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Mar 21. 2024

달고달고달디단 밤양갱, 아빠도 좋아해.

참고로 카레보다 쉽다. 

"동백아, 이거 먹을래?"

"뭐어-?"

"음...젤리. 아빠가 만든 젤리."

"여기서 먹을래."

"그래? 흠."


 나는 잠깐 고민을 해보았다. 아직 한입도 먹어보지 않은 상황에서, 아침에 일어나 침대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따님께 이 밤양갱을 가져다 드릴까, 아니면, 번쩍 안아서 자리에 앉힐까. 


 흠 별 수 없지. 가져다드리자. 

"맛있어?"

"......."


 따님은, 오물오물 밤양갱을 드시며 대꾸를 않는다. 뽀로로......


 그러나 이 시기엔, 거부의 의사는 뱉음으로써 표현한다. 처음 보는 음식을 먹고도 뱉지 않는다. 그것으로 나는 안심하며, 빠르게, 아침 식사를 하러 간다. 밤양갱, 그거 하나 만들겠다고 아침 여섯시부터 제법, 요란을 떨었다. 


 아니 정확히는 팥을 이틀 간 불려놓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지. 

 나는 밤양갱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집 바로 옆 슈퍼에서 당시 50원에 팔던 새우깡만큼이나 밤양갱을 좋아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어린 시절 손에 꽉 차던 밤양갱의 그 크기라고는 도통 믿지 못할 작은 간식꺼리가 된 밤양갱이었지만 또래 친구들 누구도 먹지 않는 그것을 어린 시절에 유독 자주 사먹었고 나이를 먹고도 좋종 먹었다. 


 그런...데, 밤양갱 찬가가 세상에 울려퍼지네? 이건 못참지. 당장 만든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사실 밤양갱은 쉽다. 팥만 딱 하루 물에 불릴 인내심과, 한천을 산다는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만 수행할 수 있다면. 

 어젯밤에 팥은 삶아서 채반에 말려두었다. 물기를 쏘옥 빼야 정확하게 개량해서 팥앙금을 넣을 수 있다. 아침이 되니 팥은 말끔하게 말라있으니 그것을 빻기만 하면 되는 일. 한천을 불려 한소끔 끓이면 조금 틈이 난다. 팥은 400g 한천은 10g 올리고당 50g 설탕 40g. 그걸로 끝이다. 밤? 밤은, 잠시 뒤에 등장.  아기가 태어났을 전자저울이 오랜만에 열일한다. 작은 양으로 단숨에 만들어야 하는 디저트이니, 평생 눈대중 손대중으로 요리를 해오던 나도, 이번에만은 저울에 꼬박꼬박 개량을 해 올린다. 


 밤양갱, 카레보다 쉽다. 그냥 한천가루만 풀어서 한번 끓여낸 뒤, 다른 재료들을 모두 넣어서 두 소끔 끓인 뒤, 틀에 붓는다. 그게 다다. 

 어젯밤에 나는 아이를 재우곤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래서 싱크대엔 설거지가 쌓여있다. 아침부터 한쪽에선 설거지, 한쪽에선 밤양갱을 만드느라 조금 분주했다. 그래도 워낙에 쉬운 작업이라, 약불에서 반죽을 졸이는데에는 큰 품이 들지 않는다. 이게 다 비비 덕분이야. 밤양갱이라는 노래 덕분이야. 이렇게 쉬운 요리를, 한천 하나만 사면 끝나는 일을, 어릴 때부터 한천에 대한 거리감 때문에 해보지 못했다. 진작 할걸.


 올리고당과 설탕은 딱 알맞게만 들어갔다. 그러나 앙금엔 설탕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참고한 레시피보단 싱거울것 같다. 그러나 그게 좋다. 애초에 밤양갱을 만드는 게, 아이에게 공산품을 먹이고 싶지 않은 덕이기도 하다. 아삭아삭 껍질이 씹히는 팥앙금의 구수한 맛에, 은근한 단맛, 그런 맛을 상상하며 나는 팥양갱 반죽을 열심히 젓는다. 이때쯤 욕실에서 바깥양반께서 나오셨고, 아직 아무것도 아침 준비를 하지 않고 밤양갱이나 만들고 있는 날 타박한다.


 아, 한다니까. 나는 미역국을 작은 냄비에 옮겨 끓이기 시작. 그리고, 방금 삶아서 식혀둔 밤을 후루룩 깎는다. 어제 급하게 산 밤. 그런데 아쉽게도 싱싱하진 않다. 넉넉히 삶아둔 보람이 있다. 잘못 샀다. 반절 정도는 버리면서 실한 부분만 남겨 토도독 잘라서 틀에 올린다. 

 밤양갱. 밤양갱. 밤양갱이야아아아아.


 마들렌 틀 말곤 집에 몰드란 게 없어서...신기방기하게도 마들렌 모양 밤양갱이 만들어질 예정. 


"오빠! 빨리 씻어!"

"다 했어 다 했어."


 바깥양반이 다시 재촉한다. 할 일이 많다. 바깥양반의 상부터 차려드리고, 나도 다다다 욕실로 들어간다.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하고, 정리까지 하면, 몰드에 넣어둔 밤양갱 정도는 식어서, 이제 먹을 수 있다. 손으로 톡 밀어내면 슥, 하고 빠진다. 밤양갱의 멋진 점은, 몰드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손으로 슥 밀기만 하면 떨어져나온다는 점. 


"사진 잘 찍어. 이쁘게."

"음-...조개 모양이니까 뭔가 수달 손 같네."

 

 오랜만에 바깥양반이 좋아할만한 요리. 내가 사진을 찍기도 전에, 따님께 간식 상을 차려드리니 자기가 와서 먼저 사진을 찍어간다. 나는 아직 설거지가 남아 분주한 판이었으므로 뒤늦게 겨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따님과 간단한 문답 뒤에, 침대로 간식을 가져간다. 아이에겐 제법 큰 이 밤양갱, 노래를 들으며 오물오물 먹는 그 아리따운 모습도 보지 못하고 아빠는 빠르게...어제 세탁기를 돌리고 잠들어버려, 밤에 널지 못한 세탁물들을...널고...다급하게 바쁜...


"그러게 오빠, 왜 양갱을 만들어 이 바쁜 아침에."

"...낭만인데 왜..."


"그만 먹을래."

"응? 아빠 먹을래 아빠 먹여줘."

"싫어."

"........"


 빨래를 다 널고 나니, 이제 따님은 어린이집 갈 채비를 마치고 방에서 나온다. 그때까지 손에 쥐고 있던 양갱이 500원짜리 동전 크기 정도가 남아있다. 많이 먹었어. 다행이야. 


 아이는 비록 내게 자기가 들고 있던 밤양갱을 먹여주는 다정함을 보이진 않았지만...마침내 나도 그 밤양갱을 맛본다. 아, 달지 않다. 달고달고달디단 밤양갱은 아니야. 달지 않아. 그래도, 내 손으로 만든 밤양갱만큼 내 아이에게 먹이기에 소중하고 소중한 그런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다행히 우리 모두 이 분주한 아침에 지각을 하지는 않았다. 저녁이 되면, 냉장고에서 차게 또 쫄깃하게 식혀진 밤양갱을 아이와 함께 따듯한 우유와 먹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