해 모유수유를 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뭐.. 그만큼 넘치게 많이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달리 

잦은 젖몸살에 유구염을 동반한 유선염까지 가슴 트러블이 첫째 100일 정도까지는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병원도 다니고 별짓을 다 했지만 가슴 마사지를 받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첫째를 붙잡고 직수를 시도 때도 없이하고, 사이사이 유축도 챙기고 혼자서 가슴을 주물렀다가 

신랑 보고 살려달라고 마사지를 해보라고 했다가 이모 든 것을 다 하고서도 도저히 해결이 안 될 때는 

어쩔 수 없이 수유센터에 전화를 했다. 새벽 2시부터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다 

7시가 되면 수유센터 번호에 문자부터 보냈었다. 혹시나 빈 시간이 있으면 빨리 관리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있을 때는 그곳이 허름한 곳이라도 수유 선생님만 있으면 

됐다. 이 마사지가 너무 비싸더라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돈이 하나도 없으면 

있는 무엇이든 팔아서라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일 아픈 그날 신랑에게 

" 나 집을 팔아서라도 수유센터에 마사지받으러 갈 거야 "라고 했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목걸이 팔찌를 팔아서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들을 팔았을까? 

아니었다. 하지만 마지막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던 적금을 깨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었다. 

이 정도로 절실했었다. 살기 위해 아이와 함께 2시간을 수유를 해도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슴이 아프면 삶의 질이 떨어졌다. 왜 나만 아픈 건지 궁금했고, 내가 이렇게 죽을 듯이 아프다고 하는데 

제대로 공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게 날 제일 힘들게 했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이 3층이라 떨어지면 죽지 않을 것 같아 뛰어내리지도 못했다. 

https://brunch.co.kr/@codudsk/6

 

 

가슴이 아파서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을 때 그 돈이 얼 마인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이 괜찮아지면 돈 생각이 났다. 하;; 분유를 먹이는 게 더 돈이 덜 드는 게 아닐까?

분유값을 아끼자고 한 모유수유이지만 가슴 마사지로 돈 백만 원 이상을 썼었다. 

(지금도 큰돈이지만 2012년도에 이 돈은 나에게 너무 컸다.)

과연 이게 돈을 아끼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날 괴롭혔지만, 가슴을 아플 땐 깬 적금으로 당장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 계속 마사지를 받으면 어떡하지? 이 아픔의 끝이 있긴 있는 걸까?

진짜 집을 팔아야 하나? 남들은 마사지를 받지 않고도 수유를 잘만하는데 나는 왜 이럴까?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들었다. 


아파본 사람이 그 아픔을 안다고 했던가? 


이 아픔을 겪어봐서 인지.. 아픈 엄마가 전화 오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수유 코치가 되고 싶었다. 

새벽 2시에 문자를 남기는 그 엄마의 아픔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형편이 어려워 아파도 관리를 받고 싶은 마음처럼 관리를 받을 수 없는 엄마들에겐 지나가다가 잠깐의 시간을 내어 케어를 해주고 싶었다. 

오지랖일 수 있고, 내 마음이 전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집을 팔아서라도 모유수유센터에 가고 싶었던 그때의 나를 잊을 수 없었고 

육아를 하면서 수유 때문에 더 힘들거나 속상한 엄마들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힘들었을지라도 모유수유의 기억이 행복으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수유 코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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