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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Dec 21. 2023

나의 소울푸드를 너에게 주겠다.

이렇게 하면 더 잘먹음

"오빠 어머니께 총각김치 좀 더 해달라고 그래."

"해놓으셨대-."

"응. 알았어."


 이야기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2020년 쯤, 뜬금없이 바깥양반이 총각김치 5kg 정도를 택배로 시킨 일이 있다. 가뜩이나, 바깥양반의 시어머니께서 심심하면 온갖 김치를 만들어주시는 통에 김치를 소진하는 게 고민인 터라, 김치를 사먹는다는 상식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터에 는, 바깥양반이 친 사고에 조금 짜증을 내었다. 아니, 총각김치가 먹고 싶으면 시어머니께 조금 부탁을 하면 기꺼이 만들어주실 것을. 한마디 말도 없이 시킬 것은 무어냐. 


 그러나 우리 바깥양반께서는 자기 손으론 김치를 꺼내먹지도 못하는 위인이시라. 게다가, 내가 굳이 남의 김치를 식탁에 올릴 일도 아니기 때문에 그 총각김치는 차리는 나에게서도, 주문을 한 바깥양반에게서도 외면당하고, 겨울 휴가를 다녀오고 나니 이미 맛대가리 없게 쉬어빠져버렸다. 그래서 얼마간은 김치냉장고에 더 방치가 되다가, 마침내 내가 날을 잡아 냉장고를 비우던 날에 버려졌다. 


 그리고 다시 이번 겨울. 바깥양반은, 얼마 전 시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총각김치를 내가 다 비워버리자, 식탁에 오르지 않는 것이 아쉬웠던지 총가김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하던 참에 며느리가 총각김치를 잘 먹는단 말을 꺼냈고, 엄마는, 이미 총각김치를 만들어놓은 것이 있으시다며, 김장을 할 때 가져가라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는 두통의 새 김치와 한 통의 총각김치, 그리고 또 한통의 깍두기가 쟁여졌다. 바깥양반은, 배추김치는 익혀줘야만 먹지만 깍두기와 총각김치의 경우 아삭이는 그 맛에 날것도 먹는다.  그러나 원체 입은 짧은 아이인지라, 나처럼 한 끼니에, 밥과 대등한 양의 김치를 먹지는 못한다. 고기 반찬을 위주로 밥을 먹으며, 몇 젓가락 김치를 집어먹을 뿐. 


 그러하니 나는 또 수를 낼 수 밖에 없다. 김치는 많고, 나는 이 총각김치가 맛있다. 나 역시도 원체 총각김치를 좋아한다. 어릴 때, 알타리무를 썰지 않은 채로 엄마가 식탁에 올리면 나는 어른을 흉내내듯 그것을 왼손으로 집어 아사삭 깨물어먹으며 이래야 맛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정도는 연출해주어야, 바람직한 아들네미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총각김치는 나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초등학교 1,2학년 시절, 누나와 함께 자주 만들어먹은, 거의 내 기억 속 최초의, 내 손으로 만든 요리의 하나로 총각김치 볶음밥이 당당히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무심한듯 시크하게 8살, 9살 먹은 아들네미에게 밥은 알아서 차려먹으라며 라면, 볶음밥 등을 만들도록 시켰고 나와 누나는 알아서 차려먹고 컸다. 나중에 나는 요리 실력을 키웠고 누나는 내가 싫어하는 설거지를 해줬다. 그래서 우리가 밥을 차려먹어야 할 때가 되면, 우리는 냉장고에서 총각김치를 꺼내, 도마 위에 그것을 올리고 고사리손으로 조심스럽게 깍둑썰었다. 그리고 밥과 함께 볶은 뒤, 멋대가리 없게도, 계란을 휘저어 밥 속에 비벼 익혀버렸다. 


 그러나 이제 30년 이상의 세월이 훌쩍 흘러, 그 총각김치볶음밥의 맛은, 바깥양반에 따르면, "어 그거 고기집에서 먹었는데 맛있었어." 라는, 기억 속의 산물이 되어 있고 나는 6년여의 결혼생활 간 총각김치 볶음밥을 해준 적은 아직 없었다. 왜일까 생각을 해보니, 너무 오랜 옛 기억이라, 그것을 다시 해볼 생각도 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아직 채 익지도 않은, 그래서 알타리의 아삭거림과 달큰함이 살아, 양념의 맛에 파묻히지 않은 총각김치의 맛이, 내가 생각할 때는 볶음밥을 만들기 가장 좋을 때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 바깥양반에게 나의 소울푸드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별거 있나 뭐. 볶고 볶고 볶고. 


 8살짜리도 만들던 요리다. 그냥 달콤매콤한 총각김치 하나면, 거기에 뭘 곁들여도 좋은 요리다. 맛살은 바깥양반의 취향이다. 유통기한 한달이 남아있던, 4~50줄 정도의 맛살을 사 다 먹어간다. 엄마는 이 총각김치에 쪽파도 넉넉히 넣으셨기 때문에 자극적인 향이 더욱 풍성히, 기름에 볶아져 나온다. 볶음밥에, 그래도 햄은 조금. 적당한 분량만 넣는다. 


 아침을 이렇게 새빨갛게 하면, 아이가 먹을 것이 없는데, 요즘은 애가 너무 잘 먹는다. 그래서 내가 밥을 차리는 동안 바깥양반은 바나나를 썰어서 일찍 잠이 깬 아이에게 건냈다. 나는, 뒤에서 계속 밥상이 언제 차려지나 힐끗거리는 바깥양반을 신경쓰며, 밥을 후루룩 볶아낸 뒤 그 팬 위에 그대로 계란 프라이를 올리고, 뚜껑울 덮었다. 총각김치 볶음밥은, 너무나 쉽게 완성된다. 

"맛있냐."

"응. 맛있어."


 바깥양반은 배가 고팠던지 계란 후라이가 올려지기도 전에 벌써 몇 숟가락 먹어버렸다. 에이. 그래서야 사진이 예쁘게 나오겠나. 그러나, 반찬과 따로 밥을 차려주면 이거의 절반 밖에 먹지 않는 바깥양반이 맛살과 함께 볶아만 주면 뭐든 한공기는 넉넉히 비운다. 편식이 먹성 자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 탁월한 심기일체의 식성에 늘 감탄하면서, 나도 한 숟갈. 뒤늦게 앉아 옛 그리운 음식을 오랜만에 맛본다.


 맛있다. 맛있는, 싱싱한 총각김치로 만든 볶음밥. 이 맛을 위해 총각김치를 따로 만들어도 좋을 정도로 맛이 좋다. 대강 볶았어도, 아침에 급하게 만들었어도, 이보다 훌륭한 요리는 있을 수 없지. 총각김치볶음밥은, 내가 애정하는 소울푸드였으니까. 아니, 어쩌면 지금도. 아마도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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