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은 모두 떨어져버렸고, 우리는 배가 고프고, 아이는 칭얼댄, 그런 날
"어떻게 이래. 와..."
"강원도가 이래. 날씨가 따로 돌아가."
단풍여행, 대 실패. 우리는 지난주에 부부동반모임으로 문경을 다녀왔다. 그리고 이번주엔 또 다시 부부동반으로 아이들을 놀릴 수 있는 리조트에 다녀왔다. 가을 한철 또 부지런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그 여행의 사이에, 바깥양반의 옹골찼던 단풍놀이 계획은 완전히, 실패. 처음 가려던 홍천은행나무숲은 지난 월요일에 서리와 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에 앙상하게 가지만 드러나 있단다. 그래서 그나마 좀 괜찮을 줄 알고 가평의 은행나무로 유명한 카페에 왔는데 그 결과가- 이렇다.
바깥양반의 올해 가을은, 단풍과의 시작해보지 못한 만남으로, 서럽게 끝나버렸다. 그리고 우린, 배가 고팠다. 아침에 홍천은행나무숲을 포기하고 알파카월드에 간다고 오픈런을 해버리고, 아점을 노나 먹은 게 다다. 길이 막혔고, 아이를 빨리 집에서 쉬게 하기 위해 식당에 굳이 들르지 않았다. 아이는 우유와 과자로 배를 채우곤 빨리 집에 가자며 우리에게 조른다. 바깥양반은 배가 너무 고프다며 차에서 늘어져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집에 와 집을 내려놓자마자 먼저 밥부터 차리기 시작했다. 마침 이틀 전 도래창을 굽고 남은 라드가 한 가득 팬에 아직 남아있다. 이걸로 뭘 할까 고민중이었는데 토요일 아침에 볶음밥을 하긴 했다. 남은 라드로, 튀김을 한바탕 휘리릭한 뒤에 버려버려야지. 바깥양반의 소울푸드 맛살을 꺼내어, 나는 한입 크기로 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어묵도, 음 어묵은 통째로 튀기는 게 낫겠다 싶어서 통재로, 튀김옷을 대강 입혀 후루룩 튀긴다. 따듯한 음식. 가벼운 음식. 가볍고도 즐거운 음식이 오늘의 컨셉이랄까.
바깥양반이 요즘 가볍게 먹는 걸 선호한다. 예전엔, 우리는 늘 헤비하게 먹곤했다. 튀김을 자주하고, 매번 스파게티, 리조또, 솥밥 등등 거창하고 걸진 식탁이었다. 그런데 바깥양반이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하고, 아이가 커가면서 관심이 거기에 쏠리자, 집에서 음식을 거창하게 하기보단 그냥 내가 빨리빨리 밥을 차리고, 설거지도 빨리빨리 마치고 아이를 안아주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거의 늘 가볍게 가볍게, 간단히 간단히를 외친다.
고작, 튀김우동 하나 만드는데에도, 아이는 짐을 정리하는 엄마와 아이 사이를 오가며 우리의 관심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 수도. 아니면, 다른 여러가지 변화와 함께 입맛의 변화 역시 바깥양반에게 찾아온 것인가 싶기도.
그래도 나는 그 와중에 어떻게서든 뭐든 더 하고야 마는 성격이다. 파 기름을 조금이라도 내려고 굳이 또 따로 파를 볶는다. 이렇게 하면 라면의 평범함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깊은 맛을 낼 수 있으니. 그리고 국물은 일부러 넉넉하게 했다. 참치액과 가쓰오부시 국물이 있으면 물을 추가해도 싱겁지 않고 오히려 원래의 그 우동 맛을 잘 살릴 수 있다.
그으-런데에...어묵을 꺼내다보니, 냉동칸에, 예전에 만들었건 아란치니가, 두 알이 마침 있다. 언제 만들었지 이걸 대체. 1년 이내엔 만들지 않았다. 2년쯤 되었으려나. 다행히 밀봉상태가 좋고, 애초에 튀김옷까지 입혀서 얼려둔 거라 상태는 괜찮아보렸다. 나는 파기름을 낸 냄비에 물을 부으면서, 다시 라드 기름에도 불을 켜서 아란치니를 튀기기 시작했다. 바깥양반은 배가 고프고, 이미 오늘의 저녁은 튀김우동으로 정해져있고, 튀김우동에, 라면 스프 건더기 뿐만 아니라 진짜로 튀김을 올려주려는 것이 나의 의지고.
그래서, 아란치니까지 올리면 의외로 뜻밖으로 고칼로리이면서 튀김우동이라는 정체성까지 확고히 뿜뿜하는, 그런 한끼, 따듯하고 간편한 한그릇이 나올 것이란, 그런 생각.
"얼른 앉아."
"으응."
얍. 하고 나는 우동그릇에 마지막으로 두개의 튀김우동을 내놓는다. 맛살은 모두 바깥양반에게. 어묵은 1:2로 내가 더. 그리고 아란치니는 각자에게 한개씩. 이정도면 가볍고 따듯한, 그리고 알찬 저녁식사다. 아란치니를 감싸고 있는 튀김옷의 칼로리 하나 빼면, 이 이상 서늘해지는 날씨에, 단풍을 놓친 서글픔에, 여행으로 지친 모두의 몸에, 딱 안성맞춤한 그런 한그릇.
사실 이 튀김우동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먹으려던 계획이었던 것은 안비밀이다. 나는 그냥 가볍게라도 아침을 떼울 생각으로 라면을 샀고 그 와중에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튀김우동을 고른 것인데, 이 튀김우동을 보곤, 바깥양반은 눈을 반짝이며, 내일 집에 가서 먹자! 외치신 그런 사정이 우리에게 있었다.
그래 라면. 그래봐야 라면 한 그릇일지라 해도, 그래도, 누군가에겐 이런 따듯한 즐거움일 수도 있겠다. 뭐 굳이 튀김까지 이렇게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