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아 Feb 15. 2024

엄마는 나를 무척 닮았다

나는 짜장면 한그릇을 거뜬히 먹는 세살짜리 아기였다. 너무 맛있어서 손가락을 파르르 떨었다고 한다. 음악이 나오면 어디서 본 춤을 손짓 발짓 추다가 음악이 끝날때 치마를 살짝 들어올리며 인사를 해서 어른들을 퍽 신나게 했다고도 한다. 내 어릴적 사진들 중에는 내가 진지한 얼굴로 화이트보드에 조금 무서운 그림을 가득 채우던 사진도 있다. 


엄마는 내 그런 모습들을 좋아했다. 밝고, 충동적이고, 예술적이고, 욕망에 충실하고, 가끔은 고집스러워도 감정이 팔딱팔딱 살아있는 모습. 그런데 사실 엄마는 나를 닮았다. 엄마는 요즘 잘 웃고, 곧잘 나랑 수다를 떨고, 즐거울 때 엉덩이춤을 춘다. 고드름을 보고 수정고드름 노래를 부른다. 사진이나 영상을 찍자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멈칫 멈칫 포즈를 취하는데 나를 보고있는 것 같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모습 중 가장 밝고, 여유롭고, 포근하다.


엄마가 나를 닮았다고 말한건 내가 먼저 철딱서니처럼 굴었고 그 뒤에 엄마가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만들었다. 엄마의 세포, 피, 영양소, 웃음, 불안, 눈물, 그림자. 엄마가 엄마인 모든 것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와 내가 되었다. 그러니 내가 엄마를 닮았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엄마가 속에 늘 품고 있던 모양으로 돌아온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엄마가 내 모습중에 유달리 귀여워하고 애틋해하던 몸짓들, 내 눈엔 똑같아 보이는데 스무장 서른장씩 찍었던 내 사진들이, 결국은 다 엄마라고 생각하면 나의 일상 곳곳에 그녀를 추억할 모퉁이가 참 많다. 


엄마와 나는 사는게 서러워서 그 모습으로 살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 먼저 나아지던 나는 처음에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다가 내가 나아질 수 있던 이유는 그녀가 나를 보살펴줘서, 단지 기회가 더 많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엄마는 내가 바라던 부모가 되었다. 엄마는 내가 쓸쓸할때 말동무가 되어주고, 같이 웃고, 같이 춤을 춘다. 그래도 아직 나는 더 기다리고 있다. 엄마는 내 허벅지는 섹시하고 자기 허벅지는 지나치게 퉁퉁하다고 한다. 내 글을 읽힐만 하지만 자기 글은 주책맞다고 한다. 엄마가 일기의 짧은 구절을 나눠줄때마다 눈물이 고이는 나는 그 말에 입을 삐죽 내밀게 된다. 근데 엄마는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그 생각도 사라지게 되리라는 걸.


엄마가 매일 더 사랑스러워지기 때문에, 오늘 그녀와 통화를 한 나는 북받쳐서 많이 울고 엄마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 사람 좀 보시라고, 무척 귀엽지 않냐고 자랑하고 싶어졌다. 우리의 사이는 서로 닮아가면서 매일 변한다. 이것은 내게 일어나는 일 중에 가장 마법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가 분노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