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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19. 2024

채소를 먹이려면, 이 수 밖에 없었어

여행지의 빈약한 식단에, 채소를 먹일 비책은 비빔면

 아침에 일어나 비빔면을 깐다. 아이는 매운 걸 먹지 못하므로 먼저 짜파게티를 하나 끓여주었다. 아이가 반쯤, 그러니까 제법 많이 먹고는 이제 배가 부르다며 그릇을 물렸고 이제 엄마와 아빠의 차례다. 나는 차례차례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늘어놓기 시작한다. 


 통영에서의 15일간의 반달살이. 쌀을 5kg이나 들고와서 부지런히 먹었다. 그러나 반찬은 김치 외에는 간소히 가져온 편이고, 여행을 하는 동안 식단은 비교적 단조로워진다. 메인 메뉴. 무엇이든. 하루는 멸치쌈밥 하루는 멍게비빔밥. 숙소에서는 햄을 하나 사서 부치고 계란을 부치고 김치를 늘어놓는다. 나는 나름 김치를 열심히 먹어보지만, 바깥양반은. 바깥양반께서는, 채소를 거의 먹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에 가져온 김치가, 지난번 김장 때 엄마가 만들어주신 굴김치의 마지막의 마지막인지라, 김치찌개를 끓이거나 볶음밥을 하기에도 조금 아깝다. 이건, 이렇게 굴의 감칠맛을 살려서 김치인 채로 먹어야만 하지. 그러나 바깥양반의 극편식 성향은 도무지 김치로는 젓가락을 보내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결심을 한다. 


 비빔면의 시간이라고. 

...라기엔 일단 고기를 굽고 있습니다만. 이 시점에서 나는 우선 면을 끓여서 물을 빼낸 뒤 잠시 냉장고에 보관중이다. 고기 굽는 동안 냉장고 정도는 잠깐 괜찮잖아. 어제 마트에서 비빔면을 사오는 길에 앞다리살을 딱 4천원어치 샀다. 그래서 절반인 2천원 정도 치를 굽는다. 목적은 채소를 먹이자는 거지 대강 먹자는 것이 아니다. 2천원만 투자해도, 라면이 아니라 요리가 된다. 그런 철학을 나는 아내 아니 바깥양반에게 보이고 싶다. 

 마트에서 재고처리 할인할 때 사 온 2천여원어치의 쌈채소, 중에 약간을 꺼낸다. 통영에 있는 동안 한번은 회를 포장해와서 먹을 생각이다. 그리고 통에 남은 김치 쫑쫑. 이게 다다. 둘이서 노나 먹을 겨우 이정도 채소를 먹이기 위해 나는, 바깥양반에게 비빔면을 해주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알타리김치를 엄마에게서 받아올 생각이다. 바깥양반은 시어머니의 알타리김치만은, 정말로 사랑하는듯하다. 오죽하면 통영에 들고오자며, 좀 더 해달라면 안되겠냐는 말까지 나에게 하신 바깥양반. 엄마는 오늘 통화에서 "그럴 줄 알고 알타리 사서 간다 임마!" 라고 하신다. 그 알타리, 곧 맛있게 익어있겠지. 


 조물조물 그렇게 비빔면을 만든다. 바깥양반에게, 편식없이 채소 거르기 없이 한끼 똑 떨어지는 밥상을 위한 비빔면, 그리고 쌈채소. 거기에 앞다리살 약간. 


 나 답지 않게 깨소금까지 뿌려주었다. 깨소금은, 굴에 찍어먹을 기름장을 만들기 위해 샀다. 그렇다. 포기할 수 없는 생굴의 그 맛의 핵심요소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소금에, 깨소금에, 챔기름. 참기름도 여기 와서 샀다. 아 참기름도 넣었네. 그래 정성 가득 비빔면이구나 참말로 그러고보니. 


 비빔면을 비비는 내 다리를 붙들고 따님은 딸기를 달라고 하시고, 바깥양반은 냉장고에서 딸기를 꺼낸다. 내일은 딸기를 따러간다. 가격이 천정부지인 딸기를, 체험을 통해 조금은 싸게 먹을 수 있을까. 그것도 잘 모르겠네. 


 하여튼, 바깥양반은 비빔면을 싹싹 비우긴 했는데, 그래도, 사람이 사람인지라, 바닥에 남은 채소를 박박 긁어먹는 그런 바람직한 모습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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