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짜장면 한그릇을 거뜬히 먹는 세살짜리 아기였다. 너무 맛있어서 손가락을 파르르 떨었다고 한다. 음악이 나오면 어디서 본 춤을 손짓 발짓 추다가 음악이 끝날때 치마를 살짝 들어올리며 인사를 해서 어른들을 퍽 신나게 했다고도 한다. 내 어릴적 사진들 중에는 내가 진지한 얼굴로 화이트보드에 조금 무서운 그림을 가득 채우던 사진도 있다.
엄마는 내 그런 모습들을 좋아했다. 밝고, 충동적이고, 예술적이고, 욕망에 충실하고, 가끔은 고집스러워도 감정이 팔딱팔딱 살아있는 모습. 그런데 사실 엄마는 나를 닮았다. 엄마는 요즘 잘 웃고, 곧잘 나랑 수다를 떨고, 즐거울 때 엉덩이춤을 춘다. 고드름을 보고 수정고드름 노래를 부른다. 사진이나 영상을 찍자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멈칫 멈칫 포즈를 취하는데 나를 보고있는 것 같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모습 중 가장 밝고, 여유롭고, 포근하다.
엄마가 나를 닮았다고 말한건 내가 먼저 철딱서니처럼 굴었고 그 뒤에 엄마가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만들었다. 엄마의 세포, 피, 영양소, 웃음, 불안, 눈물, 그림자. 엄마가 엄마인 모든 것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와 내가 되었다. 그러니 내가 엄마를 닮았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엄마가 속에 늘 품고 있던 모양으로 돌아온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엄마가 내 모습중에 유달리 귀여워하고 애틋해하던 몸짓들, 내 눈엔 똑같아 보이는데 스무장 서른장씩 찍었던 내 사진들이, 결국은 다 엄마라고 생각하면 나의 일상 곳곳에 그녀를 추억할 모퉁이가 참 많다.
엄마와 나는 사는게 서러워서 그 모습으로 살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 먼저 나아지던 나는 처음에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다가 내가 나아질 수 있던 이유는 그녀가 나를 보살펴줘서, 단지 기회가 더 많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엄마는 내가 바라던 부모가 되었다. 엄마는 내가 쓸쓸할때 말동무가 되어주고, 같이 웃고, 같이 춤을 춘다. 그래도 아직 나는 더 기다리고 있다. 엄마는 내 허벅지는 섹시하고 자기 허벅지는 지나치게 퉁퉁하다고 한다. 내 글을 읽힐만 하지만 자기 글은 주책맞다고 한다. 엄마가 일기의 짧은 구절을 나눠줄때마다 눈물이 고이는 나는 그 말에 입을 삐죽 내밀게 된다. 근데 엄마는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그 생각도 사라지게 되리라는 걸.
엄마가 매일 더 사랑스러워지기 때문에, 오늘 그녀와 통화를 한 나는 북받쳐서 많이 울고 엄마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 사람 좀 보시라고, 무척 귀엽지 않냐고 자랑하고 싶어졌다. 우리의 사이는 서로 닮아가면서 매일 변한다. 이것은 내게 일어나는 일 중에 가장 마법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