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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15. 2023

그녀는 모른다 남편이 몰래 하는 일을

날이면 날마다.

“오빠 화장실 휴지통 좀 비워줘.”

“응.”

“이틀에 한번씩은 비워줘야해. 화장실에 벌레 끼는 거 진짜 싫어.“

“응.”


 내가 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걸까. 한창, 뒤늦게 퇴근을 해서 바쁘게 저녁을 차리느라 바쁜데 바깥양반은,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듯 차근차근 요청사항을 토로한다.


 나는 냄비를 가열하며, 미국산 우삼겹을 볶는 사이에, 냉장고에서 마늘을 꺼내어, 다져서 냄비에 넣은 뒤, 그제서야 옷을 마저 갈아입는다. 남편의 퇴근은 늦었고, 바깥양반은 내 귀가만 기다리던 터다. 아이는,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넉넉히 먹고 온 모양인지 안먹는다 하고 훽 거실로 뛰어가버린다.

 

 올 여름까지는 장모님께서 와주셔서 아이를 같이 봐주셔서 크게 힘이 들 일은 없었지만, 장모님 손을 빌지 않기로 한 뒤로 내가 더 일정이 늘어버렸다. 그래서 바깥양반에게 나는 요즘 너무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무리 내가 집안 살림을 많이 돌본다 해도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날이 너무 많아지니, 원래부터 즈질체력인 바깥양반은 벌써 기운이 철철 넘치는 딸아이를 혼자 돌보느라 정말 고생이다.


“맛있는데, 너무 기름기가 많아.”

“어- 그게. 기름 안넣었어 따로. 순수 우삼겹 기름이야.”

“으응. 그냥 고기 조금만 넣고 순두부 맛이 느껴지는

게 좋아.“

“흐응…”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삼겹을 넉넉히 넣고 들들 볶아 순두부찌개를 만들어 뜨끈한 힐링밥상을 차렸다. 날도 추워지고 감기도 쉽게 떨어지질 않고. 근데, 이렇게 정성 들여 차린 밥상에도 토를 달아준다. 원래 차돌박이를 원체 좋아하는 바깥양반이라 순두부에 우삼겹을 넉넉히 넣어준 건데.


 아기는 끝내 저녁을 먹지 않고 아이 밥그릇의 밥은 내가 반절 정도 먹고 버렸다. 이제 바깥양반의 휴식시간. 나는 이미 8시가 넘어버린 시간이라, 이내 아이를 씻기고, 책을 읽힌 후, 잠을 재운다. 익숙한 일과. 그리고 10시가 다 된 시간에야 아이가 완전히 곯아떨어지면, 육퇴가 아닌 각자의 제 2의 살림살이가 시작된다.


“아기 식기 설거지도 좀 해줘.“

“청소기!!”


 나와 바깥양반은 서로에게 할 일들을 마음에 얹어준다. 내가 곯아떨어지면 아기 식기 설거지는 바깥양반이 하지만, 보통은 내가 설거지를 하니 그 김에 아기 식기도 설거지를 한다. 나는 바깥양반에게 청소기를 밀라고 꼭 말해준다. 안그러면, 잘 안해.


 대강 살림살이까지 끝낸 뒤에야 이제 부부는 휴식시간을 갖지만, 이미 시간은 열시반을 넘긴 심야다. 우리는 각자 수업준비, 글쓰기, 게임이나 과제 등의 개인활동을, 비로소 시작한다.


“칫솔 좀 갈자.“

“응.”


 그리고, 정말로 그마저 끝이나면 이제 잠을 잘 수 있게된 우리는 양치를 다시 하고, 잠에 들 준비를 한다. 바깥양반에게 새 칫솔을 꺼내서 건내주며, 나는 물이 틀어져 있는 세면대를 살짝, 바라본다.


 흐음.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군. 나는 바깥양반이 나온 뒤 욕실에 들어간다. 양치를 마무리한 다음 익숙하게 세면대 마개를 꺼내, 거기에 엉겨붙은, 주로 바깥양반의 머리카락을 힘으로 뜯어낸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같이 살아도, 바깥양반이 절대 모르는 이런 사소한 살림살이들. 정성들여 만든 식탁에도, 내 개인적인 살림살이에도, 주로 한쪽이 발생시키는 집안일에도, 서로의 참견과 잔소리는 늘 부부 사이에 물결치지만, 이렇게 한편이 모르게 비밀스레 행해지는 일들도 있기 마련이다. 바깥양반은 이따금 세면대 물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것을 느낄진 모르나, 내가 귀신같이 재빠르게 물마개를 청소하는 건 모르겠지. 욕조의 배수거름망에 쌓이는 머리카락은, 그럭저럭 훤히 보이는 편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세면대나 욕조에 대해서는 거의 군소리가 없다.


 바깥양반 역시 나 몰래 이런 저런 살림살이들을 해두긴 할 터이다. 그러나 말을 않을 테니,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소리 없이 발생하는 편의에 산소처럼 서로에 기대어 사는 것이 부부일 테지. 그냥 그렇게 서로 양해하며 사는 게다. 그러다 어느 한쪽이 오래 집을 비우면 그제서야 난 자리를 깨우치지 않을까.


 마흔이 넘으니 피치 못하게 오늘보다 내일, 올해보다 내년이 바쁜 삶을 살게 된다. 남편의 부재에서 홀로 아이를 돌보는 바깥양반의 몸은 차라리 아이보다 무르다. 집안일은, 아이의 성장에 비례해 앞으로도 늘어나겠지. 일단은, 으음. 집안일에 열심인 아이로 좀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난 개인적으로 그런 아들네미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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